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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슬람권에서는 세계에서 기독교 선교사를 두 번째로 많이 배출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포하고 그들의 오일머니를 집중적으로 투자하며 이슬람교를 알리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회교국가가 될 경우 국민 1인당 8천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더라구요..;)
일부 지각이 없는 모대학의 이슬람학과 대학교수는 아랍국가로부터 장학지원을 받아 코란을 한글로 번역하고 이슬람권 국가로 학생들을 유학 보내고 기독교에서의 목사과정과 동일한 과정인 이맘을 이수하게 하여 우리나라 대학생 출신의 이맘이 이미 한 명 배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더 이상 이슬람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깨어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에 맞서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주변의 크리스천에게도 알려 경각심을 일깨워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가장 강한 무기인 기도에 힘써주세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저도 이슬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과연 이슬람과 기독교 어떤 점들이 같고, 어떤 점들이 다를까요?
1. 이슬람교에 대하여
불교, 기독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 중의 하나이며 무함마드교, 마호멧교, 모슬렘교, 무슬림교라고도 한다. 이슬람교는 매우 공격적이고 동적이며 선교 지향적인 종교이다. 이슬람교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종교로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를 중심으로 한 중근동, 중앙아시아의 지배적 정교로서 대서양 연안에서부터 필리핀, 한국, 일본은 물론 미주 대륙까지 손을 뻗치고 런던과 뉴욕, 로스앤젤레스까지 회교 사원을 세우는 대담성을 보이고 있다. 모하멧교 혹은 무함마드교라는 것은 교조의 이름이 마호멧 혹은 무함마드기기 때문에 교조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슬림이란 이슬람교를 믿는 신도들을 의미하며 그들의 종교를 무슬림교라 하고, 모슬렘은 집합명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순복하는 자들”이란 뜻이다.
이슬람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주님이 오시기 전에 복음을 전해야 할 마지막 거인이다. 이슬람은 지난 14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선교를 주도해 왔던 서구 세계는 이러한 이슬람의 성장을 애써 외면해 왔다.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전제 아래, 앞으로 미국은 공산주의가 무너짐에 따라 가상의 적으로서 이슬람을 겨냥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 때문이다. 우리는 그 명령 때문에 무슬림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주님이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위대한 사명,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신 그 명령에 우리는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무슬림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많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 이슬람교의 경전
이슬람의 경전을 말할 때 ‘순나’와 ‘하디스’가 있는데 ‘순나’는 무함마드의 생애와 교훈 그 자체를 말하고 ‘하디스’는 순나를 해석한 주석서이다. 이슬람의 경전은 ‘꾸란’이라 하며, 아랍인들이 사용하는 말로는 ‘읽는다’, ‘암송한다’는 뜻에서 나왔다. 꾸란은 1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가 하나로 꿰뚫는 통일성이 없다. 꾸란의 내용이 알라신의 계시이고 이를 무함마드가 23년간 받아서 외우고 내려온 것을 타비트라는 비서가 받아 쓴 것과 무함마드의 사후 그의 후계자 아부 바크르의 지휘하에 편집된 것이 초간본 꾸란이다. 꾸란의 해석은 알라 이외에 어느 누구도 완전할 수 없고 권위는 무슬림에게는 절대적이다.
3. 이슬람교의 신앙과 신학
이슬람교는 기독교, 조로아스터고, 시크교와 같이 유일신을 믿고, 세계적 종교이며, 인격적 교조를 가지고 있다는 3대 특징이 있다. 이슬람교에서 최고의 신이라고 하는 알라는 개념상으로는 기독교의 구약 성경에 있는 최고의 유일신 엘로힘과 동일한 어근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란 말이다. 이슬람교의 최초의 신자는 가족에서 출발하였다. 이슬람교에서는 기도를 키블라라고 하면서 이를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겼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할 때 어디를 향해서 기도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속죄일에 금식하는 것을 모방해서 라마단 혹은 라마잔이라 하여 일년에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로 지키게 규정하였다. 무함마드는 종교와 정치를 통합한 교회국가의 신정 정치를 시작하였고 스스로 왕직과 선지자직을 겸하였다.
라마단 단식 기간 중에는 일출에서 일몰까지의 사이에 식사, 수분의 섭취, 성교는 금지되어 있다. 절대적으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고 야간에는 음식도 취할 수 있으며 라마단에 쓰이는 특별한 음료수와 과자가 있다. 이슬람의 단식은 유복한 자에게 단식의 괴로움과 가난한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라술”은 창조주의 말씀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업무 외에 그 복음을 인류에게 전달하여 가르치고 인도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선택받은 자들이다. 무함마드는 예언자와 선지자들을 구별하지 않으며, 모든 무슬림들은 그들의 행적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인류의 지도자로서 알라의 선택을 받은 훌륭한 인간들이므로 신자들은 누구나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보편적 교리이다. 이슬람교들은 천사가 양식, 풍우, 선과 악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천국과 지옥을 담당하고 심판과 부활의 날을 담당한다고 믿었다.
4. 이슬람교의 종파
‘순니파’라는 말의 의미는 “선지자의 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정통파 회교도라고 부른다. 가장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종파로서 무슬림 인구의 90%를 차지하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중심이다. 쉬아파는 소수 종파로서 정통파로부터 이단이라 하여 수난을 가장 심하게 받고 있다. 수퓌파는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미시시즘의 종파인데 이슬람의 정통 노선인 순니파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는데 환상, 치유, 기도에 치중하고 알라신과 신비적 연합관계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춤이나 마약 등 환각적이고 쾌락적인 것으로 영성 훈련을 함으로써 이 종파는 이슬람 종교를 대중적으로 넓게 확산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5. 이슬람교의 문화
이슬람의 문화이해의 대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모든 이슬람 국가가 신국, 즉 신정국가라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과 종교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는 문화라는 점이다. 이슬람 문화의 특징은 영적이고 현실적이면서 강력한 종교적 특징으로 결합된 문화이다. 이슬람 문화의 정치적 특성은 한마디로 이슬람교도들의 상징인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꾸란으로 상징되는 바와 같이 “폭력적인 힘의 지배”이다. 이슬람은 독자적인 사막 문화를 건설하면서 이를 세계화사키며 보급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슬람의 건축 양식은 매우 독특하다. 돔 형식의 성전과 뾰족탑은 이슬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이다. 그리고 아라비아의 연금술은 근대 화학의 시조이며, 화약의 발명이나 약품의 제조에 있어서 아라비아는 선구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슬람교에서 결혼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무이다.
6. 기독교의 뿌리가 강한 중동지역이 이슬람이 된 가장 큰 이유
중동지역이 이슬람권이 된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지상명령을 실행하기 위한 선교적 삶을 잃어버린 데 있다. 중동지역에서 이슬람으로의 개종자가 많았던 또 다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신념보다 정치적, 경제적 실리를 택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정치가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약간의 종교세만 내면 각자의 종교에 대하여 자유를 보장해준다고 했다. 이것은 아주 정치적인 것으로, 겉으로 보기에도 관대한 정책이었다. 실제로 당시에 기독교인들이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이슬람에 의해 조종당하게 되었다.
1) 이슬람의 경전이 꾸란은 예수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꾸란은 이슬람의 경전으로 무슬림들은 이것을 암송하며 연구하고 있다. 무슬림들에게 꾸란은 절대 진리이다. 그런데 꾸란은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꾸란에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인정하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며 예수님만을 메시아라고 기록하면서도 예수님의 사랑과 사역에 관해서는 잘못 적고 있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정하고 있으며, 특별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있다. 왜곡된 예수님을 날마다 암송하고 어린이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 예수님을 앎에도 불구하고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너무도 안타까운 것이다.
2) 유럽에서도 이슬람이 확산되고 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유럽은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기독교 역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마틴 루터, 칼빈 등이 이곳에서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개신교가 시작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 1세기 당시 중동이 기독교의 중심지였다면, 그 이후의 기독교 중심지는 서구 유럽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유럽에 이슬람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7. 이슬람교의 교리 : 그들은 무엇을 믿는가?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은 유대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꾸란의 내용 중 60%는 구약에서, 6-7%는 신약에서 그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그래서 신학적인 체계도 기독교와 유사한 것들이 있다. 또한 이슬람에는 당시 아랍인들의 토속적인 신앙 행위들이 부분적으로 가미되어 있다. 라마단 금식은 아라비아 사비인들이 행하던 것으로 당시에는 아라비아인들의 보편적 전통이었는데, 무함마드는 이를 적절히 교리에 반영하였다. 메카의 카바 신전 순례는 이슬람 이전부터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이 행하여 오던 것이고, 기도방식은 메디나에서의 유대인들의 기도 형식을 빌려온 것이다. 이슬람의 신앙은 믿음과 행위에 근거하고 있다.
1) 알라에 대한 믿음
무함마드의 아버지 이름은 압둘라였는데 그 이름의 뜻은 아랍어의 압둘 알라로서 ‘알라의 종’이란 뜻이다. 이슬람에서의 신의 이름은 ‘알라’이다. 알라는 이전부터 내려오던 아라비아의 전통적인 신들 중 하나이며, 부족신 가운데 가장 높은 신의 이름이었다. 알라는 유일신이며 창조주이고 심판자이며 전능자이며 영원하고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고 아들도 갖고 있지 않다. ‘알라’라는 단어 자체가 하나님이란 뜻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 내재된 속성은 성경과 모순된다는 것도 알아야 하며, 이러한 알라를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 천사에 대한 믿음
이슬람에서의 천사는 알라가 창조한 영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신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권위가 없고, 어떤 사람을 위해서 알라에게 청원할 권한이 없다. 이슬람에서의 천사들은 죄가 없고, 항상 사람들을 감싸며 좋은 행동과 나쁜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한다고 한다. 모든 무슬림들은 죽으면 천국의 입구에서 두 명의 기록 천사가 수종을 드는데 하나는 선행을, 하나는 악행을 기록한다고 믿고 있다. 이슬람에는 영적인 존재로서 천사와 인간 사이에 진이란 존재가 있는데, 이 진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나쁜 진들은 심판의 날에 유죄를 선고받고 지옥으로 가게 된다.
3) 책에 대한 믿음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인류에게 104권의 거룩한 책을 주었다고 믿는다. 이슬람에 따르면 꾸란은 알라에게서 온 최종적인 계시로, 인간에게 준 알라의 완성된 마지막 계시라는 것이다. 꾸란은 성경의 부패를 바로잡고 알라에 대한 완전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주어졌다고 주장한다. 꾸란에 나와 있는 성경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은 모두 변질되기 이전의 원래 성경에 대한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4) 선지자에 대한 믿음
이슬람 전통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12만 4,000명의 선지자와 315명의 사도만이 알라에 의해 보냄을 받았다고 믿었다. 꾸란은 예수님에 대하여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꾸란은 28명의 선지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그들은 알라의 유일하심과 인간들에게게 다가올 심판의 날을 경고하기 위해 보냄받은 자들이다. 이슬람 학자들은 꾸란에 적힌 대로 예수가 가장 위대하며 탁월하다고 인정할 경우, 무함마드의 생애가 축소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5) 마지막 날에 대한 믿음
꾸란에는 세상의 마지막 날 반드시 심판이 임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심판에 대한 주제는 꾸란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인데, 꾸란 전체 구절의 14%나 되는 구절 속에 마지막 날의 심판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꾸란에 의하면 마지막 날 천사들은 증인이 되고, 진들은 책임을 묻기 위해 불려질 것이다. 좋은 행위와 나쁜 행위는 저울에서 그 무게가 달아지고, 그 결과에 따라 인간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는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한 모든 말과 행위들이 기록된다.
6) 숙명에 대한 믿음
이슬람에선 오직 알라만이 인간의 행위와 운명에 대한 유일한 결정권을 가진다. 이것은 일종의 숙명론으로서 알라는 선악을 분별함에 있어서 여타의 간섭을 불허한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무슬림은 알라의 뜻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판에 새긴 것처럼 분명하게 결정되어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인간의 선행과 악행도 전적으로 알라에게 달려 있기에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며 자유의지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알라는 분명히 다르며, 알라에게는 하나님처럼 사랑의 속성이 없음을 알게 해준다.
다음은 네이버 백과 사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슬람교 : 7세기에 아랍의 예언자 마호메트가 창시한 종교.유일신론을 강조했고 고유의 엄격한 종교의례를 발전시켰다. 이 종교 안에서 여러 종파와 종교운동이 일어났고 이슬람 세계 내에서도 지역마다 문화적·종교적으로 큰 편차를 보이지만 모든 신도들은 공통된 신앙으로 묶여 있고 단일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코란 : 이슬람의 기본 가르침은 〈코란〉에 있다. 이슬람교도(Muslim)들은 〈코란〉이 태초의 신의 말씀으로 가브리엘 천사가 알라의 명을 받아 문맹(文盲)인 예언자 마호메트라는 복사기를 통해 한 자, 한 획도 빠짐없이 그대로 인류에게 전달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 신성한 절대신의 말씀을 운율에 맞추어 낭송하는 것은 그리스도교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나 중들이 불경을 읽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또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이슬람 성전 건물 안 벽에 우상이나 다른 그림을 새기는 것이 금기사항이었으므로 그곳에 〈코란〉 구절을 새겨넣는 것을 크게 선호하고 있다.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이 읽고 있는 〈코란〉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사망(632)한 지 20년이 지난 제3대 칼리프 우스만 이븐 아판('Uthmān:644~656 재위) 때에 완성된 것이다. 이때 양피지, 가죽, 야자나무 껍질, 나무 조각 및 낙타의 몸 등 여러 군데 흩어져 씌어 있는 〈코란〉 구절을 모아 비단과 파피루스에 다시 수록하여 기본경전으로 만든 것이다.
〈코란〉은 114장 6,200여 절로 나누어져 있고 가장 긴 장(章)은 오늘날의 인쇄체로도 30여 쪽이 되지만 짧은 것은 불과 3, 4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랍어로 장은 수라(Sura), 절(節)은 아야(Aya)라고 부른다. 각 장의 배열은 마호메트가 20여 년 동안 받은 계시 순이 아니며 제1장을 제외하고 대체로 가장 긴 장에서 짧은 장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그 짜임새가 낯선 〈코란〉은 각 장마다 독특한 이름이 있는데, 그 내용과의 연관성을 찾기가 힘들어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제2장은 암소의 장(surat al-baqr)이라고 부르는데, 암소에 관한 것은 총 286절 가운데 몇 절에 불과하다. 그 이름도 예언자 모세가 절대신의 명을 받아 살인자를 찾기 위해 암소 1마리를 죽인 데서 나왔다고 한다(2:73). 메카 초기의 계시는 주로 인간의 내면적인 것, 즉 절대신과의 관계와 임박한 최후의 심판 등을 다룬 내용이며 그 문체는 시의 운율로 되어 있지만 산문체이다. 반면 메디나에서 받은 계시는 주로 인간의 외면적인 것이어서 그 내용은 움마의 행정과 그 구성원들의 일상생활에 관한 것이 많으며 서술적인 문체이다. 또 메디나 계시는 〈구약성서〉 또는 〈신약성서〉에서 유래한 이야기나 일화도 포함되어 있으나 그 알맹이는 변형된 것이 많다.
〈코란〉은 아랍어 기록 문헌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랍 문학에 미친 영향 또한 지대하여 그에 버금 가는 아랍 문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고대 아랍 문학의 특징인 심취적 요소를 수준 높게 다듬어놓은 모형이어서 오늘날까지 아랍어가 분열되지 않게 막아준 파수꾼 역할을 했다. '코란'이란 말은 아랍어 동사 '읽다'(qa raa⁾a)에서 나온 파생어로 '읽는 것', 즉 '독경'(讀經)을 뜻한다. 예언자가 받은 첫번째 계시 96장 제1절도 '읽어라'로 시작된다. 〈코란〉의 어휘 하나하나는 이슬람교도에게 모두 신성한 것이고 절대진리이기 때문에 그것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서 법률을 도출(導出)해야 올바른 이슬람 성법(聖法 Shari'a)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이슬람교도들은 예언자 생존시부터 국가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통치수단으로 성법이 전제되어야 했다. 성법의 필요성은 〈코란〉의 해석에서부터 시작되어 그 해석학(tafsir)이 일찍부터 발달되었다(→ 색인 : 타프시르). 그래서 특정한 구절의 해설을 확정시켜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적 여건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해설이 권위를 가지게 된 예도 허다하다. 유명한 해설서로는 타바리(839~923), 자마흐샤리(1075~1145), 파흐룻 딘 알라지(1210 죽음)의 것이 있으며, 최근 것으로는 마호메트 아브두(1848~1905)와 그의 제자 리시드 리다(1935 죽음)의 해설서가 유명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수니파의 것이다. 시아파의 해설에는 투시(11세기)의 것이 명성이 높으며 신비주의자들에게는 이븐 알 아라비(1240 죽음)의 것이 주목을 끌고 있다.
8. 한국에서의 이슬람교
한국의 이슬람교는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한국 이슬람교협회를 발족, 초대회장 김진규, 부회장 겸 사무국장 윤두영과 신도 70여명으로 시작되었다. 초창기 10여 년간에 포교운영의 고난을 극복하고 65년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로 재발족, 67년 3월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로 인가되어 신도 7500의 교세를 갖게 되었다. 76년 5월 현재의 용산구 한남동에 중앙 성원을 건립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기타 6개국의 원조로) 80년 항도 부산에 제2성원, 81년 경기도 광주에 제3성원을 건립하였다. 또한 해외교포를 위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인도네시아에 지회가 설립되어 국내의 신도 수 약 32000의 교세를 가지게 되었다. 80년 5월 최규하 대통령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 시 고 칼리드 왕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 이슬람 대학교 설립 공사비 일체의 제공을 확약 받았으며 경기도 용인에 13만 평의 대지를 확보하고 기공식을 가졌다. 현재 한국 이슬람교는 70년대의 중동 붐을 타고 두드러지게 교세가 확장되어 근래에 매년 중동 각 국에서 무슬림이 되어 귀국한 1700여 명의 기능 근로자 신도들을 핵으로 삼아 신도 배가 운동을 펴고 있다.
또한 이슬람국가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 무슬림 근로자들과 주한 이슬람국 대사관, 영사관 등 외교관 신분으로 들어와 있는 무슬림들 및 사업차 또는 학생의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무슬림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각각의 이슬람 공동체에서 한국내의 이슬람 확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통한 한국에서의 이슬람 선교는 다원화된 사회의 한국인의 습성 및 기호와의 차이점을 비롯하여 예배의식의 용어 및 교리의 토착화 등 숱한 난제를 안고 있다.
한국 이슬람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토착화되어야 하며 상황화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한국 토착화는 말처럼 쉽게 이루어 질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이슬람에 있어 상황화는 이슬람의 정통성을 깨뜨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송원규, 한국 이슬람의 현황과 전망, 합동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p.41-42.).
한국교회는 위와 같은 한국에서의 이슬람의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주의해야 한다. 지금은 해외 이슬람 선교뿐만 아니라 국내 이슬람 선교에도 관심을 가져야할 시점이 되었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상황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대응과 선교전략이 구비되지 못한다면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한국도 이슬람의 주요선교 요충지가 될지도 모른다.
1)한국 이슬람의 선교(다와)이해
한국 무슬림 공동체는 자체적인 홍보를 통하여 이슬람을 알리는 활동을 하면서 이슬람교에 대한 왜곡된 점들을 시정하려고 한다(전재옥, ‘한국의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선교 신학적 접근’ <아시아 무슬림 공동체> 전재옥 역, 1999, p. 42.). 또 한국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슬람교가 한국 전통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 무슬림 공동체는 무슬림의 엄격한 생활규범, 특히 금주가 한국 사회의 금주 문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15여 만 명의 무슬림들에게 철저한 종교적 삶을 기대하고 강조하면서, 이들의 삶이 한국인에게 잘 비춰져 이슬람교의 긍정적 차원을 열어 보이고 싶어 한다. 한국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신앙과 행위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을 비판하는 젊은이들이 이슬람교의 질서 있고, 군사적인 패턴에 이끌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무슬림 지도자들은 ‘다와’의 대상을 먼저 학생들과 대학생들로 보고 있다. 한국 무슬림 공동체의 ‘다와’ 접근은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 사회에서 적대적 관계를 지양하고 무슬림들이 소수 공동체로서 자유로우면서도 소외되지 않고, 차별을 받지 않으며 이 사회에서 공헌할 점을 찾으며 나가는 것이다.
2) 선교정책
따라서 이슬람 선교정책은 단순히 종교적 차원의 것이 아니다. 초기 이슬람교 발전 과정에서 포교는 정치적 문제였고 경제적 세력 확장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교 선교활동은 짧은 역사이지만 이미 전통적인 선교 패턴을 보여준다.
먼저는 경제, 외교를 통한 포교이다. 한국과 중동의 건설관계 확립은 1960년에 시작되어 1966년부터는 견고하게 되었다. 197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국의 도로공사를 한국의 업자들에게 맡김으로써 한국에서는 중동을 대상으로 한 건설 ‘붐’이 일어났다. 페르시아 연안 제국이 핵심지역이 되는 중동은 안국에 원유를 공급하고 건설시장을 제공하는 교역상대가 되면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 직접,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이슬람교의 선교활동은 이러한 기술제휴 과정에서 직접적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슬람교의 선교는 전통적으로 통상관계를 통하여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경제적 관계는 곧 ‘다와’ 사상에 근거하고 있는 무슬림들에게는 이슬람교 선교정책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둘째로, 정치적 활동을 통한 포교이다. 건축, 청부, 오일 수입, 기타 다른 무역품목을 가지고 무역관계를 이루어 나간다 하더라고 경제적 관계는 곧 정치적인 관계이다. 한국 이슬람교의 무슬림의 왕래는 초기부터 정치적인 관계를 통해서였다. 무역의 길이 열리면서 한국은 경제적 이유로 중동 여러 나라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고, 중동은 한국의 위치와 한국이라는 나라를 의식하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온 이슬람교의 선교요원들은 당당히 외교관의 환대와 한국정부의 손님으로 드나들었고, 최초의 이슬람교 사원 부지를 확보하는데도 박정희 정권 안에서 대통령의 지지로 가능하게 되었다.
셋째로, 교육활동을 통한 포교이다. 197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무슬림 지도자들은 한국의 높은 교육열을 파악하고 한국의 이슬람교 포교를 위해서 교육선교를 강조하는 정책을 세웠다. 60년대, 7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경제적 통로를 통한 선교라면 70년대 후반부터 치밀한 교육정책을 사용하고 있다(전재옥, 앞의 책, p.33). 이외에도 무슬림 교육 포교가 사원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언어 연구반이 있고 본격적인 출판기획을 통한 홍보 책자를 발간하여 국내 무슬림과 비무슬림들에게 비매품으로 배부하고 있다. 교육을 통한 포교 활동으로 특별히 언급할 만한 것은 이슬람대학의 설립추진이다. 1986년 보도에서는 8백 명의 학생 수를 첫해 목표로 하였으며 대학을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지급하고, 전원 기숙사에 기거하는 학생 생활을 계획을 하고 있다고 보도된 바 있다(전재옥, 앞의 책, p.34-35.). 그 밖에도 정기적으로 대학들을 대상으로 학회지 발간 및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고, 연중행사로 성지 메카순례를 위한 연수생들을 확보하여 교육시키고 있다. 이러한 무슬림 교육포교 정책은 상당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정책이며, 현재 한국 실정에서 매우 매력 있는 도전이 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용인에 이슬람 대학교가 건립될 계획에 있다. 한국 이슬람 중앙연합회는 이슬람 선교 교육을 지향하기 위하여 이슬람 대학에 대한 꾸준한 계획을 세웠다. 이미 1976년 이슬람 대학 위원회를 발족하였고, 1980년에 최규하 당시 대통령과 칼리드(Lhalid)사우디 왕과 협의로 대학 부지를 기증받아 현재 건축 및 교육과정 준비가 진행 중이다. 이 교육 프로그램의 주목적은 이슬람을 신학적. 역사적. 문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무슬림들 중에는 상당수 해당되는 이들이 대학 졸업자이기는 하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 혹은 그 이상의 교육을 받기 위하여 해외 유학을 지망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이슬람 국가들을 택하고 있는데 이유는 경비의대부분을 이슬람 기구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대학의 설립취지>
첫째, 이슬람 교육기관 설립을 통해 한국 무슬림들에게 이슬람의 정신을 고취시키며, 그들에게 적절한 이슬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슬람의 진정한 가르침과 우수성을 숙지시킨다.
둘째, 어떤 종교를 믿든,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에게 이슬람교육의 장을 마련해 주어 그들에게 타 종교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이슬람의 우수성을 알린다.
셋째, 대학의 설립은 각종 종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리라 예상된다. 즉, 대학의 무슬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이슬람 서적 출판이나 이슬람 문화 전시회 개최 등을 통해, 이슬람의 올바른 뜻과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다.
넷째, 미래의 무슬림 교육자들을 양성하여 이슬람에 대한 왜곡과 편견이 없는 교육을 실시토록 한다.
다섯째, 극동지역에는 이슬람 교육기관이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향후 한국에서 건립될 이슬람 대학은 단지 한국 내 무슬림 학생들만이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등 주변 국가의 무슬림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명실 공히 극동의 대표적인 이슬람교육기관의 역할을 다하도록 한다.
여섯째, 한국 이슬람 대학과 이슬람 국가의 대학 간의 교환 교육을 통해 실질적인 이슬람 지역의 전문가를 양성토록 한다("한국 이슬람 40년사" p.18.).
자료를 자세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단어 자체의 어원은 같은 것이나 존재는 다른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기독교와의 유사성이 많이 발견되는 이유는 그들의 코란에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인용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은 같지만 우리와 그들의 믿는 대상은 존재 자체가 다르며 그들은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은 하지만 그것은 무함마드 다음 가는 위대한 선지자 정도이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신 것과 구약에서 예언된 일들을 이루신 것을 인정하지만 예수님의 부활과 그로 인한 죄사함의 은혜, 그리고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가장 큰 부분은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을 작성하면서 한국이슬람협회의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홈페이지에서는 아예 알라라는 이름 대신 ‘하나님’이라는 호칭으로 알라를 부르고 있었고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 것처럼 말로써 현혹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부분이 언급될 때에는 글을 급히 마무리 짓거나 글의 끝을 흐리는 방법으로 직접적으로 적대적인 언어를 사용하거나 부정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기 쉬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슬람교도 마치 교회의 침례교, 장로교와 같은 교회내의 한 분파 중에 하나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것에 속지 말아야겠죠? ^^
저도 이번 기회에 많은 공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한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죠? 주위에서 이슬람에 대해서 헷갈려하는 분이 있으면 똑 부러지게 알려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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