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이 절도범에게 훔친 아파트 관리비 통장서 예금을 인출, 입주민들에게 손해를 끼쳤어도 관련 규정을 준수했다면 대표회의는 금융기관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울산지방법원 민사5단독(판사 박현정)은 최근 경남 양산시 D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최초 개설한 은행에서 대부분 거래가 이뤄져 통장개설 지점이 아닌 곳에서 2회 이상 거액이 인출됐다면 창구직원은 범인이 예금수령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예금을 지급해 손해를 입었으므로 4천1백만원을 달라.”며 K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예금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대표회의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아파트 관리비 통장을 훔친 범인들은 지난 2004년 12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총 7회에 걸쳐 통장을 변조하고, 예금지급청구서를 위조해 수십 회에 걸쳐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했음에도 2004년 12월 직원이 관리소에 전화한 1회를 제외하고는 위·변조 사실이 발각되지 않아 육안으로 봐서는 변조사실을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범인이 정교하게 통장을 변조했고, 범인 K씨가 관리비 예금인출시 통장 비밀번호를 정확하게 입력한 사실도 인정된다.”며 “피고 은행의 K씨에 대한 예금지급은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로서의 효력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비록 범인들이 통장에 도장을 직접 날인하지 않고 다른 용지에 찍은 인영을 오려 붙이는 방법으로 통장을 변조했으나, 법인이나 단체가 개설하는 통장의 경우 통장에 직접 날인하지 않고 별도 용지에 인감을 날인해 이를 붙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통장을 개설하지 않은 다른 지점에서 예금이 인출됐고, 불과 수십여 분 만에 2회에 걸쳐 4천1백만원이라는 거액이 인출됐으며, 그 결과 통장잔고가 99만3093원이 됐지만, 원고가 대표회의라는 이유만으로 이같은 예금인출이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어 재판부는 “통장과 예금지급청구서의 비교·대조시에 별다른 문제점이 나타나지 않았고, 비밀번호도 정확하게 입력됐으며, 원고 주장과 같이 대표회의가 관리소 전화번호를 비밀번호로 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도 이같은 사정만으로는 대표회의가 개설한 통장의 경우 개인이 개설한 통장과 달리 청구자의 변제 수령권을 판단함에 있어 비밀번호의 중요성을 달리 봐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울러 “예금거래기본약관의 ‘신고한 인감’은 일반적으로 통장에 날인된 인감을 의미하고, 통장 인영이 변조될 경우에 대비해 모든 예금 거래시 계좌 개설신고서에 날인된 인감을 확인할 의무를 은행에 지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대표회의 업무처리 관행상 10만원 이상 출금은 항상 계좌이체방식으로 이뤄졌더라도 피고 은행이 이를 알았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 사건 예금인출 당시에 피고 은행 창구직원에게 범인 K씨의 변제수령권을 의심할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 없으며, 피고 은행의 예금지급 채권은 유효한 변제이므로 원고 대표회의의 청구는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이 아파트 관리소에서는 지난 2007년 11월 P씨 등 3명이 침입해 관리비 통장과 관리소장 명의 인감이 날인된 예금지급청구서를 절취 당했다. 이들과 공범인 K씨는 임의로 만든 대표회장 명의 도장으로 통장을 변조해 은행 창구직원에게 제시, 두 차례에 걸쳐 4천1백만원을 출금했다.
이에 대표회의는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이같은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