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가게류(新陰流)
신가게류의 류조는 가미이즈미 히데쓰나(上?秀?)량며, 그는 1508년 태어나 1577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측되는 인물이다. 그의 선조는 대대로 고오즈케(?, 지금의 군마현)의 오고지방의 성주였던 지방호족이었다. 앞에서 본 원조 유파들의 발상지가 대부분 혼슈의 간토지역인 것과 마찬가지로 신가게류의 조상인 가미이즈미도 간토출신이다. 이것은 일본 역사에서 간토 지방이 무술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준 지역인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예로부터 일본에서는 무(武)는 관동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있어왔다고 한다.
가미이즈미 히데쓰나는 어렸을 때, 당시 일본 병법의 중심이었던 가시마로 가서 그곳의 검술을 익혔다고 한다. 배운 유파가 가토리 신토류인지, 아니면 가시마 신토류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가 가시마 지역에 유학을 간 때는 쓰카하라 보쿠덴이 가시마 신토류룰 창시하기 전이라 가토리 신토류를 배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미이즈미가 가시마의 검술을 익힐 당시는 쓰카하라 보쿠덴이 무사수행을 떠난 때이고, 가시마 신류의 류조 마쓰모토 비젠노카미는 전장에서 전사하고 난 이후였다. 따라서 가미이즈미 또한 오랫동안 가시마에 머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후 무사수행을 떠나는데, 그 도중에 가게류의 2대 종가 아이스 겐코사이로부터 가게류를 전수받게 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무사수행을 거치며 가토리 신토류를 비롯한 여러 유파를 경험하였으나 가게류를 알게 된 후로는 가게류에 완전히 심취하게 된다. 여러파를 배운 경험이 있는 그는 가게류가 어떠한 유파에도 없는 매력과 신비감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고, 가게류에 전념해 그 유파를 중심으로 자신의 유파를 세워보려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태어난 유파가 신가게류이다.
가미이즈미 히데쓰나는 신가게류를 일으킨 후 곧 전국시대의 풍운에 휩싸이게 된다. 그가 살던 오고 성은 전국시대 대영주 호죠(?)씨에 의해 점령되어 그의 가문은 미노와 성의 나가노(?)씨에 배속되게 된다. 나가노 씨는 그후 바로 에치고(?, 지금의 니카타현)의 다이묘 우에스기 켄신에 항복하여 그의 휘하가 되고, 가미이즈미 또한 우에스기 가물의 가신이 된다. 그러나 1563년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켄신의 전쟁으로 미노와 성은 다케다군에 함락되고 우에스기군에서 싸운 가미미즈미는 다케다군에 신변을 인도 당하는 신세가 된다. 아무리 검술에 능한 병법자라 해도 조직력이 우수한 다케다군의 공격 앞에서는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가미이즈미 히데쓰나의 눈부신 활약에토 불구하고 미노와 일대는 다케다의 영지가 된다. 다케다 신겐은 고오즈케의 최강병법자이며 적인 가미이즈미를 그대로 묻어두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케다 신겐은 물신양면으로 그를 다케다의 가신으로 만들려 노력한다. 다케다는 가미이즈미를 아꼈는데,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신(信, 노부라고도 읽는다) 한자를 가미이즈미에게 하사한다. 이때부터 가미이즈미 히데쓰나는 이름을 가미이즈미 노부쓰나로 개명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당시 관동 최강으로 알려진 다케다 가문에 배속되는 것을 정중히 거부하고 무사수행에 나선다. 한 가문의 한 가문의 가신이 아니라 순수한 검객, 병법가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다이묘의 가신이 되지 않고 방랑생활을 계속하다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일본의 많은 다이묘들은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며 그를 초빙하여 검술을 배웠고, 무로마치의 아시카가 쇼군 또한 그에게서 검술을 사사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가미이즈미는 검객으로는 유일하게 천황 앞에서 궁중 연무를 보였으며, 그의 검기에 감탄한 천황은 무사에게는 전례가 없던 종4위라는 황궁 관직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가미이즈미는 무사수행 중 맏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는데, 그 중에서 유명한 인물들을 들어보자면 독특한 죽도를 개발하여 야규 신가게류의 류조 야규 세케슈우사이 무네요시를 참패시킨 히키타 분고로(가미이즈미의 조카), 가미이즈미 밑에서 수련한 후 야규파를 일으킨 야규 세키슈우사이 무네요시, 다이샤류(?)의 류조 마루메 구란도사, 신가게류의 류조 오쿠야마 규우카사이 등이 있다.
신가게류는 엔삐노 다치(?) 6본과 오쿠노 다치(?) 2본, 산가쿠엔노 다치(?) 5본, 규우코노 다치(?) 9본이 있으며, 이 이외에 텐구샤(?), 오쿠기노 다치(?), 인카노 다치(?, 태도)가 비전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신가게류 기술에서 가장요한 요소는 마로바시(轉)라 불리는 기술인데, 이는 몸과 마음과 검을 바둑알과 같이 둥근 모양으로 원전(圓轉)시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신가게류 전서는 마로바시와 함께 무케이노구라이(無形의位)라 하여 언제나 정해진 자세와 형을 갖추는 것이 아닌 임기웅변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형이 없는 형을 전하고 있다. 신가류의 근본이 된 가게류가 자세를 가지지 않는 자세를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신가게류는 전국시대의 실전 검법인 만큼 검을 히라세이간(平淸眼) 자세로 겨누며 몸을 반신 상태로 돌린 상태에서 발을 넓게 벌여 삼각보법을 쓴다. 그러나 이것 이외에는 정해져 있는 형이라는 것은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신가게류의 가히이즈미 노부쓰나(히데쓰나)와 그의 조카 히키타 분고로는 대나무를 잘게 잘라 가죽 자루 속에 넣은 후쿠로 지나이를발명하였다. 그는 이것을 무사수행에서 사용하였으며 나중에 야규 신가게류를 일으킨 야규 무네요시는 처음 히키타 분고로와 시합을 해서 이후쿠로 지나이에 참패했다. 그는 그후 가미이즈미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것이 야규 신가게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