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는 왜 갔어?
김대오 지음
사군자 / 2006년 1월 / 327쪽 / 12,000원
▣ 저자 김대오
1971년 전남 여수 돌산에서 태어나 인하대에서 중국어와 중국학을 공부함. 1997년부터 인천 계산여고에서 5년간 중국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2002년 8월 휴직을 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칭화(淸華)대학에서 중문학 석사 학위를 받음. 가족과 함께 중국 베이징에서 3년간 살면서 방송코디네이터, 통역, 번역 활동을 하면서 오마이뉴스, 우리교육, 뉴스메이커 등의 해외통신원으로 글쓰기를 해왔다. 현재 인천 삼산고 중국어 교사로 복직하여 학생들에게 중국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김대오의 중국문화콘텐츠> 연재로 2005년 ‘2월 22일상’을 수상함.
▣ Short Summary
이 책은 베이징을 여행할 독자들을 위해 수많은 메타포가 숨어 있는 베이징 근교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과 함께 부와 빈, 근대와 전근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문화가 뒤얽히며 빚어내는 카오스의 세계, 그 혼란 속에서도 질주를 계속하는 중국에 대한 다양한 면모들과 중국인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또한 중국유학생의 문제, 고구려사 분쟁, 김치파동 등과 같이 패권주의 냄새를 풍기며 부활하는 중국과 이웃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입장과 전략에 대해서도 밀도 있는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저자는 3년의 베이징살이를 통해 얻은 체험을 49개의 주제, 28꼭지의 팁에 쏟아내 놓고 있다. 중국에 대한 어떤 담론도 한편으로는 옳고 또 한편으로는 그르다는 말처럼 중국은 손쉬운 규정을 거부하는 거대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저자가 발로 뛰며 베이징의 삶 속에서 거둬 올린 『중국에는 왜 갔어?』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중국에 대한 어떤 환상도, 과장도 없이 진솔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최소한 중국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에게 중국을 이해하는 좋은 가이드북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중국인의 만만디, 그 느림에 대하여
중국은 그 변화의 템포와 생활의 리듬이 우리에 비해 아주 느리다. 황하는 늘 범람하여 부지런히 서둘러 농사를 지은 사람과 느긋하게 농사를 지은 사람의 구분을 휩쓸고 가 버렸다. 중국의 차 문화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중국인들은 대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인간의 서두름이 별 효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일종의 ‘체념의 느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개혁 개방 이후 자본주의 문화가 휘몰아치면서 현대 중국의 느림의 가치와 의미도 변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전략적 느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제 교류에 나선 중국인들은 한국인이 갖고 있는 조급함을 만만디로 공략하여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실용주의의 전략적 느림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더 이상 물러 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 몰리기 전까지는 태연하게 만만디 전략으로 상대방의 의중을 저울질하며 경제적 실익을 챙기려 한다. 그래서 때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일단 돌아서면 붙잡는 것이 중국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느림은 발 빠르게 움직이며 흘리는 땀으로 남보다 미리 준비된 자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여유가 아닐까? 중국인들은 결코 느리지 않다. 그리고 중국인의 전략적 느림을 깨뜨리는 방법은 우리가 성실한 노력과 최고의 기술로 진정한 느림의 여유를 배우는 것이다.
* 런민비
‘중국인의 피에는 런민비가 흐른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돈을 향해 가는 것이 그들의 밝은 미래를 향해 가는 것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노골적으로 돈을 밝힌다. 사실 오늘날 중국은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나라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계산되고 또 돈으로 해결되는, 그래서 더 급속도로 금전만능사회이 모순과 폐단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중국 런민비 1위엔은 우리나라 돈 130원 정도에 해당된다.
베이징살이 ‘만만치 않네!’
나는 ‘중국은 싸니까’하는 생각으로 네 식구가 중국에 가면서 3000만 원 정도를 챙겼다. 그러나 1년 반 정도가 지나자 준비한 돈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행기 값이 왕복 40만 원 정도라고 해도 가족의 대소사로 한국을 자주 오가게 되면 그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집값은 모두 월세인데 한국과 비슷할 정도로 비싸다. 지금은 외국인도 주택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3년 이상 중국 생활을 할 사람은 융자를 받아서라도 집을 사는 것이 낫다고들 한다. 교육비도 만만치가 않다. 청화대학 석사과정 1년 학비는 2만 3천 위엔(300만 원)이다. 또한 아이들 학비만 놓고 봐도 ‘중국은 싸다’가 아니라 ‘중국은 비싸다’가 맞는 말이다.
상대적으로 식비는 저렴하지만 외식비를 포함하면 한 달에 보통 2000위엔이 넘는다. 여기에 비싼 택시비와 전기세, 수도세, 전화세, 가스세, 인터넷, 핸드폰 사용료 등을 합치면 거의 5000위엔 정도가 생활비로 든다. 나는 X비자여서 1년에 한 번 비자와 거류증을 연장하면 되지만, 가족들은 L비자여서 3달에 한 번 비자를 연장해야 했다. 비자 연장은 한 번에 1인당 150위엔이다. 그것도 기한을 어길라치면 최대 5000위엔의 벌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의료비도 만만치가 않다. 중국에 교민이 30만 명에 달하지만 교육과 의료비에 대한 정부지원도 전무하다. 또한 거리에 따라 다르지만 가족이 4박 5일로 여행하면 보통 1만 위엔 정도는 들었던 것 같다. 베이징살이는 그렇게 저렴하고 만만한 곳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 중국인들에게 피해야 할 선물 세 가지
우선 손수건이다. 눈물을 닦는다는 의미가 있어서 일반적으로 기피되는 선물이다. 둘째는 우산이다. 우산의 발음이 헤어진다는 말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시계이다. 보통 손목시계는 괜찮지만 괘종시계 같은 벽시계는 안 된다. 시계를 준다는 말의 발음이 임종을 지킨다는 말의 발음과 같기 때문이다. 보통 선물을 줄 때는 쌍으로 주는 것이 좋고 중국인들이 선물을 두세 번 거절하는 것은 통상적인 관례이므로 다시 권하여 전해주는 것이 예의이다. 포장지는 물론 붉은색을 쓰는 것이 좋다.
오페라 경극, 아는 만큼 즐긴다
베이징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만리장성에 오르고, 북경오리구이를 맛본 뒤, 경극을 관람하는 것이 핵심 코스일 것이다. 경극은 중의학, 중국화와 함께 중국의 3대 국수(國粹)로 여겨지지만, 그 역사는 160여 년에 불과하다. 고대 희랍의 희비극, 인도의 범극과 함께 세계 3대 고전극으로 불리는 경극. 그러나 그 고도의 상징성과 리듬을 타고 흐르는 대사 때문에 그 내용을 외국인이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극이 갖는 마약 같은 매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국의 사상가 왕궤웨이는 연극을 노래, 춤, 연기 그리고 이야기라고 정의 한 바 있는데, 경극이 이 같은 요소를 가장 잘 표현해 낸 예술 장르라는 것이다.
경극은 주로 노래로 표현되는데, 중국어의 음악성이 가락에 실려 아름다운 리듬이 된다. 연기도 과장과 상징의 기법을 통해 극도의 아름다움을 표출해 낸다. 여기에 풍부한 전통문화원형이 극의 줄거리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다양한 의상과 분장이 인물의 연기와 성격을 암시하며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이룬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녹아들어 수준 높은 종합예술이 완성된다. 경극은 생활의 반영이면서도 그 삶의 본질을 과장하고 변형하여 결국 삶의 더 깊은 본질에 도달하고자 하는 변증법적 예술 장르라 할 수 있다. 경극이 규정하고 있는 상징과 약속의 문턱을 넘어서기만 하면 무궁무진한 매력을 지닌 경극의 세계에 빠져들 수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경극도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위기라 불릴 정도로 대중적 기반이 취약하다.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과 새로운 모색에도 불구하고 경극은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베이징은 지하에도 만리장성이 있다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로 만리장성은 진시황의 “야! 싸!” 한 마디로, 이화원의 곤명호는 서태후의 “야! 파!”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고 풍자한다. 베이징 도심 지하에는 30킬로미터에 달하는 지하성이 있다. 1969년에 마오쩌둥은 “깊게 동굴을 파고 양식을 비축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지하갱도 구축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베이징지하성은 1979년에 완공된 이후 1980년부터 외국인들에게만 개방되어 왔기 때문에 택시기사들도 정확한 위치를 잘 몰랐다. 베이징역 근처에서 힘겹게 시따머창 후통 안에 있는 작은 입구를 찾아냈다.
20위엔의 입장료를 내고 안내원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한글로 된 안내표지판도 있었다. 8m 깊이의 지하요새로 내려가자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이 ‘마오쩌둥’의 초상화이다. 갱도의 폭은 약 2m 정도인데, 베이징의 도심부만 총길이가 약 30km에 달하는 둥청(東城), 시청(西城), 충원, 쉬엔우구에 거미줄처럼 지하갱도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베이징역, 왕푸징은 물론 텐진까지 갱도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의 주요도시 지하에도 이 같은 지하요새들이 남아 있는데, 만리장성보다 더 길 것이라고 한다.
갱도의 통로에는 5m마다 안전등이 걸려 있고, 그 중간에는 당시의 화생방 전용 장비들이 걸려 있다. 방호문도 보였다. 또한 지휘소, 무기고, 식량저장창고, 회의실, 도서관, 간부휴게소, 영화관, 이발소, 화장실은 물론 70여 곳의 지하수와 2300여 곳에 특수제작 된 환풍기가 설치돼 유사시 30만 명이 생활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다. 원래는 주민구의 입구까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인민전쟁’이라는 구호가 적힌 벽화에는 땅을 파고 흙을 운반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그 돌무더기와 흙무더기 아래 묻힌 수많은 민초들의 피와 땀은 상상하기 힘들만큼 거대한 것이었으리라.
거대한 문화유산, 그 메타포의 세계
거대한 권력의 집, 자금성
황제만이 다녔다는 톈안먼의 가운데 문을 들어가면 양 옆으로 문물전시관과 보위대의 훈련장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단문을 지나면 세계에서 가장 큰 궁궐이 펼쳐진다. 자금성은 1407년에 건립되어 1420년에 완성되었다. 남북 약 1,000m, 동서 약 760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둘레에 방어호를 파놓았다. 고궁에는 네 개의 출입구가 있다. 단문을 지나면 오문이 나온다. 오문은 황제의 명을 거슬린 죄수들을 처형하거나 황제가 조서를 발표하던 곳이었다. 오문에 있는 다섯 개의 아치형 문도 봉건계급의 신분제도를 반영하고 있다. 중앙의 통로는 황제의 전용 문으로 황제 외에는 혼례를 마치고 입궁하는 황후와 황제 앞에서 치르는 전시에서 장원으로 합격한 자만이 이 문으로 출궁할 수 있었다. 문무백관은 동문을, 황실의 종친은 서문을 이용하였다.
고궁 성내는 남과 북의 두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남쪽은 황제가 정무를 보던 전외전, 북쪽은 황제의 사적인 생활을 위한 후내전으로 나뉘어져 있다. 외전의 태화전은 남북 33m, 동서 60m의 위풍당당한 건물로서 자금성의 정전(正殿)이며, 중요한 의식장으로 사용되었다. 태화전은 황제의 즉위식, 제전(祭典), 조서반포, 황태자의 탄생축하, 황제의 생일축하 등 국가행사를 거행하던 곳이다. 태화전은 이중처마에 높이가 35m, 면적이 2,377평방미터나 되는 중국 최대의 목조건축물이면서 최고통치자의 위엄과 권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24명의 황제가 오백여 년 동안 앉았던 태화전의 금방울옥좌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북문인 신무문을 통해 고궁을 빠져 나오니, 양옆으로 50m 너비의 호성하가 흐르고 있고 10m 높이의 높다란 성벽이 있다. 황제는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 넓은 방어호와 높은 성벽, 심지어는 땅을 파고 침입할까봐 고궁의 바닥에 40여 장의 벽돌까지 쌓게 된 것일까. 100만 명 이상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궁의 건축규모는 절대권력의 유산이자, 그 아래에서 피땀 흘렸을 수많은 민초들의 위대한 희생물의 결과물이다. 중국의 건축정신과 건축수준을 한 눈에 보여주는 고궁은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고궁에서 정사보다는 자연 속에서 풍류를 즐겼던 황제들
황제는 늘 고궁에 머물며 정사를 처리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1709년 강희제 때 건립하기 시작하여 건륭제 때까지 150여 년에 걸쳐 ‘모든 정원의 으뜸정원’인 원명원이 완성되자 황제들은 주로 그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역사기록은 전한다. 건륭제는 고궁에서 머문 날이 105일인데 비해 원명원에서 지낸 날은 168일에 달했고, 도광 24년, 도광제는 원명원에서 274일을 머물렀고 고궁에서 지낸 것은 73일에 불과했다.
중국 전통 원림의 결정판, 이화원
베이징의 서북쪽에 위치한 이화원은 원래 12세기 금, 원대부터 황실의 휴식과 유람을 위한 정원이었다. 1750년, 건륭제는 모친의 회갑을 맞이하여 청의원을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수사를 지어 모친에게 바친다. 1885년 광서제의 아버지 혁현은 10년 동안 청의원을 확장․보수하고 ‘이화원’으로 개칭하였다. 이화원은 인수전을 중심으로 한 정치활동 공간, 옥란당과 낙수전을 중심으로 한 황제와 황후의 생활공간, 그리고 만수산과 곤명호를 중심으로 하는 풍경유람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화원은 주위가 약 8km, 총면적이 290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그 중 수면이 3/4을 차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황실 원림이면서 중국 전통 원림의 원칙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 내고 있는 정원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손으로 평지의 흙을 파서 거대한 곤명호를 완성하고 그 흙으로 만수산을 만들었으니, 중국문화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칭할 만하다.
이화전의 정문인 동궁문을 지나 인수문을 들어서면 춘하추동 사계절을 상징하는 4개의 태호석이 놓여 있다. 커다란 태호석이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은 모든 중국 전통원림이 그러하듯 진정한 아름다움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의미로 정원의 안쪽 풍경을 가로막아 감추는 역할을 한다. 인수전은 서태후와 광서제의 여름궁전으로 논어에 나오는 ‘인자수(仁者壽) 구절을 인용하여 명명한 것이다.
“황제는 계속되어야 한다. 죽어서도 쭉!”
26명의 명, 청 황제는 사후궁전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황릉’이다. 명대의 황릉은 베이징 북서쪽 천수산에 13개가 있다. 이를 ‘명13릉’이라 부른다. 청대의 황릉은 청동릉과 청서릉으로 나뉜다. 청동릉은 허베이성 준화시에 있으며, 허베이성 이현성에는 청서릉이 있다. 명, 청 황제들은 명당자리에 터를 잡고 엄청난 재원과 인력을 동원해 과학적이고 예술성이 높은 황릉을 만들었다. 명13릉 중에서 일반에게 공개되는 곳은 영락제가 묻힌 장릉, 12대 목종의 소릉, 13대 만력제의 정릉인데, 정릉은 지하궁전까지 발굴․개방되어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이 되고 있다.
명13릉은 일종의 가족묘이기 때문에 공용의 진입로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신도(神道)이다. 신도의 총길이는 2.6km에 달한다. 신도에는 사자, 해태, 코끼리 등 총 18쌍의 조각이 길 양쪽에 배치되어 있다. 신도는 죽은 황제의 시신과 혼령만이 지날 수 있기 때문에 가운데 난 길도 산 자들은 근접할 수 없는 사자(死者)들의 몫이다. 영성문은 일종의 교차로로 13릉으로 통하는 모든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영성문에서 곧게 뻗은 길은 13릉의 으뜸인 장릉으로 통한다.
장릉의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능은전은 썩지 않는 남목(楠木)으로 만들어졌는데, 자금성 태화전의 재료보다 더 좋은 것을 사용했다. 물론 기단이 낮고 주변에 배전과 광장이 없어 웅장함이나 권위를 느낄 수는 없지만, 능은전은 태화전과 함께 중국 최대의 고건축물에 해당된다. 18년에 걸쳐 엄청난 인력과 재원이 동원되어 최대규모로 건축된 장릉은 지하묘실의 입구가 발견됐지만 보존을 이유로 현재까지 발굴되지 않은 상태이다. 지하묘실까지 완전히 발굴되어 개방된 곳은 13대 황제 만력제의 묘인 정릉이다.
* 신선이 되어 산 위에서 배를 타고 노닐다
베이징을 여행하다 보면 거대한 스케일의 역사유적지에 경탄하게 되지만 왠지 중국음식처럼 그 맛이 그 맛 같고 ‘느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가도 베이징 여행에서 순수하고 상큼한 자연풍경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롱칭샤이다. “작은 꿰이린”으로 불리는 롱칭샤는 남방의 여성스런 수려함과 북방의 남성다운 웅대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으며 물은 거울처럼 맑고 우뚝 솟은 산봉우리는 갖가지 형상으로 펼쳐지며 한 폭의 산수화를 이루어 놓는다. 이 그림 같은 풍경 속을 배를 타고 노니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이 주는 최고의 편안함이다.
변화의 회오리, 카오스의 덩어리
중국은 거대한 아침형 사회
저녁 9시가 넘으면 거리는 한산해지고 10시가 넘으면 중국인들은 취침에 들어간다. 중국의 밤은 고요하다. 그러나 중국의 아침은 활기차고 역동적이다. 중국인들은 새벽 5~6시만 되면 공원에 모여들어, 곧 20~30명씩 대형을 이루어 음악에 맞춰 태극권, 부채춤, 사교댄스 등 다양한 놀이들을 즐긴다. 이는 중국 어디를 가나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거리에는 아침 6시면 자전거 행렬이 시작되고, 7시경 출근길에 오른 중국의 거리는 그야말로 자전거들의 천국이다. 각 학교는 7시 30분가까지 등교하게 하고, 관공서들도 8시부터 정상업무가 시작된다. 반면 저녁에는 대형 상점들도 9시면 거의 문을 닫는다. 베이징에 한국 유학생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시간대의 차이로 인한 크고 작은 마찰이 발생하고 있다. 부엉이형 유학생들이 심야의 음주와 고성방가, 혹은 오토바이 소음으로 중국인들의 잠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일과는 보통 8시에 시작되며 12시까지 오전 근무를 마치고 2시까지 긴 점심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오후 2시에서 6시까지 근무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과가 끝나고 저녁 모임을 갖더라도 식사와 술을 함께 하고 별도의 술자리를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도시화와 함께 서구문화가 유입되면서 중국인들의 이런 생활 패턴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아침형 사회인 중국! 경제성장에 대한 요구와 기대가 높아지면서,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모색하는 중국인들에게 잠 못 드는 밤은 갈수록 더 늘어만 갈 것 같다.
외제 자동차와 삼륜차가 빚어내는 카오스
베이징 대학 동문 앞은 몰려드는 차들과 자전거, 그리고 사람들이 뒤엉켜 늘 혼잡스럽다. 중국 IT산업의 요람인 중관춘이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기도 하지만 신호를 무시하는 자전거와 보행자들의 무질서가 교통 흐름을 더디게 한다. 중국의 자동차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5만 위엔 상당의 소형차에서 고급외제차량까지 우리나라보다 더 다양하고 호화스런 차들이 도심을 가득 메워가고 있다. 슬그머니 자전거도로가 없어지고, 그곳에 주차장과 주유소가 들어서기도 한다. 또한 부유한 중국인들은 도심 외곽에 주거지를 마련하고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새로운 풍속도 만들어가고 있다.
길가에 자리 잡은 자전거 수리점, 복사가게들, 미장원에는 손님이 별로 없는지 종업원들의 시선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따라 움직인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없어서 자전거포에서 1마오(13원)를 주고 바람을 넣는다. 복사가게에는 한 장 복사에 7펀(10원)이라는 글귀가 손님을 호객한다. 미장원 아가씨에게 이발비를 묻자 머리를 감겨 주고 드라이까지 해주고 5위엔(650원)이라고 한다. 5위엔의 이발비도 아끼려는 삶은 길거리 이발사에게 2~3위엔에 이발을 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 소비 패턴은 각자의 경제적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해 질 수 있다. 근대와 전근대, 부와 빈이 교차되고 뒤엉키며 거대한 문화 퇴적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모습이다.
* 중국을 읽는 또 하나의 부호, 자전거
중국은 그야말로 거대한 ‘자전거 왕국’인 셈이다. 대륙 위를 굴러다니는 자전거는 약 3억 대, 매년 3천 5백만 대씩 늘고 있다. 중국 생활은 자전거로 시작해서 자전거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더라도 자전거가 없으면 캠퍼스의 강의실을 오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전거 도둑이 많다는 것이다. 나 역시 중국 생활 3년 동안 모두 5대의 자전거를 잃어버렸다. 중국에도 ‘마이카시대’가 열리고 자전거가 교통 흐름을 오히려 더디게 한다는 논란도 있지만, 출퇴근에서부터 통학, 쇼핑, 여행에 이르기까지 자전거는 여전히 중국인들에게 가장 유용한 교통수단으로 사랑 받고 있다.
중국 대륙은 지금 ‘성혁명’ 중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서로 자기 자전거에 앉은 채 입을 맞추던 장면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중국 젊은이들의 사랑은 뜨겁다. 중국 젊은이들은 대낮에도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포옹이나 키스를 하고, 심지어는 낯뜨거운 자세로 사랑을 주고받기도 한다.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를 중국은 칭런지에(情人節)이라고 부른다. 이날 중국의 극장들은 심야극장을 운영하며 연인들의 발길을 모은다. 중국에는 연인들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2인용 좌석이 있다. 칸막이가 되어 있어 중국의 많은 연인들이 더욱 친숙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아이를 한 명밖에 낳을 수 없는 인구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정부는 어렸을 때부터 학생들에게 피임이나 성에 대한 교육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에 대한 개방적인 인식들을 갖게 된 것 같다. 주택가나 길거리 곳곳에 콘돔을 파는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지만, 중국인들은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급속한 중국의 경제 성장과 의식구조의 서구화도 성의 개방화를 촉진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는 현대화된 소비패턴을 가진 청소년들이 유흥비를 벌 목적으로 혹은 쾌락을 추구하는 방편으로 매춘업에 뛰어들고 있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에서 매춘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개혁개방과 경제발전의 가속화에 따라 매춘이 중국 전역에서 다시 창궐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매춘현실을 인정하고 매춘을 위법 범죄행위로 명기하고 있지만, 매춘수법을 관련 법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에는 “돈 없는 거지는 비웃어도 돈 있는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급작스러운 산업화 과정에서 윤리의식이 상실되고 금전만능주의가 팽배한 중국사회의 일면을 잘 느끼게 해 주는 한 마디이다.
중국, 마라톤형 계층사회
매년 8% 이상의 고도성장을 하는 중국. 그러나 그 성장과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9억에 가까운 농민과 도시빈민들은 사회구조 최저 밑변의 자리에서도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경제 발전이라는 마라톤 대열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길을 따로 걷고 있는 것이다.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구조 조정 등으로 대량의 실업자가 발생하면서 사회구조에서 이탈한 중국인은 더욱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동서지역간, 도농간 소득격차도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2003년 1인당 연간 소득이 637위엔(77달러)을 넘지 못하는 절대 빈곤인구는 8,500만 명을 넘어섰다. 만약 세계은행의 기준으로 치면 중국의 절대 빈곤층은 2억 명에 이른다.
경제건설을 목표로 개혁개방을 실시할 때부터 중국은 정책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 지역부터 우선 집중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지역은 발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강력한 지역적 배타성을 갖는 호구제도가 대표적인 제도적 장치였다. 빈부 격차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잘 인지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앞으로 기회의 평등 자체를 저해하는 요소들은 조금씩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철저한 실력위주의 자유경쟁과 시장경제의 원리를 적용하되 보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위해 기본적인 사회보장 등의 제도와 법제를 단계적으로 정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는 ‘균형 있고 조화로운 발전’을 강조하며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엄마 빼고 다 가짜
베이징에 살며 비 오는 날이면 꼭 하는 말이 있다. “이 비 가짜 아니야?” 물이 부족한 베이징은 인공강우를 시도하고 있으며, 그 기술도 대단히 발달되어 있다. 어쨌든 중국에서는 자연현상조차도 가짜가 아닌지 의심할 지경이다. 가짜 천국 중국! ‘엄마 빼고 다 가짜’라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허위장부와 거짓회계로 조작되는 주가에 대한 불신, 정부의 공공자원과 공권력에 대한 불신, 상거래에서의 계약과 가격에 대한 불신 등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신용을 바탕으로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하다 보니 수많은 협약과 보증금이 필요한 비효율적인 사회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탱크와 전투기 빼고 못 만드는 가짜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모조품의 종류는 위조지폐에서부터 술, 담배, 의류, 의약품, 전자제품, 문화상품, 각종 증명서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이른바 ‘짝퉁’들이 중국의 백화점과 모든 쇼핑센터를 완전히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짝퉁이 패션 잡화를 모조리 접수했다면 불법 복제에 의한 ‘다오반(盜版)’은 게임, 영화, 프로그램 등의 문화와 IT산업을 완전히 정복해버렸다. WTO에 가입한 이후 지적재산권과 브랜드가치보호에 대한 국제적 압력이 거세지고 있지만 아직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단속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 당국을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위조지폐이다. 위조지폐범에 대하여 사형을 선고하는 등 강력한 처벌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술과 담배를 파는 가게에 가면 ‘가짜가 하나 있으면 열 개를 공짜로 주겠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마음속으로 ‘공짜로 주는 건 다 가짜 아니야’하는 의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불신이 커지다 보니 자신과 사회적 관계망이 있는 사람만을 믿고 중용하려는 경향이 생겨나 부패를 가중시킨다.
중국의 현재 신용수준은 선진국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열악하며 기업의 신용정도는 극도로 낮고 개인의 신용수준은 공백상태에 가깝다. 은행에 대한 불신은 더욱 심각하여 금융위기를 가중시키며 시장경제질서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공신력이 없는 시장에 대한 투자와 소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중국국민경제에 거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국의 장기 발전을 위해 아주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중국인, 나는 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3년의 중국생활을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대체로 의심이 많다. 고대에 도단은 주인이 하인에게 문서를 전하는데, 그 하인이 그것을 열어보는 것 같다는 의심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궁궐에서의 내시 거세도 궁녀를 내시들이 먼저 건드리는 것 같다는 의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위조지폐가 많기 때문에 100위엔, 50위엔을 건네주면 꼭 불빛에 비쳐보고, 비벼보고를 반복하고 나서야 받는다. 식당에서 생선요리를 시키면 살아 있는 생선을 직접 가지고 와서 확인하고야 요리를 시작한다.
왕푸징 야시장을 가다
베이징 왕푸징의 야시장에 가보면 뱀, 전갈, 지네, 물방개, 애벌레, 불가사리, 해마 등 정말 별의 별 것들이 다 있다. 한국 관광객이 많은 탓에 “맛있다! 뱀, 참새, 전갈, 개구리 먹어봐!” 하는 서툰 우리말도 사방에서 들려온다. “굼벵이 한 개 주세요.” 한국 관광객인 40대 남자가 돈을 낸다. 맛이 어떠냐고 물으니 못 먹겠다며 휴지통을 찾는다. 나는 전갈을 골랐다. 의외로 고소한 게 맛이 괜찮다. 불가사리는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부드럽고 느끼하며 향이 독특하다.
왕푸징 야시장에는 ‘돈을 벌다’라는 의미의 ‘發’과 발음이 비슷한 ‘8’에 맞추어 88개의 포장마차 같은 점포가 있다. 뱀, 전갈, 지네, 물방개, 매미는 꼬치 당 10위엔(1,300원) 정도다. 모두 기름에 튀겨진 탓인지 고소한 게 비슷한 맛이다. 이밖에도 각종 만두와 면류, 검은 두부와 냄새나는 두부, 야자수, 딸기, 탕후류(산사열매에 설탕물을 입혀 만든 꼬치) 등 다양한 먹거리들이 재미난 호객소리와 어우러져 중국인적인 맛과 멋을 물씬 풍긴다.
자금성 옆에 위치한 왕푸징은 명, 청대 고관대작의 거처가 있던 곳으로 뿌리 깊은 전통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화 이후 전통가옥들은 거의 사라지고 고층빌딩과 맥도널드, KFC 등 세계 다국적 기업의 전초기지가 되고 말았다. ‘따궈판(큰 솥에 밥을 해 공동취식으로 하는 방식)’ 시대가 지나고 개혁 개방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원바오(먹고 살만한 수준)’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이제 ‘샤오캉(안락하고 풍족한 생활수준)’이 새로운 국가전략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명동처럼 베이징의 최고번화가인 왕푸징 거리의 야시장이지만, 이곳에서도 중국의 골칫거리인 빈부격차의 일면을 보게 된다. 관광객들이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린 음식들을 뒤져서 주워 먹는 거지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거지들의 모습은 이곳에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먹거리 종류와 눈앞에 펼쳐지는 극과 극의 단면들이, 이곳이 바로 ‘카오스의 세계’ 중국임을 실감케 한다.
*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중국요리와 중국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다가 빗줄기가 굵어져 식당으로 몸을 피했다. 그런데 식당에서 나는 냄새가 예사롭지 않아 종업원에게 물었더니, 화다오지우 향이라고 한다. 가족을 불러내서 쉐이쭈위(민물생선을 편으로 잘라 콩나물, 고추와 함께 기름물에 삶은 요리), 처우떠우푸(썩힌 두부를 기름에 튀겨 소스에 찍어먹는 요리)와 함께 따뜻하게 데운 화다오지우 술을 마셔보았다. 정말 그 맛이 일품이었다. 샤오싱에서 나는 황주의 일종인 화다오지우는 생강과 함께 데워서 먹는데 값도 저렴하고 그 향이 독특하여 비 오는 날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지금도 비로는 날이면 그때의 화다오지우와 쉐이쭈위 생각이 간절하다.
중국, 너 없어도 너와 함께도 살 수 없다!
물이 흐르면 도랑이 될 것이다
1992년 8월 24일 오전 9시, 중국 조어대 국빈관에서 정식으로 한중수교가 체결되었다. 중국의 리펑 총리는 “물이 흐르면 곧 도랑이 될 것이다.”는 말로 양국교류에 대해 기대를 표시했는데, 지금의 한중관계는 도랑의 수준을 넘어 대해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수교 이후 보따리 장사부터 시작하여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현재 1만 개가 넘었고, 약 100만 명의 중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상태다. 문화적으로도 양국 모두에서 그 열기가 뜨겁다.
중국인들도 대체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으나, 중국내 반한 정서는 중국인을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언행이나 그들의 문화를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폄하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한국인들이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노래하는 것에 대해 많은 중국인들은 문화적인 차이이므로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지만, 인격적인 모욕이나 업신여김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우리 스스로 자긍심과 우월 의식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것을 지나치게 남에게 강요하는 것 또한 상대방의 반감을 불러올 것이다.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우호적인 한중관계를 유지․발전시켜 가는 열쇠가 아닐까.
한류여, 깊은 물로 소리 없이 흐르라!
중국인이 우리 문화를 처음 접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서다. 한중수교 이후, 1993년 드라마 <질투>가 처음 CCTV를 통해 방영되었으며, 1997년 6월 <사랑이 뭐길래>가 중국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 해 광명일보의 한 기자가 쓴 기사에서 ‘한류’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여 문화영역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다방면에 널리 쓰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류에는 분명 거품이 많고 과장된 부분도 없지 않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중국 문화의 저변을 흐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류는 그 자체의 문화적 파급효과에 그치지 않고 국가와 한국기업 이미지 제고, 한국 상품의 수출력을 높이는 데에도 크게 공헌했다.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한류의 영향이 크며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은 한류 스타를 십분 활용하여 많은 경제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현지 한국 유학생들의 문란한 생활과 한류가 오버랩 되면서 한류는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운 자본주의 소비문화라는 인식도 생겨났다. 여기에 중국정부도 한류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분석을 통해 다방면에서 견제와 제약을 걸어오고 있다는 점은 한류의 흐름을 갑갑하게 하는 상황이다.
차별화 된 전략 없이 단순히 ‘중국의 문화상품보다는 나으니까’ 하는 식의 안일한 중국시장 진출은 백전백패다. 가시적 이벤트나 실속 없는 거품보다는 철저하게 실속을 챙기면서 소리 없이 중국인들의 뇌리에 우리 문화의 인이 박히도록 하는 전략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중화민족주의의 견제와 제약이 거대한 바위라면 한류는 그 본연의 물의 속성을 이용하여 그 바위를 껴안으며 돌아서 흘러가는 지혜와 슬기를 발휘해야 한다. 해적판인 다오반이 난무하고 법률적 보호 장치도 미흡하여 투자환경이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장기적이면서 차별화 된 전략을 가지고 중국문화시장 개척에 매진해야 한다. 수준 높은 문화콘텐츠를 개발하면 자연스럽게 중국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 진정한 한류는?
작가 은희경은 “한류는 허구적인 실체이고, 오히려 진실된 한국의 모습을 가로막고 있으며 단지 하나의 거품일 뿐이다”라고 혹평했다. 한류가 십대 스타와 대중문화만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들 진정한 한류를 언급하면서 한중 양국의 지식인들은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을 뽑는다. 우리나라의 파행적 근대화 과정에 주체적으로 대응했던 한국의 역사적 동력을 중국인들에게 잘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김민기 본인이 무대시설을 스스로 고치고 중국의 스태프들을 교육시키며 중국의 공연 문화를 5~10년은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지하철 1호선>은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 진정한 한류의 전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당화’에 가면 북한이 보인다
해당화는 주중 북한대사관이 직접 경영하는 정부산하 고려호텔의 식당이다. 해당화는 지하 1층, 지상 2층에 대략 300석의 객실을 완비하고, 평양냉면 외에 약 150여 종류의 음식을 준비해 놓고 있다. 적지 않은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색다른 음식문화를 중국과 다른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해당화에서 근무하는 20여 명의 복무원(종업원)들은 모두 평양의 고려호텔 소속 직원으로 베이징에서 2~3년 근무하다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 대개 대학의 호텔 경영학과나 서비스 전문학과를 졸업하여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언변과 교양, 뛰어난 가무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해당화는 정갈하고 감칠맛 나는 음식 맛으로 유명해 한국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중국인, 서양 사람들도 즐겨 먹는다. 한국인이 주로 찾는 음식은 냉면과 가자미식혜, 온반, 순대 등이며 중국 백두산에서만 난다는 들쭉 열매로 만든 들쭉술도 물량이 모자라 못 팔 정도라고 한다. 해당화 영업시간은 점심시간이 오전 11시 30분에서 2시 30분, 저녁시간이 5시 30분에서 9시 30분까지로 정해져 있다. 해당화는 중국 식당에 비해 음식값은 다소 비싸긴 하지만 깔끔한 음식을 맛보며 북한 복무원을 만나는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들러 볼만한 곳이다.
‘유학 보내면 중국어는 배우겠지?’
오전 수업이 끝나는 점심시간 무렵에 베이징 위엔대학에 서 있으면 사방에서 들려오는 한국어로 인해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이다. 염색한 머리에 짙은 화장 그리고 한겨울에도 치마를 입은 한국 학생들이 줄줄이 몰려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결강과 시험 불참, 혹은 성적 미달로 유급 또는 퇴학을 당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한국인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위엔대학의 한 교수는 각 국의 유학생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한국 학생이지만, 또 수업 시간에 늘 지각하고 가장 불성실한 학습 태도를 가진 학생도 한국 학생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사는 화칭쟈엔의 부동산업자의 말에 따르면 절반 가량은 남녀가 동거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유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낙태시술병원이 공공연하게 교민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을 정도다. 위엔대학 주변으로는 한국유흥업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노래방, 당구장, PC방 등이 길거리마다 한국 학생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 이런 곳은 중국 상점들보다 물가가 비싸다보니 유학생들의 씀씀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유학생이 많은 우다오커우의 한 상점 주인은 주말 밤이면 술에 취해 고성 방가하는 학생이나 12시 이후의 손님 대다수가 한국 유학생들이라고 한다.
중국 유학 경비는 어떤가? 대학의 경우 보통 한 학기 학비가 1만 3천 위엔(150만원 정도)이며, 초중등학교는 학교의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한국 대기업 주재원들이 주로 다니는 IBS(북경국제학교,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됨) 같은 경우 1년 학비가 2만 4천불(2,900만원)이나 된다. 다른 한 국제학교도 기부금 2,500불에, 매달 550불의 학비를 내야 한다. 한국교민들이 모여 사는 왕징에 수도사범대학 부속 초중등학교는 어학연수 과정의 경우 한 학기 학비가 1만 6천 위엔(200만원)이고 정상적인 학교 교육도 한 학기 학비가 5천 위엔(65만원)에, 잡비가 2천 위엔(26만원)이나 된다. 한국학생들이 많으니 대우는 받지 못하고 학비만 계속 뛰어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분명 투자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진 무한한 잠재력의 나라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자기목표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중국에 달려들어야 한다. 나이 어린 자녀를 아무런 연고나 관리에 대한 대책도 없이 보내 놓고 ‘중국어는 배우겠지’ 하는 식의 무책임한 방목 유학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대학을 선택할 때는 어학연수가 목적이라면 굳이 한국인들이 많아 어학환경이 좋지 않고 학비와 물가가 비싼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의 대도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 한국인이 적은 도시의 좋은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유학생으로서 떳떳하게 대접을 받으며 저렴한 학비와 더 좋은 어학환경에서 유학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부활하는 중화민족주의
* 중국에 살아서 좋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
우선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직접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도 된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도 층수를 누르지 않아도 엘리베이터걸이 알아서 눌러 준다. 분리수거의 불편도 덜 수 있다. 또 무단횡단을 해도 그렇게 흠이 되지 않으며 신호등이 있어도 차가 오지 않으면 적당히 건너며 무질서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버스가 베이징 시내를 벗어나 도심 외곽으로 나갔다면 흡연이 묵인된다는 것을 잘 기억해두자!
알뜰 절약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에게 중국은 안성맞춤이다. 우산, 신발, 재봉틀 등 고장 난 것들을 신속하게 출장 서비스해 준다. 꽃,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중국체질이다. 단, 과일은 싸지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한다. 여자후배가 딸기다이어트를 했는데 정말 살이 쭉쭉 빠지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몸이 안 좋아 병원을 갔더니 농약중독이었다고 한다. 과일은 깨끗이 씻어서 먹어야 한다.
중국, 우주 시대를 향해 돛을 올리다
중국은 1970년 이후 2000년까지 12종의 창정(長征)시리즈 로켓과 선저우1호 발사에 성공했고, 드디어 2003년 10월 15일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인우주선 선저우5호 발사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선저우호는 약 23시간 동안 지구궤도를 14바퀴 순회하다가 다음날에 네이멍구 자치구 쓰쯔왕치의 초원에 무사히 착륙했다. 중국은 선저우5호의 전 장비를 자력으로 개발함으로써 우주산업분야에 수준 높은 기술력을 입증하게 되었다. 또한 중국은 90%에 달하는 발사성공률과 저렴한 발사 비용으로 외국의 상업용 로켓 27개를 대신 발사해 주는 등 항공 산업분야에서 최고기술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2005년 10월 13일 2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운 두 번째 유인우주선 선저우6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중국은 선저우7,8호를 발사할 계획이고 ‘다인다일(多人多日)’의 우주비행에 성공함으로써, 앞으로도 자신감을 갖고 우주정거장 건설과 달, 화성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07년에는 항공사의 선외 활동인 우주유영을 실현하고, 2009~2012년에는 우주선의 도킹 실험을 통해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며, 2017년에는 달에 우주인을 보내겠다는 ‘창어 프로젝트’, 2020년까지는 화성탐사 계획인 ‘수왕싱 프로젝트’를 완성하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단계별로 내놓았다. 중국의 과학기술 연구의 방향도 군수와 우주항공 산업에서 IT, 생명공학, 자동차 등의 산업분야로 옮겨져 세계 선진 각국을 긴장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의 과학기술은 이제 중국 경제 도약의 중심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집 청소 끝내고’ 목소리 높이는 중국
대국이지만 경제적 낙후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묵묵히 생존과 발전을 도모해 오던 중국의 외교 전략이 새로운 역사 환경 속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 방어적, 수세적 외교 전략이 이제 집 청소를 끝내고 유리한 입장을 선점하려는 적극적인 외교 전략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외교는 전략적 안목을 갖고 국가전략과 맞물려 거시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나아가 경제성장에 고무된 중국이 자신감을 갖고 노골적으로 공격적인 대외관계를 펴나가면서 여러 모로 주변국과의 잦은 마찰을 불러오고 있다.
중국인의 반일 감정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일본과는 집단매춘, 생화학무기 폭발로 인한 사상자 배상문제, 야스쿠니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 끊임없는 대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놓고 자존심 대결 양상까지 더해서 얽힐 대로 얽혀있다. 이미 고구려사 역사왜곡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성장이 ‘중화민족주의를 앞세운 패권주의’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화평굴기(和平堀起, 평화롭게 우뚝 일어서다)라는 것도 또 다른 패권주의를 의미할 뿐이다. 우리에게는 눈 시퍼렇게 뜨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말이다.(인용시 출처 명기요망)
첫댓글 요즘 월배씨의 중국관련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내용이 너무 충실하여 우리 학우님들에게도 많이 유익하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아쉬운것은 이런 내용의 글은 이곳 자유게시판보다 중국관련 보도자료에 올리시면 좋을듯 싶네요...멀리 타국에서 전해오는 월배님의 모습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