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직업으로 하는 9명의 선수들로 구성된 각 팀이 펼치는 야구이다.
프로야구는 리그전 형식으로 시즌 동안 시합을 벌여 우승을 겨룬다. 세계 프로야구의 원조는 미국이고, 이에 못지않게 일본의 프로야구도 그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고 있으며, 한국도 1981년 말에 프로야구가 발족하여, 1982년 시즌부터 시합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854년 뉴욕의 A.카트라이트(A.Cartwright)가 처음으로 오늘날과 같은 야구 규칙을 만들었다. 많은 수정을 거쳐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이 규칙에 따라 처음 야구경기를 가진 팀은 뉴욕에 있던 니커보커팀으로, 경기의 결과 크게 인기를 얻고 야구경기는 더욱 보급·발전되었다. 당시 관중은 야구를 매우 좋아해서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할 정도로 야구에 매료되어 있었다.
미국에 처음으로 프로구단이 탄생한 것은 1866년으로, 신시내티에 살던
H.라이트가 레드 스타킹스 클럽을 만든 것이 그 효시이며 순수한 아마추어중에서 선수를 뽑아 팀을 만들었는데 매우 강해 창단 뒤 2년 동안 단 한 번의패배도 기록하지 않고 81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1969년에는 공식적으로 직업구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미국 프로구단의 출발이다.
레크리에이션에 중점을 둔 아마추어 야구와는 달리 프로야구는 승부와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레드 스타킹스 출범 이후 야구는 근대 야구로 일대 전환을하게 되었다. 1971년에는 프로야구 조직이 9팀으로 결성되어 전국프로야구연맹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뒤따른 말썽과 부정사건으로 5년 만에깨어졌다.
대중의 야구에 대한 애착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다시 1976년 2월 뉴욕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 프로야구단의 모임인 내셔널리그가 결성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내셔널리그 결성 당시의 팀은 8팀으로 제1회 페넌트레이스는 각 팀이 70경기씩 치러 시카고 팀이 우승을 차지하였다.
내셔널리그에 가입하지 못한 각 도시구단은 인터내셔널리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등의 새로운 리그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마이너리그의 전신이다. 1900년 마이너리그 가운데 하나였던 웨스턴리그는 내셔널리그의 본거지인 동부의 대도시에 진출하여 아메리칸리그로 새 출발을 하였다. 이때부터 미국 프로야구는 오늘과 같은 2대 리그시대를 맞게 되었다. 아메리칸리그의 창설로 그 전까지 12개 구단으로 조직되었던 내셔널리그가 8팀으로 줄고, 새로탄생된 아메리칸리그도 8팀이 되었다.
아메리칸리그의 출현에 내셔널리그는 전혀 동조하지 않아 한때 프로야구계는 많은 혼란이 있었으나 두 리그 모두 서로 싸우는 것이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03년 내셔널 커미션이 생기고 2대리그로부터 위원이 선출되어 여기서 규칙 및 여러 협약을 제정함으로써 미국 프로야구는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해 처음으로 2대 리그의 우승팀끼리 9전 5선승제의 경기를 가졌으나
1904년에는 이루지 못하였다. 1905년부터 2대 리그의 우승팀끼리 최종 우승을 가리는 단기전을 벌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월드시리즈이며, 전 미국인을열광시키는 10월의 대제전이 되었다.
두 리그는 제3의 리그의 탄생을 막기 위하여 팀수를 늘려 아메리칸리그는 1961년에, 내셔널리그는 1962년부터 10팀으로 늘어났으며, 1969년부터는 두 리그 모두 12팀씩으로 늘어났고 소속팀이 동부지구·서부지구로 나누어졌다.
1990년대에는 신생팀들이 속속 창단하여 1995년에는 지구 개편이 이루어져 리그별로 동부지구·중부지구·서부지구의 3개 지구로 확대·개편되었다. 2003년 현재 내셔널리그에는 16개구단이 속해 있고, 아메리칸리그에는 14개구단이속해 있다.
1. 일본
미국 프로구단이 1명 또는 2명의 구단주에 의하여 운영되는 독립회사임에 반하여 일본의 프로야구단은 신문사·전철회사·영화사 등 대기업이 모기업의 선전을 위하여 만든 자회사로 출발, 아직 독립채산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구단에 적자가 발생하면 모기업에서 이를 메운다.
일본의 야구는 아마추어 스포츠, 특히 학생 스포츠로 발전하였다. 야구 선구자들의 제창으로 1920년 말 도쿄[東京]에 일본운동협회를 조직하고 1922년 가을에는 일본 최초의 프로팀으로 등장하여 와세다대학팀과의 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이 프로팀은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사라졌는데, 당시 일본을 대표하던 학생야구는 발전의 한계에 도달, 아마추어의 영역을 벗어나는 경향이 보이기도 하였다.
1931년에는 미국에서 일류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초청, 도쿄 6대학 리그팀과 경기를 갖기도 하였으나, 이듬해 문부성에서 야구통제령을 내려 프로와의 시합을 금지하였다. 이 때문에 1934년 가을에 일본에 온 베이브 루스(Babe Ruth), 헨리 게릭(Henry Gehrig) 등의 대선수들로 짜여진 미국 올스타팀과 대전하기 위하여 사회인야구팀 선수들을 선발, 전일본팀을 구성하였다.
이 경기가 끝난 뒤 1934년 12월에 그 멤버 그대로 대일본 야구구락부, 즉 오늘날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결성하였는데, 당시 일본 안에는 상대할 수 있는 직업구단이 없어 1935년 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야구기술을 연마하기도 하였다. 그뒤 1936년에는 오사카[大阪]·타이거즈·세네터스·한큐[阪急]·긴코[金瓆]·다이토쿄[大東京]·나고야[名古屋] 등 7팀이 탄생하여 일본직업야구연맹을 조직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흐지부지되었다.
종전이 된 다음 1945년 11월, 직업야구연맹이 부활되어 오늘에 이르도록 일본 제일의 프로스포츠로 각광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1949년에 1팀이 더 생겨 8팀이 되었으며, 이를 4팀씩 나누어 2개 리그, 즉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한신 타이거즈를 중심으로 한 센트럴리그와 난카이 호크스·한큐 브레이브스를 중심으로 한 퍼시픽리그를 만듦으로써 직업야구연맹은 발전적 해체를 하였다. 두 리그는 그뒤 팀을 증설하여, 2001년 현재 각각 모두 6팀씩 총 12개 팀이 있다.
이어 1951년에는 커미셔너를 결정하고 통일계약서를 만들어 미국 프로야구와 똑같은 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각 팀은 별도의 2군을 두고 2군 팀끼리의 리그전을 벌이는데, 이 역시 마이너리그 제도를 본뜬 것이다. 커미셔너 제도의 도입과 선수들의 통일계약서 양식을 채택함으로써 일단 혼란은 방지되었으나 규약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점, 또 센트럴리그의 인기에 비해 퍼시픽리그의 인기가 너무 떨어지는 점, 12개 구단 중 8개 구단이 도쿄·오사카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 점 등이 문제로 남아 있다.
2. 한국
한국의 야구는 1905년 미국인 선교사 길레트(P.Gillett:한국명 吉禮泰)가 도입한 이래 일본과 같이 고등학교·대학을 중심으로 한 아마추어 스포츠로 급속히 성장해 왔다. 1922년 12월 미국 메이저리그 선발팀이 방문하여 용산 철도구장에서 전조선군(全朝鮮軍)과 경기를 가졌는데, 한국에 처음으로 프로야구를 선보인 경기였다.
그뒤 거듭되는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팀의 각종 초청경기로 한국 야구 수준은 크게 자극을 받아 기술면에서 급격히 향상되었다. 이에 아마추어야구의 한계를 느낀 일부 야구인들이 앞장서서 프로야구 창단작업을 시작하였는데, 1975년 11월 재미교포인 홍윤희(洪胤熹)가 프로야구 창단작업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그뒤에도 간헐적으로 프로야구 창단작업이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프로화 작업이 시작된 것은 1981년 5월부터이다.
당시 창사 20주년을 맞은 문화방송이 김동엽(金東燁)을 중심으로 프로야구 창단을 기획하는 한편, 아마추어야구 출신의 이용일(李容一)·이호헌은 별도로 프로야구 창단작업을 하였다가 하나로 통일되었다. 준비위원들은 공동채산제의 도입, 재일동포선수의 영입, 지역권 보장, 대기업 중심 등의 원칙을 정하고 프로야구 정착을 위한 9개년 계획을 세우는 한편, 창단팀 선정작업에 들어갔다. 1981년 12월 11일 롯데호텔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한국프로야구 출범을 공표하였다.
창립총회에 참가한 구단은 서울특별시의 MBC 청룡, 충청남북도의 OB 베어스, 전라남북도의 해태 타이거즈,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의 삼미 슈퍼스타스, 대구광역시·경상북도의 삼성 라이온즈, 부산광역시·경상남도의 롯데 자이언츠의 6개 팀이었으며, 창단 3년 뒤인 1985년에는 충청남북도에 새 팀을 신설하는 대신 OB 베어스는 서울로 본거지를 옮기도록 경과규정을 두었다.
미국 프로야구의 대도시 본거지제도와 일본 프로야구의 대기업 중심제의 장점만을 본뜬 한국 프로야구는 철저한 프랜차이즈제(본거지제)를 도입, 구단주부터 선수에 이르기까지 본거지 출신으로 구성, 지역적 특성을 강하게 풍기며 1982년 3월 27일 MBC 청룡 대 삼성 라이온즈의 역사적인 개막전이 동대문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렸다.
출범 첫해인 1982년에는 6개 팀이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뉘어 팀당 80게임씩 총 240게임을 치렀으며,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7전 4선승제의 한국시리즈를 벌여 챔피언을 가렸다. 미국·일본의 풀시즌제와는 달리 전·후기제를 채택, 1982년 전기리그에서는 OB 베어스가 우승을 차지하였고, 후기리그에서는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 두 팀이 최종결승전인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어 OB 베어스가 1무 1패 뒤에 4연승을 거둠으로써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챔피언이 되었다.
1985년부터 팀당 110게임씩 총 경기수가 330게임으로 늘어났고, 우승결정전의 경기방식도 변경되었다. 즉 전기와 후기의 1위 팀이 5전 3승제의 플레이오프전(戰)을 치른 다음, 전후기 통산 승률 1위 팀과 한국시리즈를 벌였다. 그런데 이 방식으로 페넌트레이스를 치른 결과, 삼성 라이온즈가 전후기를 석권함으로써 그해의 한국시리즈가 개최되지 못하는 기현상(奇現象)을 빚었다.
1986년에는 팀간의 경기수가 108게임으로 줄어들었으나, 제7구단인 빙그레 이글스의 참여로 총 경기수는 378게임으로 늘어났으며, 우승 결정전의 방식도 다시 바뀌어 전기 및 후기 1·2위 팀이 플레이오프전을 치렀다. 그러다가 1988년부터는 단일 시즌제로 바뀌면서 우승 결정전 방식도 또 다시 변경되어 페넌트레이스 3위 팀과 4위 팀이 3전 2승제의 준(準)플레이오프전을 치르고 그 승자가 2위 팀과 플레이오프전을 벌여 그 승자가 시즌 통산승률 1위 팀과 한국시리즈를 치르게 되었다.
1999년부터는 드림·매직리그 양대리그로 경기를 운영함에 따라 각 리그의 상위 1·2위 팀이 7전 4선승제의 플레이오프를 거쳐 승리팀이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다시 단일리그로 바뀐 2001년부터는 133개 경기를 실시하는 페넌트레이스를 치른 후 3·4위 팀이 3전 2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승리 팀이 플레이오프전에 오르게 되며, 여기에서 페넌트레이스 2위 팀과 5전 3선승제의 경기를 펼쳐 이긴 팀이 한국시리즈에 오르게 된다. 경기운영 방법은 처음부터 철저한 홈앤드어웨이 방식을 채택하여, 팀마다 전체 게임의 반은 본거지 구장에서, 나머지 반은 상대팀 구장에서 경기를 한다.
한편, 1982년 2월 창단한 삼미 슈퍼스타즈를 1985년 5월 청보식품에서 인수하여 청보 핀토스가 되었으며, 다시 1988년 3월 태평양화학에 인수되어 태평양 돌핀스가 되었고, 1995년 9월 현대가 인수하여 지금의 현대 유니콘스가 되었다. 1989년 제8구단인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어 1991년 시즌부터 리그전에 뛰어들었으며 1999년 SK 와이번스에 인수되었고, 1990년에는 MBC 청룡이 LG그룹에 인수되어 LG 트윈스가 되었다.
2003년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는 두산 베어스, 현대 유니콘스,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삼성 라이온즈, 기아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8개 팀이 있다.
3. 경기운영
미국에서는 1903년 내셔널 커미션이 생긴 이후 철저한 본거지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인구 200만 명 이상의 대도시는 2개 팀을, 그밖의 도시에는 각각 1개 팀씩을 두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팀의 이동이 심하였으며,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참가로 캐나다를 본거지로 한 2개 팀이 미국 프로야구에 참여하였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4월 초에 시즌이 시작되어 10월 초순에 끝나는 풀시즌제도를 택하고 있다. 포스트시즌 진출방식에도 와일드카드 제도를 도입하였다. 경기방식은 같은 지구 팀과는 12차전을, 소속된 지구가 다른 팀과는 11차전을 치르게 되어 있다. 여기에다 인터리그 경기를 덧붙이게 되는데 동부지구와 중부지구에 편성된 팀들은 같은 지구의 다른 리그 팀들과 3~4경기씩 벌인다.
정규시즌이 끝나면 각 리그별로 월드시리즈 진출팀을 가리기 위한 포스트시즌에 들어간다. 포스트시즌의 1차 관문인 디비전(division)시리즈는 5전 3선승제로 열리며, 와일드카드를 획득한 팀이 같은 지구의 수위팀을 제외한 팀중에서 승률이 더 좋은 팀과 디비전 시리즈를 치른다.
디비전시리즈에서 승리한 두 팀은 다시 7전 4선승제의 리그 챔피언십시리즈를 거치며 여기서 승리한 각 리그의 최종 승자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여 그해의 챔피언을 결정짓는다. 디비전시리즈와 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는 정규시즌에서 승률이 좋았던 팀에 홈경기 어드밴티지 혜택이 주어진다. 1903년 월드시리즈 초창기와 1919년, 1920년, 1921년에는 지금과 같은 7전 4선승제가 아닌 9전 5선승제를 하기도 하였다.
또한 해마다 7월에는 메이저리그에 등록된 700여 명의 선수 가운데 선발된 우수선수 50여 명이 1차례의 올스타전을 벌이는데, 경기는 양 리그가 번갈아가면서 유치한다. 출전선수는 팬들이 선발하는데 투수만은 감독이 뽑으며 전년에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팀의 사령탑이 각 팀의 감독을 맡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945년에만 유일하게 열리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