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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투(dhatu)
유리문 앞에 섰다. 앰뷸런스의 불빛은 보이지 않고, 유리에 반사된 내 모습이 녹색 괴물처럼 보인다. 녹색 바지와 녹색 반팔 티셔츠, 녹색 수술모자 사이의 얼굴이 밖의 어둠과 절묘하게 섞여 괴물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문을 안으로 잡아당기자 괴물 이미지는 픽셀이 부서지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밖으로 나서자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한여름의 열기가 식어 서늘해진 바람이다. 별 몇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먼 곳으로 떨어졌다.
S시에 위치한 이곳 병원 응급실로 파견 나온 지 거의 한 달이다. 나를 보자마자 과장은 애인 없지? 하면서 야근만 시켰다. 야근만 했어도 그동안 별 일 없었고 불만도 없다. 사실 불만을 말할 그런 처지도 되지 못한다. 그런데 조금 전 구급대의 다급한 전화에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앰뷸런스의 녹색 경광등이 번쩍거리며 병원 안으로 들어왔다. 구급대원들과 함께 환자를 스트레처카로 옮겨 응급실 안으로 옮겼다. 김주희 간호사는 모니터를 연결하고 제세동기를 준비했다. 말초정맥의 정맥로까지 동시에 확보하는 그녀의 손은 빠르고 신중하고 정확했다. 조금의 오차도 없다. 이정도의 능력이라면 내가 있던 서울의 대학병원에서도 흔치 않은 실력이다. 한적한 바닷가에 위치한 중형 종합병원에 이런 간호사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새삼 놀랐다. 연결된 모니터에서 알람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심박동이 없다는 알림이지만 나는 백밸브 마스크를 움켜쥐고 기도를 확보하려고 환자의 턱을 잡았다. 온기는 있다. 그러나 살아있다는 어떤 느낌도 주지 않는다. 자정 가까운 시간에 바닷가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발견된 52세의 남자다. 정세윤이라는 이 남자는 서울의 성형외과 개원의라고 구급대원이 말했다. 뜻밖의 환자다. 구급대원이 심장압박을 하는 사이 나는 후두경을 들고 기도 삽관을 시작한다. 혈관이 확보되었다고 김주희 간호사가 외친다. 그녀의 손가락은 혈관을 찾는 데 마법사 수준이다. 에피네프린과 아트로핀을 3분 간격으로 1mg씩 주라고 구두처방을 내리면서 성대 사이로 튜브를 밀어 넣는다. 신규 이간호사로부터 주사기를 건네받아 대퇴동맥에서 피를 약간 뽑아 넘긴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날 경우를 대비한 동맥혈 검사다.
앰부백을 김주희에게 주고 흉부 압박을 넘겨받는다. 반쯤 열린 눈꺼풀 사이로 완전히 풀린 눈동자가 보인다. 서울에 두고 온 내 환자의 눈동자가 겹쳐 보여 손끝이 잠깐 떨렸다. 심장을 누르는 손끝의 촉각은 점점 둔해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심폐소생술 중에 나온 모든 검사에 이상 소견은 없다.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맞는 진단이 떠오르지 않는다. 건장한 체격이다. 그러나 소생술을 시행하는 동안 갈비뼈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러지기 시작했다. 부러진 갈비뼈의 또닥거리는 소리가 공명을 일으킨다. 30분 지났어요, 선생님. 이간호사가 그만 하라고 애원하듯 말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남자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 사망 선고를 내려야 할 시간이다.
DOA(도착시 사망).
몸에 삽입했던 것들을 빼고, 시신을 정리한다. 죽음의 원인을 ‘불명’으로 적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관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후, 사체를 영안실로 내려 보냈다. 가족들이 확인한 다음 사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진다. 서울의 개업의가 S시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죽었다. 우연일까. 정말 죽음이란 의도되지 않은 우연한 불상사로 오는 것일까. 아직도 의식을 찾지 못한 서울의 내 환자는 어떻게 될까. 죽은 환자를 보다가 죽음의 문턱에 선 서울의 내 환자 생각이 밀려와 등골이 오싹해졌다.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본다. 별들이 잇달아 떨어진다. 서울의 사건을 깨끗하게 지울 수만 있다면, 의식불명의 내 환자에게 시간을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불면의 밤을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며 어둠을 응시한다. 잔별들이 무리지어 바람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성형외과 전문의 정세윤에게 사망선고를 내리고 두 달이 지났지만 국과수에선 아직도 사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일주일 뒤면 S시에 온 지 딱 석 달이다. 모교 병원에선 석 달 정도 파견 나가 있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내 환자가 살아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환자는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삶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휴대폰이 주머니 속에서 또는 테이블 위에서 진동으로 부르르 떨 때마다 내 몸뚱이도 함께 떨었다. 죄의식을 덤으로 얹은 기다림 때문에 나는 웃는 법을 잊었고 나의 뇌파는 종일 불안과 싸워야 했다.
새벽 세 시, 병원 전체가 무덤 속처럼 고요하다. 응급실을 나온다. 어둠속 유일한 발광생물처럼 응급실 창문만 불빛이 환하다. 어둑한 복도엔 내 발자국 소리만 공간을 울린다. 의국의 문손잡이를 잡는데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제약실 앞 복도 끝에서 고양이처럼 누군가 잽싸게 휙 지나간 것 같다. 보이는 건 어둠뿐이지만 무언가 허공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의국 안으로 들어와 얼굴만 내밀어 다시 문밖을 살핀다. 벽에 나란히 붙여 놓은 빈 침대들만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놓여 있을 뿐이다.
유령처럼 사라진 존재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책상 앞에 앉는다. 시선이 닿는 위치에 A4용지 크기의 ‘다투(dhatu)’라고 쓰인 백색 종이가 붙어 있다. 다투라는 글자 옆에는 흐릿한 녹색괴물 이미지가 환영처럼 떠 있다. 다투와 괴물. ‘다투(dhatu)’는 ‘자궁 속 유골’ 이란 뜻으로 모두에게 부처의 성품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심오한 뜻은 모르지만 인간의 생명은 2000만 마리 이상의 정자가 다투(싸움)는 데서 시작된다. 그 가운데서 딱 한두 마리만 살아남아 세상에 태어난다. 생명은 그렇게 다투고 다투어서 살아남은 유일체다. 살아남은 단 하나에게 조차 불법팝업창처럼 수시로 자기 안의 괴물이 튀어 나와 삶을 방해한다. 그동안 나는 삶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갈등은 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의를 거쳐 전공의 3년차가 되기까지 상위 성적을 유지하기 위해 전력질주 해왔다. 공부 밖에 할 줄 몰랐던 삼십 년의 삶이었다. 이곳의 환자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다투(dhatu)’. 벼랑 끝에 선 다음에야 살아남는 것이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고 오직 살기 위해 그 단어에 매달리게 되었다.
새벽 세 시, 이 시간은 ‘다투(dhatu)’를 만나는 시간이다. 글자에 정신을 집중시키면 글자가 꿈틀거리며 뇌파에 박힌다. 글자는 파장을 따라 움직이다가 서서히 사라지고 녹색 괴물의 이미지도 유령도 다투를 따라 사라진다. 나와 인연이 된 사람들도 하나씩 사라진다. 모든 것으로부터 끈을 놓으며 나도 사라진다. 텅 빈 공간과 시간뿐, 나는 어디에도 없다. 세상에서 나를 지우는 이 시간은 대략 이삼십 분 정도다. 다투의 시간을 보내고 나야 비로소 나의 하루는 끝이 난다.
‘다투(dhatu)’를 보면서 하루를 끝내고 또 다시 밀려오는 하루를 시작한다. 컴퓨터를 켜고 서울의 모교 대학병원 사이트를 검색한다. 학술대회에 누가 어디로 갔으며, 어떤 논문이 주목 받았고, 고가의 새로운 의료기구가 도착했다는 의례적인 뉴스들을 스쳐 지나친다. 그리고 메일을 열어본다. 언제든지 휴대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새벽 세 시의 이 행위는 대단한 무엇이 아니다. 그러나 ‘다투’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은 이제 하나의 중요한 의식처럼 되었다.
치프의 이름으로 새 메일이 와 있었다. 다음 주에 서울로 복귀하라는 내용이다. 기대했던 대로 복귀는 확정 되었다. 내 환자가 희망적이란 뜻이기도 해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제 정말 서울로 돌아가는 걸까? 아니 나는 정말 서울로 돌아 갈 수 있는 걸까? 설렘만큼 알 수 없는 불안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나 발목을 잡는다. 거미처럼 기어오르는 불안을 털어버리듯 로그아웃을 하고 의자에서 일어선다. 정확하게 3시 30분. 문을 열고 복도를 걷는다. 제약실 앞을 거쳐 로비 뒷문 쪽을 향한다. 두터운 고무로 덧댄 구두라 소리가 나지 않는데도 고양이 걸음으로 발소리를 죽인다. 간호사실 앞까지 눈에 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인기척이 나서 뒤 돌아보면 어둠뿐이다. 며칠 전 과장의 말이 떠오른다. 한 선생, 새벽마다 의국 사무실에서 뭐해? 딱 30분간 인터넷 합니다. 낮 시간 숙소에선 뭐하고? 숙소에선 인터넷이 안 되거든요. 병원에서 정해준 숙소는 인터넷은 물론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고 허름한 5층짜리 모텔의 5층 객실이다. 모텔에는 엘리베이터 대신 침대 밑에 완강기로 여자 손목 굵기의 밧줄이 비치되어 있다. 객실의 한쪽 창은 열리지도 않았다. 창을 가린 블라인드도 고장이 나 먼지투성이 붙박이가 되어 있다. 나머지 한쪽 창만 삐걱거리며 열렸다. 창문 아래엔 녹슨 의자와 판자조각들이 쌓여 그늘을 만들었다. 그늘은 잡풀로 덮인 정원의 한 부분을 먹었다. 놀라운 풍경은 눈앞에 있었다. 탁 트인 바다가 환히 내다보였던 것이다. 바닷가에 세워진 모텔은 한 때 이 지역이 나름 인기 관광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징 같은 건물이었다.
“그래? 그 시간에 병원 복도나, 제약실 앞에서 누구 만나지 않았나?”
“……과장님, 혹시 유령 소문 말씀 하시는 겁니까?”
과장은 힐끗 쳐다보다 실소를 터뜨렸다. 나는 얼른 뒤돌아 간호사들을 보았다. 언제부턴가 간호사들이 내 등 뒤에서 수군거렸다. 내가 다가서면 그들은 서로 등을 돌려 모르는 척 했지만 내가 유령일 거라는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다. 유령이란 무언가를 찾아 떠도는, 이 세계를 떠날 수 없는 절실함 때문에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하는 존재다. 나도 그들이 말하는 유령이 궁금했다. 정작 유령과 마주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의국에 갈 때마다 유령이 나타난다는 제약실 문손잡이를 돌려 보곤 했다.
간호사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온다. 부목과 붕대들이 켜켜이 쌓인 테이블 너머 이간호사의 뒷모습이 보인다. 응급실 문을 열자 차트를 보던 주희가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웃는다. 그늘 없는 미소다. 나도 저렇게 웃을 날이 있을까. 스테이션에 의자를 끌어다 엉덩이를 붙인다. 어둠조차 지친 새벽. 해맑게 깨어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주희뿐일 것이다. 그녀는 동안의 얼굴에 뽀얗게 빛이 나는 피부를 가졌다. 누구도 그녀가 나와 같은 서른 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나는 의료사고 이후 십 년은 더 산 것처럼 파삭 늙어 버렸다. 나의 파트너인 그녀를 환자들은 천사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쉴 틈 없이 일하는 천사 같은 그녀를 볼 수 있는 것도 며칠 남지 않았다. 그녀가 차트를 넘기며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약간 층이 진 길지 않은 머리카락들이 하얀 목덜미를 스친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복어 꼬리처럼 흔들린다. 나도 모르게 쩝, 하고 입맛을 다신다. 허기가 밀려온다.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길을 피했다.
아침 9시, 신경외과 김 선생과 당직 교대를 하고 병원을 나선다. 납작한 돌들이 가지런히 깔린 산책로로 들어선다. 낮은 담벼락 위로 내 보이는 지붕들. 그 위로 부서지는 초겨울 햇살이 정겹다. 잔돌이 도톨도톨 박혀 있는 돌담이 끝나면 넓지 않은 모래밭이 나온다. 응급실 과장을 따라 가끔 가는 복어요리집이 있다. 과장은 복어요리를 끔찍하게 좋아한다. 그는 복어요리를 먹을 때마다 ‘독이냐 약이냐는 복용량의 차이에 있다’는 말을 강조했다. 독과 약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 천평칭에 올려놓고 바늘이 움직이는 미세한 차이에 따라 독이 되고 약이 된다. 술도, 담배도, 심지어 물도 과량 복용하면 죽는다. 그렇게 강조하는 그는 독이 있는 복어요리를 즐기는 복어요리 광팬이다. 과장은 몇 차례 복어독에 중독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땐 스스로 응급실에 와서 처방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내겐 전설처럼 들렸다.
과장과 함께 갔던 복어요리집 앞을 지난다. 지난 회식 때 이곳에서 복어요리를 먹었다. 독이 없는 양식 복어회와 복어구이와 복어지리와 복어껍질 튀김 등 독을 제외한 복어의 모든 것을 먹었다. 복어 요리에 허접한 철학까지 얹어 정신없이 술을 마셨다. 이간호사가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종알거렸다. 갑자기 손으로 입을 가리고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면서 목소리를 팍 낮췄다. 한 선생님, 김주희 샘 좋아하시죠? 왜요? 사귀는 남자 있다던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간호사는 한결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무서운 간호사란 소문도 있어요. 저도 얼마 전에 들었거든요. 이간호사는 이 지방 사람이다. 게다가 병원장의 먼 친척이다. 귀엽고 예쁘지만 말이 많고 실수가 잦다. 이간호사의 실수를 질책할 수 있는 사람은 매뉴얼대로 실천하는 주희뿐이다. 무섭다고? 그래 너에겐 무섭겠지.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희는 나로부터 거의 반대편 끝 지점에 앉았다. 복어회를 입안에 밀어 넣으면서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는 모습을 훔쳐보았다. 이간호사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나는 주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희의 하얀 얼굴과 핏빛 같은 입술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우리들은 모두 독이 없는 복어회를 먹는데, 그녀만 독이 든 복어회를 상큼하게 한입 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죽음을 부르는 독처럼 치명적인 매력이 그녀에게 있었다. 핏빛이 배인 도톰한 그녀의 입술이 확대되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입술에 빨간 초고추장이 핏물처럼 묻어 있었다. 참을 수 없는 욕망에 휩싸여 사람들을 밀어젖히고 그녀 옆으로 성큼성큼 건너가서 입술에 묻은 핏물 같은 초고추장을 혀로 핥았다. 옆자리의 이간호사 입술을 보면서 그런 상상을 했다.
아직 오전이라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파도만 소리 내며 밀려왔다 밀려간다. 모래밭 가운데 놓인 나무의자에 앉는다. 의자는 돌처럼 단단하고 차갑다. 나무가 아니라 나무처럼 채색된 돌 의자다. 초겨울의 쓸쓸한 모래사장에 조개껍질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이 병원에서 일어났던 작은 일상들이 반짝이는 조개껍질 같다. 복어독 요리를 즐기는 과장님, 독을 입에 문 것 같은 매혹적인 간호사 김주희, 실수투성이지만 귀여운 수다쟁이 이간호사 그리고 응급실 사람들. 떠나기도 전에 모두가 그리워지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성형외과 전문의 정세윤의 심장 박동이 멈춘 곳도 바로 이 바닷가다. 신문과 방송에선 성공한 성형외과의가 의료사고 이후 정처 없이 떠돌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했다. 정세윤, 그가 앉아서 마지막 바다를 바라보았을 그 자리에 지금 내가 앉았다. 겨울 빛에 물든 차가운 바다. 세상의 끝자락에 선 것 같다. 몇 마리의 새들이 물 위의 하얀 배 위를 빙빙 돌고 있다. 끼룩거리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배 위로 뚝뚝 떨어진다. 붉은 꽃 한 송이 바다에 던지고 싶다. 정세윤, 그를 위해. 또 나 자신을 위해.
서울에서의 사건은 지금도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것처럼 뼈에 사무친다. S시 병원으로 파견 나오기 전날. 외상환자와 중독환자들로 응급실엔 입원환자가 넘쳐났다. 오랜만에 비번 허락이 났다. 잿빛으로 변한 가운을 벗어던지고 숙소로 가려는 찰나. 등 뒤에서 외상담당교수가 불렀다. 옆으로 찢어진 교수의 눈에서 흰자위가 번득이면 나는 오금이 저리듯 멈칫하는 습관이 있다. 그날도 교수의 날선 눈빛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저 환자 폐에 찬 물부터 빼. 칠십 대 환자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교수님, 영상의학과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텐데요, 라거나 저 지금 오프 나가거든요, 라고 절대 대답하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이 바로 나란 인간이다. 사흘 동안 숙소에 가보지도 못했다. 바닥에 등을 대어본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오래만의 비번이라 정신은 이미 숙소의 침대에 가 있었다. 풍성한 꼬리로 머리를 감싸며 몸을 말고 잠이 든 여우를 꿈꾸었다. 그런데 교수의 명령이라면 죽은 사람도 살려내야 하는 게 전공의들의 몫이다. 잠에 취해 비틀거리며 환자 앞에 섰다. 평소처럼 흉관을 환자의 가슴에 겨누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누군가가 눈에 모래를 뿌리고 눈알을 파 간 것 같았다. 그 사이 가슴으로 들어가야 할 흉관이 손에서 미끄러져 복부를 뚫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문의들과 간호사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환자를 에워싸고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교수는 나를 보자마자 주먹으로 턱을 가격했고 발길질을 했다.
턱을 어루만진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턱이 아프다. 교수에게 얻어맞은 후 병실 바깥 컴컴한 곳에 오랫동안 혼자 서 있었다. 외상파트를 맡아 있는 동안 목 디스크가 올 정도로 그 많은 환자들의 찢어진 부위를 꿰맸다. 피도 한 드럼은 덮어썼을 것이다. 피 묻지 않은 가운은 내게 없었다. 병원으로 온 여자 친구가 피 묻은 가운을 보고 무섭다고 했다. 옷에 묻은 피가 무섭다고? 그 후 나는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 교수로부터 극한 상황으로 몰릴 때 동료들은 거의 한 번씩 도망갔지만 전공의 3년차가 될 때까지 나는 한 번도 피하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오기로 버텨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잠 때문에 한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혼수상태인 환자를 두고 나는 그날로 협력병원인 이곳으로 유배되었다. 걱정 마 살아날 거야. 동료친구는 그렇게 나를 위로했지만 나는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우울에 빠져들었다. 나는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내 의식에서 지우고 싶었고, 내 자신으로부터도 달아나고 싶었다. 날마다 이 바닷가를 헤매고 다녔다. 언젠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뜻하지 않게 다투를 만났던 것이다. 이곳 병실에서였다. 입원 환자 한 사람이 진리는 ‘다투’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 사람은 진리는 예수라고 주장했다. 그 두 사람은 병세가 회복될수록 심하게 다투었다. 그러자 세 번째 사람이 말했다. 진리가 무엇이든 다툴 것 없다.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 ‘다투’는 그 순간 나의 영혼에 파고 들어왔다. ‘다투’가 나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
축축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모든 것이 서럽고 그립다. 손등 위에 눈물이 뚜르르 떨어졌다. 숙소로 돌아가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로 있는 준수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준수는 사망원인이 검출되지 않은 정세윤의 최초 검안의의 말을 듣고 싶다는 이유로 나를 서울로 불렀다. 한강 다리를 건너자 눈에 익은 풍경들이 촘촘하게 다가왔다. 나의 환자와 나의 불확실한 미래가 회색 하늘 저기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서울로 복귀 된다 해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 회색 도시에 회색 인간이 되어 유령처럼 스며들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준수는 S시로 유배된 후 처음 만나는 친구다. 반가움에 손을 잡는데, 기밀을 지킨다는 각서에 사인부터 하게 했다. 해부병리학을 선택한 준수의 성격은 작은 일에도 치밀했다. 너, 냄새 지우려고 이거 사다놓았지? 통닭냄새가 고소하다. 소주도 한 병 그 옆에 있다. 뭐 그렇지. 그래도 여긴 지상이잖아. 포르말린 냄새와 시체 부패냄새는 지하에 가득 넘치고 있지. 검사결과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어 사인을 찾는데 열중했다. 무엇이 중년의 건장한 남자에게 호흡부전을 유발했을까? 통닭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결국 중독으로 돌아가야겠는데.”
“왜?”
왜라니,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니까 그렇지. 길 가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내과 의사는 저혈당을, 신경외과 의사는 급성 지주막하 출혈을, 신경과 의사는 급성 뇌경색을 의심한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중독을 의심해서 주변에 약봉지나 병이 없는지 살핀다. 맞다, 그때 차량에서 발견된 드링크 병이 있었지. 검사지를 뒤적거린다. 드링크 병에도 특별히 검출된 것은 없다.
“이 약물 분석은 선별검사니? 어떤 게 나오지?”
“정성검사니까 100%는 아니고, 그래도 주요 약물에 대한 건 다 있어. 요즈음 프로포폴 오남용 사고가 자주 일어나서 프로포폴이나 케타민까지도 검출 가능해.”
프로포폴은 마이클 잭슨이 약물중독으로 사망하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성형수술과 지방흡입술과 수면내시경에 마취제로 사용된 약물인데 연예인들에게 꿈의 피로회복제로 알려져 잠자는 약으로 오용되기도 한다. 일반인들에게 까지 오남용으로 사고가 일어나자 마약으로 분류되었는데 정세윤은 그건 아니었다.
“네 말은 결국 극미량의 강력한 독이 있었단 말이지. 검출 할 수 있는 독은 몽땅 해야겠다. 그래도 안 나오면 원인불명이지 뭐.”
“사체는 진실을 말 한다는데, 부검을 하고도 사인을 밝히지 못하면 비난 받잖아?”
“살아 있는 사람말도 못 알아듣는데 사체의 말까지? 부검의가 하느님이냐? 50대 여자의 지방흡입술을 하다가 복부의 동맥을 터뜨려서 사망하게 했지만 자살할 사람은 아니라고 부인이 말했어. 그런데 말야. 피로회복제를 자주 마셨다는데, 피로회복제 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아. 아 미치겠네.”
정세윤이 수술한 50대 여자의 얼굴과 몸매는 20대 미모의 아가씨로 보였다고 한다.
“요즘은 사체 얼굴만 보고는 나이를 몰라. 약간의 지방이나 주름도 용서가 안 되는 거야. 의사나 환자나 욕심이 지나쳤지.”
준수가 술병을 들면서 말하자 내가 물었다.
“부검의, 할 만하냐?”
“응, 사체는 이미 스위치 오프니까. 피도 안 나고 말썽도 안 일으키고, 너처럼 늘 스위치 온 할 필요도 없고.”
준수는 그제야 내 몰골을 아래위로 훑는다.
“너, 아직도 잠을 못 자? 전에 그 환자,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이젠 네 책임만은 아니지.”
준수의 위로에 닭다리를 찢어 질겅질겅 씹으며 떠오르는 교수의 얼굴을 애써 지웠다.
서울 복귀를 이틀 앞두고 응급실 병상을 체크하는데 갑자기 간호사들이 문 쪽으로 몰려갔다. 비상사태가 일어난 것 같아 나도 출입구로 달려갔다. 유리문 밖에서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사람은 응급실 과장이다. 간호사들이 부축하자 과장은 그대로 축 늘어졌다. 과장을 들어 올려 침대에 눕히자 눈도 뜨지 못하면서 스스로 처방을 내린다. 마취과 이 과장 불러. 프로포폴하고 펜타닐 준비해라. 이미 발음이 불분명하다. 복어 독, 테트로도톡신 중독이다. 과장님 또 복어 드셨나 봐. 직원들이 수군거린다. 벤틸레이터는 갈릴레오 모델 ICU에서 내려 달라고 하고……. 수액은 5%포도당 생리식염수 하나 달아 놔라. NG 튜브나 폴리 필요 없다……. 겨우 말을 마치자 반쯤 벌어진 입은 벌어진 채 굳었다. 눈꺼풀도 굳게 닫혔다. 응급처치를 하고 기도삽관을 한 후 집중치료실로 옮기는데 주희가 과장을 뒤따랐다.
왜 주희가 집중치료실로 따라 가는 걸까? 집중치료실 간호사는 다른 사람이다. 의아했다. 주희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비상계단을 딛고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숨을 크게 내쉰다. 뿌연 입김이 찬 공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전설처럼 들었던 과장의 중독을 직접 보았다. 무표정한 척 했지만 실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국과수에서 발표한 정세윤의 사인도 테트로도톡신, 복어독 중독이었다. 그는 복어독에서 추출한 테트로도톡신 성분으로 자신만의 피로회복제를 만들어 복용했다고 밝혀졌다. 복어독성분인 테트로도톡신은 청산가리의 1000배로 해독제도 없다.
24시간 깨어 있어야 하는 응급실 의료진이야말로 독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이간호사로부터 주희의 과거에 대한 소문을 구체적으로 들은 것이 며칠 전이다. 주희가 신규 간호사로 서울의 대형병원에 있을 때였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깐 잠이 든 주희는 소아환자의 투약시간을 놓쳤고 아이는 죽었다. 죽음을 앞둔 아이였지만 주희의 투약실수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 후 주희는 지방으로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간호사가 되었고 죽음의 천사, 무서운 간호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김주희, 나의 어둠과 그녀의 어둠이 닮았기 때문일까. 나는 처음부터 그녀가 좋았다. 그녀를 향한 광기의 사랑이 나에게 휘몰아치기를 바랐다. 어디서도 위로 받을 수 없었던 그때 내 안 깊숙이 처절하게 여자를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유예된 인간이었고, 서울의 환자가 살아나기 전에는 내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어둠 속에 잠든 담장 낮은 집들을 내려다본다. 피곤에 젖은 밤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어깨를 치고 제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바람. 바람이 떠난 후 키 큰 삼나무 가지 끝에 별들이 와글와글 모여 들었다. 시간은 잔별들의 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따라 흘러갔다.
새벽 세 시, 이곳에서의 마지막 ‘다투(dhatu)’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죄책감과 불안에 옥죄어 죽음까지 생각했던 나에게 삶의 동아줄이 되어준 시간이었고 서울에 두고 온 나의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의 뜻을 담은 의식이기도 했다. 내일 모레, 서울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내 삶의 매뉴얼을 다시 쓰리라. 이제 새벽 세 시의 스위치는 오프로 돌린다. 리턴 불가, 용도 폐기된 스위치다. 의국의 책상 앞 마지막 의식을 끝내고 ‘다투(dhatu)’가 적힌 빛바랜 종이를 조심스럽게 떼 낸다.
의국을 나선다. 응급실 약품 창고가 있는 복도 끝을 지난다. 검사실과 병실로 이어지는 왼쪽 복도의 어둠속을 고양이 발걸음으로 지난다. 어둠만 냉기와 함께 가라앉은 복도 끝이다. 나는 다시 제약실로 되돌아온다. 약품창고 문손잡이를 잡고 슬쩍 돌린다. 손끝에 얼굴에 소름이 돋는다. 유령과의 숨바꼭질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가 이곳을 떠나면 내 동선을 따라 움직이던 유령도 제 갈 길을 가야한다. 유령을 만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유령을 잡고 싶은 것도 아니다. 무얼 확인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런데도 유령에 집착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 못한다. 잠겨 있어야 할 제약실 문이 저항 없이 열린다. 손잡이를 잡은 채 고개만 빼어 안을 들여다본다. 약품을 담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신음 소리처럼 들린다. 어떤 눈동자가 어둠 속에 찍혀 있을 것만 같다. 병원 직원들 생각처럼 유령은 나인가. 명계를 건너지 못해 이승과 저승의 틈바구니에서 헤매는 가련한 영혼.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얼굴과 날씬한 몸을 찾아서. 어떤 사람은 최고의 맛을 찾아서, 어떤 사람은 돈과 또 다른 안락을 찾아 유령처럼 떠돈다. 우리들은 모두 삶과 죽음의 경계에 한발씩 걸치고 있는 유령들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조금 전 어둠 속으로 사라진 형체는 나의 그림자인가.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이 제약실에서 조금씩 사라진다는 과장의 말을 떠올리며 약품 창고의 문을 닫는다. 방사선과를 지나 휠체어들이 즐비한 비상구를 지난다. 불빛이 환한 응급실을 보면서 나는 또 누군가를 생각한다. 새벽에 복도를 다니는 내 동선을 따라 제약실에서 프로포폴을 훔쳐가는 유령이 있다. 내가 떠난 다음 유령은 어떤 방법으로 살아남을까.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는데 머릿속은 주희 생각뿐이다. 해맑은 얼굴로 항상 스위치 온이던 그녀, 하얗게 빛나던 파트너 김주희. 파견 나온 다음날 그녀와의 첫 만남은 특별했다. 만성췌장염을 앓는 젊은 남자가 만취상태로 들어왔다. 마약주사를 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웠다. 정상적인 진통주사를 주려고 하자 자신이 토해낸 피와 토사물을 받은 양동이를 내 얼굴에 던졌다. 그러지 않아도 나 자신이 극도로 혐오스러울 때였다. 나는 오물을 덮어쓴 채 췌장염과 마약과 술에 절어 왜소해진 남자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다가섰다. 그의 멱살을 잡아 집어던진 후 의사 가운도 함께 팽개치려 했다. 주희가 재빨리 끌고 나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샤워장으로 등을 떠밀어 넣었다. 빨리 씻고 나오세요. 쉴 수 있는 곳을 안내할게요. 피비린내와 오물 냄새는 씻어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눈이 벌겋게 충혈 된 채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간호사들의 비밀휴식처로 안내되었다. 선생님은 지금 주무셔야 해요. 주희의 말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았다.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주희가 나의 손을 잡았는데 몽환적인 느낌은 찰나였고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땐 몸이 가뿐했고 오물 냄새도 잊었다. 30분이 흘렀을 뿐인데 짧은 시간 죽음과 같은 깊은 잠을 잤다. 그런 잠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경험하지 못했다.
정세윤은 복어독을 피로회복제로 사용했고, 이 병원 응급실 과장은 복어독을 맛의 쾌락으로 이용했다. 나는 복어독 같은 주희의 매력에 빠졌다. 트렁크를 들어 침대 옆에 세운다. 내일 아침 이곳을 떠난다. 떠난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는 실제 상황이 될 것이다.
늦은 저녁 시간 작별 인사를 겸한 회식 때문에 병원에 들렀다. 로비에 서 있던 그녀가 나를 보고 다가온다. 턱밑으로 다가와서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선생님, 아직도 불면에 시달리세요? 눈이 빨개요. 주희는 녹색 간호 복 위에 검정색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하얀 털이 보플보플한 머플러를 목에 둘렀다. 주희가 서 있는 뒤 벽면에 부착된 포스터가 시선을 끌었다. 매일 보던 것인데 특별히 눈에 들어온다. ‘편안한 수면, 행복한 삶’, ‘숙면을 책임집니다.’라고 커다란 글자가 박힌 포스터다. 침대 머리맡에서 끝까지 펼쳐진 순백색 시트와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눕힌 남자와 긴 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긴 채 남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여자. 그들 위로 핑크빛 이불이 달콤하고 따스한 물결처럼 덮였다. 포스터를 보는 순간 주희와 함께 잠들고 싶은 욕구가 불길처럼 일어났다. 얼마 만에 느끼는 욕구인지 스스로 깜짝 놀라 주희의 얼굴을 외면하고 얼른 자리를 떴다. 문득 뒤돌아보자 수면 포스터 앞에 선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정물처럼 서 있었다.
두개골에 뚫린 구멍으로 뇌수가 빨려나간다. 또 그 물고기다. 한 뼘도 안 되는 길이의 물고기가 날카로운 이빨로 구멍을 뚫고 아주 맛있게 뇌수를 파먹는다. 지독한 통증에 진저리친다. 머리카락 사이로 황갈색 비늘이 반짝인다. 뇌가 텅 비기 전에 놈을 잡아야 한다. 엄지와 검지로 집게를 만들어 머리카락을 헤집어 안으로 집어넣는다. 차고 매끄러운 감촉에 털이 곤두선다. 손가락을 빠져나간 녀석은 다시 두피에 달라붙어 얼음송곳 같은 이빨을 구멍 속으로 박는다. 끈적끈적한 액체가 이마를 타고 내려와 입술에서 뚝 떨어진다. 핏방울이다. 핏방울은 자꾸 떨어지고 가슴은 얼음처럼 차갑다.
어. 하고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다. 목이 마르고 머리가 깨지듯 아프다. 그것보다 몹시 춥다. 이불을 끌어당기려는데 팬티도 입지 않았다. 발가벗었다. 게다가 옆구리에 부드러운 뭔가가 있다.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나 앉는다. 침대 위에 나 외에 알몸의 여자가 잠들어 있다. 창문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이 여자의 맨살 위를 비춘다.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며 여자의 잠든 얼굴을 본다. 주희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다가 깜짝 놀라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다. 자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숨소리가 없다. 주희를 바로 눕히고 가슴에 귀를 갖다 댄다.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있지만 아주 약하다. 침대에 내려서자 발바닥 밑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비틀거리며 형광등의 스위치를 찾아 누른다. 손끝이 떨린다. 불이 들어오자 발에 밟혀 부서진 주사기와 프로포폴 빈병이 눈에 들어온다. 프로포폴의 부작용인 무호흡증이다. 축 늘어지던 서울의 환자가 뇌리를 스친다.
“안 돼, 안 돼!”
양손으로 주희의 뺨을 잡고 마구 흔든다. 반응이 없다. 인공호흡을 하면서 틈틈이 머릿속으로 어젯밤의 기억을 찾는데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알몸끼리 겹쳐 있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다. 어떻게 해서 이 여자를 안고 자게 되었을까. 어째서 기억이 지워진 걸까. 회식이 끝났을 때 나는 이미 통제력을 잃었다. 인공호흡과 심장마사지를 반복하면서 다시 처음부터 기억을 하나하나 끌어낸다. 그녀에게 이끌려 2차를 갔고 그곳에서 키스를 했고, 함께 숙소로 들어왔다. 졸음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그래서 늘 깨어 있고 싶었다, 라는 주희의 말도 떠오른다. 깨어있기 위해 유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고백을 바람소리처럼 들으면서 그녀의 입술을 빨고 젖가슴을 핥고 따뜻한 질 속으로 성기를 깊게 집어넣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바닥에 벗어 던져놓은 옷을 대충 입는다. 코트로 주희의 몸을 감싼다. 휴대폰의 시간이 새벽 세 시다. 병원과 모텔의 거리상 119를 부르는 것보다 내가 업고 뛰는 것이 빠르다. 그녀의 몸을 이불로 감싸 등에 업는다. 축 늘어진 그녀를 등에 업은 채 완강기로 이 방을 벗어나긴 어렵다. 발끝에 걸리는 밧줄을 걷어찬 후 5층 계단을 엎어질 듯 내려와 모텔을 벗어난다.
겨울나무들이 어두운 하늘을 향해 온몸을 흔든다. 윙윙 밤이 소리 내어 운다. 응급실로 가는 길은 텅 비었다. 입술이 떨리고 입김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만성췌장염 환자에게 수모를 당했을 때 나를 잠재웠던 일이 고마운 한편, 나도 모르게 잠들었다는 것이 또 다른 의식 저 편에 남아 있었다. 새벽 3시 ‘다투(dhatu)’를 통해 불면을 택한 이유 중엔 그녀가 던진 재갈을 물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행위가 깔려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지금 마지막 하루에 긴장이 풀려 죽음을 동반한 함정에 빠진 것 같다. 내 인생이 다른 어떤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나는 아프게 인식해야 했다. 복어독 같던 이 여자를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로 돌아간다 해도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이 시간을 잊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처럼 얼굴을 돌릴 수 있을까. 세찬 바람이 가슴팍을 친다. 그녀는 점점 무거워진다. 걸어도 걸어도 제자리. 물속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같다.
길바닥이 수족관이 된다. 한 방향 밖에 모르는 복어들이 자맥질한다. 꼬리에 붉은 꽃잎 같은 피를 똑똑 흘리며 눈앞을 빙빙 돈다. 꼬리가 뜯겨 나가는 중이다. 뒤의 놈은 앞에 선 놈의 꼬리를 물어뜯기 위해 작은 지느러미를 파닥거린다.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기 위해 뱅글뱅글 도는 복어들. 내가 그녀의 꼬리를 물었던가. 그녀가 나의 꼬리를 문 것인가. 등짝에 짊어진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개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맹도견 리트리버처럼 사슬 같은 어둠을 목에 감고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긴다. 휘몰아치는 겨울바람 사이로 응급실 불빛이 보인다.♣
(200자×83.5매)
제28회 신라문학대상 심사평(소설부문)
총 75편의 응모작을 읽었다. 다문화가정 체험, SF 장르, 동화 패턴, 전문 직업 영역 등 소재와 형식이 다양했다. 그 반면, 서술이나 문체 면에서는 그리 첨단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일차로 9편을 추렸고, 거기에서 5편으로 압축하여 최종심에 임했다.
「다투(dhatu)」「산세베리아」「초막 셋」「벚꽃 아재비를 위한 노래」「오해의 기하학」 등 5편은 단편소설의 골격을 제대로 갖춘 작품이었다.
이 가운데 「오해의 기하학」과 「벚꽃 아재비를 위한 노래」는 서술의 안정성에 비해 플롯의 안이함이 느껴져 아쉬웠다. 「초막 셋」과 「산세베리아」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에 비해 문장이 거칠었다.
이에 비해 「다투(dhatu)」는 압축성과 상징성 등에서 단편소설의 미학을 잘 보여준다. 병원에서 겪는 전문의들의 체험이 풍부하고 깊이 있는 전문성을 발휘한 점이 무엇보다 높이 평가된다. 전공의 3년차의 수면 부족과 과로에서 빚어지는 부조리한 삶의 조건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공감을 불러온다. 인물의 내면 묘사, 서사구조 면에서도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단, 스토리 전개에서 필연성보다 의외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논의가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당선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이광복 황충상 박덕규
당선소감
이수조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차가운 물속에서 천년동안 살아야 합니다. 여우는 천년을 죽지 않고 살아서 구미호가 되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야 인간이 됩니다.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이유를 대지 않아도 이무기나 여우는 행복하다는 것을 압니다.
스스로 깊고 수준 높은 독자로 자부하면서 살았지만 심한 갈증과 끝없는 방황은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았습니다. 소설을 쓰지 않고서는 용이나 구미호를 꿈 꿀 수조차 없다는 것을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깨닫게 되었을까요.
너무 늦은 나이는 없다, 면서 용기를 북돋워주신 이순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또 바로 옆에서 계속 소설을 쓰도록 독려해주신 양진채 선생님과 인천 새얼문학회 문우들 감사합니다.
엄마에게 병원 이야기를 자주해주는, 응급실에서 밤을 새는 아들 예완이와 저희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특히 뽑아주신 세분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키보드를 두드릴 힘만 있다면 손가락 열 개가 내 머릿속보다 더 빠르게 키보드를 쳐 나갈 때까지 소설을 쓸 것입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 늦은 나이에 시작한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서.
▶약력
1950년 대구 출생, 2014년 인천시민문예대상, 인천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