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자기소개서
지원동기 및 포부, 성장과정, 수학내용(휴학 기간 또는 졸업 후의 공백기 포함), 본인의 가치관 및 인생관에 영향을 끼쳤던 경험 등을 주제별로 구분하여 자유롭게 기술해 주세요(3450자).
[14살, 또래들이 컴퓨터 게임을 할 때 주식 차트를 알다]
14살 때 처음으로 주식, 투자라는 단어를 접하게 됐습니다. 누나가 증권사에 입사한 덕분입니다. 누나를 통해 갖게 된 금융에 대한 호기심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특히 개인금융과 자산관리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당시 펀드 가입이 불가능한 나이었음에도 집근처 신한은행을 찾을 때마다 펀드 상품에 대해 직원에게 궁금한 사항을 묻곤 했습니다. 그리고 상품 운용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직원들을 통해 신한은행의 자산관리가 갈수록 전문화돼가고 있음을 직접 느꼈습니다. 그때 저의 이러한 개인금융에 대한 관심과 밝고 타인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성격이 은행원에 잘 맞는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PB로 리테일 분야의 강한 신한은행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제가 바라본 신한은행은 ‘따뜻한 금융’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부터 거래를 하고 있는 신한은행 도봉로 지점의 직원들은 변함없는 미소와 진심어린 서비스로 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신한은행에서 매일 보내주는 환율정보메일은 제가 아침마다 환율을 보기위해서 신문이나 잡지를 찾는 수고를 덜어주었습니다. 저금리 시대의 도래로 경영여건이 악화되고 은행 간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단순히 외형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비전과 문화를 제시하는 신한은행. 그리고 그 비전의 중심에 고객과의 따뜻한 유대가 있다는 사실이 저로 하여금 신한은행을 택하게 했습니다. 신한은행의 일원으로서 지금까지 받아온 ‘따뜻함’을 다시 되돌려 주는 행원이 되겠습니다.
[PWM을 이끄는 프로금융인]
저는 신한은행의 CI를 보면 지구본이 떠오릅니다. 지구본에서 점으로 표시된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있는 신한은행이 파란색으로 지구를 덮고 있는 CI처럼 ‘Asia Top10’을 넘어 글로벌 대표 은행으로 거듭나는 데 기여할 프로금융인이 되겠습니다. 우선 입사 초에는 기본적인 창구업무에서부터 개인영업에 필요한 은행상품, 펀드 등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겠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고객 서비스 마인드에 대해서 익히고 자산관리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행원이 되겠습니다. 현재 증권투자상담사와 펀드투자상담사 자격증은 있지만 실무경험이 없는데서 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뭐든지 열정을 다해서 배우겠습니다. 더불어 FP등의 자격증을 추가로 획득해 관련분야의 전문성을 높이겠습니다. 5~8년 차는 지금까지 업무능력을 살려 PWM분야에서 원활한 업무수행을 이끌겠습니다. 고객에게 전문적인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 제공해 고객 충성도를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수익을 증대시키겠습니다. 8~12년 차에는 능력이 된다면 PWM의 팀장으로서 팀원의 결속을 다지고, 해외 현지법인에서 신한은행의 글로벌화를 이끌겠습니다. PWM을 해외 시장에도 적용해 신한은행의 글로벌 네트워크의 현지 지배력을 강화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의 바탕의 ‘따뜻한 금융’이라는 신한은행의 정신을 두며 매사에 고객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
[철없던 막내가 철들다]
저는 1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늦둥이로 태어나 누나들과 많게는 7살 터울이 졌습니다. 그로인해서 집안에서 저는 언제나 0순위였으며 부모님은 제 말이면 뭐든지 다 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님과 누나들의 품 속에서 화초처럼 자라기보다는 강한 자립심을 가지고 제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이런 저의 자세가 고등학교 시절 겪었던 큰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됐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합격이 당연시되던 대학교 수시 최종면접에서 불합격을 받았습니다. 그로인한 재수생활은 저에게 큰 시련이었지만 그것은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돼 지금의 모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저는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 ROTC에 도전했습니다. 그로인해서 일 년에 두 번 어김없이 방학이면 훈련소에 입소해 20kg의 모래주머니와 군장을 매고 자신과 싸우며 걷고 뛰고 뒹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장교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장교가 되서는 그동안 경험해본 적 없는 상황에 부딪히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렇듯 위기에서 기회를 볼 수 있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금융트렌드의 끊을 놓지 않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는 것? 관심 없다. 내 관심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잘 경영해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뿐이다” 워런 버핏의 말입니다. 이 글을 읽은 후로 금융에 대한 저의 관심에 살을 붙이고자 노력했습니다. 금융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넘어 진정한 금융인이 되기 위해서 한 걸음씩 나아갔습니다. 그로인해서 다양한 경제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 도덕적 양심을 지키며 이윤을 추구하라던 ‘아담스미스 구하기’ 라는 책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에게 경제와 금융에 대해서 진정한 살을 붙여준 것은 대학시절 경제학을 복수전공하면서 입니다. 이것은 저로 하여금 경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게 했고 금융의 흐름을 지속적으로 익히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더불어 이때 생긴 습관으로 매일 경제신문을 읽고 있습니다. 금융에 대한 관심은 임관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자칫 사회와 격리돼 금융 트렌드를 놓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경제잡지를 정기구독하며 은행업을 비롯해 금융 분야 전반에 대한 최신정보를 얻었습니다. 더불어 증권투자상담사, 펀드투자상담사 등 금융자격증을 취득하며 금융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를 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이렇듯 저는 여러 학문을 두루 경험하며 은행원이 되기 위한 기초 소양을 쌓아왔습니다. 이속에서 금융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배움의 기쁨 그리고 고객과 회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키웠습니다.
[경험에서 배운 소중한 가치]
장교로 복무하면서 알게 된 퇴역장교분이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퇴역하신 이분을 통해 소매금융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알게 됐습니다. 이분은 전역 후 모아 놓은 돈을 관리하기 위해 자산관리로 유명한 증권사에 맡겼습니다. 그곳에서는 당시 내놓은 상품을 권했고, 이분은 투자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무 했던 터라 믿고 맡겼습니다. 50대 중반이었던 만큼 그 투자자금은 곧 생활비였습니다. 하지만 일 년 후 커진 증시의 변동성이 상품 운용에 영향을 미치면서 그분은 원금 손실을 크게 보게 됐습니다. 사전에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이뤄지지 않았던 그분의 하소연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주인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의 자산을 자신의 것처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야 말로 자산관리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고객의 자산을 잘 관리하는 것은 자신의 속한 기업의 수익을 증대시킴으로 결국 기업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학교 시절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생각으로 백화점, 대형마트, 학원강사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스로 번 돈에 대한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고객의 피땀 흘려 번 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가치를 더욱 빛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속한 조직 및 모임에서 가장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하는 경험에 대해서 작성해 주세요(조직 및 모임의 이름과 소속 기간, 조직 개요, 자신이 기여한 점, 투입한 노력, 기여의 결과 및 자신이 배운 점 등) 500자
[시행착오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 온다]
소대장 시절 보병대대 전술훈련에 지원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우선 부소대장 및 소대 간부들과의 회의를 통해 훈련에 필요한 소요를 도출했습니다. 그 후 저의 통제아래 소요에 맞게 훈련 준비를 시작했지만 돌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전차정비에 많은 시간이 소비 되다보니 다른 부분에 대한 준비가 기한을 맞추기 어려워 졌습니다. 또한 점검하지 못하고 놓치는 부분이 속출했습니다.저는 현재 훈련 준비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고심 끝에 부사관이 많다는 전차대대의 특성을 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소대를 간부들의 전문분야 중심으로 크게 3개로 쪼갰습니다. 그리고 팀 내 책임간부들이 매일 저에게 진행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팀을 나누자 일이 체계적으로 돌아갔고, 발생하는 문제도 바로 파악이 가능했습니다. 이후 훈련준비가 원활하게 이뤄져 훈련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현장에 위치하여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적시에 수정하여 실행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원칙과 약속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사례 또는 원칙과 약속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례를 구체적으로 기술해 주세요(1000자).
[위기의 해법은 이해와 배려]
2011년 9월 부대에서 구타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병사가 구타를 당했고 가해자 중에 저의 분대장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평소에 아끼던 분대장이었기에 그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분대장과의 면담 후,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잘해보려고 하다가 뜻대로 안되자 구타를 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구타는 의도와 상관없이 용납될 수 없는 행위이기에 징계를 받는 게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아끼던 용사였고 징계 시 그 수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았기에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추가사고 방지는 물론 원칙과 소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징계를 결정했습니다.
징계(영창) 복귀 후, 그 병사는 더 이상 분대장도 아니었고 군 생활에 대한 의욕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그 병사가 그렇게 된 것에는 소대장으로써 잘 관리하지 못한 저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상담과 격려를 통해서 다시금 군 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과 “더 이상 잘하려고 노력해봐야 소용없다”라는 병사의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그 결과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고 전역 전에는 ‘백골최강소대’의 일원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병사가 전역할 때 ‘그때 그 징계를 받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소대장님께서 저를 계속 인정해주셔서 다시 잘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이 일을 통해서 원칙과 소신 역시 타인에 대한 진정한 배려와 이해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한은행의 일원으로서 ‘신한 금융소비자 중심 헌장’의 원칙을 몸소 실천하겠습니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어서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냈거나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했던 경험을 기술해 주세요(1000자).
[운수대통함으로 군대에 화합을]
부대라는 작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훈련과 근무에 찌든 소대원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운수대통’이라는 제도를 만들게 됐습니다. 한 달 동안 지휘관 및 참모들은 10매의 운수대통 종이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부대활동 중에 칭찬할만한 일을 한 병사에게 그 종이를 하나씩 줍니다. 종이를 받은 병사들은 그 종이를 ‘운수대통함’에 넣습니다. 매월 말일에 운수대통함 추첨을 통해서 뽑힌 인원에 대해서는 다음 날 바로 포상휴가가 주어집니다. 이 제도는 병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병사들의 사기와 부대활동에 임하는 자세는 예전과 180도 달라졌습니다. 이런 저의 능력은 고객에게는 신뢰를 직원들에게는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호박이 날개 돋친 듯 팔린 날]
작은 생각의 차이로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백화점 식품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당시 식품팀은 새로 판매하기 시작한 포장호박의 매출이 저조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팀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심 끝에 수작업으로 손질된 야채에 대한 고객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팀장에게 호박을 직접 다듬어서 판매를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팀장이 결국 수락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다듬어진 호박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좋았고 100% 판매율을 기록하게 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열정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은행들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99%는 같아도 1% 다른 아이디어로 신한은행의 발전에 이바지하겠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신한은행의 과거 / 현재 / 미래에 대한 각각 하나의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1000자).
[금융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창조할 신한]
1999년, 인터넷 뱅킹 도입으로 금융 IT 선도
신한은행은 국내 경제가 IMF의 흔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1999년 금융시장에 처음으로 인터넷 뱅킹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금융 IT의 혁신이자 그동안 은행이체를 위해 은행을 찾아야했던 고객의 불편함을 해소해준 일대 사건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쟁사들이 IMF의 그늘에서 구조조정으로 흔들리고 있을 때, 오히려 신한은행은 금융에 새로운 문화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은행채널의 다변화와 비용절감이라는 효과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2012년, 온라인의 혁신을 오프라인으로
인터넷뱅킹으로 온라인 혁신으로 이뤄낸 신한은행은 창의성과 혁신은 14년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업계 최초로 스마트금융센터를 도입한 것입니다. 이미 대부분의 산업 전반에 퍼져있었던 ‘스마트’에 대한 관심은 은행권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업계에서 앞 다퉈 ‘스마트 금융’을 표방하며 출사표를 내던졌지만 스타트 테이프를 끊은 것은 역시 신한은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차례로 스마트펀드센터, 스마트론센터를 선보이며 기존의 모바일이나 인터넷뱅킹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차별화된 전략으로 고객에게 다가갔습니다. 특히 하이엔드 ATM기기와 무인점포형 모델을 앞세운 스마트 브랜치로 20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2026년, 스마트 IT로 리테일을 이끌다
이제는 앞을 바라봐야합니다. 저는 신한은행의 강점은 리테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과거 스마트 IT를 통해 온오프라인에서 혁신을 이뤄낸 만큼 이를 적극 활용해 리테일 분야에서 차별화를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PB들은 모바일을 이용해 고객들과 수시로 상담을 하며, 고객이 원하는 사항을 체크, 이를 적극 반영해 자산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해외주식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모바일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실시간 상담은 앞으로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국내 PB분야 1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신한에게는 매우 현실가능성 있는 전략입니다. 비대면 영업이 팽배한 시대에 오히려 고객과의 접점인 리테일을 강조하며 고객에게 다가가야 할 때입니다. IT의 혁신을 리테일 혁신으로 이끌며 신한은행은 또 다시 새로운 금융 문화를 만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