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 째는 팔만대장경 목각판 眞本을 직접 보고 이 위대한 불교 문화 유산에 서린 先人들의 信心과 위대한 자취를 가슴에 담고자 하는 욕심이오, 두 번 째는 해인사 제일 높은 곳의 암자인 백련암에 들러 大宗師 성철스님의 가르침과 삶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느껴보자 함이고, 세 번 째는 늦가을 가야산 象王峰과 七佛峰에 맴도는 맑고도 스산한 가을 바람을 쐬기 위함이다.
서대구에서 고령을 거쳐 해인사 8km 전방의 팔만대장경 축전장을 지나며 들은 풍월로 잠시 팔만대장경을 생각해 본다.
이 팔만대장경이 불교 원리와 경전을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국가적 사업이기도 하였지만 81,258개 목판에 긴 세월 동안 救國의 일념으로 字體의 예술성을 살려 佛心을 아로새긴 것이었으니 純正한 인간 정신을 바탕으로 刻字와 校閱에 참가한 모든 匠人들 모두의 위대한 승리이다.
더구나 76년간의 대작업이었던 初彫본이 몽골의 침략으로 완전 소실되는 아픔을 딛고 일어나 다시 16년간의 노력끝에 再彫를 성공시킨 것이 아니었나.
산벚나무와 돌배나무를 베고 말리고 켜 긴 세월 보존이 가능하도록 목판을 준비하고, 온 精神을 집중하여 목판 양면에 한 字 한 字를 거꾸로 새기는 一片丹心의 정성과 협동, 상상을 초월하는 刻苦의 노력은 인간의 숭고한 信心, 집념 어린 노력이 무한대의 가치를 창조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불교 경전의 세계가 심오하기도 하겠지만 새겨진 글자는 더 이상 글자가 아니고 인간의 위대한 魂이리라. 再彫시 글자를 새긴 장인 1,800여 명의 이름들이 전해지고 있다 한다.
만 9년 전과 똑 같은 늦가을에 해인사 경내를 지나 단풍에 젖은 가야산을 오르며 감회에 젖는다.
이제나 저제나 홍류동 계곡에 바위를 세차게 문지르며 맑은 물 짓쳐 내려오고 어여쁜 단풍숲의 그림자가 물위에 붉게 어린다. 코 끝에 닿은 맑은 공기도 어여쁜 아가씨처럼 상냥하여 아주 상쾌하다.
海印이 일렁임이 없는 바다에 만물의 참모습이 비친다는 뜻이라 하는데 맑은 공기를 마시며 1km가 넘는 해인사 경내를 걷자니 성철 큰 스님이 떠오른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 뿔뿔히 헤어지기도 하고 몸은 늙어가고 있어도 그 때나 지금이나 어리석은 내 마음이야 똑 같을 터인데 큰 스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가슴 속 한켠을 울리나.
<圓覺이 普照하니 寂과 滅이 둘이 아니라
보이는 만물은 觀音이오. 들리는 소리는 妙音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眞理가 따로 없으니
아! 時會大衆은 알겠느냐
山은 山이고 물은 물이로다.>
30년 前 1981년도에 처음 들은 말씀이다. 뭇 古佛古祖께서 남기신 깨우침의 말씀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가르쳐주신 스님은 갔어도 <이 뭐꼬>의 가르침은 海印寺에 머무는 바람속에서 숨쉬고 있는가.
<이 뭐꼬>가 요즈음 TV에 팔만대장경과 관련하여 방송 되는 다르마(Dharma)의 내용과 같은가. 불교 원리와 첨단 입자물리학의 내용이 완벽하게 상응되는 것처럼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서 끊임 없이 선문답을 계속하여 깨우침의 경지에 이르는 정신수양의 세계인가.
물질을 이루는 최소 입자들(quark, lepton) 사이의 대칭은 무엇이며 상대성은 무엇인지 무식한 인간인 나에게 과학 세계와 종교(불교)의 세계가 놀랍게도 일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는데 불교에서는 무식한 것이 최대의 업보라 한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큰 스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가. <죽으면 다시 가난한 집의 아이로 태어나 못다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일단 부잣집 아이는 수행에 지장이 있는가.
단풍이 절정에 이른 가야산 산자락의 오솔길 풍광이 환하게 빛난다.
아침 햇살이 단풍숲에 밝게 부서지는 고운 때깔을 즐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벼운 토신골 오르막길을 한 시간쯤 걸어 극락골, 마애불 갈림길에 닿는다. 어제 내린 비에 산중이 더 산뜻해져 있고 먼지가 나지 않아 걷기에는 최적이다
예전에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었던 토신골에서 극락골 삼거리에 이르는 산길은 5년 전부터 식수보호원으로 지정 되어 출입 통제가 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은 마애불을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산길이 조금씩 바윗길로 변하며 어느 사이 가팔라지고 단풍숲 사이로 중봉의 등천대(1,380m)가 마치 정상인 것처럼 언뜻언뜻 깎아지른 바위 얼굴을 내민다. 상왕봉과 칠불봉은 저 중봉을 돌아들어야 우뚝한 제모습을 보여줄 터이다.
드디어 중봉 뒷쪽의 물기 머금어 미끄러운 바윗길을 돌아들어 등천대에 닿는다. 앞쪽으로 기암괴석이 서로 묵직하게 엉겨붙은 상왕봉, 칠불봉 두 바위 봉우리가 우뚝하고 발 아래 구름 걸린 산줄기들이 팔방으로 꿈틀꿈틀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가 만나는 이 곳도 奧地임이 분명한데 어디가 백두대간 산줄기인가.
대간의 끝 지리산에서 산줄기가 옛 백제의 땅을 남북으로 달려 덕유산을 세우고 신라와 만나는 삼도봉까지 이어지는가. 옛 가야의 땅에서 신라와 백제를 가르는 산줄기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정든 산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흥미롭다. 이 곳이 신라와 가야가 부딪히던 접경이었던가. 대구쪽 팔공산이 그립고 밀양쪽 영남알프스가 지척이다.
10분쯤 바윗길을 걸어 먼저 상왕봉에 이르고 내쳐 칠불봉에 닿아 시원한 산바람에 실려오는 가을산의 맑은 정기를 흠뻑 쐰다. 두 시간쯤 걸어 이렇게 그윽한 곳에 이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잠을 설친 산행의 피곤함이 일시에 사라진다.
七佛峰에 부는 바람이 아득히 먼 옛날 金씨왕가에 시집을 온 인디아 공주 출신 許씨왕후의 사연과 애틋한 母心을 전해주고 있으니 이 가야국의 옛이야기는 가을의 전설인가. 신라와 가야가 부딪히던 이 접경에서 그보다 더 애틋하고 안타까운 보통 사람들의 事緣들이 피었다가 스러지기가 그 얼마였을까.
두 정상 바위에 몸을 부비고 불어주는 바람결대로 마음을 어디론가 실어 보낸다.
정상에서의 흐뭇한 시간을 보내고 해인사로 돌아오니 대장경 목판 행사에 방송용 차량, 여러 불교 종파의 스님들, 대장경 목판을 머리고 이고 기복을 비는 사람들이 몰려 人山人海를이루고 있다.
어떻게 이 혼잡스러운 곳을 벗어나 팔만대장경 진본을 본 다음 동대구로 달려나와 예약한 KTX를 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모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큰 스님의 자취를 따라가면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일단 백련암을 찾는다.
성철 스님 사리탑을 지나 백련암을 급하게 찾는 길이 줄곧 오르막이라 지친 다리에 만만치 않다. 예전 같으면 삼천배를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백련암 절집 앞에 스님이 산책을 하시던 오래된 돌계단을 직접 오르니 감개가 무량하다. 앞 마당의 오래된 느티나무에 내려앉은 붉은 가을빛이 처연한데 스님께서 주석(머무름)하시던 염화실이 저 담장 너머에 있는가.
절집의 모습은 자연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어울러져 어여쁘게 고즈넉하지만 스님께서 보셨다면 큰 소리로 야단을 치실 수도 있는 불사가 절집 공터의 여러 곳에서 진행된 모습이 조금 안타깝다. 이 절집에서도 餘白의 美는 점차 사라지는가.
산신각인 줄 잘못 알았다가 頓悟頓修 하셨다는 천태전의 獨聖 나반존자를 뵙고 절집 이곳 저곳에서 큰 스님의 자취를 찾아본다. 큰 스님께서 살아 생전에 머무르시던 염화실에서 돌아가신 다음 고심원으로 옮기신 모습이다. 젊은 시절 성철 스님의 부리부리한 눈에서 매서운 눈빛이 쏟아지는 듯하다.
아쉽고 그리운 마음으로 아무 전각 앞에서나 그대로 땅바닥에 꿇어앉아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 어리석은 인간을 어여삐 받아주시기를 빌며 백련암을 떠난다.
팔만대장경 축전장에 이르는 길은 그 그윽한 취지와는 달리 현실적으로는 몰려드는 人波, 무질서와의 싸움이라 포기하고도 싶은 마음이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버스를 타고 축전장에 닿아 본 것은 목각판 眞本 두 점이다.
270여 字에 우주의 모든 현상을 표현한 완벽한 경전이라는 <반야바라밀다심경>이 목각판 한 장에 그대로 새겨져 있고 <화엄경변상도>는 목각판에 부처가 설법한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현대 물리학과 일맥상통한다는 <반야심경>의 경전판을 직접 본 것이 보지 않은 것보다는 나은가. 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세계를 내 어이 감히 이해할 수 있으랴마는 오돌도돌 새겨져 검게 빛나는 字體의 예술성은 내 마음에 남는다.
엄청난 혼잡 속에서도 가까스로 버스를 타고 대구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보이지 않는 힘의 도움이다. 그 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동대구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며 오늘 산길의 추억과 절집의 추억, 팔만대장경의 여러 뒷사연을 더듬어 본다.
章
2011. 10.
첫댓글 향후 100년간은 공개를 하지않는 팔만대장경 진본을 향하는 귀한 佛心이 대단하십니다..
성철이 일러주신 화두하나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