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모든 상황이 마무리 된 이후에 썰을 좀 풀어볼까 했는데요.... 생각보다 저와 비슷한 사례를 갖고 계신분도 많으신듯하고 실질적인 진행과정을 말씀드리는게 도움이 되실것 같아 아직 완료되지 않은 저희집 상황을 전합니다.
제가 사생활을 온라인 상에 오픈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조금만 유추하면 건너건너 사람을 특정해 내는게 가능할 정도로 세상은 어떤 의미에서 좁다싶을 때가 있더군요.
그래서 사생활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악의적으로 이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선의의 믿음과 함께 사생활의 일부를 풀어봅니다. ^^
수원 영통에 삽니다.
강남으로 출퇴근이 용이한 가장 끝자락 어디쯤이요.
집들은 20년차가 훌쩍 넘어선 아파트인데 한국 들어와 산 6년동안 내림세는 없었습니다.
처음 스무평대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았고 2년전 서른평대 전세로 옮길무렵 이곳은 그야말로 전세가격의 꼭지점을 만들고 있었지요.
임대인의 손바뀜과 동시에 저희가 계약을 했습니다. 매매가와는 천삼백만원 차이.
주인은 깔끔하게 세입자용 인테리어 비용을 8백 들여서 가장 높은 전세가에 계약을 했지요.
그 전세에 제가 들어갔고요.
주변 모두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수리 안된 집들이 많았고
열악한 주거환경과 걸맞지 않는 터무니 없는 집가격과 전세가에 또한번 놀랐지요.
7년을 일본 사는 동안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주거빈곤을 내 나라에서 제대로 경험하다보니 인생을 잘못 살았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처음엔.
깔끔하게 정돈된 오래된 아파트를 꼭짓점 전세에 들어오면서 저는 계약서 특약 사항에 사는 동안 집담보 대출이 없을 것과 전세보증보험 계약 동의를 기입했습니다.
대략 백만원 가까운 보증보험료를 왜 지불하냐면서 이상한 사람 취급했지요. 1순위 확정일자를 가진 임차인이자, 등기부 등본은 아주 깨끗했으니까요.
사실 저는 그게 더 불안했습니다. 오래된 아파트에 매매가의 90프로가 넘는 전세금을 줬는데 만약 임대인에게 어떤 금전적 문제가 생기면요? 사람에게 만의 하나라는 돌발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게 만약 저라면요?
전재산을 집에 깔고 앉아서 그것마저 모두 날릴 수도 있는데 보험금 백만원은 아주 적은 돈이었습니다.
일본에서 15만엔씩 월세 내고 살기도 한 저에게 저 보험금은 아주 현실적으로 나의 자산을 지키는 든든한 안전판으로 여겨졌거든요.
두둥!
2년이 다 되어 갈무렵 재계약 이야기가 나왔지요.
아파트 전세 시세는 대략 4천 정도 하락했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동이 동향이다 보니 남향보다 천만원 정도 더 빠지더군요. 아랫집의 소음이 생각보다 고통스럽긴 했으나 이사가는 현실적인 괴로움도 만만치 않아 (집을 보여주고, 보러가고. 계약을 하고 실질적으로 이사를 하고) 적정선에서 타협이 된다면 재계약을 하려고 했지요.
하락한 가격만큼 낮춰 재계약을 했으면 한다고 의사를 전달했고, 임대인은 천만원만 줄여서 삼천만원 낮춰 재계약을 하자 했지요. 그래서 저는 다시 그러면 동향이라 겨울이 추우니 중문을 설치해달라고 했습니다. 대략 백만원 정도 들지요.
그러던 중 광주 사는 임대인이 급 수원으로 상경하여 부동산에서 보자고 하더군요.
중심상가에 있는 법인 부동산이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사 분께서 저를 설득하더군요.
임대인이 임대업을 등록한 사람이고 이렇게 갑자기 전세 시세가 많이 하락하다보니 여러모로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요. 그러면서 LH 임대업자 대출 얘기를 꺼내더군요.
경기도 서른평대는 1억, 스무평대는 8천까지 임대업자에게 1.5프로의 저리로 8년간 장기 대출을 해주는 대신 전세 시세의 80프로를 넘지않는 전세가와 갱신시 5프로 이상의 인상을 못하는 것, 8년까지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내용을 디밀더군요. 이건 임대인과 임차인이 모두 윈윈하는 정부의 좋은 프로그램이라고요. 그리고 좀 전에 스무평대 사시는 임차인이 재계약을 완료하고 갔다면서 제게도 제안을 하더군요.
지금의 전세에서 7천만원을 낮추고, 중문도 설치해주고, 보증보험도 가입해주겠다는군요. 낮춰진 전세금으로 빚이 있다면 조기상환을 하시고 아니면 차를 바꾸시든 여유자금을 하시라면서 제돈으로 그들이 생색을 내더군요.
그 순간 저는 집주인의 경제 상황을 한눈에 짐작해버렸지요.
기획부동산에 속아 여러채의 집을 갭투자한 막차 투기꾼.
현재 낮춘 전세금을 돌려줄 대출도 여의치 않은 임대인.
선순위 1억을 저당잡고 7천을 돌려받으면
삼천을 물건에 더 올려놓은 2순위 임차인이 되는 셈이죠.
백프로 보증금을 돌려받을수있는 보증보험이 있으니 괜찮다구요?
살다가 임대인에게 문제가 발생하여 집이 경매라도 넘어가면 저는 보험금 받아 이사가면 된다구요?
왜 제가 거액의 전세금을 담보잡아 보장받은 계약기간도 못채우고 집주인의 상황에 따라 보험사에 보증금 청구해서 급하게 나갈지도 모르는 물건을 그것도 2순위 임차인으로 있어야하는지 답은 못하더군요.
이사가겠습니다. 계약은 갱신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시세의 전세가의 집으로 1순위 임차인으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상황을 정리했으나.....
집은 보러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선순위 대출을 끼고 누가 올까요?
매매도 내놨습니다. 임대업자의 매물을 벌금 물지 않고 팔려면 매수자도 임대업자여야하죠. 손해보지 않으려 낮추지 않은 매매가를 어느 업자가 살까요?
보증보험을 사용할 상황이 될거 같아서 보험사에 갔습니다.
아주 친절히 절차를 서류로 만들어 설명해주더군요.
저의 계약만료일은 1월 20일
계약 갱신 거절을 11월 중순.
집을 구하러 다녀 맘에 드는 집을 구했지요.
같은 단지내 집주인이 3년 거주한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남향집.
다만.... 아이 예고 입학이라 잔금완료는 2월말.
임대인에게 말씀드렸죠.
집을 구했고 계약을 진행하고 싶으니 서둘러 집을 시세에 맞게 내놔달라.....노력하겠다는 답변만 받았지요.
보증보험이 있으니 계약을 진행했습니다.
다만 잔금 완료시점을 2월 마지막주로 하기로 유동성을 두고 계약을 했지요.
저는 보험에 들었으니 계약기간이 지나면 바로 청구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저같은 분들!
지금부터 잘 읽어주세요.
보험금은 계약 만료일 한달뒤부터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소 3주의 심사기간과 주택 실사가 있습니다.
대략 청구일로부터 한달이 지나면 받을수 있습니다.
청구서류 중 핵심이 “임차권 등기”입니다. 등기가 완료된 시점에서 보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 “임차권 등기”를 하려면,
계약 만료 한달전에 계약갱신의 의사가 없다는 문자 내지는 내용증명이 있어야하고요, 계약만료일 이후에 등기명령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이 명령서를 임대인에게 보내고 의의제기가 없으면 등기를 완료하는데 법원서류를 기피하여 반송할 수 있습니다. 거주지 불명으로요. 계약이후 임대인이 이사를 했거나 일부러 주소를 옮길경우 등기명령을 전달받지 못하지요.
이렇게되면 임차권 등기를 하는데 한달이상 시간을 잡아먹습니다. 법원에서 서류를 받아 주민센터가서 거주지 사실확인을 해야하거든요.
그래서 시간을 줄이려면 계약 갱신 거절의사를 문자로 남기는 것보다 내용증명을 보내어 반송여부를 확인하는 안전장치를 두는게 좋습니다.
그렇게 절차대로 진행해도 계약만료일로부터 두달입니다.
제 만료일은 1월 20일
잔금 날짜는 2월 말
보험수령일은 최대 3월 20일
임대인이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면
저는 20일의 공백을 자력으로 해결해야합니다.
그럼 만약 날짜를 늦추면 해결이 완벽히 되냐구요?
아니요. 아마 며칠은 보관이사를 해야할 겁니다.
임차권등기완료 후 보험청구를 하고, 집을 완전히 비우고 실사를 합니다. 파손정도를 살피고 임차권 등기물건을 명도받는 것이죠. 이 과정이 심사의 진행과정이니 보험금 수령전에 집을 비워야하는 셈이죠.
임차인은 내 전세금에 보증보험을 들어도 여전히 “을”입니다. 딱 맞추어 보험금을 사용할 수 없을 뿐더러 내용증명비용, 임차권등기명령 청구비용, 계약만료일 이후 내 전세금의 이자청구조차 임대인에게 하려면 별도의 소송을 해야합니다.
자신의 돈을 되돌려 받기위해 보험료를 내고도 저런 추가적인 비용이 또 듭니다.
법은 여전히 임대인의 편인 셈이지요.
다시 제 얘기를 마저 하자면
계약만료 한달이 훨씬 전 갱신거절의사를 문자로 남겼고, 내용증명 또한 보냈습니다.
그리고 집주인에게 제 입장과 앞으로의 상황을 설명했지요. 되도록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었거든요. 서로 못할 짓이니까요.
왜냐면요.....
임차인이 임차권등기명령을 하게되면
등기를 차후 말소하더라도 다른 임차인은 은행에서 전세자금대출을 거절당합니다.
그러니 집주인은 전세입자를 구하는데 제약을 받습니다.
제가 HUG로부터 보험금을 수령하면
임대사업자인 집주인의 주택에 임차인이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현실을 몰랐던 사람마냥 보증보험 받아 알아서 나가겠지 여기고 냅두고 다른 급한 물건처리부터 했답니다. 전세금 반환 소송 들어올것 같은 물건부터 먼저 처리했지요.
보험금을 집주인의 시간벌이로 생각했더군요.
어찌 알았냐구요?
법원 등기명령이 전달된 뒤에야 임대인 놀라더군요. 그냥 보험금 찾아나가는 것인줄로만 알았지 이런것을 하는지 몰랐다는군요.
그제서야 부랴부랴
전세금을 낮추고
매매도 급매로 전환하고
임대사업자가 아니어도 빨리 팔아달라했다는군요.
벌금 천만원 물어도 상관없다고.........
이사를 3주 앞둔 시점에서야
집주인은 현실을 각성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죠.
저는 적금깨고 계약금 걸고
내용증명 비용에, 임차권 등기비용을 추가로 쓰고
그러고도 잔금비용을 20일간 융통해야합니다.
갱신 거절 시점에 현실적인 가격을 제시했다면
아마 저는 별문제없이 이사갔을 겁니다.
두층 아래는 매매로 나갔고, 윗집은 전세계약이 되었으니까요....
한치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집주인의 욕심이
저의 보증보험을 자신의 방패로 착각했고
결국 우리는 각자 일정정도의 손해를 떠안아야하는 상황입니다.
그는 그의 욕심이 만든 과오인데
임차인인 저는 왜 자신의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보험료까지 지불한 것도 모자라
서류비용에 반환이 이루어질때까지의 손해를 감수해야 할까요?
전세라는 유일무이한 제도 속에 살아서 이런 감당을 해야하는 것일까요?
제대로 된 월세개념도 없는 이런 나라에서
이땅의 “을”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요?
21일이 되어야 보험금 청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다음달이 되어야 받을 수 있겠지요?
저는 또 전세로 임차인이 됩니다.
다시 보험가입을 할 것이고요,
이번엔 좀 다른 고민을 합니다.
2년 뒤 보험사가 무사할 것인가?
공기업인 HUG가 안전할까? 사기업인 SGI가 안전할까?
둘중 어느 것이든 외부충격에 의한 도미노라면 안전을 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래의 일이라 답은 모릅니다.
소용돌이가 몰아치면 지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수없이 자문하지만
그저 조금씩 연착륙하기를 바랄뿐입니다.
지금까지 2년전 HUG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여 진행된 상황입니다.
손해는 열받으나... 계약갱신을 하지않은 것에 감사하며
보험은 불합리하나... 그나마 전세금을 큰손해 없이 찾는다는 것에 위안합니다.
다들 이 험한 시기에
잘 견디시길 바랍니다.
아직 시작도 안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