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물 477호(이이 남매 화회문기) written by 한국의 국보와 보물 |
|
▲ 건국대학교 교정 중앙에 위치한 구 서북학회 회관은 상허기념관과 박물관으로 활용. 학기 중 평일만 개방... |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서] (18) 舊 서북학회 회관…건국·단국·국민 3개사학 발상지 국민일보 2005.09.27
근대문화유산 제 53호 '서북학회 회관'의 역사를 찾아보면 "1908년 도산 안창호 등 평안도,함경도,황해도 출신의 신흥지식인 33인이 구국 정치활동과 문화계몽운동을 위해 조직한 '서북학회'의 회관"이라 돼있다. 당시 종로2가에 있던 한성전기회사를 모델로 삼아 지었으며 자리는 서울 종로구 낙원동,정확하게는 현 낙원상가 뒤 왼편 부근이다. |
|
|
▲ 건물 내부로 들어가 봅니다. |
▲ 1층은 건국대 설립자의 호를 따서 상허기념관으로... |
그러나 지금 그 자리를 찾아가면 4층짜리 지상주차장만 있을 뿐 옛스런 건물은 눈을 씻어도 찾을 수 없다. 1977년,건물을 소유하고 있던 건국대학교가 수익사업을 위해 그 자리를 개발하면서 헐린 뒤 서울 화양동 건국대 캠퍼스 내로 옮겨져 1985년 복원됐다. 지금은 건국대 설립자 유석창 박사의 호를 따 '상허기념관'이라 불리며,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
|
|
▲ 건국대학교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박사 기념전시실 전경 |
건국대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끝까지 올라가니 왼편 우묵한 곳에 서 있는 아담한 모양새의 건물을 만날 수 있었다. 가운데에 돔 지붕을 이고 돌출된 현관부를 중심으로 양편이 대칭된 예쁘장한 건물. 서북인들이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청나라 건축기사까지 불러들여 지은 이 건물은 건축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10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나온 지금,건물은 어느 사이에 제 나이에 걸맞는 조신한 품새를 배워두고 있었다. |
|
▲ 상허 유석창박사 연표 |
외양으로만 볼 때는 실내 역시 삐걱대는 마룻바닥에 칸칸히 나뉜 방들로 이뤄졌을 것 같지만 자리를 옮기며 구조를 대폭 변경한 탓에 내부에서는 초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쇠락하는 국운을 살리자며 새로 지은 이 건물에서 의지를 다졌을 서북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는 한층 어려웠다. 회관 건축 2년 후인 1910년,서북학회는 이 건물에서 신식교육기관인 오성학교를 출범시켰다. 같은 해 한일합병이 이뤄지면서 데라우치 총독에 의해 오성학교는 폐쇄되고 말았자민 서북인들의 의지는 이어져 이 건물은 이후로도 주로 교육시설로 사용됐다. |
|
|
▲ 상허 유석창박사 관련 전시물 |
1918년에는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가 4년 동안 이 건물을 교사로 썼다. 보성전문이 자리를 옮긴 후에는 협성학교와 협성실업학교가 들어왔으며 이 역시 몸집이 커져 이사를 나간 1939년,당시 민중병원을 운영하던 유석창 박사에게 건물이 넘어갔다. 해방 후 한 때는 한민당 본부로도 사용됐다. 한국대학신문이 연재했던 '김우종의 대학비사'는 "오늘날 종로가 정치1번지로 불리게 된 원인은 낙원동 중심에 있던 이 건물과 천도교회관 등에서 당대에 내로라 하는 유명 정객들의 연설이 자주 열렸던 데 한 원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
|
|
▲ 상허 유석창박사 관련 전시물 |
한민당 또한 이사를 나간 후,유석창은 46년 5월 건국대의 전신인 조선정치학관을 열고 학생을 받았다. 그와 비슷한 시기인 46년 3월, 신익희 등이 주축이 돼 발족한 국민대학 설립 기성회도 마땅한 교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중 서북학회관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 또 정치적 노선의 차이로 국민대 기성회에서 갈려져 나온 조희제와 장형 등은 1947년 6월, 조선정치학관 교사 일부를 빌어 단국대학교를 개교했다. 같은 시기 한 건물에서 무려 세 개의 대학이 태동한 것이다. 한 교사에서 두 대학이 수업을 하다보니 잡음도 있었다. |
|
▲ 2층으로 올라가면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뒤늦게 둥지를 틀은 단국대가 정식 대학설립 인가를 먼저 받는 바람에 조선정치학관 학생이 단국대로 편입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나 문제가 됐고, 두 학교를 합하자는 쪽과 반대하는 쪽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갈등은 1949년 9월 조선정치학관도 대학설립 인가를 받고, 단국대가 그 해 12월 이사를 나가면서 일단락됐다. 한국 전쟁 후인 1956년 건국대가 현 캠퍼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 건물은 건국대 야간부 및 법인사무실로 쓰였다. 이후 현재 자리로 옮겨져 박물관으로 쓰이면서부터는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
|
|
▲ 2층 유물전시실 유물 중에서 떡살이 유독 눈에 띕니다. |
수많은 학생들이 꿈을 키웠던 '낙원동 교사' 시절은 역사 뒷편으로 흘러가버린 것이다. 건국대학교는 현재 박물관을 따로 신축할 계획이다. 이 건물로는 5000여점의 역사 유물과 학교 역사자료 등을 다 보관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박물관이 신축되면 이 건물은 학교 법인사무소로 쓰일 예정이라고. 건물을 찾는 발길은 더욱 드물어질 듯 하다. 서북학회 회관, 오성학교, 한민당사, 낙원동 교사…. 근대사의 숱한 장면들을 담은 이 건물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6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됐다. 황세원 기자 |
|
▲ 건국대학교에서 보유중인 국보 1점과 보물 1점이 한 부스 안에 전시되어 있습니다만, 아쉽게도 카피본입니다. |
이이 남매 화회문기(보물 477호) |
|
▲ 건국대박물관에 전시된 이이 남매 화회문기(복사본 촬영). 예전에는 분재기란 문화재 명이었는데 이 명칭도 변경되었네요... |
이이 남매 화회문기(李珥 男妹 和會文記)는 부모가 죽은 뒤 유산을 율곡 이이(李珥)의 형제 자매들이 모여 합의하여 나누면서 작성한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각종 제사와 수묘를 위한 토지와 노비를 배정하고, 나머지를 4남 3녀와 서모(庶母:아버지의 첩)인 권씨에 배당한 토지와 노비 등을 구체적으로 적은 다음, 끝에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수결(지금의 서명)을 표시하였다. 이 문서는 이이의 개인사에 관한 사항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 재산 상속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
|
▲ 보물 477호로 지정된 이이 남매 화회문기 원본 사진(문화재청) |
동국정운(국보 142호) |
|
▲ 건국대박물관에 전시된 동국정운(복사본 촬영) |
동국정운(東國正韻)은 조선 세종 때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의 명으로 편찬하여 세종 30년(1448)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책으로, 6권 6책이며, 활자본이다. |
|
|
▲ 건국대박물관에 전시된 동국정운(복사본 촬영) |
중국의 운(韻)에 관한 책인 『홍무정운』에 대비되는 것으로, ‘동국정운’이란 우리나라의 바른 음이라는 뜻이다. 당시 혼란스럽던 우리나라의 한자음을 바로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으로 편찬, 간행되었다. |
|
▲ 국보 142호로 지정된 동국정운 원본 사진(문화재청) |
형태를 보면 본문의 큰 글자는 나무활자, 작은 글자는 갑인자, 서문은 갑인자 대자로 기록되어 있다. 구성을 보면 서문 7장, 목록 4장, 권1은 46장, 권 2는 47장, 권3은 46장, 권4는 40장, 권5는 43장, 권6은 4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19.8㎝, 세로 31.9㎝이다. |
|
특히 이 책은 동시 출간된 국보 제71호『동국정운』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개장(改裝) 당시 책의 천, 지를 약간 절단해 냈고,
둘째, 제목은 다같이 목판인쇄이나, 그 서체가 서로 다르다.
셋째, 책의 순서로 예, 악, 사, 어, 서, 수를 묵서했는데 이것은 뒤에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자음을 우리의 음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국어연구자료로서의 중요성도『훈민정음』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
|
▲ 국보 142호로 지정된 동국정운 원본 사진(문화재청) |
또한 한자음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의 글자를 만든 배경이나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자료가 된다. 이 책은 동시 출간된 국보 제71호『동국정운』과 함께 당시 음운학을 연구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
|
▲ 2층 우측 전시실 전경과 한 쪽 모서리에 전시된 고려시대 불상 |
건국대학교 구 서북학회 회관 위치도 |
|
지도 중앙 A 지점의 건물이 구 서북학회 회관으로 건국대학교 박물관으로 활용. 소재지 : 서울 광진구 화양동 1 |
|
지도 좌측 시작 지점의 건국대박물관에서 빨간선 우측의 끝 지점에 도정궁 경원당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
지도 중앙의 빨간선 좌우로 건국대박물관과 도정궁 경원당이 위치. 건대입구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