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T-34전차와 함께 제 2차대전에서 활약한 최고의 전차로 손꼽히고 있는 전차가 바로 판터전차이다. 독일 전차기술의 극치라고 불리는 판터전차는 제2차대전 후반기 연합군에게 독일 기갑부대의 위력을 실감케 했으며 전후의 레오파트시리즈로 이어지는 현대전차의 원조가 되었다. 판터전차는 약5000대 이상이 생산되어 1943년말부터 독일 전차부대의 주력이 되었으며 소련전차보다는 못하지만 독일군의 다른전차들에 비해서는 생산가격도 낮았고 그에 비해 성능은 측면의 장갑방어력을 제외하고는 티이거 I전차와 동등 이상을 발휘하였다.
다루겠다.
판터개발배경
1939년 8월31일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군은 항공기의 직접엄호를 받는 대규모 전차부대의 진격으로 전선을 돌파하는 Blitzkrieg(블리츠크리크:전격전)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독일군은 당시 유럽 어느나라의 전차보다 우수한 수준의 3,4호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그런 독일군에게 첫시련이 닥친 것은 1941년 6월22일 대소련 침공작전인 [바바롯사]작전이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처음에는 BT계열이나 T-26같은 경전차나 전차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느림보 대형 다포탑전차를 상대로 연승을 올리던 독일전차군단이 T-34와 KV라는 강적을 만나게 된다. 그간 3~4대로 이루어진 T-34전차대와의 교전을 몇 번 치루면서 이 신형전차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독일군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이 전차가 앞으로 전선에 대량 투입되면 어찌 될지를 짐작케해주는 전투가 1941년 10월 6일에 벌어진다. 이날 독일 중앙집단군 (폰보크 원수 지휘)소속 제4장갑군의 선두부대가 T-34전차가 주축인 소련군 제4전차여단의 공격을 받고 43대의 독일 전차가 화염에 휩싸여 버렸지만 T-34의 피해는 6대뿐이었다. 독일군의 뛰어난 전차 지휘관 [구데리안]장군도 노획한 T-34전차를 살펴본 후 "몇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전차보다 기술적으로 앞서있음에는 틀림없으며 세계적인 수준으로도 최고의 성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실토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동부전선에서는 T-34나 중전차 KV시리즈에 대적할 수 있는 전차의 개발 요구가 쇄도했고 V호전차 [판터]는 이런 배경속에 탄생했다.
우여곡절의 전차
T-34 공포가 독일군에 퍼져가고 있을 무렵 독일군도 나름대로 신형전차의 개발을 서두르고는 있었다 3/4호전차의 성능에 개전전부터 불만을 갖고 있던 독일전차군단의 요청에 따라 전차의 설계와 개발을 담당하는 독일군 병기국 제6과에서는 1938년부터 후속의 20톤급 주력전차의 개발에 착수 하고 있었다. VK2001이라는 프로젝트명아래 [크룹],[라인메탈],[벤츠],[MAN]사등이 경쟁하고 있던 이 계획은 T-34의 출현앞에서 부득이 궤도 수정을 하게된다. 당면한 강적 T-34보다 더 강력한 화력과
판터의 개발 주역들
구성)는 구데리안 장군으로부터 일장 '하소연'을 듣게 된다. 전선의 상황과 노획된 T-34전차를 살펴보고 감명을 받은 개발위원회는 독일로 돌아오자 구체적인 신형전차의 레이아웃을 설정한다. VK30계획이라고 명명된 이계획에 가장 적극적이던 벤츠와 MAN 양사는 1942년 1월 23일 개발모형을 제안한다.벤츠의 설계는 기존의 독일전차와는 달리 기동륜(스프로켓휠)을 뒤쪽에 위치시키고,포탑을차체앞쪽으로 치우치게 하는등 T-34의 교훈을 많이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벤츠의 안은 여기에 쓰기로한 디젤엔진의 실용화나 독자적으로 개발한 포탑의 생산시기등이 맞지 않는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벤츠사를 편애하던 히틀러는 현실서이 더 높은 MAN사의 안이 아니라 벤츠의 안을 선택한다. 42년 5월2일 신형전차의 이름이 [표범:판터]로 결정되고 개봘위원회는 5월11일 계속된 논의끝에 MAN사의 안이 더 현실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5월 13일 히틀러에게 보고서로 문제점을 지적한 결과, 14일에 MAN사의 안으로 확정되어 판터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6월에 히틀러의 지시로 전면 최대 장갑이 100mm(포탑)가 되고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시작차량이 군관계자들 앞에서 시험주행을 선보인다. D형이라고 명명된 초기형의 생산은 1943년 1월 28일부터 시작, 842량이 생산되었다
벤츠사의 모델
방어력을 지니자면 필연적으로 중량의 증대(30t이상)가 요구 되었고 차체의 디자인에서도 전통적인 피탄각(포탄이 맞을 경우 수직으로 직격해서 관통되지 않도록 장갑판 각도를 기울이는 것)을 많이 준 형태가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1941년 11월 18일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동부전선을 방문한 신형전차 개발위원회(병기국 제6과장-피트너 대령을 단장으로 고문인 나프캄프 박사 및 크룹,벤츠,MAN,포르쉐,라인메탈 등 개발사 관계자들로
MAN사의 모델
연합군과 대치하고 있는 판터
2차대전 최고의 걸작 -판터전차
판터의 최초 생산형인 D형은 1943년 7월의 쿠르스크 전투에서 데뷔전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이때의 판터는 아직 기계적인 결함이 많았고 비록 판터를 위해 새로 개발된 장포신 70구경 75mm포의 위력은 절대적이었지만 거의 제대로 활약하지는 못했다. 이후 판터의 개량에 전력을 기울인 독일은 1943년 후반기부터 기계적인 결함을 거의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주력전차로 재탄생시키게 된다. 1943년 8월부터 D후기형과 동시에 생산이 개시된 두 번째 양산형인 A형은 모든 전차부대에 급속히 배치되어 연합군과 맞섰고 이에 대항해서 소련은 85mm포를 장비한 T-34/85를 투입했지만 종합적인 전투력에서는 여전히 판터가 한 수 위였다.그리고 서부전선에서는 미,영 등 연합군의 M4[셔먼]시리즈를 압도해 버려 결국 연합군은 우세한 항공전력으로 대항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1944년 3월경부터는 A형을 개량하여 기계적 신뢰성과 생산성을 크게 겸비한 최종 생산형인 G형이 등장한다.G형은 A형과 함께 종전시까지 전차사단전력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숫적으로도 4호전차를 능가하는 완전한 주력전차로 자리잡게 된다. 판터의 파생형으로는 판터의 차체를 이용한 전차회수차량인 [베르게 판터]와 71구경88mm포를 장비한 구축전차 [야크트 판터]가 유명하다. 구축전차는 다음 특집때 자세히 다루겠다.
잘 쓰셨습니다. 39년의 독일 전차는 그저 그랬죠. 그러니 폴란드 탱크들을 다량으로 썼고요. 40년 프랑스 침공까지 독일 전차는 프랑스 중전차에 비해서는 약했지요. 수적으로도 적었고요. 번개전쟁Blitzkrieg 작전으로 이긴거죠. 소련의 T-34장점 몇가지는 당시엔 획기적이었던 피탄각 사용, 토션바를 사용해서 간단
하고 싼 생산과정 (T-34와 판터를 보면 스프링이 없습니다. 토션바(비틀리는 철봉)을 스프링으로 써서 차바닥에 끼운거죠.), 여기까진 미국 발명가 크리스티의 발명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시동 잘걸리고 직격탄 맞아도 잘 안타는 디젤엔진의 사용등이 있지요. 물론 판터가 많이 배꼇죠. 디젤 빼고...판터의 75mm포 는
포신길이를 짧게해서 탑재한 타이거 탱크의 88mm포 보다 관통력이 뛰어났습니다. 판터포신이 길어서 포탄의 속력이 더 빨랐기 때문이죠. 쿠르스크에선 아무리 좋은 탱크래도 몇겹이나 되는 탱크참호들, 지뢰, 후방포격, 숨겨진 대전차포들이 겹겹이 있었으니 결함이 없어도 준비하고 기다리는 적에게 이기긴 무리였겠죠
셔먼은 키가크고 장갑도 얇고 포도 힘이 없어서 40년대의 짧은포신의 3,4호 전차와는 붙었지만 44년 노르망디때는 벌써 불잘붙는 론슨라이터, 아니면 영국군(토미)를 요리하는 토미쿡커라고 불렸습니다. 셔먼에 영국의 17파운더포를 붙인 파이어 플라이만 맞먹는 공격력이 있었죠. 세계최고 전차에이스 마이클 비트만
의 타이거 탱크도 파이어 플라이에게 당해서 프랑스에서 전사했죠. 물론 자동차 나라에서 나온 탱크라 구동계는 좋아서 판터의 75mm 포를 본따 만든 프랑스 포를 셔먼에 붙여서 M50 이라고 이스라엘에서 썼습니다. 개조하고 더 큰포를 붙인게 M-51이고, 73년 시리아와 골란에서까지 싸웠으니 셔먼도 상당히 오래 갔지요.
첫댓글 사진없나요?
꺄~ 사진을 바랬는데...
판터... 멋진 놈이죠 ^-^
사진을바랬는데.........
잘 쓰셨습니다. 39년의 독일 전차는 그저 그랬죠. 그러니 폴란드 탱크들을 다량으로 썼고요. 40년 프랑스 침공까지 독일 전차는 프랑스 중전차에 비해서는 약했지요. 수적으로도 적었고요. 번개전쟁Blitzkrieg 작전으로 이긴거죠. 소련의 T-34장점 몇가지는 당시엔 획기적이었던 피탄각 사용, 토션바를 사용해서 간단
하고 싼 생산과정 (T-34와 판터를 보면 스프링이 없습니다. 토션바(비틀리는 철봉)을 스프링으로 써서 차바닥에 끼운거죠.), 여기까진 미국 발명가 크리스티의 발명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시동 잘걸리고 직격탄 맞아도 잘 안타는 디젤엔진의 사용등이 있지요. 물론 판터가 많이 배꼇죠. 디젤 빼고...판터의 75mm포 는
포신길이를 짧게해서 탑재한 타이거 탱크의 88mm포 보다 관통력이 뛰어났습니다. 판터포신이 길어서 포탄의 속력이 더 빨랐기 때문이죠. 쿠르스크에선 아무리 좋은 탱크래도 몇겹이나 되는 탱크참호들, 지뢰, 후방포격, 숨겨진 대전차포들이 겹겹이 있었으니 결함이 없어도 준비하고 기다리는 적에게 이기긴 무리였겠죠
셔먼은 키가크고 장갑도 얇고 포도 힘이 없어서 40년대의 짧은포신의 3,4호 전차와는 붙었지만 44년 노르망디때는 벌써 불잘붙는 론슨라이터, 아니면 영국군(토미)를 요리하는 토미쿡커라고 불렸습니다. 셔먼에 영국의 17파운더포를 붙인 파이어 플라이만 맞먹는 공격력이 있었죠. 세계최고 전차에이스 마이클 비트만
의 타이거 탱크도 파이어 플라이에게 당해서 프랑스에서 전사했죠. 물론 자동차 나라에서 나온 탱크라 구동계는 좋아서 판터의 75mm 포를 본따 만든 프랑스 포를 셔먼에 붙여서 M50 이라고 이스라엘에서 썼습니다. 개조하고 더 큰포를 붙인게 M-51이고, 73년 시리아와 골란에서까지 싸웠으니 셔먼도 상당히 오래 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