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연인"은 음악의 성인으로 불리우는 베토벤, 그가 전생애를 통해 완성했던 위대한 음악과 운명적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고, 특히 힘차면서도 박력있는 연주로 3번(영웅)과 5번(운명)을 명반으로 만든 게오르그 솔티경이 음악을 담당했으며, 여기에 현존하는 최고의 마에스트로인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봉을 잡았고,바이얼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첼리스트 요요 마,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
그리고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알토 앤 머레이 등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이힘을 합해 멋진 사운드 트랙을 만들어 놓았다.
게오르그 솔티 (Georg Solti )
분류
연주자>지휘자
출생
1912년 10월 21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망
1997년 9월 5일
경력
• 1930~1939년 부다페스트 오페라 지휘자 • 1946~1952년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음악총감독 • 1959년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지휘 • 1961~1971년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음악감독 • 1969~1991년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
유형
지휘자
수상
• 1942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 • 1992년 레오니 소닝 뮤직상 • 1996년 그래미 어워드 평생공로상
데뷔
1938년 3월 11일, 헝가리 국립 오페라극장
레퍼토리
고전에서 근대까지의 관현악곡, 모차르트부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까지의 오페라
O.S.T Story
격정적이고 비극적인 베토벤의 사랑 이야기 속에는 물론 베토벤이 남긴 불후의 걸작들이 등장한다. 교향곡 제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교향곡 7번, 교향곡 9번 합창,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바이얼린 협주곡, 장엄미사, 유령 트리오, 크로이처 소나타, 피아노 소나타 월광과 비창 그리고 엘리제를 위하여.
게오르그 솔티는 헝가리가 낳은 최대의 지휘자로 카리얀과 번스타인이 서거한 지금, 말 그대로 세계 지휘계의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명 지휘자. 1912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제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각지의 가극장에서 지휘자를 역임하다가 61년 코멘트가든 왕립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을 맡았고 영국 왕실로부터 경이란 칭호를 받기도 했다.
베토벤 음악의 권위자로 알려진 게오르그 솔티가 음악감독을 담당한 "불멸의 연인"은 교향곡3번(영웅)과 5번(운명), 9번(합창)등을 비롯한 베토벤의 드라마틱한 음악이 영화 전편을 관통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울려 퍼지는 합창은 일찍이 지상의 소리를 천상의 음악으로 승화시켰던 베토벤의 음악적 절정이라고 할만하다. 그의 음악이 전 우주를 향애 열려지는 순간이다.
OST로 사용된 곡 목록
1 Symphony No. 5 in C minor(운명) 2 Fur Elise 3 Symphony No. 3 in E-flat Major (Eroica) 4 Piano Sonata No. 14 in C-sharp minor (Moonlight) 5 Symphony No. 6 in F Major (Pastoral) 6 Piano Trio No. 4 in D Major (Ghost) 7 Violin Concerto in D Major 8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Pathetique) 9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Major (Emperor) 10 Missa Solemnis in D Major 11 Symphony No. 7 in A Major 12 Violin Sonata in A Major (Kreutzer) 13 Symphony No. 9 in D minor (Ode to Joy)
불멸의 연인 Immortal Beloved , 1994 제작
요약 : 영국 외 | 로맨스/멜로 | 1995.01.28 개봉 | 15세이상 관람가 | 120분
감독 : 버나드 로즈
출연 : 조한나 터 스티지, 게리 올드만, 발레리아 골리노, 이사벨라 로셀리니
영화 내용을 한번 살펴 볼까요?
루드비히 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게리 올드만 분)은 1827년에 사망했다. 비엔나 전체는 슬픔의 도가니에 빠지고, 수천명의 군중들이 베토벤의 장례 행렬을 지켜보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그의 생이 끝나는 순간이었고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불멸의 연인, 불멸의 사랑, 불멸의 정신
베토벤이 죽기 직전에 수정한 마지막 유언은 ‘모든 음악과 재산을 불멸의 연인에게 남긴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유언에는 ‘불멸의 연인’이라고 적혀있을 뿐 그것이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았다. 베토벤의 동생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생전 여성을 혐오하다시피 한 베토벤에게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의 비서인 쉰들러는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유언 속 ‘불멸의 연인’을 찾아 나선다.
쉰들러가 가장 먼저 찾아간 여인은 ‘줄리에타’였다. 그녀는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베토벤의 연인이었을 것으로 유력시되는 인물이다. 베토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베토벤이 줄리에타에게 헌정한 곡으로 유명하다. 쉰들러를 만난 줄리에타는 자신이 한때 베토벤과 연인이었으며,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줄리에타는 베토벤의 제자였다. 당시 음악가들에게는 귀족 부인이나 영애에게 레슨을 하는 것이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다. 베토벤은 의도적으로 줄리에타를 유혹했고, 그녀는 천재적인 음악가에게 금세 빠져들었다. 젊은 시절 베토벤은 수많은 귀족 여성들과 염문이 있었다. 귀족 여성들을 유혹해 잠자리를 하는 것은 그가 귀족을 농락하는 방법이었다. 줄리에타의 사촌 언니와도 이미 염문이 있었고, 줄리에타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베토벤이 줄리에타와 함께 했던 시절은 혁명의 시대였다.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이 등장했고, 귀족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 여파가 유럽 대륙에 퍼지고 있었다. 시대의 변화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의상에서도 드러난다. 베토벤보다 14년 먼저 태어난 모차르트에 대한 영화인 <아마데우스>에서는 가발과 과도하게 화려한 의상이 눈에 띈다. 특히 귀족 여성들의 모자는 금방이라도 목이 꺾일 것처럼 거대하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어 위태로워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멸의 연인>에서는 가발과 화려한 모자도 등장하지 않으며 여성들의 드레스 또한 훨씬 간결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영화 내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그들이 우리를 위해 길을 비켜야 해. 이제 귀족들의 시대는 끝났다고. 가발의 유행이 왜 끝났는지 알아? 모두 단두대의 제물로 사라졌기 때문이야“ “모두 나폴레옹을 두려워하고 있어. 내 교향곡의 주제가 나폴레옹이라고“
-베토벤이 소나타 월광을 바친여인 쥴리에타-
베토벤은 줄리에타를 이끌고 귀족들을 밀치고 지나가며 이렇게 말한다. 그는 귀족에 대한 혐오와 나폴레옹에 대한 믿음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당시 예술가들은 귀족이나 왕족들의 후원 없이는 예술의 뜻을 펼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 예술을 하려면 반드시 후원자가 있어야 했다. 줄리에타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 친척들이 베토벤을 두고 “고고한 척하지만 주는 돈은 잘 받는다"라며 조롱한 것을 보면 베토벤도 후원을 바탕으로 음악 활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베토벤이 귀족들이 싫어하는 나폴레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것을 보면 위험을 감수할 만큼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베토벤의 신념이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동생 카스파의 약혼녀 요한나-
쿠퍼(Barry Cooper)는 “하이든과 달리, 베토벤은 본(Born)을 떠난 후, 후원자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지 않았고, 자유로운 예술가로 일한 독립적인 작곡가로 첫 번째 낭만주의 이상으로 간주된다.”고 주장한다. 솔로몬 역시 베토벤을 “귀족의 후원으로부터 비교적 독립적인” 작곡가로 평가한다. 이러한 경제적인 독립은 그를 당시의 귀족들에게 익숙한 관례적인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했다. (중략) 아도르노는 베토벤의 음악을 “후견인으로부터 벗어난 미학적으로 자율적인 음악의 원형”이라고 평가한다. (중략) 우스(Alan Woods) 역시 “혁명가라는 이름이 합당한 작곡가가 있다면 그것은 베토벤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베토벤은 왕이나 귀족층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은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괴테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한 루돌프 왕비를 길에서 만난 일화는 그러한 그의 정치적인 급진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 일화를 다룬 롤링(Carl Rohling)이 그린 그림, 「테플리츠에서 있었던 일(The incident at Teplitz)」에서 볼 수 있듯이, 왕비에게 인사하는 괴테와 달리 베토벤은 인사하지 않고 돌아서고 있다.
쿠퍼에 따르면,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베토벤은 “1815년 즈음에 그의 귀족 친구나 후원자들을 상당수 잃게 되었다.” 이처럼 베토벤이 귀족들에게 반항했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존재하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그의 비판적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성중, 「워즈워스, 베토벤, 아도르노 : 저항의 예술」, 『19세기 영어권 문학』 제15권 1호, 2011. 40-41pp.
줄리에타와 함께 하던 시기의 베토벤은 청력을 거의 다 잃어가고 있었다. 줄리에타와 이별하게 된 이유도 줄리에타 부녀가 베토벤을 시험해보기 위해 함정에 빠뜨렸기 때문이었다. 부녀는 베토벤이 더 이상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세간의 소문을 확인해보기 위해 거짓말로 베토벤을 불러들인다. ‘새로운 피아노를 들여왔는데 하인들까지 모두 내보내고 혼자서만 피아노를 칠 기회를 주겠다’고 속이고 몰래 숨어 그의 행동을 지켜본다. 베토벤은 피아노에 기대어 귀를 바짝 붙인 채로 <월광>을 연주한다. 줄리에타는 그의 연주에 감동해 숨어있던 곳에서 나와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줄리에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던 베토벤은 갑작스러운 손길에 깜짝 놀란다. 그리곤 곧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을 알고 매우 분노한다. 줄리에타에게 배신감을 느낀 그는 이별을 고하며 줄리에타의 집을 박차고 나간다.
영화에서 줄리에타는 나폴레옹을 은유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이 공식적으로 가문에 청혼까지 넣었던 줄리에타가 배신을 한 시기와 나폴레옹이 혁명의 주동자에서 황제로 탈바꿈한 시기가 서로 맞물린다. 평민인 베토벤과 결혼할 생각까지 했던 줄리에타가 결국엔 귀족과 결혼한다는 점도 혁명에 앞장서다가 스스로를 황제로 칭한 나폴레옹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나폴레옹의 배신을 줄리에타의 배신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쉰들러에게 모든 이야기를 한 줄리에타는 습관처럼 목덜미에 깊게 베인 흉터를 만지작거린다. 정복활동을 벌이던 나폴레옹의 군대에게 유린당해 생긴 흉터였다. 줄리에타가 습관처럼 더듬는 것은 전쟁이 남긴 씻을 수 없는 아픔이었고, 잊을 수 없는 베토벤과의 추억이었다.
쉰들러가 두 번째로 찾아간 여인은 에르도디 백작부인이었다. 베토벤과 에르도디 백작부인은 그의 청력장애가 세간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연주회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베토벤은 이미 완전히 청력을 잃어버린 후였고, 그가 지휘한 연주는 엉망진창이었다. 심지어는 연주를 끝내지도 못한 채 중간에 끝나버렸다. 베토벤은 몇 번이고 다시 시도해보려 했지만 관객들은 이미 그를 조롱하고 있었고, 연주자들은 엉망이 된 분위기에 포기 상태였다. 패닉에 빠진 베토벤에게 다가온 것은 관객석에 앉아있던 에르도디 백작부인이었다. 그녀는 절뚝이는 걸음으로 다가와 베토벤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았다. 둘은 신체적인 장애와 심리적인 결핍을 앓고 있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버렸고, 그로 인해 더욱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버렸다. 하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귀머거리인 자신을 속인다고 생각했다. 에르도디는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절뚝이며 걸었고, 지팡이가 필수였다. 세 아이가 있었지만 남편과는 별거 중이었다.
-귀가 들리지않자 피아노 뚜껑에 귀를 대고 울림으로 소리를 체크하고있는 베토벤-
두 사람이 가진 또 하나의 공통점은 나폴레옹에게 배신당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나폴레옹이 변화를 몰고 올 지도자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진실은 달랐죠. 그는 스스로를 황제로 칭하고 세계를 정복하려 했어요. 그는 전제군주로부터 독재를 몰아내겠다고 외쳤지만 밤낮으로 비엔나에 포탄을 퍼부었어요.“ “나폴레옹은 승리를 거듭했어요. 전 유럽이 그의 발밑에 있었죠. 자신이 그토록 비난하던 귀족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죠. 우리는 모두 배신당했어요. 전에 비해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었죠.“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스스로도 귀족으로 태어나 백작부인이 된 에르도디가 나폴레옹의 혁명을 지지했다는 점이다. 그녀가 나폴레옹 군대의 포격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녀가 “우리는 나폴레옹이 변화를 몰고 올 지도자라고 생각했어요,”라고 언급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나폴레옹이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혁명을 이룰 것처럼 해놓고 황제로 등극했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귀족인 그녀는 오히려 나폴레옹이 혁명을 그만둔 것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그려진 에르도디는 귀족이라기보다는 자유인에 가깝다. 특히 쉰들러가 찾아간 중년이 된 그녀가 성이 아닌 오두막에서 평민 노동자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는 모습에서 그러한 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베토벤의 연주회가 실패하던 날, 관객들 모두가 그를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베토벤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 것도 그녀가 귀족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베토벤과 에르도디는 서로의 결핍을 공유하고 보듬었다. 에르도디는 베토벤의 생활을 도왔고, 베토벤은 음악으로 에르도디를 위로했다. 베토벤은 피아노를 치고 에르도디는 바이올린을 켜며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두 사람은 단순한 연인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아픔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정신적인 동반자에 가까웠다. 에르도디는 두 사람이 함께 살던 시절이 두 사람의 생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절이었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도, 자신은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 아니라고 했다.
-불멸의 연인-
마침내 쉰들러가 찾아낸 불멸의 연인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이었다. 바로 베토벤 동생의 부인인 요한나였다. 동생이 결혼을 발표했을 무렵부터 요한나를 창녀라 칭하며 탐탁지 않아 했던 베토벤은 동생이 죽자 조카 칼을 두고 요한나와 법적 다툼을 벌였다. 베토벤은 법정에서도 요한나를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고 폄하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베토벤이 평생을 잊지 못했던 여인이 요한나라니, 그를 가장 가까이서 보필해온 신들러 조차도 그 사실을 쉽사리 납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일한 증거인 칼스버드 호텔에 남겨진 서명과 요한나의 필체가 너무나도 똑같았다.
역사적으로도 베토벤과 요한나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조카 칼을 둔 법정공방까지가 역사적 사실이다. 요한나가 베토벤의 연인, 심지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 불멸의 연인이라는 것은 영화적 설정에 불과하다. 오히려 실제로 베토벤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으로 꼽히는 것은 줄리에타이다. 그의 대표곡인 <월광>도 줄리에타에게 바친 곡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영화는 왜 베토벤과 원수 사이에 가까웠던 요한나를 ‘불멸의 연인’으로 설정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베토벤(1770~1827)이 살았던 시대는 혼란의 시대였다. 그는 프랑스혁명(1789~1794)과 비더마이어시대(1815~1848)를 모두 겪었다. 영화 역시 이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베토벤은 자신이 나폴레옹의 지지자임을 밝히는가 하면, 자신의 악보에서 보나파르트의 이름을 직접 지워내기도 한다. 줄리에타는 습격한 군인들에게 유린당하는가 하면, 에르도디는 군대의 공격으로 아들을 잃는다.
줄리에타, 에르도디, 요한나 중 평민은 요한나가 유일하다. 곧 요한나는 평민, 시민사회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베토벤은 몇 번이나 요한나를 모욕하지만 영화 속 요한나는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요한나는 여성임에도 가구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직접 만드는 것에도 참여하며 일꾼들을 통솔한다. 요한나의 가구공장은 하나의 이상적인 세계다. 가구공장의 구성원 모두가 평민이니 그 안에는 계급 차이가 없다. 남성이고 여성이고 할 것 없이 스스로 맡은 일을 하며, 서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는다. 둘이서 이야기를 하자는 쉰들러에게 요한나는 “나는 일꾼들 앞에서 숨기는 것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요한나는 공장의 주인이지만 권력으로 군림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평등한 공동체의 일원이길 자처한다. 요한나의 가구공장은 곧 평민들이 꿈꾸던 이상 세계다. 베토벤 형제가 요한나를 보기 위해 공장의 대문 틈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흡사 유토피아를 훔쳐보는 듯하다.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히 살아가는 요한나, 그녀가 만든 가구공장이라는 평등 세계, 이는 곧 영화가 그려내고자 했던 평민의 이미지이며 시민사회의 이미지이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 요한나였다는 것은 베토벤이 혁명의 선봉자였던 나폴레옹을 지지했듯이, 평민인 요한나를 지지했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평민이었던 베토벤과 요한나의 사랑은 시민사회의 유대를 의미한다. 하지만 당시의 ‘시민’은 완전히 평등한 의미가 아니었다. 여성은 ‘시민’에 포함되지 못했다. 영화는 여인인 요한나를 시민의 상징으로 상정함으로써 보다 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불멸이라는 수식은 요한나에 대한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는 베토벤의 맹세이자 평등한 시민사회의 정신이 영원할 것이라는 영화적 메시지이다.
지배로부터의 탈피
“난 네 나이 때 첫 콘서트를 열었단다. 그땐 정말 끔찍했지. 네 할아버지는 내 재능을 이용해서 큰돈을 벌려 했지. 모차르트의 아버지처럼 말이야.“
베토벤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음악여행을 다녔다.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며 음악여행을 했던 모차르트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도 그 영향을 받은 탓인지 베토벤의 아버지는 베토벤의 나이를 속였다. 실제 나이보다 어린 나이로 베토벤을 소개하며 신동 이미지를 만들고자 했다. 어린 베토벤은 서커스단의 동물들이 묘기를 부리듯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쳐야 했다. 낯선 환경에서 긴장으로 바짝 얼어있는 어린 베토벤을 본 사람들은 그를 모차르트와 비교하며 조롱했다.
베토벤 아버지의 욕심은 점점 지나친 억압으로 드러났다. 베토벤이 제대로 연주를 하지 못하거나 연습을 하지 않으면 폭력까지 불사했다. 어른이 되고 난 후에도 아버지의 폭력과 나이를 속여 가며 음악여행을 했던 기억은 트라우마와 열등감으로 남아 베토벤을 괴롭혔다.
실제와 다르게 영화에서는 칼이 베토벤의 친아들로 나온다. 요한나와 베토벤은 남몰래 사랑을 나누던 시절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오해로 인해 이별하게 된 뒤 요한나가 임신 사실을 비밀로 하고 베토벤의 동생과 결혼해버린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두 사람뿐으로 요한나는 남편에게까지 칼이 남편의 친아들인 것처럼 숨긴다.
베토벤은 동생이 죽자 요한나를 정숙하지 못한 여인으로 모함하며 칼을 데려온다. 아버지로 인해 괴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베토벤은 칼을 사랑으로 키우려 노력한다. 음악 활동도 중단하고 칼을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만드는 것에 매진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노력이 칼을 억압한다. 자신에게는 다정하지만 그 외 모든 사람들에게 신경질적인 베토벤의 태도 또한 칼을 지치게 만든다. 결국 칼은 베토벤이 어렸을 적 그랬던 것처럼 집을 뛰쳐나온다. 베토벤은 직접 칼을 붙잡아 오지만, 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심지어 칼은 총을 들고 외진 산 중턱으로 가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은 미수에 그쳤지만, 이에 충격을 받은 베토벤은 칼을 놓아주기로 마음먹는다.
영화는 아버지를 미워했음에도 결국 같은 굴레를 반복하는 베토벤의 모습을 통해 아버지의 지배를 인간의 숙명으로 나타낸다. 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이러한 모습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한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지배하는 존재이고 아들은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경쟁하는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아버지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베토벤과 칼의 모습은 시대적 상황을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지배에서 고통스러워하다가,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든,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든) 결국엔 벗어나고야 마는 모습은 왕족들과 귀족들이 강력하게 군림하는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시민혁명의 모습을 그려낸 듯하다.
베토벤이 죽음을 앞둔 시점에 요한나가 그를 찾아온다.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나누던 뜨겁고 짧았던 젊은 날과, 수십 년간 서로를 미워하던 긴 세월을 지나 마주친 두 사람은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한 듯 고요했다. 베토벤은 쓰고 있던 악보의 한 귀퉁이에다가 짧은 글을 적어 요한나에게 내민다. “Must it be?(그래야겠지?)” 표면적으로 이 질문은 그동안 칼을 지나치게 억압해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칼의 양육권을 요한나에게 넘겨주겠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에 대한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영화에서 베토벤의 캐릭터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시대적 맥락에서 영화를 해석할 때 베토벤은 시민계급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칼과의 관계에서는 억압적인 지배자의 이미지를 갖는다. 베토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칼을 요한나에게 보내주는 장면은 왕족과 귀족에게서 시민으로 권력이 양도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베토벤의 마지막 대사인 “이제 희극은 끝났다.” 또한 자신이 미워했던 아버지와 같은 모습을 답습했던 자신에 대한 자조이자, 왕족들과 귀족들이 지배하는 사회체제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합창> - 자유를 향한 갈망의 노래
<합창> 교향곡은 영화의 말미, 베토벤의 마지막 연주회 장면에서 등장한다. 단순히 배경음악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마지막 연주회에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영화 내부에서 발생하는 음악을 디제시스(diegesis)적 영화음악이라고 한다. 단순히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서사에 음악이 녹아들게 하는 것이다.
병색이 완연한 모습의 베토벤은 <환희>가 연주되는 가운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어린 베토벤은 몽둥이를 들고 올라오는 아버지를 피해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어둠 속을 달려 그가 도착한 곳은 밤하늘이 그대로 비친 연못이었다. 베토벤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는 맨몸으로 연못에 몸을 담근다. 연못 위에 몸을 누인 베토벤은 비로소 평화와 자유를 찾은 듯하다.
<합창>은 자유를 얻은 베토벤의 감정을 표현하듯 격정적인 환희로 가득 찬다. 고요한 밤하늘을 부유하는 듯한 베토벤의 모습과 격정적인 <합창>은 역설적인 조화를 이룬다. 카메라는 베토벤을 중심으로 점점 줌 아웃(Zoom-out)하며 시야를 넓힌다. 연못에 누워있던 베토벤은 점점 작아지다가 마침내 밤하늘 속 수많은 별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다.
베토벤이 별이 되는 이 장면은 중의적인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로 흔히 유명인을 스타(Star)에 비유하고, 죽은 사람이 별이 됐다고 표현하듯 이미 죽었지만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되는 베토벤의 위대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해 봤을 때, 베토벤이 밤하늘 속 하나의 별이 되는 장면은 코스모스 우주론을 떠올리게 한다. 작은 우주들이 모여 큰 우주를 이루듯이 베토벤은 큰 우주를 이루는 하나의 작은 우주이며, 하나의 세계이다. 곧 베토벤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자 상징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장면 연출을 통해 베토벤의 삶이 그 자체로 역사의 일부분이자 하나의 시대였음을 표현하고 있다.
베토벤의 마지막 연주회 객석에는 요한나가 있었다. 훗날 요한나는 자신을 찾아온 쉰들러에게 자신은 이미 <합창>을 들은 그 순간 베토벤을 용서했다고 고백한다. 그런 음악을 쓰는 사람을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노라고.
합창은 당시 이례적인 음악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교향곡임에도 사람의 목소리가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베토벤은 교향곡에 칸타타(노래)적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기악곡과 성악곡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합창>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오케스트라가 노래에 반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점이다. 베토벤은 노래가 등장하는 4악장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기존 ‘빠르게-느리게-빠르게-빠르게’였던 진행 방식을 ‘빠르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로 변형시키기도 했다.
-꿈을 꾸듯이, 마치 환각에 취한듯이 우두커니 서있는 베토벤-
오랜 세월 공개적으로 자신을 모욕해온 베토벤을 한순간 용서하게 만든 곡이
<합창>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음악은 무서운 걸세. 왜인 줄 아나?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어. 음악의 역할은?“ “영혼을 맑게 합니다.” “말도 안 돼. 행진곡을 듣는다고 영혼이 맑아지나? 왈츠를 들으면 춤을 춘다네. 미사곡을 들으면 기도를 하지. 음악은 작곡자의 정신 상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청중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음악은 최면과 같아. 이 곡을 썼을 때 내 마음의 상태를 느낄 수 있겠나?“
-그리고 뒤돌아선 베토벤이 보게 된 것은....-
영화에서 베토벤은 <합창>이 연주되는 것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별이 뜬 연못에 몸을 누이던 밤을 회상한다. 이는 영화가 어린 베토벤이 자유와 평화를 찾는 장면에서 <합창>을 사용함으로써 <합창>에 자유라는 상징성을 부여한 거라고 할 수 있다. <합창>을 듣고 요한나가 베토벤을 용서했다는 것은 음악에 담긴 메시지에 공감했다는 의미이다. 즉,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 표현한 이상(理想)과 요한나의 이상이 같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꿈꿨던 것은 자유와 평등, 시민혁명을 통한 해방이었다.
-우뢰와 같은 청중의 갈채소리...그러나 정작 베토벤은 귀로는 듣지 못하고 눈으로 듣는다-
베토벤, 시대의 이름이 되다.
영화에서 베토벤은 완벽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서 음악에 대한 천재성을 제하고 나면 괴팍한 성질과 고집만 남는다.
베토벤이 요한나와 칼의 양육권을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던 시기는 오스트리아에 다시 혁명의 기미가 보이던 때였다. 베토벤이 평소 막대하던 하녀들을 매수한 요한나가 그녀들의 증언을 이용해 재판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자 베토벤은 재판관과 거래를 한다. 자신의 명성과 음악성을 이용해 오스트리아를 위한 그랜드 오라토리오를 작곡해줄 테니 재판에서 이기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단순히 베토벤이 재판 승리를 목적으로 부당한 거래를 했다는 문제를 넘어서, 그가 혁명을 지지하던 자신의 신념마저 저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음악에 있어서는 성인의 경지에 도달해 악성이라 일컬어지는 베토벤의 삶은 오히려 얼룩져 있었다. 사랑했던 여인인 요한나를 평생 모욕하고,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와 똑같이 자신의 아들에게 억압적인 지배를 답습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고, 결국에는 씁쓸한 후회만이 남은 죽음을 맞는 베토벤의 삶은 차라리 처절하다.
영화는 왜 이렇듯 베토벤의 암울한 삶에 집중한 것일까? 흔히 유명인을 다룬 전기 영화에서는 인물을 영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인물이 겪는 역경은 그의 성공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의 업적이나 위대함보다 그의 불행했던 삶을 조명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오히려 그의 단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을 드러낸다.
베토벤은 장애와 시대적 상황 등으로 인한 불행한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환희로 가득 찬 음악을 남겼다. 그가 떠난 지 벌써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손꼽히며 클래식의 대명사로 불린다. 혁명의 실패를 맛보고도 당대의 시민들은 결국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해냈다.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민주주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손꼽힌다.
영화의 도입부인 베토벤의 장례식 장면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베토벤의 죽음을 추모한다. 그 넓은 광장이 시민들로 가득 찬 것은 단순히 그가 ‘듣기 좋은 음악’을 많이 남겼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광장의 시민들은 그의 음악에 담긴, 그가 살아온 삶에 담긴 정신에 공감했기 때문에 함께 눈물 흘렸을 것이다.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내 자신인 당신.” 베토벤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도 잊지 못했던 불멸의 연인은 결국 평생을 이어온 혁명에 대한 정신과 그것을 함께 한 모든 이들이 아니었을까.
영화 속 베토벤은 혁명을 지지하는 급진적인 시민이었다가, 폭력적인 지배에 시달리는 힘없는 어린아이였다가, 독단적인 지배자가 되기도 한다. 베토벤은 한 사람의 캐릭터 자체로 시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베토벤을 영웅으로 그려내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그대로 비춰내는 상징으로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베토벤의 불행한 삶은 그 자체로 당시의 시대상과 닮아있다. 영화적 상상력과 각색을 더함으로써 영화는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와 베토벤의 삶을 더욱 일체화시킨다. 베토벤의 삶은 역사의 한 조각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이다.
불멸의 연인에게.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 자신이여.
오늘은 몇마디만 그것도 그대의 연필로 씁니다.
그대가 온전히 내 사람이 아니고 나 또한 온전히 그대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바꿀수는 없을까.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고요한 마음으로 운명을 생각해요.
사랑은 모든 것 전부를 요구하오.
당연한 일이지만 며칠동안 내 생활이 어땠는지 그대에게 이야기 할 수 없음이 슬퍼요.
우리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면 마음을 털어놓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겠지요.
내 마음속은 그대에게 하고픈 말로 가득차 있다오.
이따금 말이란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 느껴져요.
내 진정한 하나뿐인 보물, 내 모든 것으로 남아주오. 나도 그대에게 그렇게 되겠소.
내 사랑이여 당신이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해도 내 사랑은 훨씬 더 강렬하오.
나한테는 당신 생각을 감추지 말아요. 잠자리에서도 내 생각은 그대, 내 불멸의 연인에게로 달려갑니다..
운명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길 바라며, 한순간 들뜨고 또 한순간 비탄에 잠깁니다.
온전히 당신과 함께 하든지 모든 걸 끝내든지 그 어느 것도 아니라면 나는 살 수 없소..
그래 나는 결심했소.
그대 팔에 날아가 안길 때까지, 그대 곁을 내 집이라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그대 품에 안겨 내 영혼을 정령의 세계로 떠나보낼 수 있을 때까지.
그 날이 아무리 멀다해도 나는 방황을 멈추지 않겠소.
안심해요. 그대도 알다시피, 그대 외에는 그 무엇도 절대로, 절대로 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오.
오 신이여, 이렇게 사랑하면서도 왜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합니까?
빈에서의 내 삶은 여전히 비참해요.
당신의 사랑이 나를 가장 행복한 인간으로 또 일순간 가장 불행한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오.
내 나이 때쯤 되면 조용하고 안정된 삶이 필요하다오.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나의 천사여, 방금 우편마차가 매일 떠난다는 말을 들었소.
그대가 이 편지를 조금이라도 일찍 받을 수 있도록 이만 써야겠소.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해요. 침착하게 우리 형편을 살펴보면 우리가 함께 하려는 소망을 이루게 될 거요.
마음을 편히 갖고, 나를 사랑해 주시오.
오늘도, 내일도, 그대, 그대, 그대를 향한 눈물겨운 동경, 내 생명, 모든 것이여, 안녕.
오 제발 계속 사랑해주오. 나의 진심을 잊지 말아요.
1801년 7월 7일 새벽 영원히 그대의, 영원히 나의, 영원히 서로의...
Track No1 / Immortal Beloved (1994): Piano Sonata No. 14 in C-sharp minor (Moonlight) by Ludwig van Beethoven '월광'
Track No2 / Allegro con brio from 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 운명 교향곡 1악장
Ludwig van Beethoven - 9th Symphony, 4th & last mvt (Jessye Norman, Sir Georg Solti, BBC Proms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