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절 세례, 성찬식'
마태복음 3장 11절~12, 16~17절
고전 10:1~4, 16~17절
<세례>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요한의 놀라운 선언은 도시 거주자들까지 광야로 끌어냈습니다. '세례 주다'(헬라어 '밥티조') 라는 말은 '밀어 넣다', '담그다', '적시다'를 뜻하며 요한은 '요단강'에서 사람들을 물속에 담갔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을 때 물 아래로 들어가는 행위는 죄를 씻어내고 심판과 사망의 몸을 안전하게 통과하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의 상징적 표현에 있어서 완전한 침례가 요구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을 위해 요한이 외칩니다. "내 뒤에 오시는 이" 이 말은 강력한 메시아적 기대를 표현합니다.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요한은 천국의 가까움을 선포하지만 오실 이는 메시아적 통치를 시작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나 실 것입니다.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요한의 물세례는 오실 이와 관련된 세례로 대체될 것입니다. 회개하고 그 오실 이를 믿는 이들은 성령의 복을 받겠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는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회개하는 자는 정결하게 하는 불을 경험할 것입니다.
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키'는 비유적으로 회개한 자와 회개하지 않는 자의 분리됨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 말입니다. 추수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예수님이 세례 받은 정확한 위치는 오늘날 논란거리입니다. 전통적인 세례 장소는 요단 강 서쪽 기슭의 '카스르 엘 야흐두'입니다. 그러나 이 장소는 그 대신 요한복음 1:28절에 언급된 것처럼 (비록 이 본문은 요한이 그 이전에 아마도 다른 장소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음을 의미할지도 모르지만) "요단강 건너편 [즉, 동편] 베다니"와 동일시 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사람들에게 한 곳 이상의 장소에서 세례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 광야로 가시지만 요한이 예수님을 말리려 한 이유는 메시아적 세례를 베푸는 더 능력 있는 분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이며 십자가상의 죽음으로 절정에 이르는 구약 곳곳에 예언된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성취합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예수님은 또한 요한의 사역과 메시지를 승인하시며 자신의 사명을 요한의 사명과 연결하십니다. 예수님은 회개나 씻음이 필요 없으셨지만 자신의 대속적인 삶과 죽음을 통해 자신이 구원하러 오신 죄악에 빠진 사람들과 일체가 되셨습니다(참조 고후 5:21).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이자 메시아로 기름 부으시며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의로운 '종'의 사명을 맡기 십니다(참조 사 42:1).
'하늘로부터' 들려온 '소리'는 메시아적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분뿐만 아니라 영원 전부터 존재했던, 성자와 성부가 공유하는 신적인 사랑의 관계를 확정합니다. 이 '사랑하는 아들'은 영광스러운 메시아 왕이지만 성부가 열방에 구원을 가져다줄 사명을 그 손에 맡기시기를 기뻐하는 겸손한 '종'이기도 합니다(사 42:1~4).
<세례의 의미>
세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난 내적인 변화를 외적으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비록 세례 자체가 구원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 할지라도, 성도의 신앙의 과정과 생활에서 갖는 의미는 참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고, 제자들도,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도 세례를 받았습니다(행 16:14-15).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곳 어디에서나, 세례를 베풀고 받아야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의 몸 된 교회에게 꼭 지키라고 명하신 두 가지 의식이 있는데 이는 곧 세례와 성찬입니다.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삼일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명하신 말씀입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둘째, 구원의 표식입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 된 자신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영접하는 표시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구원이 선물(엡2:8-9)로 주어집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자에게는 ‘죄사함의 은혜’가 임합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2: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세례를 교회의 관계나 권유에 의해, 또는 호기심으로 받아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과거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의 고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셋째,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입니다. 신분이 바뀌면(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옷도 바뀌는 법입니다.
갈 3:26-27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넷째,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또한 부활하셨으므로, 구원받은 우리도 주와 함께 죽고 또한 주와 함께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이 바로 세례의식의 참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성도는 오직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고전10:3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세례]>
1. 그리스도께서 신약에서 제정하신 성례는 몇가지가 있습니까?
거룩한 세례와 성찬, 두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물로 씻는 이 외적 의식을 제정하시고, 그의 피와 성령으로 나의 영혼의 더러운 것, 곧 나의 모든 죄가 씻겨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물로 씻어 몸의 더러운 것을 없애는 것처럼 확실합니다.
2. 세례의 물로 씻음이 곧 죄 씻음 자체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그러면 왜 성령께서는 세례를 "중생의씻음"과 "죄를 씻음"이라 하셨습나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의 더러운것이 물로 씻겨지듯이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없어짐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죄가 영적으로 씻겨지는 것이 우리의 몸이 물로 씻겨지는 것처럼 매우 실제적임을 이러한 신적 약속과 표로써 우리에게 확신시키려 하셨습니다.
3. 신자들의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꼭 시행해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유아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언약과 교회에 속하였고 또한 어른들 못지않게 유아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속죄와 믿음을 일으키사는 성령이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아들도 언약의 표인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교회에 연합되고 불신자의 자녀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구약에서는 할례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나 신약에서는 그 대신 세례가 제정되었습니다.
4. 저자는 유아세례야 말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교회에 소속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과는 조심스럽게 구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데, 유아들에게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속하였다는 것도 자녀들에게는 복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될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지게 되면 세례때 받았던 그 약속(그리스도와 연합)을 '실제'로 받게 될 것입니다.
5. 유아들과 어린 아이가 그리스도의 지체답게 자라갈 수 있도록 가정과 교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유아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그 아이가 불신자들의 자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실제로 다르게 키워야하는 것입니다. 세상 법이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지만 그들로 하여금 말씀을 듣게 하고 기독교적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은 부모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누가복음 18:16)
<유월절 식사와 성찬 제정>
눅 22: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다음 몇 가지 이유로 이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고 원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 자신이 이제 곧 자기 백성의 죄를 위해 희생될 참된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려 했고 따라서 이 유월절 식사는 오랜 시간 동안 메시아를 고대하면서 유월절을 기념하던 시대의 마지막 식사였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이 식사가 제자들이 구원을 얻도록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시는 것을 풍부하게 상징할 것임을 아셨습니다.
셋째, 이 유월절 식사 자체가 천국에서의 어린 양의 혼인 자체를 예표했습니다(계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여기서 '성만찬'(Eucharist)이란 단어가 유래되었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그리스도가 영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받는 신자들과 함께 그들 안에 임재하셔서 그들의 믿음과 주님과의 교재를 강화시키고 이를 통해 그들의 영혼을 먹이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은 예수님의 피가 새 언약을 인치는 희생의 피임을 가리킵니다.
<성찬>
고전 10:1~4, 16~17절
고전 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출애굽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세에게 속하여....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낼 구름을 주셨습니다(출 13:17~22). 하나님은 또한 모세를 사용하셔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뒤쫓아오는 애굽인들을 피할 수 있게 하셨고 그 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다시 물로 덮으시자 애굽인들은 물속에 수장되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건을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것과 유사한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신령한 음식....음료',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하늘에서 내려온 떡과 반석에서 나온 물을 공급하신 일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반석은 이스라엘의 광야 방랑 생활이 시작될 때와 거의 끝날 때 나타납니다. '반석'이 '신령한' 동시에 그리스도 였다는 바울의 주장은 그가 실제 바위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이동했다고 믿은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영적인 모양으로 늘 그들과 함께 계셨다고 믿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 바울은 성찬식의 잔을 언급합니다. 예수님은 이 잔에 대해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최초의 기독교 성찬식에서는 이 관습을 따라 했습니다. 참여는 때로는 예수 그리스도나 성령과의 교제를 가르키며 때로는 다른 누군가의 곤경이나 대의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문맥은 이방 신전에 참여하는 것과 성전에 참여하는 것이 양립 불가능함을 강조하므로 주의 만찬을 먹는 자들은 예수님과 보조를 같이 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예수님의 죽음에서 유익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떡이 하나요....한 몸이니', 예수님은 감사 기도하시고 떡을 떼신 뒤에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또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교회의 지체들이 그들의 공통된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서로 연합되었음을 밝히는 의식입니다.
<부활절>
3월31일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절은 성탄절의 위상을 뛰어넘는 대축일이자 명절입니다. 개신교에서는 부활절이라 합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힌 뒤 2일 뒤에 부활한 때를 기념하는 축일로, 날짜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했는데, 춘분 이후 첫 보름달이 뜬 다음에 오는 일요일로 결정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습니다. 이 원칙은 그레고리력을 기준으로 하며 가톨릭과 개신교는 똑같이 이 원칙에 따라 부활절을 지킵니다.
개신교에서는 1947년 교파에 관계없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나, 1960년대에는 분열과 대립으로 별도의 행사를 가졌습니다. 1978년 다시 통합되어 대도시별로 부활절 새벽에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에 채색하고 장식하여 선사하기도 합니다.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라 짜여지고, 한 해의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 그리스도교에서 1년 중 가장 중심되는 절기입니다. 전례서(典禮書)에는 부활절이 그리스도교 유월절(구속의 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에 세례를 받는 것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절 전 6주 동안 세례예비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교육받았으며, 세례와 그 의미를 크게 강조하는 것, 이에 대한 많은 언급들이 지금도 부활절 예배에 여전히 행해지는 것은 바로 위와 같은 관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개신교 교회에서 부활절 의식은 종려주일로부터 시작되는 고난주간동안 행해지는 일련의 예배의식의 절정을 이룹니다. 고난주간에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 관례지만, 다른 때에도 성찬식을 행합니다. 많은 교파들이 '세족(洗足)목요일'(부활절 전 목요일,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긴 날)에 성찬식을 행하는 관습을 지켜왔으며, 또 어떤 교파는 부활절 아침 정규 예배시간 전에 성찬식을 갖기도 합니다.
많은 교단에서 예배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7언(言)을 중심으로 정오에서 오후 3시까지 진행되며 참여한 교파의 성가대·교역자가 주관합니다. 이러한 초교파적 예배는 부활절 새벽예배에서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이 예배를 텔레비전과 라디오로 중계할 정도로 관심이 높습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라는 구절에서 근거한 듯합니다. 이 성서적 근거와 더불어 부활절 새벽예배는 죽음의 겨울에서 자연의 재생을 상징하는 봄의 새로운 탄생개념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