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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의 늦더위가 한풀꺾이고 하늘은 얄밉게도 청명한 가을 초입.
내 사랑하는 아내 예린과 함께 교외 국도변 맛집에 가거나 드라이브 겸하여 숨겨진 관광지 탐방을 하고 싶은 충동이 들 날씨가 기가 막히게 좋은 토요일이다.
하지만 그간 아내의 오늘 행사를 위해 돈을 쏟아 부운것과 더불어 오늘은 온갖 종류의 정신, 육체노동, 연주회만 제외하면 아내 옆을 지켜주며 손님들에게 온화한 웃음을 지어주어야 하는 감정노동까지 강요된 날이기도 하지만 아내 예린에겐 인생 최고 절정의 날이다.
아내 예린의 연주회를 위해 오전 10시에 아내가 재직하는 대학에 차로 데려다 준뒤 홀로 집으로 돌아 와서 그녀가 미리 냉장고에 마련해 놓은 반찬을 꺼내 점심을 해결했다.
넓은 집과 사유지를 경비하는 우리 진돗개 약돌이 약순이를 풀어 놓고 날뛰도록 하고 잠시 집에서 눈을 붙인뒤, 아내 예린이 애프터 리셉션때 자기 옆자리에 설때 자기 연미복과 가장 어울릴만하다며 찍어준 고급 곤색 정장을 걸치고 아내가 어느 방향으로 머리카락을 세우라고 코치해 준대로 헤어스프레이를 뿌리고 피아제 손목시계를 찼다.
하나같이 아내 예린의 코치 그대로였다.
그리고 오후 세시까지 다시 그녀의 학교로 가서 아내 예린을 픽업해서 시내 세탁소에 맡겨놓은 연주복을 찾고, 근방의 헤어스튜디오에 아내를 데려다 주고 한참을 무료하게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예린은 거기서 올림머리와 무대 메이크업을 받아야했기 때문이다.
20년째 지켜보며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내가 제일 섹시한 순간은 무언가에 집중할때다.
아내의 업이 가야금이라 가야금을 탈 때의 원래 예림의 그 우아한 자태에 더하여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과 한치의 음의 오차도 허용할수 없이 잔뜩 긴장되었다가도 자유자재로 현을 탈때의 그 모습, 거기서 나오는 어깨짓과 관객을 압도하는 눈빛과 표정은 내겐 거부 불가능한 치명적인 유혹을 피할수 없는 광경이다.
중간중간 어느 연주 싯점에 아내 예린은 눈의 흰자위만 드러낸채 가늘에 뜨고 입을 절반 정도 열고 고개를 좌우로 젓는 그 순간 무안함과 행복함과 분노의 세가지 감정이 어우러진다.
그런 표정과 고개짓은 우리 부부의 정사중 절정에 올랐을때 내는 그녀의 모습이었는데, 그런 모습을 가야금을 타며 공중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참으로 민망한 것이다.
물론 청중들은 그 순간적 표정이 정예린 가야금주자의 부부관계중 내는 표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 없겠지.
지금까지 시민회관을 꽉 채울 정도로 아내의 리사이틀에 이토록 인산인해를 경험한 적은 없다.
당연히 아내 예린의 이번 연주회는 그녀가 재작년 출신 사립대학의 조교수로 임용되고 나서 처음 갖는 연주회라 꽤 성대했다.
목표도 없었고 기대도 안했던 교수자리를 얻자 예린의 개인레슨과 시간강사, 국악합주단원 시절 연주 때와의 위상과는 확실히 달라졌으니 이래서 다들 교수, 교수 하나보다.
연주회가 모두 끝나자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에 옥색과 핑크빛이 어우러진 퓨전 국악연미복 차림의 아내 예린은 정중하게 무대 인사를 할때는 정말 못 견딜 정도로, 당장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포옹을 하고 싶을 정도로 섹시했다.
애프터 리셉션장에도 여전히 구름같은 인파들이 모여 있다.
이런 순간에도 아내 예린의 곁을 지켜주는게 내 의무였다.
단정하게 개량한복을 입은 예린의 애제자인 대학원 조교 아가씨가 마이크를 먼저 잡았고, 청중들에게 예린을 향해 박수를 유도한뒤 예린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조명과 특수화장을 받아 더욱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내 예린은 상기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고 리셉션을 시작하는 인사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오신 귀빈 여러분, X 선생님, O 선생님, Y 선생님, Z대학교 국악과 과장님이신 K교수님, L교수님, 제 국악예고와 대학, 대학원 동기들, 국악예술단 시절 함께 했던 동료분들, 제자들, 그리고 여러 지인분들게 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오늘 2부 행사에서 협연을 해주신 예술단 시절의 거문고 주자A님, 대금 주자 B님, 대학 동기생인 아쟁 주자 C님에게 동료애를 전합니다.........중략.........여러분이 아니셨다면.............중략...............제 어린 시절에 국악의 재능을 알아보시고 헌신적으로 교육시켜주신 저희 친정어머니를 소개할께요”
아내 예린의 뒷자리에 서 계시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장모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청중을 향해 인사를 했다.
엄격하고 우아하시고 나이 80에도 여전히 고우신 분이다.
아내 예린은 다음 인사말을 이어 나갔는데 뜻 밖이었다.
“늘 함께 있으면서 심신으로 절 보호하면서 안정시켜 주는 분, 이번 연주회에 경제적 정신적인 투자를 하신 분을 소개할께요. 제 가정의 家長되시는 하갑수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려 주세요. 실은 이번 콘서트의 실제 개최자에요. 자, 여보!”
'늘 함께 있으면서~~ '라는 멘트때부터 아내 예린의 얼굴엔 두터운 파운데이션과 진한 핑크빛 블러싱을 입혔음에도 낯빛이 붉어지는걸 숨길수 없었고, '저희 가정의 가장이신 하갑수님께~~' 이 멘트의 순간엔, 예린이 억지로 웃음을 억누르는듯 했지만 웃음이 아내의 입을 압도적인 힘으로 반쯤 벌렸고 그녀는 어쩔수 없이 헤벌레 웃기 시작했다.
예린이 나를 가리키면서 굳이 '가장'이라는 단어에 무척 힘과 악센트를 준 낯뜨거운 남편 소개였지만, 정말 예린은 그렇게 소개를 하고 싶어했나보다.
그 순간 우뢰같은 박수소리에 부러움과 '와우우~' 하는 경외심이 섞인 환호성 소리까지 들리며 수많은 시선들이 순간 내게 집중되고 있음을 알았다.
여러 속삼임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는 가운데 그녀 옆에 있던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가 청중들을 향해 깊은 목례를 올리고 난뒤 뒷걸음으로 아내 예린의 옆에 섰다.
나의 모교이기도 하며 그녀의 모교인 대학의 당국자들, 아내의 제자나 선후배들의 악수와 인사를 받고 적절한 담소를 나눠야 했다.
작지만 튼실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오너이기도 하지만, 이 자리에선 철저히 내 이름은 ‘정예린의 남편’이어야 했다.
주인공은 아내 예린이지만, 내게 인사를 해오는 이들은 정예린 교수의 남편이 누굴까 은근한 호기심을 가진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오히려 여성스승이자 공연 아티스트의 남편에 불과한 내게 적극적이고 눈맞춤을 하는 제자들도 있었고,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것처럼 반가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머, 하갑수 사장님! 정말 수고 하셨어요"
아마 우리 집에 레슨받으러 오던 학생들이었던건지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제 잔치는 끝났다.
자켓을 벗고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웃단추를 풀고 노가다를 할 시간이다.
“여보, 이건 학교에 가져다 놓을거고, 요건 집에 도로 가져갈거에요”
흰색 BMW X6의 뒷좌석에 가로로 가야금을 먼저 실어 놓았다.
그녀는 나에게 새로운 지시를 요리조리 내렸고 나는 고대로 차에 물건을 싣고 있는데 장모님이 큰 처남과 함께 다가왔다.
예린은 아직까지도 빠져나가지 않은 예전 예술단 동료들에게 갑자기 다시 붙들려 마지막 담소를 나누고 있었기에 굳이 혼자 있던 나에게 걸어온다는건 작심하고 할 말이 있어서일게다.
“이보게, 그나저나 우리 하서방 너무 고생 많았네.”
“별 말씀을, 제가 좋아서 하는건데요, 의무기도 하고요”
“우리 하서방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왔네, 그리고 미안하네, 팔이 자꾸 안으로만 굽어서 어쩔수가 없었는지..........자네가 예린이를 위해 너무 큰 것을 포기하고 도와준거 고맙고”
장모님은 오늘의 분위기에 취해 조명빛에 눈시울이 반짝거리셨다.
뭘 미안하다고 하시는지는 대강 짐작이 되었다.
날 사윗감으로 머뜩치 않아 했던 처가는 결혼 후에도 늘 나를 아웃사이더 취급을 해 왔다.
“아뇨, 전 예린이를 낳고 교육시켜주신 어머님이 그저 무조건 고맙기만 합니다. 어머님으로부터 훌륭한 인성과 빼어난 미모까지 물려 받았으니깐요”
“몬, 씰데없는 소리! 자네, 이번 추석때 우리 집에 오면 하룻밤 자고 갈수 있겠나? 예린이 시댁에는 좀 미안하지만.”
"아, 그 그게.....네 그렇도록 하지요"
"우리 막내딸 벌써 나이 40중반이 되었건만 애미 눈에는 아직 애같고 버릇없는 구석이 많아, 자네가 어쩌다 꾸중도 하고 야단도 치고 하세, 그래야 주인으로서의 면도 서는거고 여자가 남편 어려운걸 알게되네. 듣자하니 자네가 20년동안 목소리 한번 커진적 없다던데 너무 그럼 못 쓰네"
장모에게 일찌기 들어본적 없던 흰소리에 놀랄 틈도 없이 동갑내기 큰 처남이 한숟가락 거들었다.
S대 법대를 나와 판사를 거친 이 지역의 잘나가는 변호사이고 약사 아내와 청소년기 두 아들을 둔 큰 처남은 콧대가 높았으며 나를 아래로 본다기보다는 그닥 나와 관계되는 상황에 있는걸 애써 피하는 사람이 웬 일로 친한척한다.
"아, 매제, 처남매부는 친형제와 진배없다는데 우리 너무 데면데면하지 않았나? 그날 무박2일로 한잔 하세"
"저야, 그런 분위기라면 환영이죠"
아내 예린의 인생의 최고의 날인 오늘, 우리 결혼 20주년 기념일이기도 하지만 어쩔수 없이 묻힐 수 밖에 없었다.
오늘 특히 그랬지만 국악예술인인 아내 예린이 큰 연주회를 할 때마다 나는 그녀의 매니져겸 운전기사겸, 수행비서겸, 보디가드가 되어 주었고, 애프터 리셉션장에서는 그녀의 대형 악세사리나 트로피가 되어야 했다.
예린의 내 소개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한 것은 아내 예린은 내가 자신의 악세사리나 트로피가 아니라는 점과 쇼윈도우 부부가 아님을 분명히 대중 앞에서 각인시켰다는 점이다.
아내를 질시하는 이들은 내가 무늬만 남편이고 실제로는 평소 비서겸 경호원, 운전기사, 밤의 섹파 역할을 위해 예린이 고용한 남자라는 되도 않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그건 아내 예린이 자신의 캐리어를 위해 전혀 가정 살림에 손을 안대고 남편에게는 거의 신경 안쓰고 남편의 케어만 받는 응석받이 여자라는 식의 매도하기 위한 말도 안되는 억지였다.
장모님은 장모님 나름대로 딸이 최고의 성공을 기념하는 이 날, 뭔가가 내면에서 울컥하고 올라오신 것 같았다.
예린이 차에 올라 타도록 조수석 문을 열어주며 그녀가 차에 올라 앉을때 치맛자락이 차 문사이에 끼지 않도록 잡아준다.
아직 시민예술회관 야외주차장을 빠져나가지 않고 자기들끼리 희희낙락하던 예린의 지인들은 우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고 웃고 한다.
주차장에서 서행을 할 때도 아내는 차창을 내리고 각자 차를 향해 걸어가는 지인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든다.
시민회관을 빠져 나와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가자 예린은 나를 바라보고 빙긋 웃으며 말을 건다.
“여보, 저 이만하면 연주회 잘됐죠?”
“당신 인생 최고의 날일걸? 근데 당신 인맥이 이리 대단한지 실감했고, 연주회장이 꽉 찼으니”
“이 지역의 국악전공자들과 예고생, 대학원생들까지 다 모였다고 보면 돼요. 아무래도 지방이라 국악은 콘서트가 드문 편이라 학생들도 연주회 관람에 목이 말라 있죠”
"겸손하긴! 당신 실력보고 온거 아니었어?"
“호호호, 고마워요, 여보. 당신 덕분이에요. 원래는 스무번째 결혼기념일에 크루즈가기로 했었쟎아요......급 피곤해지네요! 하아, 집에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저 시트 조금만 뒤로 재끼고 있을께요”
예린의 연미복은 말이 국악 연주복이었지 원단만 한복용으로 되어 있었고 치마폭이 조금 넓은 서양식 버블드레스나 마찬가지였다.
민소매에 그녀의 가슴은 반쯤 드러나 있다.
솔직히 그녀가 가슴을 반쯤 드러나는 놓은 민소매로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이 좀 기분이 거시기한건 사실이었다.
키스씬이나 정사씬을 찍는 여배우의 남편된 심정이랄까?
지금은 오직 내 앞에서 예린이 그대로 상체를 뒤로 재낀채로 긴장을 풀고 있다.
살짝 가슴 덮는 부분과 가슴이 중간중간 어둠 속에서 이격될 때 가운데에 뭔가 솟는 느낌이 들었다.
내 나이 53살,
이제는 상상만 하거나 길거리에 예쁜 여자 지나가는것만 보아도 솟는 시기는 지났지만 이상하게도 아내의 이런 모습에는 식상함을 못 느낄 정도로 욕구가 솟는다.
아까 연주회 내내 연주하는 표정과 몸짓에서 뭉클하니 뭔가 솟았던 상황과 지금이 그대로 연결되고 있었다.
해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번화가를 지나 변두리로, 그리고 국도로 들어설 때 인공조명들이 줄어들어가는 만큼 행인도 길거리 차량들도 급격히 줄어들어간다.
국도를 어느 정도 달려 광역버스와 시내버스 공용 정거장을 만났고, 거기서 얼마를 더가서 경사가 진 숲속 길을 끼고 높은 사유지임을 알리는 높은 철조망이 있는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숲속 길로 차를 좌회전 시키며 천장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초대형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우리 차는 초대형 철조망과 철문으로 차단된 그 숲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제부터 유일한 조명은 내 차의 전조등 뿐이라 시속 30여 킬로로 서행하기 시작했다.
조명이 전혀 없이 온통 큰 나무와 깊은 숲에 둘러쌓인 어두컴컴한 산길을 얼마간 올라가자 우리의 보금자리인 석재담에 아치형 철담을 두른 지방의 사설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대형 단독주택에 도착했다.
전조등의 LED에 유난히도 큰 [河甲首] (하갑수)라는 내 문패명이 반사되자 눈이 찡그려진다.
내 이름이 유별나게 독특해서 창피했기 때문일까?
어려서부터 내 이름을 창피해 했었기에 굳이 내 문패가 달린 것도 그닥 달갑지 않았었다.
이 타향에서 내 이름 석자 문패보고 이 집을 찾아올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아내의 문하생들만 드나들기 때문에, 번짓수만 표기되면 충분할걸 아내의 제자들치고 내 독특한 이름을 모르는 이들이 없다.
하지만 아내 예린은 그런 것을 은근히 즐기는듯 했다.
아까 전에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던 그녀의 제자들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소음없는 그녀의 연습실 확보와 문하생 교육을 위해 어쩔수 없는 주거 선택이고 결혼할 당시인 20년전 나는 어떤 것도 선택할 권한이 없었다.
아치형의 쇠로된 대문이 자동으로 재껴지며 대문을 통과해 실내 주차장의 알루미늄 셔터를 작동시키자 예린의 전용차가 무료하게 서 있다.
실내로 들어서며 점등하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넓은 공간이 우리 부부를 맞아 주었다.
나는 예린의의 가야금을, 그녀는 가벼운 잡동사니들을 넓은 연습실 구석에 놓았은뒤 아내가 내게 뜻하지 않은 제안을 했다.
“여보, 당신 레드 와인 한잔 안할래요? 지금이라도 와인테이블 차릴께요. 아니면 간단한 소줏상도 좋고요.”
“아까 하지 않았나?”
“천만에요, 애프터 리셉션때 보니깐 당신은 예의상 샴페인 잔을 들고 살짝살짝 입에 대기만 했어요. 대중 앞이기도 했고 운전해야 하니깐 입맛만 다시지 않았나요? 이제 10시도 안됐고 내일은 일요일이잖아요?”
주인공이었던 예린은 콘서트 후에 리셉션때 찾아오는 지인들과 부지런히 인사와 담소를 나누고 근황을 공유하기에 바쁘던 와중에도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면밀히 살피며 정확하게 캐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모두로부터 해방된 지금 진짜 나를 위해, 아니면 우리를 위한 술자리를 제안한 것일게다.
나를 향해 정면으로 맞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46살 예린의 몸, 그리고 다중 앞에서 노출되었던 유방의 윗부분은 연습실 샹들리에 조명 아래 빛을 내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 거리끼고 싶은게 없었다.
“물와인보다는 말벡 와인색을 닮은 당신 입술부터 취하고 싶구만?”
“어머........호호호.....그게 더 급해요? 히잉.....제 입술을 와인 대용으로 마시다가 내 몸까지 안주로 싹 다 잡아드실까봐 너무 무서워요. 주방가서 와인상 보는 동안 2층 가서 옷 갈아입고 좀 씻으세요”
예린은 씨익 웃으며 연습실을 나서 주방쪽으로 가려 했지만 내가 그녀의 손목과 등을 휘어잡고 정면으로 마주보도록 다시 세웠다.
예린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딥 앤드 롱키스를 하다보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키스가 시작된 장소인 Garage, 목욕탕, 쇼파 위에서 섹스를 벌이거나, 심지어 주방에서 안아 올린 상태로 삽입하고 사정했던 21년 결혼생활의 경험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는 마룻바닥으로 이루어진 연습실, 사랑을 나누기엔 힘든 곳이란 아내의 사인이었다.
하지만 내 손에 의해 멈춰진 예린은 더 이상 거부를 하지 않았다.
“연미복차림으로 주방에 들어가서 뭘 하겠다고! 결혼 기념일에 특별한 술도 먹고 특별한 안주도 특별한 장소에서 하게 될수도 있지, 여긴 공연장이 아닌 내 집이니깐”
"그럼 키스까지만요, 지금은 더 이상은."
하지만 이내 예린은 함박웃음을 웃으며 두 팔을 들어 내 어깨를 감싸고 얼굴을 가까이 대며 속삭인다.
지금 예린에게 아까 전에 콘서트 현장에서의 빛나는 카리스마 따위는 흔적도 없었다.
“아녀자는 하늘같은 주인님 말씀에 얌전히 순종하는게 숙명이죠......제 어찌 버릇없이 지엄하신 嚴夫(엄부)의 호된 명령에 이의를 달까요?”
사실상 모든 것을 허락하는 예린의 입술에는 삼중 사중으로 칠한 듯한 말벡컬러의 와인색상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
오늘 아내의 얼굴에는 미용실에 가서 받은 연주용 메이크업이 그대로 살아 있었는데, 눈두덩 전체가 진하고 칙칙한 투톤의 아이섀도우로 칠해져 있었고 윗눈썹 화장은 실제 눈썹보다 굵고 길게 과장되어 있는 상당한 오버 메이크업이었다.
하지만 난 이상하게 이런게 더 섹시했다.
서로가 입술을 포개는 순간 예린은 눈을 감았고, 카키색과 라이트그린의 눈두덩이가 세워진 눈썹과 함께 껌뻑껌뻑거린다.
늘 느끼는거지만 아내의 립스틱은 촛농의 맛과 비슷하다.
아내가 평소에 바르던 립스틱에는 향긋한 과일의 플레이버가 내 코를 자극했지만 지금같은 프로페셔널 메이크업의 화장품에는 그런걸 느낄수가 없었다.
그래서 입술을 포갠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평소보다 그녀의 입술을 좀더 강하고 길게 빨았고 아내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며 그 뜨거워진 숨이 내 인중을 강타하고 있다.
향긋한 바디향 냄새와 땀냄새가 적절히 섞여 성욕을 더 자극하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다.
예린의 머리카락은 여러개의 핀으로 고정되어 올림머리가 되어 있었기에 조금 산발되려고 하고 있다.
그녀의 반쯤 핑크빛 톤으로 블러싱된 얼굴은 파운데이션과 함께 얼룩져 있었고, 입술의 립스틱이 주변으로 번져있었고 겨우 눈화장만 멀쩡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난 관계후 예린의 화장 망가진 모습이 이상하게 보기 좋았다.
그리고 한참을 그렇게 위에 있다가 천천히 나는 예린의 몸에서 이탈해 나오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격렬한 행위 후의 현타는 내가 더 많이 느낀 것이, 지금 우리가 뒹굴렀고 누워있는 곳은 상당히 불편하다는 것이다.
평소에 나는 아내의 레슨연습실인 이곳은 일부러 들어가지 않아왔다.
그녀만의 전문공간을 침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였었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곳에서는, 집은 부부의 공동공간인데 내가 가지 못할 곳이 어딘가라는 반문이 늘 있어왔다.
내 스스로 나를 결박하는 측면도 있었기 때문이라 늘 이 공간이 찜찜했는데, 오늘 이 공간을 이렇게 정복(?)해 버렸다.
예린은 두 팔로 내 목을 껴안은채 허스키해진 목소리로 말을 건다.
“이제 뭐할거에요? 잠? 아니면 2차?”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날 뻔했다.
아내 예린은 여자로서 한창 난숙될 46살이지만 나는 7살 위의 53살이다.
2차 뛰는 것이 힘들어진지는 몇 년이 지났고, 예린이 그걸 모를리 없다.
“하루종일 몸 피곤했고, 딱딱한 마루 위에서 뭐 했으니깐 같이 거품욕 오랜만에?”
“아후, 센스쟁이!”
예린은 내 품에 안겨 2층에 오르면서 내 목을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담과 이브처럼 둘다 완전히 벗은 상태에서 침실을 통해 욕실로 들어가서야 예린을 내려 놓았다.
내가 2인욕조를 샤워기로 몇 번 훔친뒤 따뜻한 물을 받고 바디워시액을 뿌리는 동안, 예린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고, 그녀의 원 생얼이 드러나자 기초화장품을 바르고 있다.
물이 차고 투명한 거품이 생성되자 먼저 들어가 뒤에 몸을 딱 붙이고 자리를 잡았다.
끝도 없이 올림머리를 위해 꽂혀 있던 핀들을 제거하는 예린의 뒷 모습,
우유같은 피부에 적절히 들어갈 곳 들어가고 나올곳 나온 볼륨감있는 몸매, 특히 예린의 엉덩이는 잘 익은 복숭아처럼 곡선율이 탁월했다.
시집올 당시 대학원 졸업을 앞둔 만 25살에 키 163에 시집올 때 몸무게는 51, 21년이 지나 만 46세가 된 예린의 몸무게는 55로 늘어났지만 아직 똥배도 전혀 안나왔다.
피부는 보들보들 미끈했고, 가슴과 엉덩이는 아직도 탄력이 살아있었으며 허리 역시 탄탄하다.
“여보, 애써 받은 메이크업 지우는거 아깝지 않아?”
“괜챤아요, 돈으로 산 남이 해준 남이 봐주길 바라는 화장 지우는거 안 아까와, 저는 목욕 끝내고 당신만을 위한 화장을 다시 하겠어요”
예린은 엉거주춤 욕조로 들어와 내가 무릎에 엉덩이를 깔고 등을 내 가슴에 밀착시켰다.
“곧 잘건데? 2차는 안할 확률이 높아, 근데 굳이...”
“호호호, 우리 결혼할 때 제가 약속드린거 있죠? 당신에게, 특히 밤에 화장 안한 얼굴 보이지 않겠다고 한 것, 결혼 20주년인 오늘 다시 언약드릴께요, 훌륭한 선생님들이고 절 따르는 제자들이고 청중들이고 음악이고 당신 한분하고 안 바꾸겠어요.”
예린의 이 말에 코끝이 징해져 온다.
남자는 나이 먹을수록 감상적이 된다더니.
"여보, 예린! 사랑해!"
"저 당신 밖에 없어요, 사랑해요"
인기척과 외부 불빛 하나 없는 한 가을의 깊은 밤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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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즐독했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