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청 http://www.chuncheon.go.kr/
1995년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춘천군과 합쳐 통합시를 이루었다. 강원도 도청소재지로, 강원도의 행정·경제·교육·문화의 중심지이며 교통의 요지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호반도시이다. 신북읍·동면·동산면·신동면·동내면·남면·남산면·서면·사북면·북산면·옥천동·요선동·중앙로1가동·중앙로2가동·중앙로3가동·봉의동·교동·조양동·운교동·약사동·죽림동·소양로1가동·소양로2가동·소양로3가동·소양로4가동·낙원동·근화동·중도동·후평동·요자동·석사동·퇴계동·온의동·삼천동·칠전동·송암동·우두동·사농동·신동 등 1개읍 9개면 29개동이 있다. 시청소재지는 옥천동이다. 면적 1,116.58㎢, 인구 254,366(2003), 인구밀도 227.9명/㎢(2003).
삼국시대에는 먼저 고구려의 영역에 들었다가 뒤에 신라의 세력권에 들었다. 신라는 637년(선덕여왕 6)에 우수주(牛首州) 또는 우두주(牛頭州)를 두고 군주(軍主)를 파견했다. 통일신라시대인 673년(문무왕 13)에 수약주(首若州) 또는 오근내(烏斤乃)·수차약(首次若)으로 개칭했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삭주(朔州)로 바꾸었다가 뒤에 다시 광해주(光海州)로 고쳤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춘주(春州)로 개칭되었으며, 995년(성종 14)에는 단련사(團練使)가 설치되고 안변부(安邊府)에 예속되었다. 1018년에 춘주군이 되어 가평군(嘉平郡) 등 2개군을 속군으로, 기린현(基麟縣) 등 9개현을 속현으로 관할했다. 안변부로 통하는 길이 험난하다 하여 1203년(신종 6)에 안양도호부(安陽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춘주군으로 바뀌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에 의해 1413년(태종 13)에 춘천군으로 개칭되었다가 1415년(태종 15)에 춘천도호부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춘천의 별호는 수춘(壽春)·봉산(鳳山)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춘천부 춘천군이 되었다. 1896년에는 13도제(道制) 실시로 강원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원주에 있던 강원도 관찰부가 춘천으로 이전되어 이후 강원도의 행정중심지가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20개면이 12개면으로 통합되었다. 이때 부내면·동내면이 통합된 부내면이 1917년에 춘천면으로 개칭되고, 1931년에 춘천면이 읍으로 승격했으며, 1946년에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었다가 1949년에 시로 승격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춘천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해왔던 춘천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도농통합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춘천시를 이루었다.
소규모 산간곡저평야를 제외하면 평야가 거의 없다. 그러나 중심시가지인 춘천분지에는 후평천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후평동·신동·우두동 일대에 충적평야가 발달했다. 춘천분지내의 낮은 지역은 화강암 지반이 침식을 받아 형성된 것이며, 마적산(馬蹟山:605m)·대룡산·금병산·수리봉·삼악산(三岳山:645m)등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지들은 화강편마암의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응봉(應峰:759m)과 금병산에서 발원한 공지천이 북서쪽으로 흘러 의암호에 유입하며, 대룡산에서 발원한 후평천도 북서류하여 소양강에 흘러든다.
내륙산간분지 지역으로서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나타낸다. 특히 분지라는 지형적 조건과 호수가 많아 안개일수가 많은 호반형 도시기후가 나타난다. 연평균기온은 10.6℃ 내외이며, 1월평균기온은 -5.2℃ 내외이고, 8월평균기온은 24.4℃ 내외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296.4㎜ 정도로 한강 중상류지역의 다우지에 속한다. 탱자나무의 북한계이다.
1995년 통합 전 춘천군은 도내에서 인구가 희박한 편에 속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인구증가 추세가 계속되어왔으나, 1966년 9만 1,655명으로 최고 인구수를 보인 이후 1970년 8만 7,149명, 1980년 5만 5,490명, 1990년 4만 3,034명으로 1970~80년에 36.3%, 1980~90년에 22.4%의 인구감소율을 나타냈다. 가구당 인구수도 지난 1965년에 5.7명에서 1991년에는 3.8명으로 감소했다. 한편 춘천시의 인구는 1949년 시로 승격된 이후 현재까지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65년에 인구 10만 명을 넘어선 후 매년 4% 정도의 인구성장률을 기록했는데, 1970~90년의 인구변화를 살펴보면 1970년에 12만 2,672명, 1980년 15만 5,247명, 1990년 17만 4,224명, 통합시 이후 1996년에는 25만 2,393명으로 1970~80년에 26.6%, 1980~90년에 12.2%, 1990~96년에 44.8%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냈다.
가구수의 경우 1970년 2만 4,114가구, 1980년 3만 3,345가구, 1990년 4만 6,540가구, 1996년 7만 781가구로 1970~80년에 38.3%, 1980~90년에 39.6%, 1990~96년에 52.1%가 각각 증가했고, 가구당 인구수의 경우는 1970년 5.6명, 1980년 4.6명, 1990년 3.7명, 1996년 3.3명으로 점차 핵가족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96년 현재 행정동별 인구를 살펴보면 읍·면지역에 시 전체인구의 17.3%(37명/㎢)가 거주하며, 통합시 이전 춘천시였던 동지역에 82.7%(3,609명/㎢)가 거주하고 있다. 10개 읍·면지역에는 모두 1만 명 이하의 인구가 분포할 뿐이며, 중심시가지에 있는 후평동(5만 9,432명)·효자동(3만 584명)·퇴계동(2만 2,915명)·석사동(1만 3,920명) 등에 인구가 많다. 인구가 적은 지역은 북산면(987명)과 칠송동(454명)이다. 최근에 후평동의 인구가 가장 많이 증가한 것은 1969년 준공된 춘천공업단지의 활성화로 인한 인구증가와 교동·효자동의 일부지역이 편입되고 신개발지 지정으로 인한 주택건설 등에 기인한다. 또한 춘천역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으로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이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됨에 따라 이에 따른 생활 편익시설이 함께 입지했다. 그 결과 온의동·퇴계동·석사동의 인구증가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편 인구감소지역으로는 조운동·약사동·소락동 등의 기존 도심지와 신동·삼천동·사농동 등의 시역 외곽 농업지역을 들 수 있다.
시 전체로 볼 때 남녀성비는 99:100으로 거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인구구조상 젊은 남성인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1996년의 경우 10~29세 인구가 전체인구의 36%, 그중에서도 15~24세의 인구가 28%를 나타내고 있어 춘천시가 수행하는 교육기능의 중요성을 암시해준다.
중심시가지는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시장취락으로 발달했으며, 6·25전쟁 때는 전화를 크게 입기도 했다. 그후 신도시계획에 의해 새롭게 조성되어 노폭이 넓은 방사상 도로 및 정연한 건물배치 등 역사가 깊은 다른 도시에 비해 신흥도시 같은 경관을 보인다. 춘천시역 밖은 모두 개발제한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시가지 팽창을 제도적으로 억제하여 수도권의 상수원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설정된 것으로, 춘천시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와 연립주택의 비중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 1985년에 24.9%에서 1990년 34.4%로 높아졌다. 이들 아파트 가운데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콘도미니엄용으로 구입하거나, 이곳으로 유학온 대학생들의 일시적인 거주지로 많이 이용된다.
산업별 구조를 살펴보면 제조업 부문이 매우 취약한 3차 산업 중심의 도시이다. 주요 지목별 토지이용을 살펴보면, 임야가 76.4%를 차지해 가장 많고, 하천은 3.6%를 차지하며, 그밖에 농경지 10%, 대지 1.2%, 도로·학교용지 같은 공공용지 4.9%, 기타용지가 3.9%를 차지한다. 전체 시역에서 하천이 차지하는 비중을 통해서도 호반도시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총경지면적 112.92㎢ 가운데 논이 42.25㎢, 밭이 75.67㎢로 밭이 논의 2배 정도되며 주로 충적평야가 발달한 우두동·신동 등지와 신북읍·서면·사북면·남산면의 소규모 산간곡저평야에서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농가인구는 2만 4,676명으로 전체인구의 10.6%를 차지한다(1995). 주요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콩·옥수수·배추·무·오이·토마토 등의 소채류와 사과·배·복숭아 등의 과일을 생산해 시내에 출하한다. 특용작물로는 참깨·들깨·잎담배 등이 생산된다. 개·사슴·면양·말 등 가축사육도 이루어진다. 임산물로는 밤·잣·대추·표고버섯이 생산된다.
1995년 현재 156개 업체에 4,226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다. 전자·섬유·기계금속·석유화학·식품 공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석사동·퇴계동·근화동에 소규모의 공장들이 입지해 있다. 이밖에 남산면에는 창촌농공단지가, 서면에 당림농공단지가 1992년말 조성되었다. 지역내 72개 광구 가운데 1995년 현재 11개소만이 가행되고 있으며, 규석이 생산된다.
읍·면지역의 5일 정기시장은 교통의 발달로 거의 사라지고, 중심시가지의 상권에 의존하고 있다.
춘천시는 강원도의 행정·교육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도내 각 방면으로 이어지는 교통이 발달되어 있어 교통의 요충지를 이룬다. 경춘선과 경춘국도로 알려진 서울-인제를 잇는 국도를 통해 서울과의 통행이 원활하다. 그밖에 화천-원주, 철원-홍천을 잇는 국도가 지나고, 중앙고속도로가 건설중에 있어 교통이 더욱 편리해질 것으로 보인다. 소양호·춘천호·의암호 등 3개의 인공호수가 생기면서 내륙수운이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소양강 댐에서 양구를 거쳐 인제까지 이르는 소양강 수운은 청평사와 동면의 품안리, 북산면의 여러 내륙지역을 연결했다. 도로총길이 526.2km, 도로포장률 83%이다(1995).유교문화재로는 교동에 소재한 춘천향교(春川鄕校: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8호)가 있고, 산성으로는 봉의동 봉의산에 남아 있는 봉의산성(鳳儀山城:강원도 기념물 제26호)이 있다. 조선 인조 때 세워진 관아건물 문소각(聞韶閣)의 내삼문인 위봉문(威鳳門: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호)과 문루인 조양루(朝陽樓: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호)가 있는데, 현재 위봉문은 봉의동 강원도청 앞에, 조양루는 우두산 기슭에 이전되어 있다. 그밖에 서면 안보리에 있는 청풍부원군상여(淸風府院君喪輿:중요민속자료 제120호)를 비롯해 김청풍부원군묘역(강원도 기념물 제20호), 서면 방동리에 신장절공묘역(申壯節公墓域:강원도 기념물 제25호), 동면 만천리에 백로·왜가리 번식지(강원도 기념물 제44호) 등이 있다.
3개의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서면의
삼악산 (강원도 기념물 제16호)은 노송과 잡목이 암벽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등선폭포와 상원사·흥국사 등 유명사찰이 있어 연중 등산객이 많다. 그밖에도 청평사와 구곡폭포를 비롯하여 강촌유원지·추곡약수·성산약수 등 이름난 명승지가 많다. 그러나 유흥을 목적으로 한 관광인파가 늘어나면서 교통혼잡을 비롯해 환경오염 등이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과 특급 호텔 등이 많이 들어섬에 따라 국제회의나 각종 학술 세미나가 자주 열려 춘천을 찾는 사람들의 방문목적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연간 관광객수 약 232만 명, 관광수입 261억 2,900만 원이다(1995).
강원도의 행정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교육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교육문화도시이다. 전체인구 중 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38.7%이며, 이중 대학생이 35.8%이다. 전통 교육기관으로 문암서원·도포서원·구봉서원과 춘천향교가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 1896년에 최초로 설립된 강원감령소학교는 1906년 춘천공립소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45년 8·15해방 이후 지금의 춘천초등학교가 되었다. 199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81개소, 초등학교 47개교, 중학교 19개교, 고등학교 12개교가 있다. 대학교육기관으로는 한림전문대학·춘천교육대학교·강원대학교·한림대학교가 있다. 한림전문대학은 춘천간호전문대학이 개편된 것이며, 한림대학교는 의과대학과 부설병원을 가지고 있어 지역사회에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립 강원대학교는 12개 단과대학과 4개 대학원을 갖춘 도내 최대의 대학으로, 해방 이후 강원도 고등교육의 산실이 되어왔다. 그밖에 특수학교로 신북읍 신천리의 지체부자유자 및 정박아를 대상으로 하는 동원학교, 효자동에 계성농아학교, 우두동에 명진맹아학교 등이 있다. 문화시설로는 춘천문화원, 시립도서관·공공도서관 등 도서관 2개소, 공연장 9개소, 방송국 2개소, 어린이회관, 시립문화관, 종합문화예술회관, 종합경기장, 올림픽 기념 국민생활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