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마재 신화의 미당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만난 하루(#43)
2022. 12. 25. (일) 날씨 : 흐리다 맑아짐 기온 : 섭씨 –9~-4도
거리 20km 5시간 20분 소요 동행 : 귀연산꾼 18명
삼인교차로-용산리 분청사기요지-연기제-질마재-선운제-
서정주 생가-상포마을회관-김소희 생가
<솔베이지의 노래>
아마도 겨울이 가고 봄도 가겠지.
겨울 가고 봄도,
그 후에 여름도 가고,
한 해 전부도,
그러나 언젠가 너는 올거야.
청춘은 짧다.
꿈꾸기를 그만두었을 때,
그 청춘은 끝나는 것이다.
도예가 쇼코는 다음 세대에 남길 작품을 맡아 두는 것처럼,
관계를 유지할 때는 서로의 시간을 맡아 주는 마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저 상대의 삶 중 한 시절을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라는 것.
‘진정한 파트너는 서로 한 시절을 존중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좋은 생각 2023년 1월호에서
인생에서 많은 시간들이 멋지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매 순간이 찬란하지만 깜빡 잊고 사는지 모른다.
세월을 이기는 유일한 기술이 참고 견디는 것이라면 늘 희망을 유지하며 지내는 것이 행복한 삶을 지내는 방법이 된다.
오랜 시간을 동아리 활동과 산행으로 함께하던 선배가 숙환으로 하늘나라로 갔다.
반듯한 정신과 확실한 행동으로 주변에 귀감이 되던 분이셨기에 조금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진 것이 못내 아쉽다.
몇 년 전 좋아하던 목장 하던 선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날 때 함께 문상하며 ‘죽는 것도 깔끔하게 정리 잘하고 가야한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생하다.
7월말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서 무려 1시간여를 통화했던 기억이 난다.
사소한 일과 주변 정황을 디테일하게 얘기하며 큰 병을 앓고 있음을 감지했었는데 겨우 5개월 만에 생을 마감했다.
인생은 누리는 것도 즐기는 것도 아니고 견디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살면서 어느 순간 자기가 살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음을 감지할 때, 주변을 정리하고 남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불평과 비난보다는 칭찬과 격려 그리고 이해심을 갖고 상대를 대해도 한참 부족하다.
자만과 아집은 나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몰락의 화신이 된다는 것을 터득해야 한다.
대자연 속에서 인간은 너무도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
2011년 네팔 랑탕 계곡 트레킹에서 4,500m 봉우리(peak)를 오르려 준비하다 선배 두 분이 갑자기 등정을 취소했던 그날이 생각난다.
팀원들이 새벽에 봉우리로 출발하던 모습을 바라보며 목적지인 고샤인 쿤드에 가기 위해 자신을 내려놓던 그였다.
자유 분망하게 넓은 세상을 펼치려는 오지랖이 인간에게는 늘 존재한다.
그런 인간의 속성은 가끔 실패와 고난의 아픔을 겪게 한다.
인내하고 견디는 자기관리는 미약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다.
먼저 가신 저 세상에서 후배들을 바라보며 아쉬운 미소 짓는 모습이 상상된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서해랑길 걷기에서 낙동정맥을 함께 걸었던 산길 저편 기억을 추억해 본다.
<고창 부안 해변 걷기>
풍천장어는 전라북도 고창군을 흐르는 주진천(인천강)과 서해가 만나는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부근에서 잡히는 뱀장어를 가리킨다.
3월과 6월 사이에 포획이 이뤄지며, 독특한 양념구이로 유명하다.
지역 주민들은 주진천을 풍천강이라고 부른다. 바다 쪽 갯벌이 간척되기 전, 바닷물은 지금보다 훨씬 내륙 안쪽으로 들어왔다.
실뱀장어는 민물에서 7~9년 이상 성장하다가 산란을 위해 태평양 깊은 곳으로 회유하기 전 바닷물과 민물이 합해지는 지역에 머문다.
주진천에 하루 2번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자연산 장어가 바닷물과 바람을 함께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바람 風' 자와 '내 川'자를 써서 풍천장어라고 불렀다는 설명도 있다.
풍천은 특정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백허당(白虛堂)은 효자 김하익이 눈물로 고인돌에 쓴 글씨다.
부친의 병을 돌보기 위해 귀한 물고기를 잡아 돌아가던 그는 효자바위 근처에서 호랑이를 만나게 된다.
눈물로 백허당 세 글자를 새겨 호랑이에게서 풀려났다는 전설이 전한다.
정읍에 거주하던 자(김하익)가 모친이 병에 걸려 잉어슬개를 먹으면 치유가 된다 하여 추운 겨울에 용산리 주진천(옛명칭:장수깡)에서 잉어를 잡았다.
연기제를 넘기전 호랑이(白虎)를 만나 모친의 병이 위독하여 살기를 청하니, 도신이 나타나 바위에 눈(雪)으로 백허당이라는 글씨를 쓰면 살려준다고 한다.
그래서 손에 눈을 묻혀 바위에 글을 쓰자 백호와 도신이 사라져 모친의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귀얄분청, 조화분청, 인화분청 등이 다량 출토되고 있는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의 분청사기 가마터다.
저수지를 낀 언덕바지에 자리하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의 고부군(현재의 부안면)에 2개의 자기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수동리에서 멀지 않은 용산리의 가마터가 그 중 하나다. 도자기를 보다 대량으로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당시에는 해안을 중심으로 가마터가 조성되었다.
연기제
질마재
소요산은 전북 고창과 경기도 동두천 두 곳에 있으며 한자 이름도 같다. ‘소요’라는 이름에는 ‘구름 같은 인생, 즐겁게 노닐다 간다’는 뜻이 담겼다.
소요산 정상에 가기 위해서는 사자봉(341.4m)과 수월봉을 비롯해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여럿 거쳐야 하지만 주능선에만 올라서면 정상까지는 크게 힘들지 않다.
소요산 주변에는 연기교, 연기마을, 연기제 등 연기(緣起)라는 지명이 많이 들어간다. 이는 소요산에 있었던 연기사와 연관이 있다.
백제 시대 연기조사(緣起祖師)는 백제 성왕 22년(544)에 구례 화엄사와 연기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연기조사는 인도에서 온 고승이라는 설과 고창 흥덕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소요산 자락을 넘어 선운리에 이르는 약 2km 구간을 질마재 길이라 부르는데 질마는 소나 말의 안장을 뜻하는 길마의 사투리다.
소금 농사를 업으로 살아가는 심원 사람들이 좌치 나루터를 넘어와 부안 알뫼 장터에서 곡물과 교환하는데 꼭 필요한 길이었다.
성황당이 있는 소금샘은 잠시 쉬어가며 밥을 해 먹었던 장소로 아직도 샘터가 남아 있다.
질마재를 넘어 미당 생가가 있는 반월 마을로 눈밭을 걷는 일행들
선운제
미당 서정주 생가
서정주의 고향인 '질마재'를 소재로 해 1972년에서 1974년까지 연작 형태로 발표한 '질마재 신화'와 1973년 월간 문예지의 권두시로 연재한 '노래'로 나누어져 있다.
이전과는 또 다른 산문시의 세계를 선보여 서정주 시 세계의 한 분기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당의 질마재 신화로 유명한데 4~50년을 신혼 첫 날 밤의 자세로 앉아 기다린 신부를 고향으로 비유해 쓴 이야기로 ‘회귀의 정서’로 독자들 심금을 울렸다.
미당시문학관은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자 영면지인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마을에 세워진 기념관이다.
광활한 부안 간척지 뜰
양식장
눈에 파묻힌 옛 집
부안 갯벌
부안 설국
참석 인원이 적어 겨우 진행한 서해랑길 걷기가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선물과 아름다운 설경으로 행복했다.
눈이 내린 산길과 바닷길을 함께 걸으며 미당과 김소희 명창을 만나는 하루가 눈부셨다.
폭설이 내린 고창 부안 바닷가의 풍경은 근래 보기 힘든 아름다운 설경으로 다가왔는데 질마재를 넘는 러셀과 눈 밟는 걷기는 신이 났다.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아 들판을 지나는 시간들도 지루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며 즐거웠다.
곰소만을 건너 보이는 내소사 방향 산줄기 능선이 줄지어 모습을 보여 멋지다.
서해랑길을 걸으며 설경을 보는 낭만적 기쁨이 영하의 날씨에도 전혀 춥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미당과 인촌 그리고 김소희 명창의 발자취를 하루에 만날 수 있음도 이번 구간의 좋은 테마다.
겨울 철새
조류 관찰대
김소희 생가
김소희의 본명은 김순옥(金順玉). 호는 만정(晩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이며 당대 명창 이화중선의 「추월만정」을 듣고 감동받아 판소리에 입문하였다.
수많은 제자를 길렀는데 안향련, 한농선, 박초선, 오정숙, 안숙선, 이일주, 신영희, 박양덕, 오정해 등이 김소희한테 판소리를 배웠다.
제자 가운데 안숙선이 김소희의 소리를 가장 잘 물려받은 명창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신영희는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김소희제 춘향가 보유자 후보로 인정받았다.
김소희는 숨을 거두기 얼마 전 ‘광대는 대중을 자기 속으로 끌어들이지만 기생은 자신이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인촌 김성수 생가(仁村)는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 있다. 대한민국 제2대 부통령이었던 인촌 김성수(1891∼1955)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김성수는 경성방직주식회사와 동아일보를 세웠고,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웠다.
첫댓글 덕분에 갈까말까 망설이다가 보지 못한 연기제 둑방 아래쪽에 궁금증이 풀렸네요.
효자가 눈물로 쓴 백허당(白虛堂)글씨 고인돌과 분청사기 가마터였군요.
고맙습니다.
새해에는 더욱 더 건강하시고 福 많이 받으세요~
허술한 건강 관리로 인하여 소중한 기회를 놓쳐 아쉽지만 청산님 덕분에 동행자가 되어 걸은듯 생생한 여정 눈에 담아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