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장 신화(神話)의 탄생(誕生), 그리고...
아열대의 향초(香蕉)가 남국의 풍취를 자랑한다.
산봉우리는 흡사 굽이치는 물결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아름다운 산하(山河)가 연출해 내는 장관이란 가히 필설로 형용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이름하여 십만대산(十萬大山).
운남성(雲南省)의 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산은 과거 무수한 소국(小國)들의 집결지였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대리국(大理國)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곳 사정은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 있었다.
대리국마저 한낱 전설 속의 망국(亡國)일 따름이었으니.......
여명(黎明)이 밀려 오는 시각.
크아아--!
봉우리를 뒤흔드는 괴조음(怪鳥音)이 울렸다.
그 뒤를 이어 전신이 황금빛을 띈 대붕(大鵬)이 하나의 봉우리 위에 날개를 활짝 펴며 내려 섰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느낌이 드는 그 영조는 과거 천도로 인해 진일문과 인연이 있을 뿐 아니라 동방절호가 거느리고 있
기도 한 천산금붕이었다.
휙--!
금붕의 등에서하나의 인영이 사뿐 내려 섰다.
인영은 한 여인으로 일신에 비취빛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녀의 용모로이르자면 시원스런 이마, 그린 듯한 아미가 서글서글한 눈매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오똑하게 솟아오른 콧날의 선에서는 여인 특유의 섬세함이 엿보였으며, 도톰한 입술은 홍매괴(紅魅魁)의 정열을 연상시켰다.
소위 화중미녀(花中美女)라는 말이 있듯이 이 여인의 아름다움은 그 하나하나가 완벽했고, 가느다란 허리에 늘씬하게 빠진 몸매 등 전형적인 미의 조건까지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여인은 손에 대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천산금붕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산정의 한 동굴로 향했다.
동굴은 그리 크지도, 깊지도 않았지만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그 안쪽은 평평하여 매우 편안한 구조였다.
그 곳에서는 지금 청삼을 걸친 한 청년이 눈을 감고 정좌한 채 호흡을 조절하고 있었다.
무척 단아한 인상이었으나 한 가지 흠이라면 병자처럼 혈색이 좋지 않다는 점이었다.
여인은 조용히그 앞으로 다가가 바구니를 내려 놓았다.
청년이 슬며시 눈을 떠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여인은 생긋 웃었다.
투명한 그녀의 볼에는 금새 볼우물이 패여 더 없이 귀여운 느낌을 전해 주었다.
"방해가 되었나요?"
"아니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여인은 쉽게 말하고 있는데 반해 청년은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당신을 너무 힘들 게 하는 것 같아 늘 미안하게 여기고 있소. 이것은 내 진심이오."
"또 그런 말......!"
여인은 섭섭한듯 눈을 살짝 흘겼다.
"당신은 언제쯤이면 제게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나요?"
청년은 입가에자조적인 웃음을 매달았다.
"후후... 그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오?"
"제발....... 이제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전 다만 제가 좋아서 이러는 것 뿐이에요. 보답을 바란 적도 없고요."
여인은 입술을깨물더니 가져온 대바구니를 열었다.
"음식을 드세요. 당신의 말이나 듣고 있다가는 제가 돌아버릴 테니까요."
청년은 정말로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여인이 태도를 바꾸어 예의 상큼한 볼우물을 만들었다.
"혹 맛이 없더라도 허물치 마세요. 솜씨는 없지만 그래도 제가 직접 만든 것이니까요."
"그 말도 실은 한 두번 들은 것이 아니오."
굳어져 있던 청년의 얼굴이 비로소 약간 펴졌다. 여인은 그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응수했다.
"흥! 하지만 당신의 이름처럼 일문(一文) 정도로는 도저히 맛도 볼 수 없을 걸요?"
일문(一文)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자는 흔치 않다.
이 병색이 도는 청삼청년은 바로 구주동맹의 맹주인 진일문이었다.
그리고 비취빛 의상을 걸친 여인은 다름 아닌 여취벽이었다.
그녀는 과거와는 분위기가 달라 보였다.
사내라면 한번쯤은 꿈꾸어 봄직한, 현숙한 여인으로 변신해 있는 것이었다.
두 남녀가 이렇듯 십만대산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허무영이 진일문을 여국에 데려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진일문은거의 회생 불가능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중상을 입고 있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무공이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하여 그는허무영의 도움으로 여국을 찾게 되었고, 극단의 실망 속에서 동방절호를 만나 이 곳에 오게 되었는데.......
그 때에 동방절호의 손녀인 여취벽도 함께 따라 나섰다.
진일문이 한사코 사양하는데도 불구하고 공주라는 신분까지 팽개치며 그의 간호를 자청한 것이었다.
실상 진일문이그들 조손(祖孫)에게 입은 은덕이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여취벽의 헌신적인 간병도 그렇지만 동방절호가 그에게 기울이는 노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한때 마교의 교주라 하여 지탄을 받다가 목숨까지 잃을 뻔 했던 동방절호다.
가계(家系)에 전승된 비운을 겪었으며, 무림의 일에는 일체 관여치 않겠다고 선언한 바도 있었다.
하지만 동방절호는 중상을 입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진일문을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반대로 그는 환자의 치유를 위해 목하 심혈을 쏟고 있는 중이었다.
인생사의 초탈에 이른 그도 무림의 혼(魂)만은 거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광명교의 광화비전(光化秘傳)을 활용했다.
이 절봉 위에 장소를 마련한 후, 진일문의 상세를 돌보는 한편 매일 광화비전의 법문(法門)을 풀이해 주었다.
광화비전의 법문은 무려 팔천여자에 이르는 것으로 그 안에 포함된 심법(心法)들은 모두 그 뜻이 광대하고도 오묘했다.
따라서 아무리오성이 뛰어난 자라 해도 그것을 혼자 외우고 체득하기에는 많은 세월을 요했고, 이 점을 감안한 동방절호는 하루에 꼭 백자씩을 진일문에게 해석해 준 것이었다.
동방절호는 정녕 일세의 기인(奇人)이었으되, 백여 년 가까이 광화비전의 연구에 열정을 바쳤던 바 있었다.
바로 그 전력이 진일문에게 아낌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진일문은 그가풀이해 주는 법문의 요결을 받아 들이는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다만 내공을 상실한 탓에 그것을 실제적으로 응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굳이 이르자면내공 구결에 따라 처음부터 공력을 다시 쌓아가야 하는, 무학의 최초 입문 단계에 들어서 있는 셈이었다.
진일문은 빙긋웃었다.
"그럼 공주께서 손수 만드신 귀한 음식이니 잘 먹겠소."
"호호호... 당신은 큰 영광을 누리는 거예요."
여취벽이 바구니 안에서 꺼낸 음식이란 밀가루로 곱게 빚어 만든 몇 개의 빵과 꿀, 향초 등이었다.
진일문은 미간을 모았다.
"술은 없소?"
"그건 안돼요. 당신은 새로이 무공을 연성해야 하기 때문에 금기 사항을 철저하게 준수해야 해요."
여취벽은 고개를 젓다 말고 멈칫했다.
진일문의 안색이 또 다시 방금 전처럼 음울하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취벽은 그의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지나치게 말이 많았지요?"
진일문은 고소를 떠올렸다.
"아니오. 그렇지 않소."
부인을 하고 있으나 그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무공에 대한 언급이야말로 그에게는 금기 아닌 금기였다.
반야천의 마공, 그의 세력, 그리고 두 여인의 희생 위에 올라서 있는 자신.......
이런 등등의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키므로.
그는 무공이 전폐된 채 어린아이처럼 무력해져 있는 자신을 혐오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만일 반야천이 야망의 발톱을 전면적으로 드러낸다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지금 이 시각에도 무림의 안녕이 위협받고 있거늘, 나는.......'
여취벽이 곁에서 그의 상심을 위로했다.
"가가, 너무 조급해 하지 마세요. 할아버지라면 필히 당신의 무공을 회복시키실 것이고, 그때가 머지 않았어요."
한 가닥 중후한 음성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허허헛! 네 그 믿음이 또 나를 부추키는구나."
"할아버지......?"
"어르신네."
여취벽은 반색을 하며 벌떡 일어나 달려 갔고, 진일문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동굴의 입구에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동방절호였다.
여취벽은 어느새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허허, 이런 녀석을 보았나? 다 큰 계집아이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렇듯 마냥 응석이나 부리다니."
동방절호는 한손으로 여취벽의 머리칼을 쓸어 내리며 만면에 자애로운 미소를 떠올렸다.
과거 혈연(血緣)으로 인해 비원의 눈물을 뿌렸던 때와 그대로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뭐 어때요? 그럼 저 말고 또 누가 이럴 건데요?"
혀를 낼름 내밀어 보이는 여취벽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모친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와 어릴 적의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리라.
그들 조손으로인해 동굴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어 동방절호는 그야말로 인간미(人間美) 넘치는 시선으로 진일문을 응시했다.
"노부는 이제 자네의 흐트러진 맥을 고치겠다."
"어른신네......."
진일문은 콧등이 시큰해져 그것을 감추느라 고개를 숙였다.
사실 지금까지의 성의만으로도 그는 감읍할 지경이었다.
특히 광화비전의 무공은 일찌기 그가 접해본 무학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내삼기의 무학도 고절하기는 했으나 광화비전의 무학과 비교한다면 궁극에 이르러서는 한 단계 뒤진다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진일문은 충격과 아울러 하나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곧 광화비전의 극의(極意)를 깨우치면 능히 반야천과도 일장을 결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 모든 사실이 한낱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전신의 맥이 끊어지고 흐트러져 있으니 광화비전 상의 법문에 통달하고 있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런데 상황은다시 전환기를 맞고 있었다.
동방절호의 음성은 진일문의 가슴을 밑바닥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자네의 몸은 이제 원원지체(元元之體)가 될 것이네."
"으음......."
"그것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써 순수무결한 체질을 말하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자네는 천산금붕의 내단(內丹)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네."
"그럼......?"
동방절호는 입가에 담담한 미소를 떠올렸다.
"자네의 맥을 고치고 체질을 바꾸어 놓는 데까지는 노부의 의술이면 가능하다. 그러나 내공을 되찾는 데에는 역시 천산금붕의 내단이 필요하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진일문은 자못심각한 안색이 되어 물었다.
"내단을 잃고 나면 금붕은 어찌 됩니까?"
"허허... 자네, 정녕 못말릴 위인이로군. 지금 처지에 그런 걱정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네. 염려 말게. 금붕에게는 내단이 두 개가 있어 하나를 희사한다 해도 별 영향은 받지 않을 걸세."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진일문은 그제서야 굳어져 있던 표정을 풀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방절호가 오히려 심각해졌다.
"어차피 자네도, 나도 무림의 안녕을 위해 각자 지니고 있는 능력을 투자하는 것이니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 말게. 아니, 자네가 안아야 할 부담은 따로 있네."
그는 말하다 말고 여취벽을 돌아다 보았다.
"노부는 자네에게 하나 밖에 없는 내 손녀를 맡기고 싶네."
진일문은 잠시어안이 벙벙해진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그는 침중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소생은 그 부탁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동방절호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하니 그가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거절하겠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단호한 대답에동방절호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어졌다.
"이유가 무언가? 내 손녀가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겠지?"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신분으로든 그 무엇으로든 공주는 제게 과분한 상대입니다."
"그런데 왜......?"
대화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여취벽은 충격을 받은듯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그녀의 어깨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는 것을 진일문은 놓치지 않고 보았다.
동방절호라 해서 그런 여취벽의 모습을 못보았을 리 없었다.
그는 진일문을 정시하며 재차 같은 말을 물었다.
"왜인가? 어서 말해 보게."
진일문은 탄식을 발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자신이 동방절호를 만나기 위해 이 곳까지 오게 된 경위, 즉 앞날이 창창한 두 여인의 희생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는 음울한 음성으로 덧붙여 말했다.
"솔직히 저는 자신이 서지 않습니다. 경험으로 미루어 설사 공력을 되찾는다 해도 반야천과의 대결에서 살아 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또 한 명의 귀한 여인을 저로 인해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으음......."
동방절호는 침음성을 발하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동방절호 쪽이었다.
"문제는 취벽, 그 아이가 자네를 연모하고 있다는 사실이네. 내 마지막으로 묻겠네. 자네는 그 아이가 싫은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되었네."
"예?"
"노부도 자네 입장을 이해하는 만큼 당장에 자네더러 어쩌라고는 하지 않겠네.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줄 수 있겠나?"
"말씀 하십시오."
"훗날, 자네가 모든 것을 성취하고 나면 그때에는 반드시 내 손녀를 데려 가게. 그러지 않으면 그 아이는 아마도 상심해서 제 명을 다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네."
"하지만 제게는 이미 많은 여인이......."
"허허... 노부가 보건대 자네는 불세출의 영웅일세. 삼처사첩(三妻四妾)을 거느린들 누구도 탓하지 못할 걸세."
"어, 어르신......!"
"그만, 이제 치료에 들어 가세."
말을 마치자 동방절호는 우장의 검지를 내밀어 허공을 점했다.
슉!
한 줄기 지공이 그의 손가락 끝에서 탄출되어 진일문의 혼혈(昏穴)을 짚었다.
진일문은 이내 의식을 잃고 말았다.
"허허... 노부가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는가? 자네가 꼭 내 뒤로 손녀를 돌보아 주어야 하네."
동방절호는 혼자 읊조리고는 진일문을 동굴 내의 평평한 바위 위에 뉘였다.
이어 그는 품 속에서 목갑을 꺼냈다.
자단목으로 된그 목갑 안에는 붉은 비단이 깔려 있었고, 거기에는 크고 작은 침들이 금광을 번쩍이며 무수히 꽂혀 있었다.
"천절금침개정대법(天節金針開頂大法)으로 맥을 이은 후, 몸 안의 탁기(濁氣)를 제거하면 원원지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천절금침개정대법.
이는 광화비전의 방외편(傍外篇) 가운데 요상편(療像篇)에 수록되어 있는, 이른바 침술의 정화(精華)라고 할 수 있었다.
동방절호는 목갑을 내려 놓고는 일단 진일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진일문은 졸지에 나신으로 화했다.
생동감 넘치는구릿빛 근육이 동방절호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것은 활력과 더불어 강한 신뢰감을 느끼게 했다.
흔히 남자의 나신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조형미 또한 단단히 일조했다.
동방절호는 내심 부르짖듯 중얼거렸다.
'부탁하네. 모든 것이 자네의 한 몸에 달렸네. 내 손녀의 미래도, 나아가서는 중원무림의 평화도....... 부디 이 늙은이의 염원을 모두 이루어 주기 바라네.'
금침(金針).
총 수요는 오백십이 개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결같이 머리카락보다 더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기도 했다.
일종의 관(管)이랄까?
그 금침들이 지금 진일문의 전신 혈맥 중 임독양맥(任督兩脈)을 제외하고는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흡사 고슴도치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 즉 중부(中府)에서 시작하여 소상(少商)까지 좌우를 합쳐 총 이십이혈이다.
그리고 수양명대장경(手陽明大腸經)은 상양(商陽)에서 영향(迎香)까지 역시 좌우 합쳐 사십혈,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은 천지(天池)에서 중충(中衝)까지 십팔혈에 이른다.
수소양삼초경(手少襄三焦經) 관충(關衝)에서 시작하여 녹죽공(綠竹空)에 이르기까지 총 사십육혈이다.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은 극천(極泉)에서 소충(小衝)까지 십팔혈,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小腸經)은 소택(少澤)에서 청관(聽官)까지 삼십팔혈,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은 동자교( 子膠)에서 규음(竅陰)까지 팔십육혈이다.
그런가 하면 족궐음간경(足厥陰肝經)은 대돈(大敦)에서 기문(期門)까지 좌우 합쳐 이십육혈, 족양명위경(足陽明胃經)은 승읍(承泣)에서 시작하여 뢰태( 兌)까지 오십혈이다.
족태음비경(足太陰脾經)은 은백(隱白)에서 대포(大包)까지 사십이혈이요,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은 청명(晴明)에서 지음(至陰)까지 백이십육혈,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은 용천(涌泉)에서 유부(兪府)에 이르기까지 총 오십사혈이다.
동굴 내부는 어둠으로 휩싸여 있었다.
정확히 열두시진이었다.
동방절호는 만 하루를 꼬박 보내며 금침들을 꽂았다.
각 혈도에 따라 순서 하나 틀리지 않았거니와 심지어는 그 심천(深淺)마저도 균일했다.
여명을 앞두고동방절호는 이마와 콧등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았다.
그는 나직한 독백을 흘려 냈다.
"충기론(衝氣論)에 의거해 임독양맥을 빼고는 전부 천절금침개정대법을 시술했다. 처음이라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충기론이란 사람의 기(氣)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 혈맥에 흘러 다닌다는 이론이다. 동방절호는 그 무수한 침을 인간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원기의 흐름을 따라 하나씩 꽂아갔던 것이다.
그야말로 일호리의 오차도 범해서는 안되는 고된 작업이다.
그는 시간을 계산해 보더니 다시 금침을 꺼내 들었다.
"기경팔맥(奇經八脈)에 금침술을 펴려면 극도의 위험이 따른다. 총기론에 따르면 기가 일주천 하는 순간, 기경팔맥이 비게 되어 있다. 바로 그 시각이 운명을 걸 때이지."
동방절호는 손가락에 금침을 끼고는 새삼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파파파팟!
음교맥(陰 )을 시초로 금침이 현란하리만치 정확하고 빠르게 꽂혀 갔다.
아니, 현란한 것은 동방절호의 손이었다.
그의 손은 마치 춤을 추듯 진일문의 몸 위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마침내 기경팔맥 중 마지막 혈도에 금침이 꽂혔다.
츠츳!
기이한 음향과함께 금침 끝에서 시커먼 물이 화살처럼 튀어올랐다.
썩은 피였는지 그 물에서 나는 냄새는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을듯 고약한 것이었다.
"성공이다!"
동방절호의 눈에 일순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혈장(血醬)을 통해 몸의 탁기가 모조리 흘러 나왔다."
금침을 따라 흘러 나오던 액체는 검은 색에서 노르스름한 색으로, 종내에는 선명하게 붉은 피로 전환되었다.
놀라운 변화는그 때부터 일어났다.
병색이 완연하던 진일문의 안색이 불그스름해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는 전신의 피부가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변했다.
투명하리만큼 해맑아진 그의 피부를 보며 동방절호는 자신도 모르게 환희에 찬 음성을 토해냈다.
"오오! 드디어 완성되었다. 원원지체가......."
그것은 그 자신이 이룬 성취이지만 축하의 말이나 다름 없었다.
무림사에 새로운 신화(神話)를 창조할 위대한 인간이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크아악! 크악--!
천산금붕이 토해내는 울음소리가 십만대산의 전 봉우리를 뒤흔들었다.
뿐만 아니라 금붕은 희귀한 광경을 보여 주었다.
금빛 날개를 활짝 편 채 잇단 괴성을 토하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입 안으로부터 눈이 부실 정도의 붉고 푸른 광채가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빨려 들어가곤 했다.
그 두 가지 색의 광채란 그저 범상한 빛무리가 아니었다.
각기 붉고 푸른 색을 띈 투명한 구슬이 월광(月光)을 받아 빛을 반사해 내고 있는 것으로써 이는 무림인들에게 있어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한 장면이었다.
적어도 강호에 발을 들여 놓고 무학을 연성하고자 하는 무림인이라면 그 구슬이야말로 꿈속에서조차 갈망하던 내단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으리라.
그 광경을 지켜 보던 동방절호가 침중한 음성을 발했다.
"아무래도 틀린 것 같네. 내단을 달라고 부탁한지가 벌써 한 시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금붕은 달의 정기(精氣)를 빨아 들이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군."
그는 진일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거부할 만도 하다네. 금붕은 일년 전에 새끼를 세 마리나 낳았지. 아무리 자네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한들 어디 모성(母性)에야 비하겠는가?"
"옳으신 말씀입니다."
진일문은 입가에 흐릿하게 고소를 떠올렸다.
"어차피 처음부터 지나친 욕심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단이란 금붕에게는 생명의 원천이 아닙니까? 그런 것을 바랐으니 제가 되려 미안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크악!
천산금붕이 뇌성과 같은 울부짖음을 토하더니 입을 딱 벌렸다.
그러자 붉은 광망이 산정 위를 온통 휘황찬란하게 비추었다.
그것을 본 동방절호는 감격한듯 부르짖었다.
"오오! 노부가 경솔했나 보네. 금붕이 내단을 자네에게 희사하겠노라고 하는군."
"어찌 그것을 아십니까?"
"허허... 금붕은 달의 정기를 흡수할 때는 음양의 내단 모두를 토해 주윤(週輪)시키네. 그런데 지금은 그 중 양화내단(陽火內丹)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으로 솟구치던 내단이 방향을 틀더니 진일문에게로 날아왔다.
"웃!"
진일문은 놀란나머지 엉겁결에 그것을 받았다.
그 순간, 내단에서 열기를 품은 수중기가 그의 얼굴로 확 끼쳐 왔다.
당혹해 있는 그에게 동방절호가 급히 외쳤다.
"빨리 그것을 내복하게! 내단이란 일단 금붕에게서 떠나면 삽시에 기체로 화해 흩어지고 만다네."
본시 어느 영물의 내단이건 대개가 천지만물의 정기를 모아 형성되므로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진일문은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곧바로 양화내단을 취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단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즉시 녹아 버리더니 그가 입을 다물자 절로 목을 타고 넘어가 버렸다.
'조금만 늦었으면 그대로 유실될 뻔 했군.'
진일문은 입 안에서 느껴지는,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향기를 음미하며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아주 잠깐 사이의 일일 뿐이었다.
곧 그는 뱃속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열기를 느끼며 짧게 비명을 토했다.
"으윽!"
그의 신형이 앞으로 휘청했다.
웬만한 고통쯤은 내색도 하지 않는 그였으나 오장육부가 타들어가는 듯한 뜨거운 기운에는 역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 활화산과도같은 열기는 이내 전신 사지백해로 번져 나갔다.
말 그대로 용암(鎔巖) 속에 빠진 느낌이었다.
"우우--!"
동방절호가 쓰러지려는 진일문을 재빨리 받아 안았다.
그는 천산금붕의 날개를 한 차례 쓸어 주고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진일문은 그에의해 평평한 암반 위에 뉘여졌다.
나직하나 엄숙한 그의 음성이 귓전으로 전해져 왔다.
"어서 운기조식을 하면서 광화비전의 법문에 따른 도인(導引)을 하게. 내단의 열기를 녹이지 못한다면 자네는 한 줌의 혈수로 화하고 말 것이네."
진일문은 그 말에 고통을 억누르고 일어나 정좌를 했다.
그는 심호흡을 하며 광화비전의 법문과 심법을 떠올렸다.
이윽고 그가 조식에 들어 가자 체내에서 들끓고 있던 내단의 강맹한 열기가 전신의 경맥(經脈)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상태에서 점차 그는 몰아지경에 빠져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흘렀을까?
뿌우연 운무가 진일문의 이마 위에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그의 전신모공으로부터 솟아나온 기운으로써 기이하게도 흩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러던 한순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진일문의 가슴이 크게 들먹여지는가 싶더니 소용돌이 치던 운무가 그의 콧속으로 한 올도 남김없이 모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것을 본 동방절호가 재빨리 우장을 뻗어 진일문의 백회혈(百會穴)을 내리쳤다.
쾅!
콰르르르.......
이는 외부로 들린 소리가 아니었다.
바로 진일문의 뇌리에서 일어난 굉음이었다.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 속에서 그는 아득한 심연의 나락으로 이끌려 들어가야 했다.
의식되는 것은더 이상 그 무엇도 없었다.
칠월 스무이레.
성하(盛夏)의 폭염(瀑焰)이 시작된지도 이미 오래였다.
언제 중원대륙을 떠나 왔던가?
날짜조차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시간은 잘도 흘러가 버렸다.
진일문.
그는 동굴 내에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정좌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알만한 물건이 하나 놓여 있었다.
백옥미인상(白玉美人像).
백옥으로 만들어졌으며 마치 살아있는듯 정교하기 그지없는 나녀상, 그것이라면 일찍부터 진일문과 무관한 물건이 아니다.
인간의 손길이닿으면 미세한 혈선을 떠올려 인체의 경락(經絡)을 나타내는 것도, 검은 점이 그 경락을 따라 운행하며 하나의 심법을 보여주는 것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 경락의 운행이야말로 상궤를 일탈한 상승의 내공심법이 아니었던가?
그것을 현재 진일문이 익히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도 이를 일컬어 필연(必然)이라면 맞으리라.
본래 광화비전은 깊이 연구해 그 극의에 이르면 인성을 벗어난 마인으로 화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역(逆)의 심법이 연구된 바, 그 실체가 예의 백옥미인상이었다.
심법에 몰입한그의 모습은 가히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 기도(氣度)를 유지하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 무상(無上)의 현기(玄氣)를 담고 있다고나 할까?
변했다.
확실히 진일문은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분명히 존재와 함께 또 다른 일면으로는 그 존재를 인식할 수조차 없는, 그런 기오막측한 분위기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운명의 유전(流轉) 속에서 진일문은 다시 새롭게 완성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감겼던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대체 얼마만이던가?
폐목명심(閉目明心)의 역경으로부터 자신을 필요로 하는 현실로 되돌아온 것은. 그의 눈가에 스르르 감격의 물결이 번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동방절호가 그를 맞았다.
"취벽, 그 아이를 먼저 보냈네. 여국으로......."
"옛?"
진일문은 짧은말 속에 담긴 많은 의미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때 아닌 곤혹에 사로잡혀야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동방절호는 씁쓸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개인 감정보다는 대의(大義)가 우선이 아니겠는가? 그 아이는 자청해서 발길을 돌렸네. 자네가 떠나는 것을 볼 용기가 없노라며 몹시 울더군."
진일문으로서는 할 말이 있을 턱이 없었다.
"다 소생이 무능한 탓입니다."
동방절호는 고개를 젓더니 빙긋 웃었다.
"그 아이 일은 일단 마음에 두지 말게. 자네가 여국으로 다시 찾아줄 때까지는 노부가 잘 데리고 있겠네."
"어르신......."
"그만 하산하게. 자네의 연공(練功)은 끝났네. 나도 이 길로 손녀의 곁으로 가 보아야 하네."
진일문은 백옥여인상을 갈무리하며 묵묵히 일어섰다.
그는 못내 착잡한 심정이 되어 동굴 안을 둘러 보았다.
지금 그를 사로잡는 것은 재생(再生)의 기쁨이 아니라 향후의 일에 대한 여러 가지 고심들이었다.
도저히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난제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진일문은 개중반야천의 모습만을 고집적으로 잡아 당겼다.
그의 눈에서는 곧 횃불 같은 광망이 일었다.
'기다리시오, 반궁주! 나 진일문은 받은 만큼을 돌려 주기 위해 당신을 찾아갈 것이오.'
마침내 진일문은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향했다.
동방절호 역시도 그 뒤로 동굴을 나왔다.
산정(山頂).
맑고 푸른 하늘이 손만 뻗으면 그대로 닿을 듯했다.
진일문은 홀로 그 곳에 남아 지난 육개월을 돌이켜 보았다.
동방절호도, 여취벽도 모두 떠나고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자취는 진일문의 가슴에 더 없는 압박감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단순한 부담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동방절호의 엄숙하면서도 자애롭던 모습을 떠올렸다.
'어르신, 제게 베풀어 주셨던 하해와 같은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아울러 신명을 다해 중원무림을 지킬 것을 약속 드리는 바입니다.'
정면으로는 차마 쏟아놓을 수 없었던 말들이 절로 그의 내심에서 흐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여취벽에게도 무언의 전언을 잊지 않았다.
'미안하오. 언제고 이 곳에 다시 오를 수 있다면 그때는 내 반드시 그대와 함께 오르리다.'
진일문은 이로써 일단 심중의 짐을 털어 버리고는 몸을 돌렸다.
그가 막 신형을 날리려 할 때였다.
"흘흘... 어떤가? 이 화상의 예언이 맞지 않았나? 바로 저런 골기(骨氣)가 항차 중원무림을 떠받들 걸세."
"빌어먹을! 어쨌든 눈썹이 휘날리도록 허겁지겁 달려 온 보람은 있군. 벌써 떠나 버렸을까 봐 걱정 했는데."
"흘흘... 신변 정리를 하겠다고 남아 있어준 것에 감사해야지."
난데없이 걸걸한 소음이 들려 왔다.
"오오! 이 음성은......."
진일문은 격정으로 인해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음성들은 그의 정신 속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두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클클... 매정한 놈이 그래도 아직 우리를 잊지는 않았구나."
헛바람 같은 웃음소리와 함께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헝클어진 머리에 영락없는 상거지의 모습, 바로 만박노개였다.
그 뒤를 이어 여전히 살집이 두툼한 취화상도 나타났다.
"우내쌍기, 두 어르신네."
진일문은 격동을 금치 못하는 한편 얼른 무릎을 꿇으려 했다.
만박노개가 손을 휘휘 저어 그를 만류했다.
"인사 따위는 집어 치워라. 내가 속례를 좋아할 것 같았으면 개방에 죽치고 앉아 있지, 뭐하러 이렇게 싸돌아 다니겠느냐?"
"여전하십니다."
진일문은 씨익웃으며 덧붙여 물었다.
"이 곳에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흘흘... 그걸 몰라서 묻나? 동방교주가 압력을 넣어 우리를 파사국의 정교에서 빼내 주었지. 하마터면 거기서 우리는 늙은 뼈다귀를 묻을 뻔 했다. 염병할!"
진일문은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실 그 일의 배경에 대해서는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 분을 직접 만나신 적은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어찌 이 곳을 알고 달려 왔겠느냐?"
만박노개는 말도중에 갑작스럽게 표정을 굳혔다. 그를 보며 진일문은 침착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혹 그 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렇다. 지금 중원의 정세는 말이 아니다. 오죽하면 동방교주도 우리에게 천산금붕의 어린 새끼까지 전해 주면서 빨리 너를 찾아가라고 했겠느냐?"
만박노개는 입술을 오무리더니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캬우우우--!
건너 편 산봉우리로부터 괴조음이 울리며 세 마리의 금빛 찬연한 새가 치솟아 올랐다.
세 마리의 금조는 순식간에 산정으로 날아와 내려 섰다.
그 크기는 천산금붕에 비해 오분지 일밖에 되지 않았으나 외양이나 기세가 어미와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만박노개가 그중 한 마리에 등에 올라 타며 말했다.
"가면서 말하도록 하지."
진일문은 그가서두르는 것을 보고는 묵묵히 다른 한 마리의 금붕 위로 올랐다.
나머지 한 마리에는 취화상이 올라탔다.
세 마리의 금붕은 동시에 날카로운 울부짖음을 토해내며 허공으로 비상했다.
등에 타고 있는 이노일소(二老一少)를 머나 먼 중원 땅으로 날라다 주기 위해.
그 사이, 진일문은 중원의 현재 상황에 대해 우내쌍기로부터 상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중원무림은 장구한 역사와 피의 유전 속에서도 면면히 그 맥을 이어왔다.
그런데 불과 육개월 전, 일대 혈풍이 몰아치더니 반년 동안 모든 것이 변질되어 버렸다.
혈풍은 일월맹으로부터 야기되었다.
이제껏 은밀하게 움직여 오던 그들이 마침내 전면에 나서며 각 문파들을 쳤던 것이다.
그들은 먼저 각 문파에게 합병해 오기를 명했으나 그것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독특한 무학과 인맥을 형성하며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 오던 문파들이 협박에 굴복할 리 없었다.
그 결과로 일월맹은 요구를 거부한 문파들을 치기 시작했다.
여기서 특기할 사실은 그들이 붕괴시킨 제문파들이 하나같이 흑도(黑道)에 속해 있다는 점이었다.
일월맹은 잔인했다.
그들은 일단 손을 썼다 하면 삼족을 몰살시켜 버리는 수단으로 나갔다.
덕분에 일월맹이라는 이름은 불과 이개월만에 죽음의 상징이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 간에 멸절된 문파는 대소 구별없이 총 팔십칠 개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대강남북이 피로 진동하고 시체가 산야를 덮었다.
도대체 짧은 기간 내에 이런 참상이 벌어진 적은 무림 개사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다.
과거 정사대전조차도 최소한 이토록 많은 인명을 혈우속에 사라지게 하지는 않았다.
그에 반해 정도무림은 일체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구대문파를 주축으로 한 구주동맹은 맹주을 잃은 후로 여전히 봉문상태나 다름이 없었고, 무엇보다 큰 의혹은 삼성림의 침묵이었다.
마세가 천하를 휩쓸어도 정도무림의 상징적인 존재로 군림해왔던 그들은 도시 꿈쩍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진일문이 물었다.
"그럼 중원 무림 내에서는 일월맹만이 출몰하여 승전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만박노개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것뿐이라면 이 늙은이가 왜 이렇게 광분하겠느냐?"
"무슨 일이 또 있습니까?"
"빌어먹을! 놀라지 마라. 황제의 칙령(勅令)이 내려졌다."
진일문은 그의당부(?)에도 불구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강호무림에 당금 황상께서 성지를 내리셨단 말씀입니까?"
"글쎄, 그것이... 나도 믿고 싶지 않지만 황제께서 친히 삼성림으로 하여금 정도의 문파들을 이끌고 일개월 이내에 일월맹을 없애 버리라는 명령을 하달하셨다."
"맙소사! 어찌 그런 일이......."
사실 역사를 뒤져봐도 황제가 강호무림의 일에 나선 적은 없었다.
무림과 관부는 서로 불가침이 아닌가? 그런데
어이없게도 황제가 직접 나서서 그 불문율을 깨뜨리고 만 것이었다.
진일문이 감정을 억누르느라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이제까지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던 삼성림이 마치 날개라도 단듯 삼성곡을 떨치고 나왔지. 그들은 구주동맹은 물론 강남북의 수백개 문파에게 동원령을 내렸다. 황제의 명이니 모두 힘을 합쳐 일월맹을 쳐 부수자고......."
만박노개는 말끝을 흐리며 쓴 입맛을 다셨다.
침묵하던 삼성림이 움직였다는 사실은 곧 일월맹이 일으킨 혈풍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점은 진일문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첫댓글 드뎌~~~~출동
늘 감사합니다.
즐 감
즐독이요
즐감요!!!!!!
굿,,즐감,,
ㅎㅎ
감사합니다
즐감요
쟴납니다
잘 보았습니다
(www.foodsafetykorea.go.kr)
줄겁게 열독하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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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했으니 이제 마무리할 차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