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군 주산면 야룡리 답 201평을 매매하는 계약서로 매매대금은 85원이었다.
대한제국시기에서 경술국치일인 1910년 8월 29일 이후로 접어들면서 조선시대에서 부터 이어져 왔던 "명문" 형식과 대한제국시기의 "지계" 형식이 1912년 3월 18일 칙령 제7호로 "조선민사령" 을 공포하면서 일본 민법, 기타법률을 의용하기 시작하여 부동산 양도와 공시에 대한 일본국의 등기제도가 시행되었다.
이시기에는 등기제도와 증명제도가 병존하여 이의 관리도 법원 및 행정기관에서 병행 관리하였으며 동 자료실에 수록되어 있는 "ST830605 / ST830606 / ST830607"의 일본국 등기권리증과 같은 형식으로 부동산 등기가 이루어지고 매매계약서에는 당사자들의 수결(사인) 대신 일본국의 방식을 따라 도장을 날인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