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mail 모음
아버님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았습니다.
아직 경황이 없어실 터인데 저희들까지 신경써 주셔서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친구를 먼저 보낸 저희들의 마음도 쉽게 추스려 지지 않네요.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겠지만 저희들에게 주신 말씀 늘 마음속에 새기겠습니다.
아버님
3년간 옆에 율락이가 있었고 지금은 육신은 곁에 없지만 마음은 더욱 아버님 곁에 그리고 저희들 곁에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친구로서 부족함으로 율락이를 먼저 보낸 아쉬운 회한이 많이 남습니다. 고인의 삶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주고 간 메시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율락이 때문에 제대로 건강 돌보실 겨를이 없었을 터인데 아버님 어머님도 이제 건강에 신경 썼으면 합니다. 혹시라도 저희들과 의논하실 일이 있으시면 불러주시면 가겠습니다. 물론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찾아뵈어야 도리인데 바쁜 일상에 그렇지 못한다면 이렇게 메일을 통해서라도 인사드리겠습니다.
더욱 건강하시길 기원드리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3. 6.14.안동에서 김상우 올림
메일을 받고 답신드립니다.
저희들이 비록 친구이긴 하나 3년 동안이나 가슴을 헐어가며 간호하다가 결국 곁에서 자식을 떠나보내신 부모의 심정을 저희들이 어찌 만분의 일이라도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한 자식을 잃었지만 여러 자식을 얻었다는 아버님의 말씀이 귓전에 맴돕니다. 율락이는 아마 좋은 세상에서 생의 마무리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번 의료보험과 관련한 내용을 말씀드릴께요. 지금 현재의 주민등록지에서 두 분이 따로이 의료보험(요즘은 건강보험으로 용어가 바뀌었습니다)을 하게 되면 월6만원 정도의 보험료를 매달 부담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나와 주민등록을 함께 하게되면 피부양자로 등재가 가능해 위 금액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 빨리 서울로 전입신고를 하셔야 되고, 설사 이 달(6월중)중으로 전입신고를 하시더라도 6월분(1개월) 보험료는 지역가입자로 간주되어 별도로 납부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달(피부양자가 상실된 날짜와 같은달)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개월분에 대한 보험료 고지는 공단에서 추후 통보될 것입니다.)
==== 부연하여, 지금 하셔야 될 일은 : 6월 중으로(6월을 경과하면 2월분 지역보험료 부담)
1. 서울로 전입신고
2. 피부양자 취득신고 : 가입자(매형) 또는 가입자의 사업주가 함 혹시 더 궁금하시면 연락주십시요. 018-510-1843. 곽기준 드림. 2003 .6. 17
할아버지,
편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3년에는 우리 모두 하는 일 잘 되었으면 좋겠고 항상 행복하였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건강하였으면 좋겠구요. 2003년은 좋은 추억들, 행복한 추억들만 기억속에 남기기로 열심히 노력하기로 해요. 이번 눈이 온 후에 날씨가 많이 추워졌죠? 전 감기가 또 걸렸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감기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겨울 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일게요. 안녕히 계세요. 2003. 1. 5
존경하는 선생님
그동안 선생님 내외분께서 잘 계셨다고 하니 무엇보다 반갑습니다. 저의 승진과 영전에 대해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그동안 소식을 자주 못 드린 점 널리 양해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평소 제대로 사람 노릇도 변변찮게 하는 우둔하고 못난 제자에게 과분한 내용의 글월을 보내주셔서 몸둘 바 모르겠습니다. 1972년 영지학교에 첫 부임하면서 부임하는 날 아침에서야 선생님댁을 찾은 점은 두고 두고 기본이 안된, 체면없는 철부지 모습을 보였기에 늦게나마 용서해 주시기 바라면서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더구나 영지에 재직하실 적에도 깨달음이 부족하여 제대로 은사님으로서의 예우도 못 해 드린 점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후 스승님으로서의 자상하신 지도편달을 해주신 점에 대해서 정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는 영지국민학교 교사로서 멋모르고 생활한 햇병아리 교사인 저를 일깨워주시고 지도해주신 선생님의 은덕이라 생각합니다.]
남경필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99년도 9.1일자 부산광역시중등교육과 장학사로 발령을 받은 후 지난 03.9.1자로 해운대 신도시에 자리잡은 양운고등학교 교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시교육청 교육지도과장으로 재직하시던 분이 03.3.1자로 본교에 부임, 저를 교육감님에게 요청한 결과로 유추됨)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과분한 직분이 주어져서 직무수행에 부담이 많습니다마는 주위 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역할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경북사대 나온 중학교 3년 선배님이 교무부장으로, 부산사대 나온 저의 동기생 한 사람, 경주고교 11년 후배가 체육부장으로, 저를 포함 경주중고 출신이 4명이나 재직하고 있어서 조금도 외롭지 않게 지내고 있습니다.
부산이란 생소한 곳에 와서 보잘것 없는 자리나마 오늘의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는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교육자로서의 타의 귀감이 되게 생활하신 모습이 저의 밑바탕에 자리 매김하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저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훌륭하신 지도 말씀을 종종 해 주시기 바라고
내외분 항상 건강하시기 빌면서 두서 없는 글월 이만 그치겠습니다.
2003. 10. 31 부산에서 제자 남경필 올림
* 아버님.
그간 무고 하셨는지요? 저희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대지를 뜨겁게 달구었던 햇빛은 간데없고 가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네요. 생각해보면 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번 휴가때 말씀하신 겨울 방학때의 한문 야학을 계획하신 것은 참 좋은 생각입니다. 아버님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런 소 일꺼리라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부디 계획대로 진행하십시오. 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저희들이 돕겠습니다. 저희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재든지 말씀 해 주십시오. 이런것 뿐 만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시면 힘들지 않는 봉사활동 등 아버님께서 할 만 한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집에만 계시지 마십시오. 저는 어제, 오늘 이틀 쉬는 날인데 회사 출근하여 일을하고 있습니다. 조금 피곤하지만 먼 미래의 내가정을 지키기 위함이라 생각하면서 일을하니 많이 힘들지는 않네요. 저희들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잘 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올리겠습니다.
건강하게 지내시길......
2003. 8. 16 창원에서 막내 올림.
어머님, 아버님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저희들은 두 분의 염려와 형제분들의 염려덕분으로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주 글을 올려야 하는데 저의 성의가 부족해서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요즘 식사는 제때 드시는지요. 아버님 어머님 아깝지만 어떡하겠습니까. 저희들도 그분을 생각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가끔씩 나눈답니다. 그럴때마다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고 잔잔한 침묵이 흐른답니다. 이제 편안하게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 믿고 싶네요. 이제 남아있는 저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 봄에 물오른 새싹처럼 무럭무럭 커가는 손자 손녀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지난 일들은 하루 빨리 잊으시고 건강을 되찾어시어 남아 있는 자식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셔야죠.
아버님,
집에만 계시면 적적하고 우울하시니까 외출하시어 바둑도 두시고 친구들도 만나시고 산책도 하시고 그러세요. 매일 매일 기분 전환하시면 건강을 지키시는데는 최고입니다. 저희들도 자식입니다. 효도 할 께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메일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요즘 장마철이라 비가 자주 내리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식사 제때 많이 하십시오.
다음에 또 보내겠습니다..
2003. 7. 2 창원에서 막내 올림.
그간 편안하셨는지요?
저희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요즘 회사 업무에 쫓기다보니 편지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제 장마가 그치고 나면 많이 더워지겠네요. 더위에 몸이 나른해지기 쉬운데 식사라도 많이하십시오. 저희들은 아버님, 어머님의 건강이 염여스러울 뿐입니다. 어제는 기주 작은 아버지 기일 이였습니다. 그래서 7월 20일 일요일날 산소에 갔다 왔습니다. 평일날이라도 어제 갔으야 하는데 요즘 너무 바쁜시기라 짬을 낼수 없네요. 살아 생전 제일 의지했던 형님 이였는데 직접 눈앞에 않보이니까 자꾸만 잊혀져 고인에게 죄송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기일이나 명절때, 그나마 일년에 몇번씩 생각 할 수 있는 날이 있었서 다행스럽네요.큰처남 산소에도 시간이 날때마다 가볼 생각입니다. 그래야 좋은 추억들을 오래오래 간직 할 수 있을것 같네요. 저희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하게 지냈십시오. 여름 휴가때 가겠습니다.
금럼 다음에 또 올리겠습니다.
2003. 7. 25 창원에서 막내 올림
아버님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새해에도 건강하시길 기원 ?D5니다. 아버님 메일을 받고 율락이?FB 통화했습니다. 힘들어하는 것도 분명한 것 =B0같諮?/P> 이런 저런 애기 중에 체력적=C0?저하에 대한 이야기도 있?FA습니다. 저희 집사람이 약사라 의학?FB인 이야기는 율락이와 가끔 =C7爛求? 집에와서 집사람에게 율락?CC가 먹을 수 있는 기본영양 처=B9堧?무엇인지 육식의 필요성은 어떤지 ?EE을 상의 했고... 사람 친구 중에 2년전 위암 =BC梔珦?받은 친구가 있습니다=2E 현재 약국을 하고 있고 그래서 좀 더 지식이 밝은 편=C0隔?그 친구와 상의한 결과 ?F6재 약국에서 판매하는 식품중에 영양이 골고루이?E9서 부작용이 없는 효소제품?BB 추천받아 율락이에게 우편으로 오늘 ?B8낼 예정입니다. 저녁 늦게 율락이와 통화해?AD 제가 일방적으로 판단해서 =BA립슈鳴?했습니다. 거부감은 없는 것 같지만 내=BF育?보고 판단해서 먹어도 ?C9 것 같다고 설명도 했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약사분?CC 추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2E 본인도 기본 체력이 떨어지?ED 있다고는 알고 있었습니다.=/P> 다시 집으로 합친 후 마음 고=BB萱?더 힘들어하지 않나 생?A2도 듭니다.
저도 가정 문제는 가능한 ?D1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자식을 위해 =BE羚꼍척?아버님 어머님의 모=BD읏?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C0니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 헌신=C0岵?희생.... 율락이도 가끔씩 이야기 합?CF다.
2003. 1. 10 김영수 올림
할아버지, 할머니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아버지,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손녀딸 현영이예요.편지 받아봤어요.감사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일년동안 건강하세요.
(*^^*)
1. 세 월
지나고 보니
너무도 빠르게 흘러 갔습니다
매여 놓을 수도 붙잡아 둘 수도 없는 시간들
내 마음대로 넘길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삶의 나날들
내 삶의 남은 시간들을 소중하게 살고 싶습니다
후회 없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살고 싶습니다
2.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어느 날 하루는 여행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가야겠습니다
그 날은 누구를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지지 않아서 좋을 것입니다
하늘도 땅도 달라 보이고
날아갈 듯한 마음에 가슴벅찬 노래를 부르며
살아 있는 표정을 만나고 싶습니다
시골 아낙네의 모습에서
농부의 모습에서
여부의 모습에서
개구쟁이들의 모습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알고 싶습니다
정류장에서 만난 사람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산길에서 웃음으로 길을 뭇고
옆자리의 시선도 만나
오며 가며 잃었던 나를 만나야겠습니다
아침이면 숲길에서 나무들의 이야기를 묻고
구름이 떠가는 이유를 알고
파도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저녁이 오면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밤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돌아올 때는 비밀스런 이야기로
행복한 웃음을 띄우겠습니다
이 두편의 시는 " 용혜원의 시집 " 에서
요즈음 형님이나 저의 생각이 이와 비슷하지나 않나 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저도 이제 와서 외람되지만 전날과는 많이 다른 생각과 후회, 아쉬움 ,외로움,허전함에
둘러 쌓여집니다 , 형님은 정말 교육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셨고, 물론 이보다 더큰 일을 마땅히 했어야 하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것 또한 넓게 보면 대수라 하겠습니까 ? 형님은 평생의 일을 접어두고 나선지 오래지 않아 청천벽력 같은 일로 3 년여를 당신이 할수있는 모두를 다했지만 , 보람도 없이 자식을 먼저 보내는 그 아픔, 어찌 당해 보지 않는 저희가 다 알겠습니까 ?만은, 일편을 헤아려도 그 아픔이 느껴 집니다 이제 마음을 추스려. 신이 정한 운명으로 받아드려 그 안타까움을 달래십시요 저희 내외 그저 애통한 마음뿐으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 무엇 하나 할수없는 무능력에 그저 자신을 탓했습니다
이번에 저희집에 모두 오셔서 한때 나마 무거운 마음 놓으시고 조금은 펴진 형님 내외분
얼굴을 보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었고, 저 또한 그렇게 와 주심에 허전한 마음 구석하나 메워졌습니다 30 여년을 바람쥐 채바퀴 돌듯한 직장생활에서 물러나서 자신을 돌아볼때 이 자리에 선 나 자신 초라한 몰골에 실망이 커집니다 오래도록 동거동락한 사람과도 뜻을 같이하고 , 깊이를 같이 할수 분야도 찾기가 싶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정리해 나가야 할지 걱정도 됩니다 보내주신 명시들 애껴 감상하겠습니다 정성드려 모으신 이 시들에서 형님의 정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형님의 다방면의 해박한 그 깊이에 접근도 못하지만 공부를 다짐합니다 늘 나의 삶의 방향에 지표를 주신 형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 보다도 귀중한 건강을 챙기시기 바림니다
2003. 8. 27. 동서 헌호 올림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군요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전 그간 계속 경대병원에서만 치료를 받고 검사하고 하다가 이번에 서울 삼성병원에가서 검사를 받았답니다. 거기서도 뾰족한수는 없지만 저의 의구심이 풀려 후회는 없답니다. 진료받고 입원하여 검사받고 결과보고 그렇게 하고나니 보름이 휙 지나가 버리는군요 올해는 참 비가 잦죠 한가위가 보름정도 남았지만 햇과일과 햇곡식이 귀하겠군요 유수같은 세월을 생각하면 마음비우고 밝은 마음과 생각으로 즐겁게 살렴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보람된 나날 되시길......
2003. 8. 22 유연화
선생님!
지나고 보면 미숙했었다 싶지만 그 당시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고 결단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살면서 후회없이 살려고 노력하지만 생각처럼 결과가 나오지는 않더라구요 전 길지 않은 삶이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솔직하게 선생님보다 사모님을 상당이 존경하면서 살았답니다. 왠지 궁굼하시죠? 그당시 선생님댁은 학교 뒤였잖아요 점심때면 식사하시러 댁으로 가시기도 하셨고 바쁘실때는 학교로 가져와 드시기도 하셨었죠 제가 2~3번 점심가질러 간것 같아요 그런데 사모님께서는 그냥 놀고 계신적이 없었어요 항상 장화를 신고 일을 하시다
제가 갔을때 금방지은 선생님 밥을 정성스레 담아 주셨지요 반찬은 손수 농사 지으신 야채였습니다. 밥에 강낭콩을 드문드문 섞으셨는데 부드럽지 않은 껍질은 벗기시고 밥에 섞으셨더라구요 그 생각이 요즘도 저의 삶에 많은 보탬이 된답니다. 우리집 식구들은 아침밥 먹지 않고 일터로나 학교로 가는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푸성귀는 손수 길러서 먹고 있죠 사모님을 생각하면 선생님께서는 참 행복하신 분이다. 그리고 율락이와 형제들도 부모님께서 훌륭하시니 다들 잘되어 있을것이다 생각하곤 했습니다. 우리애들은 머리는 없습니다. 저의 바램이라면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만 주었으면 합니다. 선생님 요즘 기온차가 심하군요
감기 조심 하시구요
2003. 6. 9 유연화
교감선생님께
교감선생님, 보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겠지요?
지난 시간 60년도 소중하지만 앞에 있는 30년도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빨리 훌훌 털고 일어서시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3. 6. 24 권원대
선생님!
선생님 시간이 잘 가네요
장마기간이라 하루가 멀다하고 비가 내리네요 고르지 못한 일기에 건강 어떠세요?
요즘 애들이 시험기간이라 하는거 없이 바쁘답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자정이 넘어서 들어오니...... 선생님 제 어린시절이 참 좋았던 시절 같아요 요즘 애들 고생이 말이 아니랍니다.
그렇다고 우리애들만 그렇게 안할수도 없구요 요즘은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와도 변변한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잖아요 전 현재 큰애가 남자애고 고3 인데요 광학과(안경)를 선택 해두고 있답니다. 대구시내에는 4년재 대학에는 없구요 구미와 서울에는 있더라구요 객지로 보내던지 아니면 대구에 전문학교로 보내려고 한답니다. 본인이 가고자하고 앞으로 전망을 봐서도 괜찮을거 같아서 애 의사에 따르려구요 선생님 집 전화번호와 주소가 어떻게 됩니까?
항상 건강 조심하시구요
다음에 또 쓰겠습니다.
2003. 7. 4 유연화
할아버지,
안녕하셨어요? 저, 동우예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저는 그저 그래요.
내일 회장선거에 나가기로 했어요.
할 말은 외어 두고요.
잘 됫으면 좋겠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03. 3. 6 이동우
이 교장선생님 !
무더위도 점점 더해가는 데 마음마져 가눌길 없어 공허한 마음을 무슨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안타깝고, 아깝고 - 형언할 수 없겠지요. 부모도 아닌 자식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마음 어디에다 비기겠습니까! 이 아픔을 자꾸 생각한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지나간 일에 집착마시고 애써 잊도록 노력하셔야지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아픔을 같이 나누고 위로를 해드려야 마땅한 도리이나 여의치 못한 저 자신 한스럽습니다만 이 교장선생님 일이 저 일이고 해서 저의 마음 애통하기 그지 없습니다.
지치기 쉽고 탈진하기 쉬운 이 무더운 여름에 애틋한 마음 잊으시고 사모님을 위로하시면서 건강을 더욱 지켜 나가야 지요.
늘 좋은 일 생각하시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원드립니다.
글월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소식드릴께요. 2003. 6. 24 이병채드림
어아버님, 어머님
편지 잘 받았습니다. 저녁 진지는 많이 드셨는지요? 보내주신 글을 복사해서 그분이 생각 날 때마다 보겠습니다.아버님 어머님의 엉어리진 가슴을 조금이라도 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남아있는 저희들 밖에 없는것 같네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효도를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믿어 주십시오. 노력하겠습니다. 요즘 장마철이라 비가 자주내리네요. 외출하실때 운전 조심하십시오. 그럼 다음에 또 올리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2003. 7. 4 창원에서 막내 올림.(dsilm@otis.co.kr)
제게 영원한 선생님!
멍든 사나이는 좀 그러내요 선생님 저 지금까지 살면서 후회 없는 삶이 되기위해 나름대로 열심이 산다고 살았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중학교는 시내로 가지 못하고 학력인가 인정도 없는 불국사 중학교에 갔었고요 고등학교는 신설이었던 경주여상에갔지만 6개월동안 등록금을 내지 못하여 출석부에 이름도 없이 단니고 3학년 10월에 실습을 나가 그곳에서 2년간 돈을 벌어 대구 영진전문학교 통신과 야간에 입학하여 주간에는 이런저런 일을하면서 동생과 함께 자취하면서 졸업하고 6년간 직장 생활 하면서 공부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경일대학 3학년 야간에 편입하여 경주에서 대구까지 2년간 오가면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답니다. 지금 둘째가 중1인데요 얘가 좀 더 크면 대학원에도 도전해 보고 싶답니다. 이렇게 바삐 살면서 다른 어뉘 선생님 보다도 선생님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답니다. 항상 안주하지 않고 무엇인가 연구하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시는 그 정신이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선생님 우리는 많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그것을 다 얻는다는 것은 무리아니겠습니까
항상 현재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면서 살께요
2003. 6. 23 유연화
안부글
처남이 유명을 달리한지도 벌써 두달이 지났군요.
그동안 지방시합이다 업무다 분주하게 돌아 단니다 보니 늘 마음에는 있지만 아버님께 문안도 제데로 드리지 못하였읍니다. 애들 어미로부터 늘 소식은 듣고는 있읍니다만 제가 무심한 탓에 이제서야 문안 드리게 되었읍니다. 장례식 이후 둘째 처남이 단녀왔다는 소식은 들었읍니다만 묘지가 제되로 조성 되었는지 궁굼하기도 하고 해서 오늘(26일) 대구에 내려가서 내일 묘지에나 가보려 했읍니다만...... 지난 몇해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아이들 대학 간거라든가 좋은일도 있었지만 가슴아프고 마음 무거웠던 일이 더 많았던것 같읍니다. 4년전 부친이 졸지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2년후 형님이 암으로....... 또 금년에는 처남마저..... 아버님 입장에서는 IMF로, 교원 정년단축으로 본의 아닌 퇴직, 그것도 교직의 최고인 교장임용을 눈앞에 두고 명퇴해야 했던일, 청천 벽력 같은 큰처남의 암선고로 인한 마음의 고통.... 그리고 죽음..... 상실감과 허탈감, 아범님으로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아버님을 지켜 보면서 무엇으로도 대신할수 없고 위로 할수 없는 마음만 안타까? 活?뿐입니다
친가 일이나 처가 일이나 모두 제일이기도 합니다. 가족 한사람 한사람 유명을 달리해 곁을 떠날때 아픔과 고통, 허탈감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수 없는,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참고 견뎌야 할 일이라 생각됨니다. 아범님이 큰처남에게 걸었던 기대가 컸던 만큼 더 안타깝고, 가슴아프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로 아깝고 아쉬움이 더 하리라 생각 합니다.
겪어보지 않고는 누가 자식잃은 부모마음을 이해하고 안다고 할 수 있겠읍니까 만은, 제가 바라는것은 처남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갖는것을 나무랄 사람 아무도 없읍니다 그것은 당연지사이고 인지상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범님의 위치를 굳건히 지켜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우리집안의 가장이시고 자식들의 정신적 지주이십니다 아버님이 흔들리시면 자식모두가 걱정되고 불안해짐니다. 아버님은 혼자가 아니십니다 아버님께 딸린 자식이 많이 있음을 늘 마음에 두시고 오래오래 자식들의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 주십시요
모든일에 심사숙고 하시고 지혜롭게 판단 하시고요. 어머님과도 사이좋게 지내시고요 자식들이 있다고하나 어머님 만큼 아버님을 생각하고 챙겨주지 못할 겁니다
자식들이 많다고는 하나 제데로 모시지 못해 서운하신것이 한두가지가 아닌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제가 맞사위 노릇을 제데로 다하지 못한 불찰이 크다는것 잘알고 항상송구 스럽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동안 노여움 푸시고 아버님 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요 앞으로는 아버님. 어머님 잘 모시도록 하겠읍니다.
2003년 7월 26일 큰사위 올림
할아버지,할버니 성재예요
저 손아픈것다나아가요! 그리고 감기는 아직않나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건강하시죠??
건강하세요!!
2003년 2월 25일 성재올
할아버지 할머니..
몇일전에 뵜지만..그동안 잘 계셨죠?? 요즘..학교생활에 바쁘다 보니 자주 연락을 못드리네요.. 다른 학교와는 달리 시간표가 정해져 있고, 수업도 많아서 조금 힘드네요.. 수업 내용도 일반 대학과는 다르게 컴퓨터, 서예, 피아노, 체육, 교육학 개론.. 이런것들이다 보니 연습해야 하는것도 많고 배워야 할것도 많구요.. 다른학교에 간 친구들은 새내기라고 지금쯤 재밌게 놀고 있는데.. 저희 학교 새내기들은 과제에 치여 바쁜생활을 하고 있답니다. 그래도..다들 꼭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온 친구들이기 때문에 모두 열심히 즐겁게 하고 있답니다..^^ 저역시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즐겁구요.. 저희 학교 운동장 주위로 쭉 심어져있는 벚나무에 이제 꽃이 한창 피었어요.. 얼마나 예쁜지..아이들은 따뜻해지는 봄 햇살에 잔디밭에 모여앉아서 얘기를 나누고요.. 벌써 제가 집을 떠나서 대학에 입학한지도 한달이 훌쩍 흘러가 버렸네요.. 한달동안 정말 바쁘게 생할한거 같은데 돌아보면 딱히 해놓은것도 없네요.. 하지만 한달이라는 시간동안 교대 생활에 적응 잘했고, 정말 좋은 동기들과 선배들을 많이 사귀었으니..그것만으로도 3월 한달은 보람차게 보낸거 같아요.. 내일은 오후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라서 동기들과 함께 오랜만에 시내에 놀러가려고 해요.. 이렇게 전 하루하루를 재밌고 바쁘게 보내고 있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제 걱정은 하지 마시구요..두분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 챙겨드세요.. 금방 또 찾아 뵐께요..메일도 보내구요..그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세요^^
제가 두분 많이 사랑하는거 아시죠??^^
2003. 3. 31 김규정
이진걸
할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현지에요. 잘 지내시죠?
아빠와 동우가 가 있으니까 예전에 두 분만 계셔서 조용하던 집안이 활기차있을 것 같아요.
이제 며칠만 지나면 2003년, 새해가 돼요. 할아버지, 이번에 제가 가지는 못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할머니께도 안부 전해 주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2003.12.29 이현지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식사는 제때 챙겨 드시는건가요??
삼촌 하늘나라에 가시구나서 많이 힘드시죠?? 그래도 너무 맘 많이 아파하진 마시구.. 꼭 끼니 챙겨 드세요.. 삼촌 분명히 정말 좋은곳으로 가셨으니까요.. 삼촌 돌아가셨을때 저도 정말 많이 울었어요.. 삼촌은 제게 외삼촌의 의미 이상이셨으니까요.. 저를 정말 예뻐 해 주시고..누구보다 도 제 장래를 걱정해 주시고 생각해 주셨으니까요.. 저 그 사랑 항상 느꼈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 가장 맘이 아픈건...외삼촌 살아계셨을때..그렇게도 많은 얘기들을 나누면서도.. 외삼촌께 직접 존경한다고..사랑한다고 말 못한게 너무 맘에 걸려요.. 삼촌도 그런 제 마음을 알고 계시겠지요?? 어떻게 생각해 보면 교대라는 꿈을 접지 않고 재수를 결정했던것과.... 지금 부산교대라는 이 곳에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삼촌의 권유가 아니었다면 제가 포기했을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전....제가 교사가 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셨던 외삼촌의 맘을 위해서라도 정말 좋은 교사가 될거에요.. 그리고..외삼촌의 장례식에 오셨던 삼촌의 친구분들과..수많은 지인들을 보면서.. 삼촌이 얼마나 베풀고 사셨는지..남을 위해 배려하며 사셨는지 알겠더라구요.. 저도 삼촌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많은 사람들을 사귀며 살려구요.. 삼촌이 짧은 인생을 사시느라 이루지 못하셨던것들, 이루고 싶으셨던것들을....저는 많이 부족해서 그 100분의 일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지만..그래도 삼촌이 저에게 해주셨던 말씀처럼 살아가면서 이루어 나가려구요.. "규정아..돈은 그리 중요한게 아니야..니가 조금 덜 갖고, 덜 먹어도..너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베풀고 그사람들을 위해주며 살아라..사람에게는 인간관계가 정말 소중한거란다" 하고 말씀하셨던거 꼭 기억하며 살아가려구요.. 할아버지..제가 할아버지께 삼촌의 빈자리를 채워드릴수 없다는거 알아요..하지만요..삼촌의 짧은 인생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제가 보여드릴게요.. 삼촌이 저라는 한 사람에게는 평생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다는것 만으로도 삼촌은 가슴속에 살아계시는거니까요.. 앞으로 제가 자라가는 모습을..발전해 가는 모습을 지켜 봐 주세요.. 바르게 살아가겠습니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늘 건강하세요..
2003. 6. 6 김규정
지금..대전에 계시다구요..
삼촌이 많이 안좋으신건지 나름대로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딸딸이..귀여운 애칭이네요^^
처음 기숙사에 들어왔을땐..아는사람도 없고..정말 막막했어요..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고..
근데 막상 입학하고..동기들을 사귀고, 선배들을 사귀고 하니까.. 즐겁고..바쁘네요.. 아직 수업을 몇시간 들어보진 못했지만.. 수업내용도 그렇고..사람들도 그렇고..분위기도 그렇고.. 정말 잘온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동기들보다 한살 더 많다는게 장점으로 작용하고있구요^^ 동기들이 때론 언니,누나처럼..때론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더라구요..요즘..선배들과 얼굴익힌다는 명목하에 술자리도 좀 많구..모임도 많구..
바쁘니까..외롭다는 생각을 할 시간이 없어서 좋은것 같아요.. 고3때랑 재수때 공부할땐 대학생이되길 간절히 바랬었는데.. 대학생이..그것도 교대생이 되고나니까.. 이젠 좋은 교사가 되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요.. 의무감도 생기고.. 할아버지..할아버지로서..인생의 선배님으로서..교사의 선배님으로서.. 저의 학교생활과 21살의 생활들을 지켜봐 주세요..
늘 건강하시구요..종종 연락 드릴게요.. 할아버지 할머니..두 분다 정말 사랑해요..
2003. 3. 8 김규정
자주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
그러지 못했습니다. 환절기라 근간에 아침기온이 찬데 건강하십니까? 지난 추석직후에 애엄마와 함께 인사드리러 갔었더니 집을 비우고 안계시더군요. 그러고는 금새 전화를 드리지 못했네요. 자주 찾아 뵙거나 전화드리는 것이 두 분의 심중을 도로 심란하게 해 드릴까 염려되어 짧은 소견에 삼가하곤 합니다. 메일을 받고는 친구들 모두 서운하고, 또 한편으로는 숙연했습니다. 추석전에 경주에 1주일간 출장차 가있던 차에 율락이에게 한 번다녀왔습니다. 말없이 잘 있대요. 그러고 가끔씩 들러주면 좋을듯도 하고요. 어느새 찬바람에게서 겨울내음새가 나네요. 두 분 다 건강 조심하십시요. 먼저 잠든 친구도 부모님이 건강하게 계시기를 고대하고 있을 겁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마음 넉넉하게 가지시고요.
2003. 10. 15 곽기준 드림.
아버님, 어머님 건강은 어떻하신지요
저희 가족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성지회 친구들이 오늘 대구에서 몇 명 만날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협의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최근에는 제 주위에서 큰일 많이어납니다(얼마전 둘째 매형이 돌아 가셨습니다, 율락이도, 안양사시는 사촌매형도...)거의2달간격으로 ... 저는 방학이지만 학교재단에서 짓고 있는 건물의감독을 맡아 현장에 있다보니하루하루가 바쁘게 지나는 것 같습니다. 현지와 동우가 커가는 모습 가끔식이나마 가족 같은 눈으로 바라보게습니다. 동우는 하루가 다르게 키가 자라고, 현지는 얼마나 소견이 있는지.... 집도 잘 얻은 것 같았습니다.(주위가 조용하고, 교통도 좋고, 현지 동우도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현지 엄마도 새로운 생활과 환경에 적응할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구요...... 아버님, 어머님도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2003.8. 15 김영수 올림
어릴적엔
한가위를 비롯한 명절이 소 걸음 처럼 더디게 다가 왔었지요 모두가 궁핍한 생활이라, 검정 운동화라도 얻어신은 아이들은 자랑스레 추석이 되기 전날 신고 뽑내기도 하고, 일년에 서너번 제사나 어른 생일날 ,명절에 맛보는 고깃국, 여러해 입도록 헐렁한 교복 등 명절이 아니면 맛볼수 없는 것들이 있기에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제는 세월은 흘러가서 그러한 동심을 모두 앗아가버린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풍족한 생활로 명절을 기다리는 즐거움 하나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 정년퇴임을 몇날 앞두고나 자신도 하나 둘 잃어리듯이 원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멀어져 가는 것들을 실감합니다 누군가 인생은 결국은 혼자라는 말이 전에는 귓전으로 흘렸지만 이제는 귀속으로 찿아듬니다 그냥 분주하다는 핑게로 무심히 소비해온 지나온 많은 날들, 되돌리 수 없이 단 한번 나에게 허용된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자신의 나약함에 자책만 합니다
그러나 조그만 용기라도 내어서, 자신만을 위한 일들을 찾아보려 합니다 욕심을 담지 않는 것이라면,......가까운 친인척들의 무거운 병마 소식이 자주 접함에 안타까움이 큽니 다 큰처남 정말 가벼운 증상이기를 기원하고, 장모님 노환 또한 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희 큰댁에도 나와 동갑인 장손이 무거운 병마로 회복이 극히 힘든 경에 있습니다 가장 존귀한 건강, 평소에 관리해야 지켜지겠지요 ! 형님 내외분을 비롯한 온가족 건강하시고 거움과 보람된 한가위를 맞이하십시오 2003. 9. 8 하동에서 동서 드림
이율락 박사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뜻밖의 메일을 받고 놀라기도 하고 송구스러운 마음 뿐이었습니다.바로 답장을 올렸어야 했는데 학교일로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너무나도 큰일을 당하신 어른께 제가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하나 한동안 고민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생령은 사시가 순환하듯 또 눈을 감았다 떳다 하듯이 생사도 계속 순환한다고 배웠습니다. 이율락 박사도 어디 먼 곳으로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의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안겠지만 인연따라 다시 아버님 그리고 가족의 곁으로 다시 오리라 믿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올린들 아버님께는 공허한 소리로 들리겠습니다만 이럴때 일수록 진리를 깨치신 성현님들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의 안정을 얻으시고 건강을 지키시는 것이 우리 이율락 박사에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율락 박사는 저와 두산에서 같이 근무하면서 제가 가장 부러워하고 인정하는 인재이었습니다. 남들이 시기할 정도로 총명하였으며 짧은 생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이 세상을 유익하게 만드는데 많은 공적을 남겼으니 짧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값진 삶이었다고 믿습니다. 아버님! 건강하시고 마음의 안정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저도 이율락박사가 편히 쉬다가 다시 이 세상에 와서 못다한 큰 일 이루기를 기도 올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03. 10. 21육 철 올림
아버님께
아버님,어머님 건강하신지요?
이율락 교수 생각하면 좀더 자주 연락드리고 시간내어 찾아 뵙고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다 보니 항상 죄송 스럽습니다. 세상이 옛날 같지 않아 사오정(45세 정년) 시대이다 보니 회사 다니는 저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사람 노릇을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육철교수 E-Mail 은 dstyook@daum.net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부디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아마도 고 이율락교수가 제일 바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03. 10. 18 < 남 성우 올림>
존경하는 선생님
그동안 선생님 내외분께서 잘 계셨다고 하니 무엇보다 반갑습니다.저의 승진과 영전에 대해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덧붙여 그동안 소식을 자주 못 드린 점 널리 양해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평소 제대로 사람 노릇도 변변찮게 하는 우둔하고 못난 제자에게 과분한 내용의 글월을 보내주셔서 몸둘 바 모르겠습니다. 1972년 영지학교에 첫 부임하면서 부임하는 날 아침에서야 선생님댁을 찾은 점은 두고 두고 기본이 안된, 체면없는 철부지 모습을 보였기에 늦게나마 용서해 주시기 바라면서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더구나 영지에 재직하실 적에도 깨달음이 부족하여 제대로 은사님으로서의 예우도 못 해 드린 점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후 스승님으로서의 자상하신 지도편달을 해주신 점에 대해서
정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는 영지국민학교 교사로서 멋모르고 생활한 햇병아리 교사인 저를 일깨워주시고 지도해주신 선생님의 은덕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저는 99년도 9.1일자 부산광역시중등교육과 장학사로 발령을 받은 후 지난 03.9.1자로 해운대 신도시에 자리잡은 양운고등학교 교감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시교육청 교육지도과장으로 재직하시던 분이 03.3.1자로 본교에 부임, 저를 교육감님에게 요청한 결과로 유추됨) 부족함이 많은 저에게 과분한 직분이 주어져서 직무수행에 부담이 많습니다마는 주위 분들의 성원에 보답하고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되는 역할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경북사대 나온 중학교 3년 선배님이 교무부장으로, 부산사대 나온 저의 동기생 한 사람, 경주고교 11년 후배가 체육부장으로, 저를 포함 경주중고 출신이 4명이나 재직하고 있어서 조금도 외롭지 않게 지내고 있습니다.
부산이란 생소한 곳에 와서 보잘것 없는 자리나마 오늘의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는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교육자로서의 타의 귀감이 되게 생활하신 모습이 저의 밑바탕에 자리 매김하고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저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훌륭하신 지도 말씀을 종종 해 주시기 바라고 내외분 항상 건강하시기 빌면서 두서 없는 글월 이만 그치겠습니다. 부산에서 제자 남경필 올림
2003. 10. 31 부산에서 남경필
형님께
복 많이 지으세요 날이 갈수록 빨라지는 세월 또 하나 이름을 바꾸어 찾아 왔습니다 예년과는 달리 년말년시가 이렇게 서럽도록 조용한 것에도 익숙치가 않습니다 시골 마을길에 자리한 크나큰 느티나무 같은 형님의 그늘에 마음의 평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큰 인연에 감사를 드립니다 형님! 금년에는 그동안 느슨했던 두분 건강도 챙기시고, 지금까지 소홀했던 당신의 내면을 빛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시고,... 마음이 좁아져 가는 자신이 초라하고, 미워지는 것들을 키우지는 않을려고 애써 용기를 내보지만 쉽지만은 않네요 ! 조금 떨어져 있는 핑게로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 욕심 하나 둘 털어지는날을 기다립니다 형님,처형과 슬하의 온가족, 건강과 뜻하는 일 모두 성취하시기를 합장기원합니다
2004. 1. 2 경기도 용인 구성에서 동서 드림
< 새해 첫날 연하카드 송부했더니 형님 PC 용량 초과로 반송되었습니다 : 정리 삭제나 멜용량을 키우시죠 ? 조금 작은 멜카드로 바꾸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게
선생님 큰 슬픔 이기시고 내외분께서 잘 계신다고 하시니 무슨 말씀으로 위로를 들여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인명은 재천이란 말이 있듯이 어느누구도 사람의 운명은 아무도 맘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고인이 된 율락군은 초등학교 재학시나 신라중학교 재학시를 회고컨데 그 당시 언제 어디서나 그릇이 여느 학생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율락군은 짧은 생애에도 우리고향 영지를 빛내었고 영지의 자랑이었으며, 이 시대의 몇 안 되는 큰 재목으로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겼고, 나라의 동량으로서 크게 기여할 사람이었기에 더더욱 아쉽고도 서운한 정이 저의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평소 제가 본 선생님께서는 남다른 부모의 정을 4남매에게 쏟으셨으며,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글월로 미루어 부모 역할의 본을 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보내주신 비문과 추도사 3편을 읽으려니 맨 마음으론 읽어내려 갈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부디 선생님 내외분 만수무강하셔서 남은 3남매와 저희 못난 제자 살아가는 모습 지켜봐 주시면서 많은 격려를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003. 11. 6. 부산에서 제자 남경필 올림
선생님!
세배 드립니다.
올해는 만수무강 하시고 가네 두루 평안 하시길 빌겠습니다. 저도 갑신년 새해 새로운 각오로 항상 밝게 건강하게 살께요
2004. 1. 24. 유연화 올림
명절이 지나가도
번뜩이지 않은 저희들이 괘씸하셨죠? 어느새 겨울도 다 지나가고 꽃망울이 더러 보이네요. 힘드셨던 지난 기억을 지울수야 없지만 이제 건강에도 신경쓰시고, 두 분이 자주자주 산책도 다니시고 하십시요. 메일을 받고나니 송구스러운 마음이 한이 없습니다. 자식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너무나 절절하고, 저희들 또한 친구를 그리는 마음이 남 못지 않은데... 가끔씩 우리끼리 소주마시고, 먼저 간 친구녀석에게 투정도 하고 그럽니다. 그러나 저희들도 빨리 잊겠습니다. 아니 그냥 잊을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어리석은 맘 때문에 아버님에게 선뜻 다가서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설 연휴끝자락에 친구들 몇 명(저는 빼고)이 같이 다녀왔습니다. 메일 넣기전에 전화를 드리니 받지 않으시네요. 늘 건강하십시요. 2004. 3. 12 곽 기 준 드림.
아버님, 어머님 건강하신지요.
자주 연락드리고 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이율락 교수 떠난지가 벌써 1주기 인지 생각을 못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한테는 참 괴로운 1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쉽지는 아닌 일이지만, 마음 편하게 생각하셔야 건강하실수 있다고 보이네요.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정국훈 박사 E-Mail주소를 확인하였습니다.
" dstgukho@doosan.com " 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2004. 6. 9 <남성우 올림>
삼가 죄송한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고 이율락 교수님은 항상 우리 학과의 희망이었습니다. 우리대학이 크게 발전하기하기위하여 한국과학기술원 원장을 지내신 천성순 박사를 우리대학 총장으로 초빙하는 일에 제가 앞장선 인연으로 총장님을 모시고 본부에서 주요 행정 보직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총장님은 대학에서 제일 중요한것은 훌륭한 교수를 모시는 일이라고 강조하시고 교수채용 문제를 제일 신경을 쓰고 계셨습니다. 그때 이율락 교수님을 우리학과의 교수로 모시게 되고 침체된 학과는 활성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교육이 강화되고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도 고조 되어가고, 대외적으로 우리학과가 우리나라에서 서서히 인정 받게 되어 화학공학의 올림픽인 한국 화학공학회 학술대회도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교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그보다도 그는 항상 교육자적 철학과 과학자적 생활태도는 동료교수들을 압도하였습니다. 이율락 교수를 만날 수 있는 학교는 항상 즐거운 직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교수님은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저희들은 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이교수님이 계시면 우리직장도 훨씬 발전하고 활기찬 생활이 이루어 지고 있을텐데 저희들이 부족하니 항상 이교수님께 죄송한 마음입니다. 이교수님 묘소에서 부모님의 이교수님에 대한 사랑이 그토록 애절하신것을 보고, 이율락 교수님과 함께 즐겁게 생활해야할 저희들이 이교수님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고 묘소를 찾는 마음은 부모님께 죄송하고 발길을 무겁게 했습니다.한편으로는 현지와 동호가 바르고 훌륭하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든든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이교수님을 잊지않겠습니다 . 그분의 교육자와 과학자로서의 훌륭한 인간상을 더욱더 기억하면서 살아가겠습니다. 어떤말로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산에서 하신 말씀처럼 항상 이율락 교수님을 옆에 모시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십시오.
2004. 6. 7. 한밭대학교 화학공학과 이원묵 올림
안녕하세요?
이렇게 지면으로라도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그리고 별로 한 일도 없는 저에게 이렇게 연락으로 주셔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고 이율락 박사님과는 평소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고 저에게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었습니다. 저에게 주신 많은 조언과 관심은 제가 해 드린 것보다 천배/ 만배의 값진 것 들이었습니다. 생전에 조금더 연락도 자주하고 친구도 되어 드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당시의 일은 마침 조금이나마 제가 할 수 있었던 조그만 일이었습니다. 얼마전에 남성우박사님께서 연락을 주시기에 연락처를 드리긴 하였었으나.... 저에게까지 신경을 쓰시게 하여 죄송스럽습니다. 평소 그냥 지나쳐 가는 많은 것들이 나중에 보면 너무 소중하고 후회스런 것들이 많습니다. 저도 살아있는 시간 시간을 소중히 쓸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건강에 더욱 조심하시고 가내 평안하시길 빕니다.
2004. 6.14 정국훈 올림....
한해를 보냄니다
"그대 정들었으리
지는 해 바라보며
반짝이는 잔 물결이 한없이 밀려와
그대 앞에 또 강건너 물가에
깊이 깊이 잦아지니
그대 그대 모르게
물 깊은 곳에 정들었으리
풀꽃이 피고 어느새 또 지고
풀씨도 지고
그위에 서리 하얗게 내린 풀잎에 마음기대며
그대 언제나 여기까지와 섰으니
그 만큼와서 해는 지고
물 앞에 목말라 물그리며 서러웠고,기뻣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깊이 그리움 심었으며
기다리는 이 없어도 물가에서 돌아오는 저녁길
그대 이길 돌맹이 풀잎 하나에도
눈익어 정 들었으니
더 키워 나가야 할 사랑 그리며
하나둘 불빛 살아나는 동네
멀리서 그윽히 바라보는
그대 야윈등
어너덧 아름다운 사랑 짊어 졌으리"
하동에 발을 내린지도 4 년여가 됩니다 갈수록 빨라지는 한해를 보내면서 시인 김용택섬진강을 적어 보았습니다 한해를 보낸다는 것에 일말의 두려움?도 찾아듭니다
형님 내외분 걱정 하나둘 가는해에 실려보내시고 새해에는 건강과! 보람의 해가 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선생님 어제는 주일이라 좀 바빠서요 ~오늘은 한주의 첫날이라 상쾌한 마음으로 시작하니~ 선생님 말씀 말씀이 귓전을 맴돌아 이시간 카페를 찾았습니다~^^ 선생님 즐거운 하루였습니까? 선생님 뵙고싶어 저의 눈물이 비가되어 내리더니 ~^^선생님 쪽지보고나니 눈물이 그치고 말았습니다 ~^^항상 좋은 말씀 먹고사는 이 옛소녀는 동심으로 돌아가 거듭난삶을 살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항상 건강 잃지마시고 행복한 나날 되십시요 설정순
첫댓글 선생님 이 토함산에는 사람의 발목을잡는 고목이 듬직하니있어요! 이리도 세심하시게 마련해 두셨는지요!! 지난날의 여러 메일을 볼수있어 넘 아름답고 회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