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용의 눈물
138년 만의 아픈 역사, 용산의 기구한 운명
옛날에는 용산(龍山)을 둔산(屯山)이라고 불렀다.
둔산은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병자호란 때 징키스칸 손자 칸이 머물렀던 땅,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르고 한양에 군대를 집결한 이성계가 진을 쳤고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 군대가 주둔했던 막사였고,
임오군란이 빌미가 된 청일전쟁 때 원세개 몽고 군대가 파오를 쳤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조선군사령부를 설치했다.
6.25 이후에 미군이 주둔한 미 8군 사령부
갈 곳 없는 피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해방촌,
삼각지에는 육군본부가 있었는데 계룡대로 이전하고 국방부만 남아있다.
이 모두가 군대 주둔지(駐屯地)로써 기구한 운명을 가진 용산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성냥갑 같은 가두리 양식장에서 ‘오빠 놀다 가’
핏기 없는 얼굴로 희죽 웃는 모습에서 치욕스런 과거를 보았다.
용산 집창촌은 병자호란 때 몽고군이 주둔하면서 생겨나서. 일본 미국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된다.
그런 역사를 알고 가수 배호는 돌아가는 삼각지를 불렀다.
용산은 지정학적으로 요충지였다.
한반도의 한 가운데에 자리 한 용산은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 한강 유역은 여러 부족들의 각축장이었다.
강폭이 넓고 물이 깊어 유속이 빠른 한강은, 배수진을 치기에 좋고 방어에 유리해서, 남과 북으로 갈라져 국경이 되었다.
그리고 용산은 전쟁의 중심지여서 대치가 많았다.
백제는 한강 부근에서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마한을 정복한 후에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었다.
용산은 고구려의 남진 정책에 의거, 백제는 웅진성으로 퇴각하여 중심세력이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용산은 고구려 지배를 받았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한강 유역은 다시 신라 땅이 되었다.
한때는 후백제 궁예의 태봉으로 편입된 적도 있었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평화가 찾아와 용산은 한동안 전화(戰禍)를 입지 않았다.
한말 고종 21년(1884)에는 용산을 외국인의 거주와 통상이 가능한 개시장(開市場)으로 지정했다.
그래서 선교(宣敎)과 상업 활동(通商)을 원활히 하게 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증기기관을 단 조운선(漕運船)이 제물포에 기항했다,
그래서 용산일대에 군사기지와 철도기지를 건설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증기선의 왕래가 용이하도록 철도 등 육상교통도 잘 갖추었다.
그래서 용산은 대륙침략의 발판이 되고 한반도 통치거점이 되었다.
한강에서 남대문 전차 역까지 운하로 연결하자는 안이 논의되었으나 지질보고서에서 강도가 높은 화강암이 지하에 있어 어렵다는 결론에 취소되었다.
여담으로 한마디
조선의 아방궁이라는 조선 총독 관사가 용산기지 안에 남아있다. 수양 딸이라던 20대 배정자가 통감과 방사를 하고 이토 히로부미에게“ 천하의 일본도 내 속에서 노는구나!.”
그러자 이토는 “자네 말이 딱 맞네 ”
용산은 고려 때 한양부였고 조선조에는 한성부였으며 일제 때에는 조선총독부 개성부였고 광복 후에는 서울특별시 용산구가 되었다.
역사는 비껴가는 법이 없다. 이태원에는 무슬림 사원이 들어섰다.
용산에는 한국철도공사 차량기지가 들어섰다.
상전벽해가 이루어져 삼각지 일대는 아파트 숲을 이루고 가격도 강남 저리가라다.
용은 힘이다. 그래서 제왕의 권력을 상징하고 국운의 왕성을 뜻한다.
그러나 용산은 한양에 들어오는 관문이기 때문에 시련을 많이 겪어야만 했다.
후세 사가(史家)들은 용산의 치욕을 용의 눈물이라고 했다.
나와 용산의 관계
용산에 육군본부가 있던 시절 육군본부 부관감실에서 군 생활을 했다.
장교 사병의 병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군속을 모집하자 이제룡 형을 천거하여 국방부에 취지시켜주었다.
일생 첫 사업으로 해방촌의 안성유기 장인과 거래를 했다.
정택원 형과 함께 김복선 형이 운영하던 삼각지 식당에 자주 갔다.
내 사업 기반이 되었던 남영전자가 남영동에 있었다. 고려대학에서 교수로 있던 동창 김형석이 내 업소에 자주 들러 로얄 살루트를 병채 나팔을 불었다.
장조카 홍선희가 용산구청에 근무하다가 이제는 이태원 동장이 되었다.
우리 가문의 자랑인 도서출판 탐구당이 종로경찰서 옆 넓은 사옥 대지에 원룸 단지를 조성하고 삼각지로 이전했다. 홍기원 회장과 함께 복선 형 해물탕 집에 자주 들렸다.
허주의 아침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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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지점장의 고민
은행에 도둑이 들었다.
끼릭!!! 끼리릭!!! 덜컹!!! 떨리는 손으로 금고 문을 열었는데 기대했던 돈이 아니라 요플레만 가득 들어있었다.
에이! 할 수 없지! 이거라도 먹어야지! 금고 안에 있던 요플레를 전부 먹어치웠다.
다음날 지점장은, 정자를 보관하는 금고에서 정자가 다 털렸다고 길길이 뛰며.
남자직원 3명에게, 내일 아침까지 금고 속을 채워놓으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다.
다음날 직원들은 쌍코피를 흘리고, 마누라들이 부당하다며 광화문에 나가 시위를 했다.
암행어사의 고민
어느 고을에서 민심이 흉흉한 것을 감지한 어시는, 얼울한 일을 당한 자들을 면담했다. 그런데 두 사람만이 쪼그리고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보아 하니 둘 다 댕기머리 어린 아이였다.
“몇 살이냐?”
“열두 살이요.”
형제의 아비는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전사를 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며 활을 만들어 쏘아대며 화전놀이를 즐겨했다.
그때 공교롭게도 화살이 지나가던 말의 콧잔등을 맞췄다.
놀란 말이 펄쩍 뛰자, 비슷한 또래 진사 아들이 낙마를 해서 다리가 부러졌다.
어미가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애들도 무룹을 꿀었다.
진사 아들의 주장은 활을 쏜 놈도 다리가 부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진자 어른도, 살인을 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국법에 정해져 있어, 남을 다치게 한 자는 자신도 그만큼 다쳐야 한다는 것이다. 난감한 지고
그래서 어사가 물었다.
“누구 화살이냐?”
그러자 형이
“제 화살이요”
곧장 동생이
“아니에요, 제가 쏜 화살이 빗나가 말을 맞혔어요!”
이번에는 아낙에게 물었다.
아들 하나는 절름발이가 되게 생겼소. 어느 아이의 말이 맞소?
아낙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동생입니다.”
어사가 흠칫 놀라
“어째서 동생이오?”
“제가 낳은 자식입니다.”
큰 아이는 본처가 낳았는데, 본처가 산후에 죽자 후처로 들어온 아낙이 작은 애를 낳은 것이다. 그러니 둘은 이복형제간
법이 지엄할 지라도 예외가 있어야 어떻게든 구제할 수가 있는데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금부도사에게 소청을 넣었다.
민심이 천심이니 어사는 이를 두려워하라!
그래서 형제는 무죄로 방면되었다.
톱스타들의 고민
김지미와 나훈아가 발장난을 하다가
나훈아 ‘이 발은 누구 발이게?’
김지미가 코맹맹이 소리로 ‘훈아 발’
그리고 나훈아에게, ‘이 발은 누구 발이게?’
나훈아, 지미∼발 하려다 말고, 연장자라 말을 올려서
‘지미씨∼발∼ ’
김지미는 울화가 치밀었고 나운아는 민망해서 서로 말을 못하고
성질이 급한 나훈아가 짐을 쌓다.그래서 둘은 헤어졌대나 뭐래나
허주의 아침산책
한우의 맛
언제부터인가 연말 선물을 고를 때 ‘비싸지만 한우’가 먼저 떠오른다.
맛이 좋은 한우의 비밀은 고기 사이사이에 비 내리듯 촘촘히 박힌 지방과 씹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는 육즙에 있다. .
소를 키우는 친구로 부터 ‘화식우(풀인 여물을 끓인 쇠죽을 먹인 소) 맛이나 보고 며칠 놀다가라는 초대를 받았다.
곡물을 먹여 지방이 꽃을 피워야 맛이 있지, 풀 먹인 소고기가 맛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구운 화식우는 부드럽진 않았으나 육질을 씹을수록 구수하고, 육수는 맛이 환상적이었다.
한 모금을 넘기는 순간 처음으로 느끼는 감칠맛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정확히는 맛이 아니라 향에 대한 충격이었다.
나는 사람처럼 설령 외관이 덜하더라도 풍미가 좋고 구수한 맛을 선호한다.
고기 한 점이 귀신 여럿 쫓는다고 했고. 잘 먹은 귀신 때깔도 좋다고 했다. 몸을 돌보는 것이 중요한 시기다.
겉만 번지르르한 소고기 한 점보다는 진짜 향이 좋은 소고기 한 점으로 위로받는 연말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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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래서 어사가 물었다.
“누구 화살이냐?”
그러자 형이
“제 화살이요”
곧장 동생이
“아니에요, 제가 쏜 화살이 빗나가 말을 맞혔어요!”
이번에는 아낙에게 물었다.
아들 하나는 절름발이가 되게 생겼소. 어느 아이의 말이 맞소?
아낙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동생입니다.”
어사가 흠칫 놀라
“어째서 동생이오?”
“제가 낳은 자식입니다.”
큰 아이는 본처가 낳았는데, 본처가 산후에 죽자 후처로 들어온 아낙이 작은 애를 낳은 것이다. 그러니 둘은 이복형제간
법이 지엄할 지라도 예외가 있어야 어떻게든 구제할 수가 있는데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금부도사에게 소청을 넣었다.
민심이 천심이니 어사는 이를 두려워하라!
그래서 형제는 무죄로 방면되었다.
톱스타들의 고민
김지미와 나훈아가 발장난을 하다가
나훈아 ‘이 발은 누구 발이게?’
김지미가 코맹맹이 소리로 ‘훈아 발’
그리고 나훈아에게, ‘이 발은 누구 발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