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그 무게가 존재한다. 공기 중에 떠다니지 않고 정착할 수 있는 건 공기가 날아가버리지 않게 잡아주는 (공)기압 때문이다.
공기의 기분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공기에겐 기분이 없을까? 기압이 높으면 공기의 기분이 좋아진다고 믿는다. 반대로 기분이 안 좋은 공기는 밑으로 밑으로 가라앉는다.
몇 년 전에 사막을 걸었다. 나는 사막이 꽤 낭만적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으로 본 사막들은 대체로 정적인 곳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사진 한 컷도 제대로 못 찍을 정도로 바람이 정신없이 불어닥쳤다.
바람이 화가 난 건지, 공기가 잔뜩 긴장한 건지 바람과 공기는 서로 단단히 틀어진 부부사이처럼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바람에 감당하기 힘든 모래는 온통 떠밀려 이리저리 철퍼덕거리며 어딘가에 안착하려 애쓰고 있었다. 꼭 어떤 날의 우리같았다.
바람이 불어온다는 건 결국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혹은 저기압에서 고기압으로의 변화다. 둘은 내 얼굴에 화가난 듯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바람과 모래는 대기압을 핑계삼아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보니 어느새 제법 큰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막상 오아시스 앞에 도착하니 바람도 사라지고 모래는 차분히 자기 방을 찾아들어갔다. 사막에서는 오아시스가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많이 분다. 그러나 정작 오아시스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로워보이기까지하다.
사막에서 밤낮의 온도차가 심한 건 사랑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온도를 착각하고, 서로의 기압을 함부로 단정짓는다. 밤은 낮의 온도를 알 리 만무하고, 낮은 밤의 기압을 알 수 없다. 사막에서 사랑타령이라니 우습지만 지독한 오해와 어떤 이해는 사랑때문이다. 우리의 사막은 서로 오해중이었다.
사막의 밤은 칼같은 추위와 맞서며, 낮은 작은 모래 알갱이들의 공격이다. 사막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곳은 오아시스로 변하고 기압은 고기압으로 화창한 날이 이어진다.
사막에서도 꽃과 풀이 자란다. 꽃과 풀이 자라는 곳에는 특징이 있다. 그곳에는 모랫바람에 가늘어진 흙이 질투하지 않는 기압과, 이해와 오해 그 어디즘에 가려진 햇볕과 오고가는 바람이 소통하는 오아시스가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기분이 있다. 지독한 오해와 적당한 이해도 결국은 높아지고 낮아지는 공기 중의 대기압처럼 자유롭다.
시로코 바람이 불어와서 부블리나와 결혼을 약속한 그리스인 조르바.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속 조르바는 늘 저기압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브블리나를 만나기 전까지.
<천일야화>의 샤리아왕도 늘 저기압이었다. 세에라자드를 만나기 전까지.
오해는 이해를 만나고 고기압이 된다. 우리 부부도 기나긴 시간 속에 사막과 오아시스를 넘나들며 기압을 확인했다. 서로의 기압을 오해했고, 또 어느 날은 잘못된 기압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내다보면 슬그머니 찾아온 시로코 바람이 있었다.
지중해에 시로코 바람이 불어오면 기압이 변하고, 날씨가 바뀌고, 결국 계절이 바뀐다. 지나갈 것은 언젠가 지나가고 올 것은 반드시 온다. 시로코 바람처럼.
*시로코바람: 초여름에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넘어 이탈리아로 부는 따뜻한 바람. 이 바람이 불어오면 계절이 바뀌고 기압의 변화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