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래, 황지영 - 2009년 8월 9일 오전 4시경 친구들과 함께 피서를 마치고 충남 서천군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 (서천 IC 부근)을 달리던 도중 승용차 한 대가 가드레일과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대형 교통사고 현장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급히 자신들이 타고 있던 차를 갓길에 세우고 안에 있는 사람을 구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차도 1차선에 있던 사고차량 옆에서 핸드폰의 불빛에 의존하여 수신호를 하면서 보험회사에 연락하는 등의 사고처리를 돕는 구조작업에 매달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이들을 보지 못하고 뒤에서 달려오던 카렌스 차량이 두사람을 덮쳐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 당시 23세와 24세였으며 사망후에 전라북도 김제시 최초로 의사자로 선정되었고 2010년 12월 22일에 제 3회 시민영웅 시상식에서 2010년 올해의 시민 영웅상을 추서받았다.
김다예, 김민화, 이진희 - 울산광역시 중구 내황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던 이들은 2003년 7월 19일, 울산 태화강에서 물놀이를 하던 도중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같은 학교의 2학년 후배 어린이를 구하려다 대신 숨지고 말았다. 2006년 5월 19일 정부로부터 의사자로 선정되었고 모교인 내황초교에서는 제 85회 어린이날 기념행사에서 추모비를 건립하고 울산 의사자 3 어린이 (또는 세 의사 어린이)로 호칭하여 이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렸다. 2007년 2월 14일에는 이들이 다닌 내황초 제 16회 졸업식 때 명예졸업장이 수여되기도 했다.
박은혜 - 1989년, 충남 연기군 동면 미호천 내 골재 채취장에서 웅덩이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자신은 물에 빠져 11세의 나이로 숨졌다.
변지찬 - 2005년 충남 당진군 면천면 송학리 검암천에서 물놀이를 하던 중 먼저 물에 빠졌던 친구를 구하려다 같이 숨졌다. 당시 친구가 무려 2m 깊이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자 이를 본 변군이 망설이지 않고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어 구하려다가 물에 빠져 안타깝게 8세라는 어린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최성규 - 1996년 8월 10일 밤, 한 여대생이 성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고 여대생을 구해주러 달려갔다가 가해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박지현, 서태용, 채덕윤 - 1999년 6월 30일 화성 씨랜드 참사 때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화재 당시 유치원생들을 구조하러 화염 속에 뛰어들어가 목숨을 바쳤다.
이수현 2001년 도쿄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추락한 취객을 도우려다 선로에서 벗어나지 못해 희생되었다.
김지연 - 2003년 8월 24일 새벽 3시 30분 경기 시흥시 신천동의 한 놀이터에서 베트남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인 웬뚜안뚜(24)와 레휘황(29)이 귀가하던 여고생을 성폭행 하는 것을 보고 이를 제지하려다가 김 군은 웬뚜안뚜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인천 길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김지연 군 살인 사건 참조
심경철 - 2001년 1월 15일 오전 10시경 거제남여도 부근 바다를 항해하던 중 유조선의 선수중앙부에서 원인을 알수없는 폭발사고가 발생하여 여성 실습생 2명이 위험에 빠지자 자신의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구명기구를 던져 구하고 자신은 숨졌다. 2017년 12월에는 12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되었다.
전재규 - 남극세종기지에서 한국해양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3년 12월 8일에 기상악화로 귀환하지 못한 3명의 팀원 동료들을 구하기 위하여 출항하였다가 보트가 전복되어 사망하였다. 2007년 11월 국립대전현충원에 의사자로 안장되었고 국민훈장 석류장이 추서되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2016년 12월의 현충인물로 선정되었고 그가 사망했던 지점에 있는 해저화산이 '전재규 화산'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조대형 - 자율방범대원으로 일하던 조씨는 2006년 5월 8일 서울외곽순환도로 에서 고장 차량을 갓길로 옮기던 도중 뒤따라오던 트럭에 치여 숨졌다.
이용상, 허석희, 정봉조, 안상철, 김재후, 박연주, 람방 누르카효, 김종평, 하레파 유스푸 -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후 민간 어선인 금양호를 몰고 천안함 희생자 구조에 힘쓰다가, 선박이 충돌하여 침몰하게 되어 사망했다. 안타깝게도 람방 누르카효와 김종평의 두명만 시신이 발견되었고 나머지 7명은 아예 찾지못하고 말았다.
올즈보이 오강거, 다와 - 처제와 조카 사이로 당시 18세와 32세 였으며 몽골인인 이들은 경기 광주시에서 2011년 7월 집중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이웃집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배수구를 막고있는 장판을 제거하는 정비작업을 하다가 두 사람이 장판을 들어올리는 순간 고였던 물의 급류가 한꺼번에 불어나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면서 휩쓸려 숨졌다. 이들의 시신은 각각 1㎞와 3㎞ 떨어진 하천에서 상처투성이의 익사체로 발견됐다.
오판석, 박창섭 - 2012년 인천 페인트원료 창고 화재 때 추가 피해를 막으려다가 숨졌다.
강신일 - 2013년 1월 24일, 제주시 소재 감귤 공장에서 동료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구조하기 위해 감귤찌꺼기 저장 창고로 들어갔으나 남아 있는 유독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이준형 - 2013년 7월,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에서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 바다로 들어가 친구들을 구하고 사망했다.
양성호 - 2014년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에서 붕괴 후 사고 현장에서 빠져나왔음에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 사고 현장으로 다시 뛰어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