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고향 땅 끝을 향하여(땅 끝 기맥 후기) ♥
♣ 땅 끝 기맥 2구간 산행(해남 동창회 참석)
★ 산행일자 : 2010. 4. 24(토), 맑음
★ 산행코스 : 세류촌 임도 → 덕룡 임도(덕룡재) → 기동마을
★ 산행거리 : 도상거리 약 2㎞
★ 산행시간 : 5시간 30분(알바 4시간, 점심 20분포함)
★ 산 행 자 : 민 경 암(범창), 김 호 곤
★ 산행(동창회) 소감
2010년 4월 24일(토)에 해남으로 꽃구경(나중에 동창회로 바뀜))을 가자고, 마산서교 제19회 재경 동창회 총무인 전종현 동기가 연락이 왔으나, 작년 서울시립대학교 6개월 장기교육생 동기들과 월악산을 산행하기로 사전에약속이 되어있어,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몇 일후 교육동기생들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산행이 5월로 연기되었다.
따라서 땅 끝 기맥 2구간을 산행하고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민경암(범창) 동기에게 연락을 하고 용산역에서 07시 20분에 출발하여 나주에 10시 11분에 도착할 KTX 열차표를 예매하고, 그 동안 준비하지 못한 구간별 산행지도 만들고, 다음지도 로드뷰도 보면서 1구간 산행 때 산행 지도를 준비하지 못해 40분 동안 알바를 해기 때문에 이번에는 실수 없이 산행을 잘하고, 광명시 철산역에서 10시에 출발할 재경 동기들과 합류하여 해남 동창회에 참석하려고 열심히 준비하였다.
1구간 산행 후 무엇이 얼마나 바쁜지 3주 동안 한 번도 산행을 하지 못해 요즈음 컨디션이 영 엉망이다. 그래도 이번 구간은 도상거리 약 5㎞이내이며, 시간이 아무리 많이 걸려도 3시간이내면 산행이 끝나리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용산역을 출발하였다. 그 안일한 생각이 나중에 복병을 만나 약 4시간이상이나 알바를 하는 웃지 못 할 사건이 일어났다.
용산역을 출발하여 광명역을 지나면서 푸른 하늘과 녹색초원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젖어든다. 혹시나 이번 동창회 때 그 옛날 초등학교 4학년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 때 내가 좋아 했던 어느 봄 날 아지랑이 속의 그 여학생을 만날 수 있을까? 얼마나 늙었는지, 아니면 몸이 뚱뚱할까? 지금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졸업한지 40년이 되는데 지금까지 한번이나 만나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무엇 때문에 이제까지 앞만 보고 살아왔을까? 이제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자주 만나면서 살아야 되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나주에 도착 시간인 10시 11분에 정시에 도착을 했다.
나주시 중앙동 나주곰탕 하얀집에서 곰탕을 맛있게 먹고 10시 50분 버스로 영암으로 출발하여 11시 30분에 영암터미널에 도착했다. 영암터미널에서 금정면 세류촌 임도(2구간 들머리)까지 택시를 이용하여 12시 10분경에 도착한다.
산행 준비를 마치고 12시 20분에 덕용재를 향하여 출발한다. 출발할 마루금은 사유인지 철망으로 통제를 하고 있어 우회하여 직진
하니 임도 끝에 철망이 설치되어있고 표시기가 보이지 않아 다시 출발한 제자리로 돌아와 자세히 조사하면서 진행하니 표시기 같은 것이 보이는데 확신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표시기를 무시하고 산행지도를 보고 계속 진행을 하게 되었다.이때 조금만 주의를 했다면 4시간이상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옛말이 틀리지 않다. 민경암(범창) 동기 말이 오늘은 표시기가 보이지 않고 하니 모든 것을 무시하고 오지 산행을 한다하고 생각하고 모든 구간을 다 끝낸 다음 마지막으로 2구간 산행을 다시 하자고 한다. 그래서 오늘 산행은 고작 약 5㎞이내인데 굴어가도 가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을 편히 먹고 산행을 하기로 한다.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진행하다가 점심을 먹고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발한다. 이렇게 계속 진행하다보니 너무 많이 온 것 같고 이상하다. 지금쯤은 아크로CC 골프장이 보여 하는데 생각하고 산에서 두릅을 따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우리가 전혀 딴 방향으로 온 것 같아, 일단은 하산하기고 결정하고 도로에 도착하여 아저씨들에게 아크로CC 골프장 방향을 자세히 물어보고 진행하니 덕용마을도 보이고, 조금 더 가니 오늘 통과해야할 덕용재에 16시 49분에 도착한다.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던 표시기가 우리를 반겨준다. 반가운 마음에 표시기 사진을 촬영하고, 마루금을 따라 아크로CC 골프장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산 정상에서 우리가 왔던 마루금을 보니 4시간 전에 처음 출발했던
지점이 보인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4시간이상을 헤매고 다녔는데 우리가 가야할 거리를 고작 1㎞도 못 갔다.
우리가 17시 정도에 서울 동기들과 합류하기로 했는데 오지 않아 해남에서 재경동창회 회장인 임한복 동기가 늦게 온다고 전화가 온다. 우리가 가야 할 거리는 약 4㎞정도이며, 시간은 2시간정도 소요 될 것 같다. 이렇게 가다가는 어두워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동창회에 늦을 것 같아 일단 탈출하기로 결정하고, 사전에 우리와 합류하여 해남까지 같이 갈 광주 민용기 동기에게 전화하니 광주에서 출발을 했다고 하면서, 지금 묘령의 여인과 같이 가고 있으니 기대하라고작업을 해보라고 한다. 얼마 후 진행하다가 기동마을로 탈출하여 봉황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광주의 민용기 동기와 합류하게 되었다. 차속의 묘령의 여인은 광주에 사는 박정숙 동기다. 민용기 동기와 박정숙 동기는 실로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 반갑다. 차에서 그 옛날 민경례 동기 집에 밤에 놀러 갔던 이야기 등을 하면서 해남에 19시 40분경에 도착했다.
해남읍 해리 함초식당에 19회 동기들 42명(재경거주 동기 23명, 해남, 광주 등 거주 동기 19명)이 모여 재경동창회 임한복 회장, 해남동창회 박석안 회장의 인사말과 환영사를 듣고 술과 저녁식사를 했다. 거의 40년만에 만나는 주숙희, 서향심, 민홍숙, 안옥희, 주청심 동기들과 얼굴을 몰라 인사를 못 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20시 10분경에 대흥사로 이동하여 월드컵주점에서 맥주와 노래, 춤 여흥을 마음껏 즐기다가 23시경에 숙소인 대흥사 유스호스텔로 이동하여 그 옛날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모 여자동기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느 남학생이 연애편지를 자기에게 주었다고 공개적으로 말을 한다. 그 남학생은 과연 누구일까? 그 옛날 순수했던 시절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 다음날 06시 30분경에 기상을 했다. 개인사정 등으로 바쁜 동기들은 어제 밤과 오늘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고, 나머지 동기들은 아침을 먹고 완도를 관광하고 점심을 먹은 후 서울로 올라가면 된다. 07시 40분경에 산 마루터 식당에서 백반을 먹고 완도를 향해 출발한다. 오늘 가이드는 젊은 날에 서울에 살다가 이제는 고향을 지키면서 이장을 8년 동안 한 이형준 동기가 하기로 한다. 이형준 동기의 가이드 실력은 참으로 놀랍다. 우리지역 마을에 대한 유래, 해남에 대한 역사․문화 등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완도를 가는 길에 공재 윤두서 선생님의 고택(현산면 백포리)을 가보기로 했다. 고택을 가는 길에 가이드 이형준 동기가 공재 윤두서 선생님과 같은 해남 윤씨인 윤상현 동기의 인간성에 대한 칭찬이 아주 대단하다. 막걸리도 좋아 하고, 그 옛날 시골아저씨 같은 다정다감한 마음씨를 가진 윤상현 동기를 나도 많이 좋아 한다. 09시 10분경에 고택에 도착, 사진을 촬영하고, 고택을 구경하고 완도로 향한다.
여기서 잠깐 우리 고향의 인물이신 공재 윤두서 선생님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윤두서(1668-1715)는 윤선도의 증손자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효언(孝諺) 호는 공재(恭齋) 정약용의 외증조이자 윤선도의 증손이다. 장남인 덕희와 손자인 용도 화업(畵業)을 계승하여 3대가 화가 가정을 이루었다. 정선·심사정과 더불어 조선후기의 삼재로 일컬어졌다.
1693년(숙종19)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집안이 남인계열이었고 당쟁의 심화로 벼슬을 포기하고 학문과 시서화로 생애를 보냈으며, 1712년 이후 만년에는 해남 연동으로 귀향하여 은거하였다. 죽은 뒤 1774년(영조 50)가 선대부호조 참판에 추증되었다. 조선시대 중기와 후기의 변환기에 활동한 그는 말과 인물화를 잘 그렸는데, 산수화를 비롯해서 회화작품은 대체로 중기의 화풍을 바탕으로 하여 전통성이 강한 화풍을 지녔다. 그의 말 그림과 인물화는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필력으로 정확한 묘사를 보여주며 해남에 종손이 소장하고 있는〈자화상 自畵像〉이 대표작으로 지목된다.
해남의 종가에는〈자화상〉외에도 그의 유묵과 서적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유작들은 보물 제481호로지정되어 있다. 종가소장 유작들 가운데에는 목기깎는 장면을 그린〈선차도 旋車圖〉, 나물캐는 여인을 그린〈채애도 採艾圖〉둥 풍속화가 포함되어 주목된다.
이는 김홍 등에 의하여 유행하는 18세기 중·후반의 풍속화를 예시하여준 것으로, 아들 덕희가 쓴 행장에도 나타나듯이 그의 실학적 태도도 엿볼 수 있다. 그의 실학전 학문에 대한 취향은 그가 남긴《동국여지도 東國與地圖》나 일본지도(日本地圖), 천문학과 수학에 관한 서적, 그리고 이잠·이서등 이익 형제들과의 교분이 잘 말하여 준다. 또한. 그의 유품에는 중국 남종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의 수용에 중요한 지침서인《고씨역대명화보 顧氏歷代名畵譜》도 끼어 있어서 그가 남종화풍과 접촉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 실제 종가 소장의 화첩에는 남종화풍의 산수화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중국적이거나 전통성이 강하지만 18세기 중·후반 이후 의 화단을 풍미한 남종화풍과 풍소화의 선구적 위치에 놓여있기도 하다. 그의 화풍은 아들인 덕희와 손자인 용에게 계승되었으며, 조선 말기의 허련 도 해남의 종가인 녹우당(綠雨堂)에 와서 그림을 공부하면서 전통화풍을 익혔다. 그리고 그의 사실주의적 태도와 회화관은 정약용의 회화론 형성에 바탕이 된다. 학자로서의 뚜렷한 업적은 나기지 않았지만, 풍부한 지식과 실학적 태도는 이익 형제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윤선도의 대표작품으로는〈자화상〉·〈채애도〉·〈선차도〉·〈백마도 白馬圖〉등이 《해남윤씨가전고화첩》에 전하고 있으며 , 이 화첩은 산수(山水)·산수인물(山水人物)·영모(翎毛)·화조(花鳥)·초충(草蟲)·도석인물(道釋人物)·화훼도(花卉圖)등 60여점의 소품으로 꾸며져 있다.〈노승도 老僧圖〉·〈심득경초상 深得經肖像〉·〈출렵도 出獵圖〉·〈우마도권 牛馬圖卷〉·〈심산지록도 深山芝鹿圖 〉은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퍼옴)
공재 윤두서 선생님의 고택을 출발하여 송호 해수욕장을 지나 우리나라 국토의 끝 지점인 땅 끝 전망대를 우회하여 푸른 바다가 보이는 사구미 해수욕장 주변의 정자에서 주청심 동기가 해온 맛있는 떡과 간식을 먹고, 사진도 촬영하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북평면 남창을 지나 시원한 바다를 보면서 11시 15분경에 완도 어시장에 도착했다. 자연산 광어 4㎏짜리 1마리와 숭어 등으로 회를 떠서 완도 앞 바다를 바라보면서 소주와 같이 맛있게 먹었다. 너무나 쫀득쫀득하고 찰진 광어회, 홍성만 동기가 만든 회 비빔밥 맛이 정말 환상적이다. 이렇게 동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쉬움이 남지만 13시 20분경에 서울로 출발한다.
서울로 가는 길에 해남읍 고도리에서 해남, 광주 등에서 사는 동기들과 작별을 하고 신기리 김용운 동기 본가를 거처 고암리 맹영분 동기 친정에서 맹영분 동기 늦둥이 아들을 태우고, 여자 동기들이 잠깐 쑥을 캔 다음에 서울을 향하여 출발한다. 헤어지기가 섭섭하다고 이형준 동기가 마산면 화내리 막걸리 주조장에서 막걸리를 한잔하자고 하여 14시 35경에 주조장에 도착한다. 주조장 사장님과 사진도 촬영하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15시경에 서울로 출발한다. 막걸리도 대접해주고 막걸리 한 박스를 버스에 실어준 이형준 동기에게 감사를 드린다. 나중에 버스에서 막걸리를 먹고 생리현상 때문에 버스기사와 약간 좋지 않은 해프닝이 일어난다.
마산면 막걸리 주조장에서 마지막 사진을 촬영하고 카메라 배터리가 없어 서울을 올라오는 동안에 윤상현, 김용운, 김미숙 동기의 우스운 장면을 촬영하지 못해 너무나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여튼 윤상현, 김용운 동기의 우스운 장면과 김용운, 김미숙 동기의 입담에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가슴이 아파 더 이상 웃지 못 했다. 그 옛날 장소팔씨, 고춘자씨 못지않게 대단하다. 웃고 떠들고 하면서 광명시 철산역에 22시 20분경에 도착하니 이번에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한 이동근 동기가 반갑게 맞이한다. 이렇게 하여 땅 끝 기맥 2구간 반 토막 산행과 1박 2일 해남 동창회가 모두 끝났다.
또한 버스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은 사진을 촬영하지 않아 생략한다. 끝으로 이번 동창회가 성황리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고가 많은 해남 박석안 회장, 민영숙 총무, 재경 임한복 회장, 전종현 총무, 가이드도 잘하고 고향 막걸리를 사준 이형준 동기, 맛있는 떡을 해온 주청심 동기, 진주, 창원에서 온 민홍숙, 안옥희 동기, 목포 김용환 동기, 광주 민경수, 민용기, 주숙희, 박정숙 동기, 그리고 해남 이승현 동기, 동창회에 참석한 해남 동기들 및 사회를 보았던 홍성만 동기, 버스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준 윤상현, 김용운, 김미숙 동기, 선물을 준비해준 박건수 동기, 그 외 동창회에 참석한 재경 동기들, 그리고 우리 19회 동기들 모두에게 대박과 감사를 드린다.
나주곰탕 가마솥
2구간 들머리
덕용재
대흥사 유스호스텔
※ 사진은 용량이 부족한 관계로 다음 페이지에 계속올립니다.
첫댓글 호곤씨 글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빨려들어가네요. 중간 중간 맛깔스러운 글도 넣고, 기수중에 누군가를 짝사랑했다는것을 살짝 양념처럼 스쳐가게 암시를 하면서 넘어가는 등 대단해요. good.
선배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글을 쓴다고 하는데 잘 되지 않네요. 카페 활성화를 위하여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호곤이 자네가윤가인 나보다더 잘ㄹ알고있네 어디문헌에서베꼇나 왜 숭어는뺐어 자네가다 얌얌?
자기가 숭어를 맛이게 먹었으면서 왠 숭어 타령인가 자주 만나서 막걸리
한잔...............
호곤 참말로글스는재주가잇군 가동해내 막걸리 먹을때는꼭불러주세요
꼭 불러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