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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감상 스크랩 르네상스미술
익명 추천 0 조회 252 15.01.05 23: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르네상스 미술

 

*시대배경-인간과 세계의 재발견

 

중세 후기에 십자군 원정의 실패와 그에 따른 교황권의 쇠퇴, 봉건제도의 붕괴현상은 오랜 기간 종교 중심으로 구축되어 온 중세의 세계관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중세의 제도와 질서, 이념 등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로부터 중세를 대신할 가치들을 새로이 발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싹텄던 것이다. 르네상스는 바로 14세기(trecento)에서 15세기(quatrocento)와 16세기(cinqcento)에 걸쳐 학문과 예술을 비롯한 철학, 과학, 역사, 정치, 종교 등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그리스 로마시대의 정신을 부활시키고자 했던 범 역사적인 운동을 가리킨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고 하는 용어의 어원은 당대의 예술가이자 저술가였던 바자리가 그의 저서 <예술가 열전>에서 미켈란젤로에 의해 완성된 고전시대 미술의 부활을 ‘레나시타(renascita: 재생)’라고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불어로는 na?tre(태어나다) 동사의 명사형인 naissance에 re가 붙어 renaissance(재생, 부활)을 의미한다.

 

르네상스 사상의 토대가 되었던 주된 변화는 ‘인간이 모든 사물의 중심이자 척도’라고 하는 인간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었다. 이러한 자각은 14세기 전체를 걸치면서 시인 철학자 인문학자들에 의해 고대 세계의 문헌들이 재발견됨으로써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과정을 통해 실현되었다. 중세에는 모든 현상의 배후에 신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초자연적인 세계관에 의거하여 자연과 인간을 설명하려 하였으나 이 시기에 이르면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인과적 요인을 강조하고 자연 현상을 합리적인 태도로 관찰하려는 의식이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15세기 이래 지리상의 발견이라든지 근대 인쇄법의 출현 등도 세계관과 종교관 등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르네상스의 새로운 경향이 가장 잘 표현되고 가장 대담하게 발전된 것은 자유분방한 예술적 독창성에서였다. 이러한 독창성은 유럽의 어느 곳에서보다도 이탈리아 반도의 도시국가에서 발휘되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르네상스는 가장 예술적인 운동이며 가장 이탈리아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원근법

 원근법은 근대적인 회화기법상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여 조각을 비롯한 미술전반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모방의 전통을 가지고 외부세계의 재현을 목적으로 하여온 서양미술사에서 이 원근법의 발명은 볼륨, 깊이, 거리의 착각(illusion)을 주는 중요한 기법의 발견이다. 이는 리얼리티(reality: 실제, 현실, 자연, 사실)에 논리적인 체계를 부여한 것으로 자연과 리얼리티는 같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즉, 인간도 자연에 하나이며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원근법이 발상된 것이다. 중세에 있어서 우주는 신비주의로만 인지되었으나 르네상스 이후 이러한 자연에 대한 과학주의는 지동설까지로 발전되었다. 르네상스에서 자연을 측정하고 수학적 원리로 정립하는 태도는 현대적 사고의 징후라고 할 수 있다.

 

 

Masaccio, <Trinity>(성삼위일체), 1425, 프레스코,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프로렌스

최초의 선에 의한 원근법(linear perspective)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뒤로 보이는 아치형의 건축물은 사이즈가 점점 줄어들면서 화면의 깊이감, 공간감을 연출하고, 예수님의 머리 위로 선들의 촛점이 모아진다(소실점)

 

 

Piero della Francesca, <Flagellation>, San Francesco church, c. 1470.

그리스도가 아이사에게 심판을 받는 장면이다. 기둥은 수난을 상징하고 좌우로 나뉘어진 이분법적 화면은 원근투시체계가 강조되어 보인다. 오른쪽 전경 인물들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과거 예수의 책형과 관련된 것은 과거이고(화면 왼쪽), 당대(현재, 화면 오른쪽)에 세 사람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 인물은 세 교파 혹은 종파의 상징으로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를 상징하는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있다.

 

 

 

Piero della Francesca, <Madonna and Child with saints>

(Montefeltro Altarpiece), 1472-74,

Pinacoteca di Brera, Milan.

일명 브레라 제단화라고 한다. 완벽한 알베르티의 원근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마리아는 정확한 원근법적 교회 안의 네이브에 자리잡고 있는데, 마리아와 인물들 뒤의 건축적 배경이 되는 배럴볼트의 원근표현이 너무도 정확해서 조개에 매달린 달걀의 실제 크기를 잴 수 있을 정도다.

 

 

 

Andrea Mantegna, <The Lamentation over the dead Christ>, c. 1490, Tempera on canvas, Pinacoteca di Brera, Milan.

 

 

*르네상스 문화와 미술의 특징

르네상스 문화는 대체로 인문(인본)주의, 과학주의, 자연주의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페트라르카를 비롯한 르네상스의 학자들은 고전연구에 기초를 둔 교양과 교육을 가리키는 ‘후마니타스 Humanitas’ 혹은 ‘스투디아 우마니타테스 Studia Humanitates(인문학)’라는 과목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였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와 자연주의적 특성: 피렌체에서 도시공화국체제가 그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브루넬레스키, 마사치오, 도나텔로의 세대는 당시 거기서 가장 진보적인 생각들의 열망을 나타내는 새로운 예술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고딕 미술의 마지막 자취가 사라지게 됨에 따라 인간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 인문주의적인 믿음 그리고 이성적 방법을 통한 해결을 표현하는 양식이 대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전반적으로 인문주의는 고전의 부흥뿐 아니라 ‘세계와 인간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외적인 세계, 즉 자연에 대한 태도가 중세와는 현저히 다르게 된 것이다. 이는 자연 속에 신의 섭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아름다움을 즐기고 묘사하려는 것으로, 이러한 사고로 인해 고대적인 자연과학이 싹트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문장이나 화폭에 자유롭게 묘사하게 되었다. 특히 회화와 조각에서의 자연주의는 원근법과 해부학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갖고 바깥세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 바탕을 둔 것이었다. 건축에서는 로마시대의 형식이 부활되어서 중세 기독교의 신비스러운 요구보다 오히려 인간이성의 요구에 응하는 하나의 양식을 창출해 내었다.

 

 

 

실제 예술세계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그 예술을 뒷받침해 주는 이론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일으키게 하였다. 중세의 미술은 전적으로 교회의 틀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물질세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정신성만 강조하는 가치체계를 일반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1420년대의 세대는 미술을 새로운 정신에 입각해서 보기 시작했다. 즉, 회화의 우선적인 목적은 인간이성의 원리에 따라 바깥세계를 재현하는 데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주의나 물질세계의 과학적인 연구에 따르지 않은 예술이론은 어떠한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렇게 공식화된 새로운 사상은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회화론>, <건축론>, <조각론> 등의 저서에서 충분히 밝혀져 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바자리의 예술론에서도 나타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케치들은 그가 통달한 물리학, 의학, 지질학, 골상학, 해부학, 동양철학, 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관심과 깊이를 보여준다. 그의 스케치의 대부분은 영국 왕실이 소유하고 있다.(Royal Library )

 

 

 

 

 

 

 

 

 

 

 

 

 

 

 

 

 

 

 

 

 

 

 

 

 

다빈치의 이러한 다양하고도 깊이있는 대상에 대한 연구가 위대한 예술로 창조되었다.

 

 

Leonardo Da Vinci, <The Last Supper>, 1498, Santa Maria della grazie, Milan.

소실점이 예수의 얼굴 위에 떨어지고, 예수의 좌우 대칭을 이루도록 3,3,3,3명의 제자들을 배치하였다. 균형, 비례, 안정의 르네상스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아래 틴토렛토의 <최후의 만찬> 구도와 비교해보면 르네상스 미술의 개념과 특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Tintoretto, <Last Supper>, 1592-1594, Chiesa di San Giorgio Maggiore, Venice.

 

 

 

 

 

Leonardo Da Vinci, <Mona Lisa>, c. 1503-4, Louvre, Paris.   *sufumato기법

 

 

     Mona Lisa detail

 

 

 

 

                 Leonardo Da Vinci, <Madonna of the Rocks>, 1483-86, Louvre, Paris.

                 *Chiaroscuro기법

 

             Leonardo Da Vinci, <Madonna of the Rocks>, 1495-1505, National Museum of London.

                 *Chiaroscuro기법

 

 

 

 

 

 

 

 

 

 

 

 

 

 

 

 

 

 

 

 

 

 

 

 

 

 

 

 

 

 

 

 

 

 

 

 

 

 

 

 

르네상스의 과학주의적 특성은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사실 현대 서구의 합리주의는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우주의 합리적 질서와 체계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 미술가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한 화가, 조각가가 아니라 생리학자이며, 물리학자이며, 화학자이기도 하였다. 이들 미술가들은 시체해부를 통하여 얻은 인체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광선의 강도와 그것의 각도에 따라 모든 사물의 새채와 형태가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것을 관찰하고, 원근법을 발견하였으며, 새로운 물감을 탐색하면서 유화를 발명하고 이젤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적 발전은 고대의 유물이 비교적 적었던 회화분야에서 특히 현저하게 나타났다.

 

 

 

 

 

 

 

중세말기 작가

-Chimabue

-Duccio

-Simone Martini

 

르네상스 작가와 작품

-trecento Giotto

-Masaccio

-Fra Angelico

-Piero della Francesca

-Andrea Mantegna

-Leonardo da Vinci

-Michelangelo

-Raph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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