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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 용 된들
조 사 무
우리가족도 이래저래 모임을 갖는다. 별로 많지도 않은 식구들이지만 올해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모이기로 합의했다. 명절, 공휴일, 기념일, 생일 등, 하도 모임이 잦다보니 가족모임을 자제하자는 큰딸의 제청이 채택되어 몇 년 동안 대충대충 일정을 짜 맞추어 분기별로 한두 번 모였었다. 하지만 늦손자에 이어 손녀까지 보고나서 마음이 변했다. 보고 또 보고픈 조갈증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모든 행사는 제날제때 치루는 것이 정도(正道)라 우기며 어렵게 제자리로 돌렸다. 여당과 협조하고 정부시책에 찬성하면 마치 그 알량한 정조라도 유린당하듯 '절대반대'만 일삼는 야당처럼 아이들의 벌떼마냥 일어나 '무조건반대'를 외쳐댔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냐.” 통사정과 설득작전을 펼치며 반 협박조로 겨우 통과시켰다. 그래도 여의도에 들어선 두꺼비집에서처럼 눈감고 아웅 하는 식으로 국회의원 연금법(年金法)인가 연금법(軟禁法)인가를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듯 얌생이 짓은 하지 않았다. 연말연시에 바깥모임이 잦았다. 동창회다, 친목회다, 동아리모임이다, 출판기념회다, 결혼식이다, 하다못해 은퇴식까지 그 종류가 부지기수다. 사람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들어 허구한 날 별별 모임을 갖는다. 그것이 불가피한 사회생활의 정형이나 규범이다 싶기도 하지만, 때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참석해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얼마 전에 동창모임이 있었다. 본의 아니게 늦게 도착해보니 매년 빠짐없이 참석하는 A와 B라는 친구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학창시절, 지지리도 가난했던 A는 미국으로 건너와 소위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B는 명망가의 장남으로, 그가 한국에서 공들였던 자선사업이 정치적 야망으로 비쳤던 것일까, 무슨 조사인가를 받더니 사업체까지 헌납(?)하고 빈털터리로 미국으로 흘러와 맨손으로 기반을 다진, 말하자면 용이 미꾸라지로 둔갑했다가 다시 이무기로 승격한 친구다. 행사가 막바지에 이르자 B가 일어나 불우이웃돕기 자선기금조성계획을 발표하며 협조를 당부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지만 산타 모니카의 성채만한 대저택에 사는 A가 바쁜 약속이 있다며 휑하니 자리를 떴다. 마치 미꾸라지가 빠져나가는 것 같이 재빨랐다. 아직도 고집스레 소형조립주택에서 20년을 넘게 살면서 사회사업에 열중하고 있는 B는 끝까지 남아 행사를 마무리할 뿐만 아니라 기금종자돈이라며 거금을 쾌척했다. 미꾸라지가 용 된들 본성은 역시 미꾸라지요, 용이 설령 미꾸라지가 되어도 무변광불(無邊光佛), 태생적 천성은 그대로다 싶었다. 견물생심(見物生心)도 하고 견성성불(見性成佛)도 한다. 사람마다 인성도 견성(見性)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미꾸라지의 초라한 외양과 용의 화려한 위용만 비교할 뿐, 막상 천성과 본성은 모르쇠를 놓는다. 그러면서 미꾸라지신세를 한탄하고 용의 조화를 부러워한다. 태생적인 동질성보다는 후천적 이질성에 연연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만에 으쓱대기도 하고, 심연 깊은 줄 모르고 실의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한다. 만권 금언집이나 억만금도 한 송이 연꽃에 비하면 한갓 허섭스레기가 아닌가. 모임을 끝내고 호텔을 빠져 나가던 B가 뒤돌아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하가섭의 염화미소(拈華微笑)를 연상시켰다. 오는 토요일에도 가족모임이 있다. 용은커녕 이무기도 못되는 미꾸라지 신세이긴 하지만 온 식구가 모이면 나도 삼룡(三龍)이가 된다. 몇 해 전, 손자와 마룻바닥을 뒹굴며 시시덕거리는 나를 빗대어 아내가 붙여준 별명이다. 꽤나 오랫동안 섭섭하더니 요즈음은 떳떳하게 자칭하는 별호이기도하다. 식구 중엔 기성룡도 이청룡도 없지만 손자손녀와 함께 놀다보면 자꾸만 미꾸라지 용 된 기분을 숨길 수가 없다. “삼룡씨, 쓰레기통 좀 내놔요!" 머릿속에 손자의 응석과 손녀의 배냇짓을 그리며 한참 무아지경에 빠져드는데, 느닷없는 선우용녀(仙友龍女) 마나님의 일갈에 삼룡이는 오늘도 뻑적지근한 허리를 펴고 부랴부랴 쓰레기탱크를 몰며 헐레벌떡 출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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