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 서론
1. 신앙고백서의 중요성
1) 기독교는 성경으로부터 나온 기독교 교리와 신앙고백서(사도신경, 니케아 신조, 칼케돈 신조, 아다나시우스 신조 등)의 토대 위에 기초한다.
(1) 교리, 신조, 신앙고백서 등을 공부하고 배우는 것은 결국 성경을 공부하고 배우는 것이다.
(2) 교리와 신앙고백서가 성경과 다르거나 잘못된 것이 있으면, 성경에 비추어서 교리와 신앙고백서를 바르게 고쳐야 한다.
2) 우리에게 주어진 신앙고백서들은(벨직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등)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연구되고, 검증되며, 보존된 것이다.
- 교회에 속한 자들이 성경이 교훈하는 동일한 진리를 배우도록 하는 것이 신조나 신앙고백서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3) 신앙고백서들을 통해서 이단과 오류 등을 배격할 수 있다.
(1) 로마 가톨릭주의, 알미니안주의, 소시니안주의, 율법주의, 율법 폐기론 등을 논박
(2) 개인의 주관적 종교 체험을 기준으로 삼는 경건주의, 은사주의, 신비주의 등
(3) 적극적, 긍정적 사고 방식이 마치 성경적 신앙인 것처럼 전파되고 있는 실정
(4) 성경을 읽고는 불경을 해설하고 설명하는 실정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 배경
1) 당시 영국의 왕이었던 찰스 1세는 영국 국교의 기도문에 반대했던 스코틀랜드를 공격하기 위해 의회를 소집했지만 의회가 반대에 직면했다(1638년). 찰스 1세는 1640년에 다시 의회를 소집했지만, 영국 의회는 정치, 사회, 종교 문제 등에 대해서 왕과 충돌했고, 약 15,000명의 런던 시민들이 감독 정치의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Root and Branch)을 하원에 제출했다(감독 정치로 인해 오류와 무지가 교회에 쉽게 들어와서 부패와 남용이 심하다는 것). 하원은 바른 교회 정치형태를 요구하는 항의 문서를 왕에게 제출하고(1641년 11월 22일), 의회는 교회와 국가의 개혁을 왕에게 요구했지만(1642년 7월), 왕은 이러한 요구를 거부했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장로교인들이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의회가 국왕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스코틀랜드에서 이루어진 장로교의 모범을 따라서 영국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1643년 7월 1일에 151명의 위원들이(121명의 목회자들, 10명의 상원 의원과 20명의 하원 의원 / 8월 17일에는 스코틀랜드와의 동맹 계약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온 목사 5명과 일반 성도 3명이 추가됨) 영국 웨스트민스터 예배당(헨리 예배실)에서 모임으로 시작되었고, 1649년 2월 22일까지 약 5년 7개월에 걸쳐서 1,163회나 모였다(평균적인 모임은 60∼80명).
3) 웨스트민스터 총회원들은 신앙고백서를 작성할 때, 공동 서약을 읽고 토론하였다. “나는 총회의 일원으로 이 총회에서 교리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부합된다고 믿는 것을 주장하고, 규칙(권징)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교회의 평화와 선을 위하여 가장 적합함을 주장하기로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굳게 약속하고 서약한다.”
4) 1646년 12월 4일에 초안이 완성되고, 약간의 수정을 거쳐서 1648년 6월 20일에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영국의 장로교회 총회는 이보다 이른 1647년 8월 27일에 승인을 했다.
- 1644년 교회 정치, 1645년 예배 모범, 1646년 신앙고백서, 1647년 10월과 11월에 각각 대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을 완성했다.
3.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미국, 한국
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미국
(1) 미국의 장로교회에서는 1729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함께 채택해서 받아들였다.
(2) 미국에서는 1788년에 위정자가 교회에 간섭할 수 있다는 20장 4항, 23장 3항, 31장 2항 등이 수정되어서 국가 위정자가 교회에 간섭할 수 없게 되었지만(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1903년에 북 장로교회에서 수정하여 첨가한 것(34장 성령, 35장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과 선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자유주의 신학이 득세). 34장은 오순절교파의 성령론을 받아들이고, 35장은 알미니안주의의 보편구원론(보편속죄)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3) 20세기 개혁신학자인 존 머레이(John Murray)는 2,000년 교회사 속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견줄 수 있는 신조들과 신앙고백서는 없다고 하였다.
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한국
(1) 한국 교회에서는 1917년 9월 제6회 총회에서 신조로 선택되었다.
- 합동과 통합의 분리 이후에 합동은 63년에 장로교 표준 문서로 받아들이고, 통합은 68년에, 고신은 69년에, 대신은 74년에 받아들였다.
(2) 박윤선 박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해 “그 교리적 입장은 청교도적 개혁주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면서 “오늘 날 전 세계 각지에 산재하고 있는 개혁파 교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기본 신경”이라고 정의하였고, 따라서 이 신앙고백은 장로교회의 기본 교리로 채택되었으며, 장로교회의 직분자들에게 성경적 교리로 받아들이도록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 “본 장로회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 및 대소요리문답은 신구약 성경의 교훈한 도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고 성실한 마음으로 받아 신종하느뇨?”
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 목적
1) 잘못된 가르침에 대하여 성경의 진리를 변호
2) 그리스도인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
3) 교회가 당면한 문제나 신자들이 생활하는 데서 부딪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지도하기 위해
5.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구조
1) 신앙고백서의 제1장은 전체 33장의 대전제로서 믿음과 생활의 규칙인 성경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이 대전제에 따라, 2∼18장까지는 믿음(무엇을 믿을 것인가, 믿음으로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는가?)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으며, 19장∼33장까지는 생활(구원을 얻은 성도가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믿음의 생활과 성도의 본분)에 대해서 진술하고 있는 것이다.
2) 믿음에 대한 내용(2∼18장)은 하나님과 그의 사역(2∼5장), 인간의 죄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6∼8장), 성령의 구원 사역(9∼18장)을 다루었다.
3) 생활에 대한 내용(19∼33장)은 율법(19∼20장)을 다루고, 율법과 관련하여 안식일, 결혼, 교회와 성례, 세속정부(21∼31장)를 다루며, 최종적으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누리게 될 최후의 상태와 심판을 진술하였다(32∼33장).
첫댓글 결론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은 정교한 성경 해석과 성경적이고 구속 역사적인 신학의 산물이다.
- 싱클레어 퍼거슨, 온전한 그리스도, p.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