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내물치 지명>
내물치리(內勿淄里)
현재 속초와 양양군의 경계인 쌍천(雙川)을 중심으로 양양 쪽에는 강선면 물치진리(沕淄津里)가, 속초 쪽으로는 옛 도문면(道門面) 현 대포동 물치리(勿淄里)가 각각 행정구역으로 되어 있다. 강선면의 경우 관동지, 강원도읍지, 양양부읍지 등에도 물치진리(沕淄津里)로 기록되어 있고, 그 이후 기록부터는 물치리(沕緇里)로 되어있다.
반면에 도문면의 물치리는 관동지, 강원도읍지, 양양부읍지 등의 기록은 편호와 인구수에서 조금씩 늘어나고 줄어든 흔적은 볼 수 있으나 행정지역 개편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이후인 1914년 3월 1일부터 행정지역 개편으로 인해 강선면에는 물치리, 도문면(道門面)은 도천면(道川面)으로 합쳐져 도천면(道川面)에는 내물치리라 기록하고 있다.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내물치리는 대포동에 통합되었다.
대포동의 뜻은 큰 포구로서 ‘한개’라 불렀는데 한자로 바꾸면서 대포(大浦)가 되었다. 외옹치는 독재라는 고개 밖에 있다 하여 밧독재라고도 부른다, 내물치는 조선조 때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왔다가 폭우로 머물게 되면서 물에 잠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물치’라 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조선시대 이곳에 거주했던 물재(勿齋) 유회일(兪晦一, 1642~1691)의 아호를 따서 이 고장을 ‘물재’라 부르다가 ‘물치’가 되었다고도 한다. 강현면 물치리는 ‘바깥물치’라 부르고, 대포동의 내물치는 ‘안물치’라고도 한다. 옛이야기를 따른다면 물치(沕淄)로 한자를 쓰든가, ‘물넘이마을’이라고 한글로 써야 옳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현재처럼 내물치(內勿淄)라 쓰고 있다.
1979년 설악산 입구에 도로가 개설되면서 마을을 바닷가에서 고지대인 안가산 주변으로 옮겼다.
내물치 바닷가에는 예전에 바위가 많았다. 그러나 항구와 도로를 만들면서 대부분 바위는 깨트리거나 파묻어서 현재는 거의 없다. 아래 지명에 있는 바위 대부분이 사라졌다.
2023년 현재 65호가 있고, 마을회관이 1개, 호텔이 3개가 있고, 상가가 24개이다. 인구는 280명인데, 남자가 136명이고, 여자가 144명이다. 성황당이 1개 있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농토가 도로로 편입되고, 있는 땅도 시와 도로공사에서 매입하였다. 또 철도부지도 매입했는데, 이 토지를 쓰면 속초시에 매년 이용료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농사를 짓는 주민은 거의 없고 주민 대부분이 어업과 상업과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가래고지바우
둥글바위와 섬바위 사이에 있는 바위, 바다에 사는 오리 종류인 가래고지(가마우지)가 잘 와서 앉는다고 한다. 지역 사람들의 사투리로 가마우지를 가래고지라 한다.
게바위
마당바위와 둥글바위 사이에 있는 바위로 바위 밑에 게가 많다. 선바우 북쪽이다.
군개
마을 남쪽으로 쌍천(雙川) 못 미쳐 있는 시내이다. 쓸데없는 군더더기 개(시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귀신바위
마을 북쪽 대포와의 경계 지대에 있는 바위이다. 예전에 귀신이 나왔었다고 한다.
기차바위
바다에 있던 바위로 길게 뻗어있었다. 아이들이 물놀이하면서 그 위에 올라타서 기차놀이를 하였다.
내물치[안물치]
내물치 마을 전체를 일컫는 지명이다. 안물치라고도 한다.
내물치 바다
내물치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바다의 면적은 약 50ha정도이다. 미역을 화포라고 했는데, 내물치 바다에는 미역이 무척 많았다. 대포에는 미역바위가 있는데 그곳에도 배를 대놓고 화포를 채취했다. 화포는 4월 20일경부터 6월 중순까지 채취한다. 이곳에서 미역은 반년농사라 했다.
둥글바위
게바위와 가래고지바위 사이에 있는 둥글고 큰 바위이다.
든대
배를 백사장에 올려놓았던 곳이다. 예전에는 설악항이 없어서 대포항에 배를 대었는데, 작은 배는 백사장에 든대를 해서 올렸다. 속초시에서는 든대질놀이라는 놀이가 만들어져서 강원도민속경연대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마당바위
귀신바위와 개바위 사이에 있는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이다. 해구(海狗, 물개)가 와서 잠을 잤다고 한다.
본마을
마을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자리이다.
산두구미
대포동에서 내물치 마을로 올 때 지금 호텔 있는 쪽이 산을 돌아오는 곳이라 하여 산두구미라 불렀다.
서낭당[성황당]
안가산 꼭대기에 있다. 물재선생비 옆에 위치한다.
선바위[선바우]
가래고지바위 남쪽에 선돌처럼 우뚝 솟은 바위이다. 사람이 서 있는 모습 같다고 하여 선바위라 하였다.
설악항
내물치 바다에 건설된 항구이다. 설악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고 해서 설악항이라 했다.
설악항등대
설악항에 있는 등대이다. 2011년에 만들었다. 등대 옆에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원하는 구조물이 있다. 해양수산부에서 이달의 등대로 선정한 아름다운 등대이다,
설악항 회센터
설악항에 만들어진 회센터이다. 내물치 주민들이 운영한다.
설악해맞이공원[내물치 설악해맞이공원]
주변에 탁 트인 맑고 깨끗한 동해바다와 조각공원 그리고 소나무 사이로 비춰지는 일출의 조화를 볼 수 있다. 내물치 일출은 이곳에서만 연출할 수 있는 비경(祕境)이다. 이곳에서 매년 해맞이축제가 열린다.
섬바위[큰섬바위]
바위가 섬처럼 이뤄져서 ‘섬바위’ 또는 ‘큰섬바위’라고도 했다. 바위가 아래는 널찍하고 위쪽은 삐쭉했다. 아이들이 바위 위에 올라가서 바닷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던 장소였다. 바위가 커서 어른 5~60명은 앉아 놀 수 있었다. 물이 가슴 높이 정도 되어서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여름철 최고의 놀이터였다. 바위에서 따로 기도를 올리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섶을 따서 구워 먹고, 돼지고기를 가져가서 구워 먹으면서 놀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이 바위를 부수지 말고 그냥 둔 채로 항구를 만들자고 했다. 그러면 항구 위치를 쌍천 쪽으로 옮겨야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섬바위를 부수었다. 이 바위를 놔두었으면 관광객이 엄청나게 몰려올 정도로 예뻤다. 그래서 설악항을 만들면서 부서져 방파제 안에 갇혀서 없어졌다. 다들 안타깝다고 말했다.
큰섬바위 부근에는 먹을 게 천지였다. 놀래미도 잘 물고, 전복도 많고, 특히 방게가 많았다. 방게는 작은 게로 오징어 다리로 구멍에 넣으면 집게로 꽉 집어 올라왔다. 이걸 잡아 튀기면 좋은 요리가 되었다. 판매하면 사람들이 잘 사 먹었다. 게간장을 담으면 사람들이 좋아했다.
섶바위
내물치 바닷가에서 약 150m 지점에 있는 바위이다. 물속에 있었는데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바위에 섶[홍합]이 많이 붙어 있었다. 몇 년씩 있다가 가보면 섶이 어른 손바닥 크기로 자라 있었다. 이 바위는 위험해서 아이들 출입을 통제했다. 그리고 잠수부들이 함부로 따 가는 것도 통제했다. 어촌계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관리는 어촌계에서 했다. 섶바위 위쪽에는 물 위에 있는 바위가 있는데 이는 조짐이바위라 했다.
시공원(詩公園)[경희공원]
옛 철길 위에 시를 자연석에 새겨 세워놓은 공원이다. 경희대 출신 문인들의 작품과 조형물을 만들어 세웠다.
쌍천(雙川)
설악산에서 발원하여 도문동을 거쳐 물치에서 동해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이다. 조선시대에는 도문천이라 했다.
쌍천교(雙川橋)[물치교, 큰다리]
쌍천 하류에 놓여 내물치리와 양양 강현면 물치리(沕淄里)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일명 큰다리라고도 한다.
아래모퉁이
내물치 아래쪽 산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다.
안가산
옛 마을 서쪽에 있는 조그마한 산이다. 현재는 마을 중심에 있는 산이다.
옹구점마을
옹기(甕器)를 팔던 상점이 있었던 마을로 현재 관광안내소 옆 군부대 자리에 있었다. 여기 살던 사람들은 6.25한국전쟁이 났을 때 남쪽으로 대부분 피란을 갔다.
웃마을
본마을 위에 있는 마을이다.
유물재비(兪勿齋碑)
조선 후기에 이 고장에 거주한 유명한 학자 물재(勿齋) 유회일(兪晦一) 선생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서 세운 비석이다.
인어상
해맞이공원 앞 바닷가에 세워진 남녀인어상이다.
조짐이바위
둥글바위 앞(동쪽)에 있던 바위이다. 바닷가에서 약 150m 정도 거리이다. 물속에 바위 세 개가 있고, 물 위에 또 있는 바위가 있었다. 물속에 있는 바위는 섶바위라 했고, 물 위에 떠 있는 바위를 조짐이라 했다. 예전에 마을에서 수영대회를 하든가 아이들이 내기할 때는 조짐이바위까지 수영을 해서 돌아오는 장소로 사용했다.
철길
옛날 동해선 철도가 있던 길이다. 그 흔적이 마을 사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양양에서 원산으로 이어진 철도였다. 6.25한국전쟁 때 인민군과 중공군, 그리고 피난민들이 철로를 이용해서 이동했다.
청능마을
청능(靑陵)은 푸른 소나무가 꽉 차 있고, 산에 능(陵)이 있어서 부른 이름이다.
흙다리
쌍교천에서 약간 서쪽에 놓여졌던 자리이다. 지금은 없어졌다. 나무로 만들어 위에 흙을 덮었으므로 흙다리라고 했다.(구술 제보: 이대근 노인회장, 원종갑 수협장, 용종호 어촌계장, 문태일 슈퍼사장. 속초시사, 한국지명총람 외, 2023.10.2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