45. 부상당한 부하
이 때 옆의 조돈력이 갑자기 약간 놀라고 당황한 듯 말했다.
『야단났소. 공자, 라 노제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군유명과 금우마는 즉시 살펴보았다. 라곤은 이미 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져서 실날같은 숨을 쉬고 있었고 몸뚱이는 조돈력의 품속에서 축 늘어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군유명은 즉시 손을 들어 라곤의 코앞에 갖다 댔다.
라곤이 아직도 매우 미약하나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금우마 역시 자세히 살펴보더니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공자, 라 노제는 왼쪽 어깨에 일검을 얻어맞아 손바닥 크기만 한 커다란 살조각이 떨어져 나갔으며 상처가 깊어 뼈까지 보입니다. 그리고 등 뒤에 일검을 맞은 것도 어깻죽지에 입은 상처보다 가볍지 않습니다. 본래 그는 한동안 더 지탱할 수도 있었지만 너무 많은 피를 흘린데다가 그동안 온 힘을 다 써서 달려오느라고 지치고 탈진한 나머지 이 지경이 된 모양이군요.』
군유명은 초조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아직도 한 차례 달리는 수고를 하게 된다면 그가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소?』
금우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됩니다. 즉시 그를 위해 피를 멈추게 하고 치료를 해서 쉬도록 해야 합니다. 이 몸이 보기에 그의 목숨은 푹 쉬도록 해 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목숨을 보존할 수 없을 것 같소이다.』
군유명은 초조해져서는 입을 열었다.
『지금이 어느 때요? 그리고 여기가 어디요? 어디로 가서 그의 피를 멈추게 하고 치료를 해 줄 수 있겠으며 쉴 곳을 찾을 수 있겠소?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
한켠의 조돈력 역시 놀라서 말했다.
『맙소사, 라 노제의 몸 안팎의 옷들이 모조리 피에 젖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가 이토록 쇠약해져서 걸음마다 숨을 내쉬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군요.』
금우마는 나직하고도 급하게 말했다.
『지금은 적들이 도사리고 곳곳에 적들이 겹겹이 에워싸듯 매복을 하고 있으니 공자, 우리들이 라 노제를 업고 포위망을 뚫을 수 있는 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라 노제가 다시는 시달림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을 때 그의 체내의 피는 모조리 흘러나오고 말 것이오이다.』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몸이 보기에 공자는 도저히 라 노제를 혼자 내버려 두고 떠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군요.』
군유명은 굳건하게 말했다.
『나는 차라리 이곳에서 싸우다 죽을지언정 라곤을 내버릴 수는 없소.』
금우마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오늘 밤 이곳에서 포위를 뚫고 떠날 수가 없겠소이다. 라 노제의 목숨을 생각해야지요. 첫 번째로는 반드시 적당한 장소를 찾아 몸을 숨기고 라 노제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고서 치료를 하는 것이지요.』
조돈력은 당혹과 공포에 찬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곳은 용담호혈과 같은 곳, 사면팔방에는 모두 적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우리가 어디로 가서 숨는단 말이오?』
금우마는 군유명을 바라보며 그 말을 받았다.
『공자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오.』
군유명은 한참동안 생각해 보더니 잠시 후에야 가까스로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다른 장소는 믿을 수가 없소. 철위부 안의 모든 비밀의 복실(複室) 혹은 남 모르는 구덩이나 지하실에 대해서 나를 배반한 사람들이 모조리 알고 있소. 오직 저기 바라다 보이는 다섯 개의 정사는 어쩌면 한 번 시험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금우마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안전합니까?』
군유명은 쓰디쓰게 웃었다.
『그 누구도 감히 안전하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오. 그 다섯 개의 정사는 원래 우리 철위부 사사급 형제들이 거처하는 곳인데 왼쪽에서부터 헤아려 최후의 한 채까지 모두 다 다섯 채이오. 그런데 그 집들 안 한 칸의 편방(偏房)에는 사람이 거처하지 않는 곳으로 알고 있소. 옛날 그 편방에는 잡다한 물건들을 쌓아 놓았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구려. 지금 당장에는 그 장소만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 같소.』
금우마는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곧 그곳으로 찾아가죠. 밤이 길면 꿈이 많아진다는 말이 있으니…』
군유명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 말을 받았다.
『금형은 갈 수 없소. 금형은 먼저 혼자 포위를 뚫고 돌아가 주시오. 그리고 이곳의 상황을 우리편 사람들에게 전해 주시오. 그래야만 그들이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고 계획 밖의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이오.』
금우마는 어리둥절해지더니 그 말을 받았다.
『어찌 그럴 수 있소이까? 이 몸이 어떻게 혼자서 여러분들을 내버려두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 몸이 보기에는 역시 조형이 가는 것이 좋겠소이다.』
군유명은 나직하고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금형 이외에는 보낼 사람이 없소이다. 조돈력은 무공은 겹겹한 포위를 뚫기에는 부족하오. 그리고 그 역시도 우리편 사람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확실한 장소를 잘 모르고 있소. 나 자신으로 말하면 이곳에 남아서 나의 형제를 돌보아야 할 책임을 지고 있소. 뿐만 아니라 이곳의 환경과 정세에 비교적 익숙해서 대응하기에 훨씬 편리하오, 금형. 당신이 먼저 이곳을 떠나는 것은 결코 우리를 버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며, 우리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정황을 모르고 경솔한 행동을 하여 부질없이 살상만 늘게 되어 전체적인 전략에 변화를 일으키게 하지 않기 위함이외다. 금형, 번거롭지만 한 번 봐주시오.』
금우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자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이 몸은 명령을 받들어 행동을 할 수밖에 없군요. 하지만 이 몸이 돌아가서 다시 고수들을 모아 돌아와 여러분들을 위험에서 빠져나가도록 해야 되지 않겠소이까?』
군유명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오. 우리는 스스로 방법을 강구해서 빠져나가겠소.』
금우마는 더듬거렸다.
『그러나… 그건 너무나 힘든 노릇일 텐데…』
군유명은 빙긋이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상관이 없소. 금형이 돌아간 후에 오늘 밤의 상황을 그들에게 알려주시오. 그리고 산장에서 조용히 우리들의 소식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외다. 그 때 명심할 것은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오!』
금우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가겠소이다, 공자.』
군유명은 간곡히 말했다.
『아무쪼록 조심하시오. 나가는 길을 기억하고 계시오?』
금우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이 몸은 알고 있소이다.』
두 주먹으로 포권을 해 보이고 금우마는 교활한 표범처럼 몸을 날려 밤의 어둠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막 떠나자마자 군유명은 즉시 조돈력에게 인사불성이 된 라곤을 업으라 하고는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다섯 번째의 정사쪽으로 다가갔다.
이 정사는 다른 네 채와 건축 형식이 같았다.
세 개의 방에 하나의 조그만 객청, 두 개의 조그마한 허드레 물건을 쌓아 놓는 방이 있었는데 모두 다 붉은 벽돌로 쌓아서 만들어 우아하고 운치가 있으며 아담했다.
집들의 옆에는 반원을 그리듯 키가 큰 용백(龍栢)나무가 심어져 있었는데 가지와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푸르름을 한층 뽑내고 있었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 집채들의 사방을 시커멓게 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정사의 뒷쪽에 있는, 그 허드레 물건을 넣어두는 편방(偏房)의 뒤 창문쪽으로 올라섰다.
창틈으로 눈을 갖다대고 안을 살폈다.
그 순간 군유명은 즉시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으며 가볍게 손을 뻗쳐서는 창문을 밀었다. 두꺼운 그 한 짝의 창문은 꼬리를 걸지 않은 듯 군유명이 약간 힘주어 밀자 그대로 열렸다.
즉시 몸을 날려 되돌아온 군유명은 나무 아래에 웅크리고 있는 조돈력에게 말했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도우는 것일세. 조돈력, 그 방은 아직도 원래의 그 모습으로 아무런 변동이 없네. 여전히 약간의 잡동사니들을 쌓아 놓고 있네!』
조돈력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그것 참 잘 되었군요, 공자. 이제 우리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겁니까?』
군유명은 손을 뻗쳐서 조돈력의 손에서 라곤을 받아안고는 조심스럽게 사방을 한 번 살펴보고는 음성을 낮추어 말했다.
『창문은 땅바닥에서 일곱 자도 못 되고 그 폭이 겨우 한 사람만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으니 조돈력, 당신이 먼저 오르시오. 라곤은 내가 업고서 들어가도록 하지.』
조돈력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숨을 들이마시더니 벼락같이 몸을 퉁기듯이 솟구쳐 올랐으며 정확하기 이를 데 없이 창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군유명은 조돈력이 들어가고 즉시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라곤을 안고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려서 나아갔다.
약 오 장쯤 나아가게 되었을 때 다시 곧장 일직선으로 몸을 팔 장이나 넘게 허공으로 몸을 뽑아 올렸다.
그런 후에 거대한 용백나무의 가지 위를 살짝 스칠 듯이 뛰어넘으면서 유성이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조금도 기척 없이 재빠르게 창문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방 안은 빛이 없어 매우 어둠침침했으며 곳곳에 못 쓰게 된 탁자나 의자와 같은 가구들이 쌓여 있었다.
한 묶음의 헌옷들도 보였다. 그밖에 또 약간의 망가진 칼이나 화살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야말로 다 망가진 골동품을 취급하는 가게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방 안에는 매케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바로 한 가닥 옆방으로 통하는 문틈에서 스며 들어오는 빛마저도 그토록 침침하고 음울했다.
조돈력은 벌써 한 장의 다리가 없는 옛날의 팔선탁(八仙卓)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군유명은 라곤을 업고 마치 솜뭉치처럼 가볍게 내려서서 막 조돈력의 종적을 찾으려고 했는데 이 재수 옴붙은 대비방의 당주는 어느덧 나직하게 쉬쉬하고 두 번 소리를 냈다.
군유명은 조돈력의 옆으로 다가가 빙그레 웃었다.
조돈력은 이미 한 무더기의 다 헤진 옷들을 펼쳐 고르게 하고 한 겹의 두텁고 부드러운 깔개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군유명은 가볍게 라곤을 그 위에 눕힌 후에야 가까스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저쪽 방에서 무슨 동정이라도 있던가?』
조돈력은 약간 긴장되어서 말했다.
『마치 그 누가 그 옆에 있는 것 같았소이다. 조금 전에 몇 번 기침을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소이다.』
군유명은 정히 무엇을 말하려고 고개를 쳐들다가 다시 쏜살같이 몸을 솟구쳐 오르더니 신속하게 열어젖힌 창문을 꼭 닫았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되돌아왔다.
조돈력은 탄복했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공자, 역시 공자가 일을 행하는 것이 확실하군요. 위기에 몰려서도 조금의 흩뜨러짐이 없구려. 그와 같은 조그만 일도 전혀 소홀히 다루지 않는군요!』
군유명은 웃었다.
『조그마한 실수가 전체 대사를 망가뜨릴 수도 있소. 마치 별빛처럼 보이는 불꽃이 나중에는 온 들판을 태우는 것과 마찬가지요.』
조돈력은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다음 단계에는 공자, 우리들은 무엇을 하죠?』
군유명은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의술을 아시오?』
조돈력은 주저하며 말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좀 알고 있을 뿐이지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죠.』
군유명은 빙그레 웃었다.
『나 역시 조금은 파고들었지만 정심하지는 못하네. 하지만 라곤의 상처가 단순하고 원인이 분명하니까 아마 나와 당신이 힘을 합하면 그를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네.』
조돈력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금창약이 없습니다.』
군유명은 차분한 어조로 그 말을 받았다.
『안심하시게. 철위부 안에는 얼마든지 있다네!』
조돈력은 어리둥절해졌다.
『가서 빼앗겠다는 것인가요?』
군유명은 나직이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 그거야 기교를 요하는 문제일세. 어떻게 일을 처리하느냐 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을 보아서 정하는 것이네. 이제 당신은 이곳에서 라곤을 돌보도록 하고 나는 방법을 강구하여 약을 구하도록 하지!』
조돈력은 황망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절대 조심해야 하오. 지금 철위부는 틀림없이 발칵 뒤집혀졌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사방에 겹겹이 깔려 있고 고수들이 일제히 나선 것은 명약관화하오. 공자는 조금도 소홀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외다!』
군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알아서 신중을 기하도록 하지.』
그는 발걸음을 죽이고 문가로 가서는 귀을 문에 갖다대고는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그는 약간의 힘을 주어 문을 밀었다. 그러자 그 문은 쓰윽하는 마찰음을 내며 반쯤 열렸다.
군유명은 재빨리 문 밖으로 나서는 즉시 문을 닫았다. 그러고 보니 그가 위치한 곳은 한 칸의 침실이었다.
두 개의 침대는 서로 마주보도록 수평으로 놓여져 있었으며 하나의 탁자에 몇 개의 의자, 그리고 하나의 옷장 등 간결한 가구들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하나의 유리등이 높다랗게 걸려 밝은 빛을 비춰주고 있었으나 방 안에는 전혀 사람이 없었다.
잠시 생각한 그는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옷장에는 옷가지가 걸려 있을 뿐이고 다른 물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군유명은 다시 침대 머리맡으로 가서 살펴보았으나 똑같이 실망을 하고 말았다.
그는 천천히 방문 곁으로 가서 바깥쪽의 동정을 엿들어 보았다. 그런 후 그는 다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섰다.
바깥에는 조그마한 객청이 있었는데 역시 정교하기 비할 데가 없이 꾸며져 있었다.
군유명은 사방을 살펴본 후 다시 탁자의 서랍을 열어보고 살펴보았으나 전혀 그가 필요로 하는 금창약이 없었다.
그가 정히 깊은 생각에 빠져 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려하고 있을 적에 객청 밖에서는 어느덧 시끌벅적하니 발걸음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자꾸만 가까워지고 있었다.
군유명은 재빨리 한 가닥의 묘수를 떠올리고 번개와 같이 하나의 대나무 병풍 뒷쪽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에 객청문이 열어젖혀지면서 두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들어섰다.
두 친구는 상당히 지친 듯했으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들어오자마자 무겁게 하나의 대권의(大圈椅)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 명의 친구는 탁자의 주전자를 들고 주둥이를 입으로 가져가 꿀꺽꿀꺽 실컷 들이마셨다.
그러자 의자에 앉은 그 친구는 맥빠진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밤에는 정말 커다란 소동이 생겼소. 나리께서 하필 이런 때에 철위부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갔으니 일곱째 사형, 정말 공교로운 일이 아니냔 말이오?』
일곱째 사형이란 불리운 그 사람은 역시 엉덩이를 의자 위에 걸치고 앉아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런 것들은 상관할 것이 없네. 가장 나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해지고 심장이 뛰도록 만든 것은 놀랍게도 오늘 밤 이곳으로 와서 크게 살계를 벌인 사람이 바로 마존 군유명 자신이라고 하는 것일세. 맙소사, 이것이야말로 대낮에 도깨비를 보는 격이 아닌가?』
다른 한 사람은 즉시 불안에 휩싸여 생각에 잠겨 있더니 걱정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그런 소문의 진원지는 바로 대비방의 방주 조기가 아니오? 내가 볼 때 아마 함부로 말한 것 같지는 않군.』
일곱째 사형이라 불리는 사람은 말했다.
『말하기 어렵지. 도리로 따져 말할 때 조기와 같은 신분이 있는 인물은 결코 터무니없는 말을 지껄이지 않겠지. 하지만 어떤 면으로는 그 역시 싸우느라고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정신이 헛갈려서 잘못 보거나 어쩌면 오늘 밤 잠입해 들어온 몇 명의 도적들 가운데 그 누가 군유명으로 사칭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군가라는 마적은 벌써 죽었고 아마 지금쯤 뼈까지 녹아 없어졌을 것이네.』
이쪽에 앉아 있는 친구는 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보기에 일곱째 사형, 동강이 철위부를 이어받은 데엔 뭔가 잘못이 있는 듯하오. 이 안에는 틀림없이 어떤 음모가 깔려 있는 것 같소.』
일곱째 사형이라는 자는 급히 쉬, 하는 음성을 내지르며 음성을 낮추고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좀 작은 소리로 말할 수가 없는가? 이 가운데에 흑막이 있다는 것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동강이 정말로 군유명을 위해서 대업을 계승한 것이라면 진정으로 군유명을 위해 원수를 갚고 흉수를 잡아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만약에 군유명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들 역시 정히 기뻐해야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말일세. 자네는 지금 각처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전갈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고 유언비어가 사방에서 떠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강이 가장 먼저 근심걱정에 쌓여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만약에 동강이 확실히 의리를 지킨다면 군유명이 살아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동강을 경계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감사히 생각하지 않겠는가?』
다른 한 사람은 싸늘히 코웃음 치더니 불만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일곱째 사형, 나는 개인적으로 동가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소. 그는 겉으로는 인의(仁義)의 큰 깃발을 내세우고 있지만 뒤에서는 남의 처와 누이동생마저도 함께 거두어들였소. 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을는지 그 누가 아느냐 말이오. 내가 보기에 군유명을 그가 해쳤을 가능성도 있소.』
일곱째 사형은 한동안 침묵을 하더니 나직이 말했다.
『본파의 대장문께서는 요구를 수락하고 전 문하의 아래위 사람을 데리고 와서 도우는 이 마당이니 우리들로서는 시시비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것이 없네.』
그의 사제는 감개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일곱째 사형, 나에게는 한 가지 예감이 있소. 그 예감은 지극히 불쾌한 것이오. 내가 보기에 우리들은 이후의 날들을 어렵게 보낼 것 같소. 가슴 속에 한 조각의 바위가 무겁게 억누르고 있는 듯 무겁고 답답한 것이…』
자기도 모르게 진저리를 친 일곱째 사형은 그 말을 가로채듯 물었다.
『무슨 말인가?』
그의 사제는 불안한 듯이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모습을 드러낸 적이 틀림없이 군유명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려. 그는 틀림없이 죽지 않았을 것이외다.』
일곱째 사형은 재빨리 물었다.
『자네는 무엇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가?』
젊은 친구는 약간 목에 힘을 주더니 입을 열었다.
『물론, 보는 바가 있소이다. 사형, 대비방 방주 조기는 거짓말을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그 첫째이고, 조기의 솜씨가 고강한 점을 두고 따질 때에 그를 이긴 자들이 많지 않은데 조기는 상처를 입고 대패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수하 이삼십 명이나 되는 고수들의 목숨마저도 잃었소. 이와 같은 강적이 군유명 이외에 또 누가 있겠소? 이것이 그 둘째 이유이고 그밖에 관채는 한 지방의 호걸로서 무공의 정심함은 천하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데 오늘 밤에는 그마저도 부상을 입고 말았으니 마존의 위풍이 아니면 누가 그를 꺾을 수 있겠느냔 말이외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이오. 또 군유명이 커다란 액난을 당했을 때에 죽지 않고 강호에 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은… 결코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없는 것이외다. 일곱째 사형, 내가 보기에 양산파가 대거 달려와 동강을 도와주려고 한 것은 커다란 실책인 것 같소. 잘못하다간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곤경에 빠지게 될 것 같소.』
일곱째 사형이라 불리는 사내는 급히 조그만 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말조심을 하게. 만약에 그 말이 대장문의 귀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자네는 고달프게 될 것일세. 이번 일들은 윗사람인 그분들의 일이고 우리들은 그저 따라가기만 하면 되네. 다른 것은 상관이 할 것이 없고 또한 관계할 수 없는 일일세.』
그의 사제는 싸늘히 코웃음치며 못마땅한 듯 입을 열었다.
『우리의 생사존망에 관계되는 일인데 어째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일곱째 사형, 내가 보기에 동강이 부리는 악독한 수작은 본파의 대장문과 동강이 초청한 고수들, 예를 들면 관채같은 인물들은 다소나마 모두들 내막을 조금씩 알고 있을 것이오. 우리같은 졸개들에게만 비밀로 하고 있는 것 같소.』
일곱째 사형은 불쾌한 듯 말했다.
『소구(小九), 자네는 불평불만을 작작하게. 들통이 나서 된서리를 맞아야만이 입을 다물겠는가?』
소구라고 불리운 젊은이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보람을 느끼지 못하겠소. 우리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서 목숨을 바쳐야 한단 말이오? 명분도 없고 이득이라고 해봤자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일곱째 사형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성이 나서 입을 열었다.
『자네는 들어가게, 소구. 나 역시 방으로 들어가 누워야겠네. 나는 다시 자네가 잔소리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네!』
그는 의자를 밀치고 걸음을 옮겨 객청 다른 한쪽의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들어간 후에는 무겁게 힘주어 문을 꽝, 하고 닫는 것이었다.
소우라는 젊은이는 싸늘히 코웃음 쳤다.
이 젊은 친구 역시 몸을 일으켜서는 자기의 침실, 바로 군유명이 조금 전에 나온 그 방으로 들어갔는데 이 친구는 여전히 걸음을 옮겨 놓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