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크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알기 전에 흉악한 죄를 짓고도 스스로 의롭다 착각하며 살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교회도 성경도 예수님도 하나님과 그 나라와 의에 대해서 조금도 모르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20대 중반까지 스스로 잘났다 믿고 기고 만장하게 살던 사람이 전도자가 준 성경책과 하나님께서 두려움과 함께 임하심을 통해서 순식간에 흉악한 죄인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복음을 전하며 성경을 읽고 정리하며 약 40년을 살았습니다. 늘 가난했고 고난도 많았는데 예수님을 믿고 죄를 인식하고 의롭게 살고자 했으나 늘 그렇게 살지 못하고 때론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도 저버리며 살던 사람인데 이런 못난 인생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인내하심으로 주신 영적인 비밀을 알고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이에게 하시는 말씀은 법과 통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오직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그리고 정리하고 복음을 전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제 평소의 삶을 통해서 제가 겪는 고뇌와 고통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오랜 가난의 생활과 세상에서 밑바닥에서의 삶은 정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으로 나타났고 이는 성경의 정의와 이에 대해서 가장 잘 표현한 모세 오경의 율법에의 찬양으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행정 고시 2차에서 1점차 낙방은 무엇에 대한 강력한 성공의 열망으로 나타났고 이는 적어도 30년 이상의 성경을 읽고 정리함과 성경을 통해서 오는 깨달음의 지속적인 추구로 연결이 되었습니다. 천주교인 아내와 이혼으로 4년을 불면과 우울한 삶을 살았는데 이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나눔에 대한 주님의 아픔으로 제게는 다가왔습니다.
이 세상의 불의에 한탄하고 울분을 토하고 분을 못 이겨서 길길이 날 뛴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의에 대한 목마름 즉 굶주림이 생긴 것입니다. 이런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소하는 가장 좋고 유일한 길은 정의로운 법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힘도 없고 돈도 없는 무명의 사람이 정의를 간절히 원하지만 이 세상을 자신의 힘으로 정의롭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세상의 법도 돈을 따라서 움직이고 권세를 따르니 정의를 위해서 세운 법이 도리어 돈과 권력과 심지어 군중의 선동에 의해서도 휘둘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온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런 불의로 가득 찬 세상에서 모든 믿는 하나님의 백성은 때로는 자유를 위해서 때로는 민주를 위해서 때로는 자본을 위해서 움직이는 세상의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갈 바를 읽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상과 주의와 돈과 권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휘둘러 메치고 쓰러뜨리고 죽이고 파괴하고 멸망을 시키려는 어둠의 세력 즉 마귀가 난동을 부리는 공간이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이요, 직장이요, 조직이요, 그리고 국가요 민족이니 이런 유혹 속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것이고 뜻인지도 잘 분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남보다 잘 살기 위해서 또 죽도록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도 교회도 예수님도 하나님도 전혀 모르던 20대 중반의 청년이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전도하면서 그리고 고난을 겪으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전하는 예수님의 뜻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40년을 저를 품고 사랑하며 전해 주신 온 인류가 행복하게 평안하게 사랑하면서 살 수가 있는 성경의 진리를 만나는 기쁨이 모든 분께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을 한 마디로 무엇이냐 물은 성경을 거의 100독 하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저는 이분을 만나서 수천 명의 사람에게 성경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느냐 물었을 때 오직 서울대를 나오신 한 분 만이 성경은 법이다 라고 이 목사님께 대답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게도 당연히 물으셨는데 그 때 당시 약 10년 전인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떠 올라서 주춤거리고 있는데 그분은 성경은 법입니다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니 성경이 어떻게 한 마디로 법이냐 했던 적이 있지만 이제는 거의 전적으로 이 목사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고대 법대를 나온 제가 아는 지인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려 성경을 인류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통찰력이 있는 귀한 말씀입니다.
즉 성경은 법이요, 하나님의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통치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와 이제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그리고 성경을 읽고 쉬지 않고 정리하면서 그리고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경제적으로 별로 나아진 점이 없이 극도의 가난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망극하신 은혜로 이 주제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게 되었으니 정말로 감사와 찬양이 넘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중등부 교사로 있을 때 그 해 중등부 교육의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였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통치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출신 목사님들이 쓰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읽어 보았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하거나 이해를 시키는 예가 아직도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보다 더 우리는 믿음이라는 주제에 그리고 부자가 되는 주제에 그리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주제에 깊이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기에 정말로 가야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도 노력도 없는 실정입니다.
법은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순간부터 있었으니 처음의 법 즉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명령은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 동산은 관리하라! 그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를 정복하고 생명체를 다스리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위반 즉 법이나 명령을 어길 때 죄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이 없으면 죄가 없다는 죄형 법정주의가 성경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언급이 되고 있는데 바울 사도의 로마서에 있습니다. 그리고 함무라비 법과 로마의 12표법, 그리고 우리의 고조선의 8조로 된 금하는 법 등이 고대의 법으로 있는데 모든 인간의 집단과 조직에는 법이 있고 있었습니다. 법이 없는 세상은 한 마디로 힘이 세고 악을 행하고 폭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포스러운 세상이 되기에 반드시 인간이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살고자 하면 법이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법이 있지만 이를 함부로 어기고 행동하는 왕정이나 독재정은 이제는 지구상에 별로 없습니다. 아직도 북한이나 왕정을 가진 나라가 있기는 있지만 대부분 국민의 주권을 인정하고 법으로 통치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진 하늘에서는 완전한 질서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법이 지켜지는 나라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법이 잘 지키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우리는 주님의 기도대로 매일 예배 시간에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천국과 같이 이 땅에서도 반드시 세워져야 하는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는 법치 국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 성경을 주셨다는 말과 같이, 성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법이라 라는 말과 같이 성경에 있는 법대로 다스려지는 국가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입니다. 모든 성도와 신학자 목사는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이 없어야 합니다. 만약에 이 부분에 대해서 신학적인 주장이나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서 마음대로 교회 일을 치리하고 신앙 생활을 마음대로 한다면 절대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질 수가 없습니다. 법이 없이 이 땅에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 분의 나라를 세우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살 기준이 없는데 어찌 마음대로 하고 사는 교회나 개인의 성도를 통해서 질서의 나라 중에서 가장 질서가 잘 확립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변방 수비대는 어떤 나라의 보루입니다. 예전에는 성을 쌓고 봉화를 올렸습니다. 먼저 적군의 움직임을 변방에서 보고 온 나라가 전쟁을 준비하도록 한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외적을 침입을 먼저 막고 그리고 그 침입을 알릴 의무가 변방을 지키는 군대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파수꾼에 속한 수비대가 늘 잠이나 자고, 그리고 자신이 밤과 낮을 교대하면서 깨어서 적의 동태나 혹은 침략을 살피지 않고 변방이라 중앙 정부의 감독과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지켜야 할 자리를 자주 이런 저런 이유로 이탈하고 비운다면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는 것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믿고 온 국민 편히 쉬고 잠을 자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역시 파수꾼에 해당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모든 직장의 경비입니다. 경비가 아파트를 지키고 집을 지키고 시설을 지킵니다. 그런데 역시 이런 시설이 외딴 곳에 있어서 상부의 감독과 감시가 소홀한 경우가 있습니다. 먼 지역은 상관들이 자주 가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틈을 타서 일도 적고 감독도 없고 하니 이제는 그냥 일을 하려 와서 마음대로 자리를 비우고 그리고 근무의 교대를 법대로 하지 않고 그 근무의 모든 원칙이나 법이나 제도를 무시하고 근무표도 자신이 잘 보아 주고 싶은 사람에 따라 마음대로 이리 저리 수정을 한다면 이는 미친 인간이 수비대의 책임자로 지휘자로 있기에 그 조직은 이런 지휘관이나 책임자로 인해서 멸망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도 법으로 어떤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명시가 없으면 그야 말로 감독도 없고 감시도 없고 그렇다고 당장은 전쟁도 없으니 이 수비대는 바닷가에 있다면 요원들이 늘 낚시나 하고, 일이 있으면 마음대로 집에도 가고, 그리고 산에 있다면 멀리 산 초입새에 신호병을 세우고 누가 오면 연락을 하도록 하고 늘 산 위에서 복장도 함부로 하고, 음주에 가무에 노는데 정신이 없는 수비대가 될 것이 분명하고, 이들을 믿고 사는 모든 구성원이 순식간에 죽고 다치고 노예로 잡혀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엄격한 법이 있고 이 법대로 통치하는 지휘관이나 책임자가 있을 때 이 조직은 그 사명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각각의 교회가 이렇게 수비대와 같이 영혼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흩어져서 세상을 변화를 시키고자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또 그 나라를 세우며 그 분의 의를 이루고자 합니다. 그리고 목사는 그 교회의 책임자로 모두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워주셨다고 스스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 없는 교회 혹은 법이 있어도 무시하는 교회, 그리고 그 법이 목사나 장로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교회는 세상에서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법의 존재에 대해서 목사나 신학자가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교인에게 교육도 시키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신학적인 주장으로 교리를 세웠는데 그 교리가 "아닙니다. 구약은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구약의 가장 중요한 법인 율법에 대해서도 소극적으로 대하게 하고 오직 믿음이면 됩니다. 행위나 율법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의롭게도 되고 믿음으로 천국에도 갑니다. 정의로운 행위나 혹은 율법을 지키는 것은 지금 신약의 시대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가르치면서 목사는 목사대로 수많은 무리가 교회로 모이면 법도 없으니 먼저 성도보다 차도, 집도, 옷도, 월급도, 퇴직금도 먼저 챙기고서 더 나아가서 나와 같이 잘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이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집사님이 권사님이 잘못 사시고 일이 풀리지 않는 것은 기도 부족이요,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본받으세요 하고 가르치면 너무나 준엄한 법이 있어야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누가 언제 세웁니까? 그렇게 가르치면 성도들도 그 말씀이 진리로 알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면서 세상에서 오직 잘 살고자 하는 열망으로 모든 삶의 초점과 목표를 이곳에 맞추고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국과 온 자본주의 세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모두가 잘 사는 데 혈안이 되어 경쟁을 열을 올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는 모두가 무엇을 하는지 우리 스스로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전능하시고 정의로우시면서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하게 법을 주셨으니 성경은 한 마디로 법이다 하는 분이나 혹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인간에게 주셨다고 이해하는 것과 같이 우리에겐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법이 있고 그 법이 성경이면서 성경 속에 있는 모세의 율법입니다. 믿으셔야 하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성경을 100독을 하셨는데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해가 오지 않았다면 그분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불의의 피해를 입고 불의에 억눌리고 불의에 숨을 죽이며 개인의 자유도 권리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정의가 세워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마도 이 부분에 있어서 가장 시급하고 갈급하신 분들이 북한과 같은 개인 독재의 세상에서 숨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지만 찬양도 예배도 함부로 드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함부로 입에 담을 수도 없습니다. 이들에게 자유로운 신앙 생활은 너무나 간절합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어쩌다 발각이 되면 오직 그 이유로 사형에 처해 지고 감옥에 가서 너무나 참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이 이제는 70년이 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형제와 뜨겁게 사랑하라 하셨고 갇힌 자를 기억하라고 하셨으니 이들을 사랑하고 이들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물질을 가지고 지나치게 화려하게 살고 많은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 주려고 소유하지 않고, 이들을 구원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하려고 발버둥을 쳐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이의 법 중의 하나입니다. 이 법을 안다면 절대로 내가 남들이 알도록 부자로 자랑하며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북한의 갇힌 분들의 기도의 1순위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셔서 자신을 가둔 이들을 심판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불의와 싸우며 힘들게 사는 모든 분이 예수님께서 속히 오셔서 이 악하고 나쁜 상황을 끝내주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고 뵙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도 역시 주님께서 속히 오심을 기도하고 바랄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은 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척결하고 이제는 정의가 물과 같이 공의가 아침의 해와 같이 흐르고 빛나는 의의 나라를 세우시고 이로 인해서 질서가 완전히 잡힌 평강의 나라가 세워지고 이 나라의 국민은 이제는 희락이 넘치게 되니 이 나라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나라는 성령 안에서 세워지는 나라로서 인간의 단독으로 세우기에는 불가능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세상에 서게 되면 더 이상 불의와 불공정으로 고통을 겪는 분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사랑만 충만한 것을 믿어 왔습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이 모든 이가 묵상하면 알 수가 있게 나타나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려 독생자를 제물로 주셨고 피를 흘리게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두셨으니 이는 우리에 대한 사랑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셔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 무섭고 무거운 십자가를 묵묵히 지시고 고난을 당하셨으니 십자가에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정의도 그대로 역시 나타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참으로 드뭅니다. 로마서 3장 21-26절에 이 부분이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내어 주신 것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과 그 분의 정의로운 속성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하셨습니다. 죄는 법을 어기는 것이고 죄에는 반드시 형벌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었고 그 벌로 죽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불쌍히 여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셨는데 그 방법이 우리 모두의 죄를 자신의 흠이 없는 아들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의 문제의 해결은 이렇게 누군가가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절대로 죄를 짓고 이 세상을 죽음으로 살다가 죽고 난 후에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형벌을 예수님께서 몸소 감당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죄를 절대로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는 이렇게 예수님과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말로 다할 수가 없는 사랑이 있고 또한 절대로 누구도 피해 갈 수가 없는 죄에 대한 벌의 집행이 동시에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이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제물로 바치는 제사는 이런 예수님의 훗날 하실 일을 미리 천 년을 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정의(롬 3장 21-26)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1.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22.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
26.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너무나 중요한 구절이 천주교와 개신교의 번역이 다르고 개신교 내의 5가지 번역도 다릅니다.
영어를 보면서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한 내용을 풀어서 설명을 드립니다. 참고하시고 비교를 해 보시기 바랍니다.
21절은 하나님의 의는 율법서에 가장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속성을 그대로 모세 오경을 넣으셨는데 이는 우리와 이스라엘 민족과 모든 세상의 사람이 이 말씀을 보면서 의롭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인줄 압니다.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이해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 정의, 공의 등 모든 하나님의 의와 관련된 문구를 성경에서 검색을 해서 종합해서 보아야 하는 측면이 있는데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죄에 대한 벌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의 한 측면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님께서 또 다른 의를 나타내셨는데 이 율법에 있는 의가 아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은 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오는 의가 율법서 즉 창세기에 기록이 이미 되어 있고 하박국의 정의로운 삶에서 오는 의가 하박국서 즉 예언서에 이미 증거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율법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의로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치는 의이기에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를 믿는 사람은 차별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차별은 유대인이 아니라도 이방인이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제는 의롭게 되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의가 어떻게 이방인인 죄인인 우리에게 가능하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먼저 이방인 유대인 할 것 없이 모든 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셨는데 이는 아담의 죄로 인해서 죽음에 이른 인간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아담은 에덴에서 죄가 없을 때 영생을 누리며 고생도 없이 질병도 없이 하나님과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 즉 법을 어김으로 죄를 짓게 되고 이 죄의 결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에덴에서 추방과 동시에 영생이 박탈을 당하고 온갖 고생으로 이 세상을 살다고 죽게 되었으니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영광을 죄로 인해서 박탈당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24절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은 이제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독생자가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게 죽게 됩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 제도의 예표대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피와 죽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이제 이 예수를 믿으면 즉 나의 구세주로 믿으면 나의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안에 있는 속량입니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예수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고 교회의 절차에 따라 세례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과거에 지은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 말씀이 예수 안에 있는 속량입니다. 그런데 이 속량에는 우리의 노고과 피와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대신해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 대한 벌을 주시지 않음을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와 형벌을 그대로 두시고 예수님께서 죄를 지시고 형벌을 받게 하신 하나님이시며 이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잘 이해를 해야 되는 것은 바울 사도가 당시에 이 말씀을 전할 때 초대 교회 성도의 모습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때 믿는 이와 지금의 믿는 이가 조금도 차이가 없어야 합니다. 당시에 믿는 이 모두는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까지 받았던 사람으로 초대 교회 성도를 보면 완전히 내 것과 네 것이 없이 형제로 나누고 살던 사람이었던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4장 17-22절에서 아브라함의 의롭게 되는 과정을 풀어서 설명을 하면서 25년을 한결같이 믿은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임을 분명하게 밝혀 놓았습니다. 깊이 깊이 생각하며 의롭다 인정에 대해서 스스로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음을 분명하게 로마서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의롭다 인정을 받는 의로운 삶에 대해서도 하박국서 2장 4절로 가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캘빈과 루터가 이를 확인하지 않고 오직 로마서 1장 17절과 여기 나오는 말씀만 보고서 모든 믿는 이는 의롭게 된다 했다면 우리라도 이제 확인을 해서 바로 잡을 것이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25절은 예수님의 피에 있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속죄의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구약의 레위기에 있는 짐승의 피를 흘려서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죄에 대해선 죽음이 따릅니다. 그리고 피 흘림이 없으면 죄의 용서도 없다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피에 대한 믿음이란 죄는 피를 흘려야 하고 죽어야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지으면 이 방법 외엔 다른 길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지었으니 우리가 마땅히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되고 그렇게 죽는 신세로 우리는 이 땅에 죄인으로 태어나 잠시 살다가 죽게 되어 있는 소망이 끊어진 존재였고 영광을 잃어 버린 존재였습니다. 이런 죄인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1000년을 이어간 짐승의 제사가 이런 예수님의 피 흘림과 죽음에 대한 온 인류에게 알리는 예표였습니다. 자신이 죄를 짓고 자신이 잘 기른 귀한 짐승을 스스로의 손으로 칼로 찔러서 죽이고 피를 받아서 제단 뿔에 바를 때 그 사람이 느꼈던 감정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피를 흘리게 하시고 죽이실 때 인간과 달리 얼마나 크게 느켰을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자녀를 먼저 보낸 부모는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몇 만분의 1이라도 이해를 하게 됩니다. 저는 자식을 먼저 보낸 크리스천 부모의 심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3살 된 자녀가 자신의 목전에서 버스에 깔려서 골수가 터지면서 죽는 것을 보신 분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분께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걱정하지 말라 너의 자녀는 천국에서 잘 있으니 슬퍼하지 말라 이제 나의 심정을 이해를 조금이라도 하게 되었을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 나의 심정도 전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결코 쉬운 일도 기쁜 일도 아니고 어렵고 힘들고 슬프고 슬픈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크시기에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우리가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도 하나님도 모를 때 정말로 피를 흘리고 바로 죽을 죄를 짓고 또 짓던 사람입니다. 저는 그런 죄인이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모르고 나이가 27세 될 때까지 지은 죄는 나중에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읽고 보니 너무나 크고 참혹하고 부끄러운 죄라 어디에 말을 할 수도 없는 죄를 수도 없이 지었음을 보았고 회개를 하고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다 받아들이는데 십년이 넘게 걸린 죄도 있고 아직도 너무나 큰 죄로 인식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서 죄에 대해서 인식을 못하고 사는 것은 마귀에 이미 빠져 있고 그 영혼이 죄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죽어 있으니 불신자는 모두가 이런 상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모든 사람이 실상은 이렇게 죽어야만 하는 죄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죄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보시고 계십니다. 그런 중에 우리는 범죄를 했고 하고 있습니다. 죄를 미워하시고 벌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을 불로 물로 멸망을 시키지 않고 참으시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자녀를 살해한 범인을 법정에서 그대로 공격하는 부모를 우리는 심심찮게 봅니다. 인간이 할 수만 있으며 자신의 자녀를 납치하고 죽이면 그 사람을 찾아서 그보다 몇 배 더 잔인하게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이 대부분의 인간의 마음이지만 법이 막고 관습이 막고 경찰이 막으니 참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해서 바로 벌을 주지 않으시고 길이 참으시고 간과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에 바로 바로 벌을 주시면 내가 벌을 받고 재산을 다 읽고 가정도 깨어지고 몸도 망가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보내셔서 믿으면 용서를 하신다고 하면 누가 과연 이미 벌을 받았는데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죄를 보시면서 간과하셨다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데 죄를 짓지 않은 상태와 같이 하십니다. 즉 죄에 대해서 묻지도 않고 죄에 합당한 벌도 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까지 즉 예수님을 보내시고 수난을 받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벌하지 않고 참으신 것은 이유가 있으니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정의를 나타내시려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는 이런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에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나 우리의 죄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편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을 해야 되는데 이도 정의롭게 해결을 해야 됩니다. 그 정의가 구약의 율법에 있는 죄에 대한 형벌로 제사제도와 제사로 되지 않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대한 사형의 집행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로서 하나님께서 이를 무시 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정해서 인간에게 주신 법을 하나님께서도 그대로 지키십니다. 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무엇이든 하실 수가 있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그대로 지키십니다. 이렇게 정의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정의 즉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이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심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는 이를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그리고 26절은 이에 대한 결론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림과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시려 그렇게 하셨고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는 사람도 역시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시려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며 또한 예수님을 믿는 이를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나타내시려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어를 보면서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반드시 올바로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 하는 구절입니다. 이신칭의보다 더 중하고 더 잘 이해를 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나의 구원의 의미를 잘 이해를 해야 정의롭게 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면 최후의 심판이 너무나 분명하게 존재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죄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그리고 예수를 믿고 난 후엔 회개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죄의 문제가 그대로 있기에 영원한 형벌이 너무나 당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나는 의롭게 사니 나는 올바로 사니 나는 사랑을 실천하니 혹은 도를 닦니 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스스로 도를 통해서 성불하고 윤회에서 벗어나 극락에 가고자 하는 이의 사상은 죽음 이후에 바로 무엇이 옳고 그런지가 드러납니다. 불교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가르침과 스스로 깨달음을 통해서 죽음을 이긴다는 주장은 한 인간인 죄인이 수도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 이 깨달음으로 해탈을 한다고 하는데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두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헛된 주장입니다. 즉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기에 이를 평소에 잘 이해하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내가 하늘과 땅에서 가장 중하니 내가 있으므로 우주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이제 우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이 보면 바로 이 주장이 거짓인 것이 드러납니다. 고승이 죽고 불에 태우니 사리가 나와서 사리탑도 세우고 난리를 펴나 그 사람은 죽어서 작은 무덤에 들어가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은 끝이 납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과 땅은 그대로 있습니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고 유일한 존재라 믿었는데 실상은 먼지에 불과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자신은 죄로 인해서 죽을 먼지와 같은 존재라 여기고 자신을 죽은 자로 믿고 늘 하나님과 예수님과 그리고 그분이 만드신 온 세상을 보면서 찬양하고 예배하고 살다가 자신이 죽으면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대로 온 우주도 이 사람의 죽음과 1%관련 없이 그대로 존재합니다. 오직 나만 죽고 없으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었기에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 있습니다. 직접 우리가 눈으로 온 몸으로 어떤 것이 진리인지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먼지와 같은 인간이 온 우주와 세상과 인간과 그 사회를 작은 자신의 두뇌와 육체를 괴롭게 하면서 도를 닦아 보아야 겨우 죽고 난 후 작은 무덤만 덩그러니 남고 온 우주는 아무런 타격과 손실도 없이 그대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존재합니다. 착각이 너무나 커서 먼지와 같은 자신을 우주보다 세상을 만든 이 보다 더 크게 더 중하게 더 잘났다고 생각하다 죽으나 모든 것은 그대로 있고 오직 그 착각한 인생만 이 세상에서 사라져 한 줌의 흙이 되는 것뿐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에 일생을 결혼도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것도 포기하고 살았는데 허무와 열매 없는 무가치한 삶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옥이 또 기다리라고 있으니 성철의 죽음을 앞 둔 고백도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즉 율법은 그냥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법이 아니라 온 인류의 삶을 결정하고 죽고 난 이후에도 모든 사람의 행위를 심판하는 최후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인간도 예수님께서 오시면 모두가 죽고 우리가 살던 지구도 사라지고 우리가 보던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릴 때에도 일점 일획 손상 없이 그대로 존재하는 엄위한 법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이 쉬지 않고 찬양했던 법이 율법이며 우리도 역시 쉬지 않고 찬양하고 높이고 배우고 전하며 지켜야 할 법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려 먼저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이 인간의 구원이기도 하지만 역시 율법이 그대로 지켜지는 세상을 만드는 율법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구약은 크게 모세 오경, 그리고 역사서, 시가서 그리고 예언서로 39권의 책이 엮여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 오경은 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가에 대한 법으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기준이 되는 법으로서 이 법대로 살면 축복이 이 법을 어기면 저주가 기록이 되어 있고 이 법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을 맺은 것이 구약입니다. 그리고 그 법대로 사는 것을 기록한 책이 역사서이고 이 법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린 내용이 시편이며 그리고 법대로 살지 못해서 어긋난 삶을 살 때 선지자들이 그렇게 살면 멸망이 있다고 예고한 책이 예언서입니다. 그래서 모세 오경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법을 그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잘 지켜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 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구약의 이스라엘이 1천년을 지나면서 지키지 못한 법을 도리어 완성을 시키겠다고 하는 말씀이 위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에스겔서에 기록을 하셨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제 구약의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해결하시려 오십니다. 희생의 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자 오십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이제는 천국에 가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시고 통치하십니다. 그리고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율법으로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죗값을 치르시려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교회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면 우리의 죄가 주홍빛과 같더라도 하나님께서 다 용서를 하십니다. 그리고 새 영 즉 성령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창조가 됩니다. 이를 재 창조 혹은 거듭남이라 부르는데 내가 내 기도와 수도와 노력으로 절대로 그렇게 나를 창조할 수가 없으니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장이 꽉 찍히고 하나님의 작품들이 됩니다. 이들이 이제 이 세상에서 지금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잘 살고 성공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사랑과 집착은 인간이 어떻게 도저히 할 수가 없고 모든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율법을 지키는 쪽으로 다 맞추어져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1000년을 참아가시면서 이스라엘이 반드시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라고 하셨고, 그리고 이를 어기자 율법대로 구약의 약속대로 멸망을 시키셨겠습니까? 도대체 율법에 무슨 비밀이 있기에 이렇게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기를 그렇게 오래 기다리면서 바라셨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선포하셨고 그리고 성령께서 오셔서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지키게 한다고 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율법이 곧 하나님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이 모두가 알 수가 있게 글로 표현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평과 거룩과 유일하심과 전능하심 등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주신 분의 속성을 알고 싶으신 분은 율법을 읽으시면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구약의 백성 중에서 이런 율법의 의미를 아신 분들은 율법을 늘 찬양했습니다. 율법은 찬양의 대상인데 이는 신약의 백성에게도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 율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증거하셨습니다. 3천 5백년 전에 한국에 사람도 없고 이 세상에 법도 제대로 없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과 모든 인간에게 주신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이 곧 하나님이라고 보아야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저는 30년 전에 신림동에서 행정고시 2차 준비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1차 합격자 7명이 함께 그룹스터디를 했습니다. 서울대생이 두 명, 부산대 1 명, 성균관대 1 명, 그리고 강원대 1 명 그리고 저와 또 다른 분이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두 명이 행시에 붙고 한 분은 7급 공무원으로 가셨는데 4급이 되는 것을 보았고 행시에 합격하신 분들은 5급 사무관으로 시작을 했기에 30년이 지났으니 적어도 2급 이상의 공무원이 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당시 1차 합격자 200명이 모여서 치는 모의고사에서 늘 10위 안에 들어서 모든 사람이 좋은 성적으로 고시에 합격할 것이라 믿었는데 보시는 바와 같이 떨어지고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목사가 되었으니 저는 1점차 낙방이 당시에는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고 서운 했으나 지금은 그 때의 낙방이 너무나 안도할 일로 잘 되었다 믿습니다. 저는 법학도가 아니지만 헌법과 행정법, 국제법과 민법 등 일부 법에 대해서 시험 과목이기에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래서 법에 대해서 행정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고 할 수도 있는데 제가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저도 구약의 백성과 같이 율법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직접 오셔서 또 다음과 같이 율법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께서 모세에게 모세 오경을 주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이시고 모든 일을 함께 하십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직접 오셔서 율법에 대해서 보시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칭찬을 했고, 조문 조문 잘 지키고 더 중한 율법의 정신에 해당하는 정의와 사랑(긍휼)과 믿음을 잘 지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이 세상의 모든 법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그리고 율법의 가장 중심이 되는 사상이 사랑과 정의와 믿음이다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제 이 예수님의 말씀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우리가 모세 오경의 율법을 깊이 연구해서 그 정신을 찾을 필요도 없이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해를 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율법에 대해서 아직 믿음이 오지 않는 분을 위해서 조금 풀어 보겠습니다.
모세 오경의 율법을 어떤 랍비가 조사를 해서 613조문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하라는 규정이 248개 하지 말라는 금지 규정이 365개입니다. 이를 다시 예수님께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모든 율법을 두 가지 큰 계명으로 정리를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정리하셨습니다. 구약의 신명기의 쉐마의 말씀대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 첫째 계명이요, 이와 같이 우리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둘째 큰 계명입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10계명으로 주셨으니 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부분이고, 6-10계명은 인간에 대한 계명입니다. 이를 랍비가 613계명으로 모세 오경을 보면서 그대로 정리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세 오경으로 가셔서 구절 구절을 확인을 해보시면 틀림없이 위의 저의 설명대로 모든 규정이 다 기록이 되어 있음을 확인 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 규정들을 늘 배우고 있고 늘 위의 말씀이 진리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법치이고 그 법은 율법입니다. 반드시 모든 목사 신학자 성도가 믿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제가 세상의 법을 조금 공부했는데 세상의 법도 하나님의 법을 많이 따라 가는 부분이 있지만 모든 세상의 헌법 즉 미국의 법이나 한국의 법은 늘 변했습니다. 한국 헌법도 여러 차례 개정이 있었습니다. 법은 안정성과 적응성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데 세월이 변하니 법도 변하는 것인데 이는 법적인 안정성을 보장 하기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헌법은 정치적인 소산이라 정당이나 권력을 잡은 자의 이익을 따라며 만들어지며 일반 국민은 이를 확인하기도 분별하기도 어렵습니다.
집과 땅에 대한 율법의 규정과 헌법의 규정을 예를 들어 비교를 하면 율법대로 하면 한국에나 온 지구상에 집과 자신의 땅을 갖지 못하고 살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됩니다. 즉 지상의 천국의 기초가 집과 땅에 대한 율법의 규정입니다. 그리고 보시는 바와 같이 한국과 온 세상의 자본주의 국가의 예를 보면 가난한 자와 부자로 나누어져서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한국에 5천만이 사는데 국민의 48%가 자신의 집이 없습니다. 그리고 땅도 자유롭게 사고 팔고 하다 보니 돈을 잘 번 국민의 30%의 수중으로 다 가고 국민의 70%는 땅이 한 평도 없고, 국민의 1%인 50만이 가용국토 50%를 갖고 있고 일인당 17.000 평 이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국민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교육, 직장, 결혼, 그리고 출산의 문제와 하루에 40명이 자살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땅이 돈이 되는 줄 알고 돈을 벌기 위해서 또 돈이 생기면 부자들이 땅을 무조건 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는 군산의 가장 육지에서 먼 섬을 보았는데 수십 수백 명이 작은 섬을 나누어서 이미 소유를 했고 평당 가격도 벌써 수십만 원이나 되었습니다 온 국토가 이렇게 산산이 쪼개져서 특정 소수가 소유하고 있으니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국민의 대부분이 집도 땅도 없는 마음의 휴거 상태에서 살고 있으니 결혼도 아니하고 소망이 없기에 자살을 하루에 40명씩 쉬지 않고 수년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한국입니다.
이런 인간이 사는 게 가장 필요한 집과 땅을 이렇게 하는 인간의 악행을 미리 아신 하나님께서 율법에 정한 땅과 집에 대한 규정은 절대로 집과 땅을 사고 팔고 함부로 하지 말고 땅도 지파 별로 잘 분할을 해서 모든 사람이 집과 땅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얼마나 정의롭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까? 그리고 집과 땅을 주변의 이웃을 배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가지려는 한국의 모든 땅부자에게 세상의 땅을 소유한 국가와 부자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일
사 5: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다.
땅과 집이 없는 모든 한국민 온 세상의 국민에게 이 말씀은 큰 위로와 평화를 줍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국민의 주권을 논하는 현 헌법으로 위와 같은 사정에 온 한국에 이르게 해서 소망이 없는 수많은 국민이 존재하는데 그 법이 무슨 나의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법으로 인정이 됩니까? 그 법을 저는 달 달달 외워서 헌법 과목에서 한 두 개 정도 틀리고 다 맞게 공부를 했습니다. 모든 사시 행시, 합격자들이 그렇게 달 달달 공부를 하는 헌법이 이런 한국을 만들었고 정치인들은 한국이 세계 10권의 경제력 군사력의 강대국이라 자랑하지만 재벌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세상이고 집도 땅도 직장도 없는 국민의 적어도 50-60%는 오늘도 살길이 막막하기만 하고, 헬 조선이라 하고 홀로 죽음을 고독하게 맞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홀로 결혼도 하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이도 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건설하고자 하는 세상(하나님의 나라)은 너무나 멀리 멀리에 있지만, 우리는 희망을 절대로 놓지 않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소망에 힘차게 살고 있으니 이는 전적으로 그 나라의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 율법이 있고, 이 율법을 마침내 이 땅에 시행이 되도록 하실 전능하신 하나님과 하늘과 땅의 실권을 가지신 예수님을 믿기에 그렇습니다. 얼마나 수많은 집도 땅도 없는 백성을 평등하게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고 하나님의 모습이 율법에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온 세상의 법을 다 뒤져도 하버드 법대 서울대 법대를 다 살펴도 이렇게 온 세상의 사람을 평등하게 잘 살게 하는 법은 절대로 만들 수도 없고 존재도 없는데 무려 3천 5백년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법을 주셨으니 진실로 이 사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고 율법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법은 진리이기에 세월이 그렇게 지나도 글자 한 자 변치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이 놀랍고 위대한 법이 율법이며 모든 믿는 이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율법도 자세히 보시면 이렇게 정의롭고 공평하며 모든 사람이 신뢰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모든 크리스천이 율법을 사랑해서 쉬지 않고 묵상하고 읽고 달 달달 외우도록 해야 합니다. 고시 공부의 1/10의 노력만 기울여도 모든 율법을 통달할 수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보배 중의 보배를 우리 곁에 두고 우리는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그리고 생명력이 겨우 몇 년, 몇 십 년에 불과한 인간이 만든 법에 생명을 걸고 청춘을 걸고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모든 똑똑한 청년은 의사나 검사 판사를 지향하지 말고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이 나라가 대국 틈 사이에서 살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많은 분의 도전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드린 한국의 대부분의 부자같이 땅과 집에 정신이 팔린 당시 이스라엘의 왕과 고관과 그 자녀들의 말로를 성경을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렘 39:6. 바벨론의 왕이 리블라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이사야의 예언대로 정말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모든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조선에도 역시 일어났습니다. 100년의 천주교 탄압을 자행한 그리고 약해진 조선을 일본군이 점령으로 왕비는 낭인의 칼에 맞아서 죽고 왕과 왕자는 볼모로 일본에 잡혀가고 모든 왕 소유의 땅과 양반 소유의 땅을 토지 조사사업 후에 농민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일본이 한 일과 바벨론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 일이 그대로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제가 지금 땅을 가진 30% 그리고 재벌 그리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떤 세력에 의해서 멸망하고 북의 김정은도 죽고 그리고 그에 붙어서 백성의 고혈로 호의 호식하던 자들이 다 죽고 포로로 잡혀가고 북한의 옥에 갇혔던 자들이 북한의 모든 땅을 나누어 가지고 남한에서 예수를 믿고 선히 살면서 집도 땅도 없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남한의 모든 땅을 나누어 가지고 집도 나누어 가지는 일이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또 다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미리 말씀을 드려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가 사는 시대에 반드시 일어 날 수가 있는데 부안의 지진과 경주의 지진 북의 핵과 장사포 그리고 남한의 심각한 분열과 빈부의 격차가 그리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하루에 스스로 생명을 끊는 영혼들이 예수님께 쉬지 않고 청하는 내용들, 그리고 결혼도 못하고 사는 젊은 청춘들의 절규를 예수님께서 다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숨도 쉬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숨어서 사는 십만 명의 쉬지 않는 기도를 70년 동안 듣고 계십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그 가장 큰 피해는 사랑을 하지 않고 이 좁은 땅에서 홀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 수조를 가지고도 죽어가는 이들을 외면하는 무정한 이 땅의 동족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디에 속해서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법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시편 제1장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리고 바울 사도의 로마서와 갈라디어서 등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율법과 정의로운 행위에 대해서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개신교인도 많이 있는데 다음의 말씀도 로마서에 틀림없이 있는 말씀이니 절대로 한 구절만 보고서 500년 동안 정신이 나간 신학에 목을 메지 마시기 바랍니다.
롬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믿음이 율법을 도리어 세운다는 의미는 예수님의 말씀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고 바울 사도는 믿음을 통해서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했으니 예수님의 말씀에 그의 종인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기 위해서 사역을 했고 역시 로마서에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편지를 겉으로만 이해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때론 다르게 느껴 질 수도 있고 실재로 이런 현실에 대해서 이미 미국에선 이상하다 하고 정신을 차리는 신학자 목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잘 이해하면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씀을 죄인이었던 인간 바울이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실재로 예수님의 뜻대로 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게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사람은 에스겔서에 살펴본 바와 같이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율법을 잘 지키게 됩니다. 예전에 율법의 정신을 놓치고 조문 조문에 빠져서 핵심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과 정의와 신뢰를 실천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이제는 새롭게 창조된 사람이 율법을 옛 이스라엘과 같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율법을 완성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적어도 20년을 성령의 인도로 사랑을 실천했고 그리고 로마서를 보냅니다. 과거 예수님을 모르던 때와 같이 조문 조문을 지켜 의를 얻으려는 인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거듭난 인간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율법의 조문을 다 지키게 된다는 말씀이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게 된다는 바울 사도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율법으로부터 자유도 율법을 무시하고 율법을 마음대로 어기면서 살아도 된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고 율법을 잘 배우고 율법이 무엇인지 잘 아는 가운데 율법의 조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는 먼저 복음의 전파와 선한 삶입니다. 복음의 전파는 사랑의 행위 중에 가장 포괄적이고 가장 중요한 행위라 할 수가 있는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절대로 어떤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힘들게 해도 참고 사랑합니다. 그래서 길게는 수 년 수십 년을 참고 기도하면서 그 영혼이 구원을 얻기를 바랍니다. 어떤 아버지가 한국의 땅을 다 자식에게 주어도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면 그는 그 아들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는 것도 없는데 예수님을 잘 전하고 성경을 잘 가르쳤다면 너무나 그 아버지의 역할을 잘 한 것은 그 영혼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먼저 우리에게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도록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선하게 살게 하십니다. 이렇게 해서 율법의 많는 부분을 다 실천하게 하십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롭지만 율법을 완성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이제 이 법으로 누가 어떻게 통치하는지 또 살펴 보겠습니다. 저 같은 흉악한 죄인이 이렇게 귀한 말씀을 오천만의 로마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 전하고 있는데 저는 늘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이런 저런 일을 다 시도했으나 모든 일이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하는 사람이 될 줄로 몰랐습니다. 전도가 잘 되어서 전도를 하는 방법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도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신칭의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가 되었을 때 온 세상에 이를 전하면서 교회와 사람을 비판하는데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모르던 시절 믿는 이를 찾아서 광분했듯이 열을 올리다가 허리가 죽도록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아프면서 이런 길에서 돌이켰습니다. 그리고 배운 내용이 너무나 많아서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고자 했는데 여전히 배우라고 하셨고 이제 이 내용을 전하게 되었으니 실로 인간이 생각하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고 그래서 우리에게 오는 시련을 우리는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게 제 길로 가고자 하면서 오랫 동안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못난 사람을 이렇게 사용하십니다. 삼위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분의 통치에 대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상의 만물의 주가 되십니다. 그분께서 우주와 인간과 만물을 만드셨기에 주인이 되며 당연히 지구도 그분이 만드셨기에 진정한 소유주는 예수님 이시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나그네요 세를 들어 사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부자에게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이에게 주라고 하시면 땅과 집의 소유주가 명하는 명령을 세입자가 거절하는 것은 죄가 됩니다. 이 땅의 모든 부자는 이 주인의 말씀을 잘 경청을 해야 살아 남을 수가 있고 영원한 천국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창조주인 주인이 이 세상과 우주와 인간과 만물을 통치하심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하거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땅과 만물과 인간을 자신이 차지하고 통치하고 관리하는 것을 욕심으로 간절히 원하게 되고 이 욕심이 강도와 약탈과 전쟁으로 이어져서 먹고 먹힌 역사가 죄인인 인간이 지난 세월 보낸 역사이고 이런 역사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고도 보복하지 않고 평화를 추구한 민족이 대한 민국의 국민의 조상들이십니다.
내 자신과 땅과 집과 모든 우리가 누리는 소유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이며 진실된 통치자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어디 기댈 수도 없는 대상에 기대고, 어디 붙어서 살 수도 없는 존재에게 자신의 귀중한 생명을 맡기면 멸망이 기다리고 지옥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믿는 하나님의 백성은 늘 세상의 지배와 하나님의 통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각국의 국가는 통치 체계를 아주 잘 갖추고 있는 강력한 집단입니다. 헌법이 잘 정비가 되어 있고 이 헌법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각종 하위 법이 절차에 따라서 잘 만들어져 있으며 국민에게 이 법을 지키도록 잘 교육도 실시합니다. 그리고 법을 어긴 자를 벌할 제도와 기관이 또 잘 정비가 되어 있으니 경찰과 사법제도와 당국입니다. 그리고 타국에 대항할 강력한 군대를 대부분의 국가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 시대의 통치체계 속에서 그 땅에서 태어나는 모든 그 나라의 백성은 그 나라에 충성할 것을 배우고 애국하는 길이 선한 길로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서 그 국가의 법을 지키며 군대도 가고 직장도 가지고 결혼도 해서 사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는 완벽하게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이다라고 믿고 삽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닌 천국을 소망하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통치를 받고 삽니다. 그리고 그분의 법인 제가 앞에서 말씀 드린 율법을 잘 배우고 지켜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집을 사고 땅을 사고 부를 늘리는 방법이 세상의 방법으로 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든지 가져도 누가 합법적이면 시비를 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보신 바와 같이 과도하게 주변의 이웃이 집도 땅도 갖지 못하도록 가지면 하나님의 법으로 크게 처벌의 대상이 되고, 지나치면 죽고 지옥에도 가게 되는 죄를 짓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도 모르고 교리로 인해서 법 즉 율법을 배우는 것과 지키는 것을 실천하지 않게 되면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대로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되고 천국에 가도 영원히 지극히 작은 자로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로 아버지로 가정에서 주인으로, 직장에서 주인으로, 그리고 교회에서는 당연히 교회의 주인으로, 국가에서도 국가의 주장과 헌법이 뭐라 해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그분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도움으로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사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고, 예수님도 자신의 백성에게 각종 복을 내리시지만, 또한 우리는 그분과 함께 이 땅에 그분의 나라를 세우고 그분의 의를 추구하는 일을 게을리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의 다스림을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국민으로서 받는 것을 즐거이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예수님의 마음대로 하시 수도 있지만 대부분 법에 의한 통치 즉 율법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1000년의 역사가 틀림없이 율법을 기준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통치는 사랑과 정의와 신뢰에 바탕을 두었고 공정과 공평이 또한 중심이 되었습니다. 왕을 세우고자 하는 백성의 청원에 따라 왕을 세우고 제사장과 선지자와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관리와 함께 백성이 이스라엘의 정해진 국경 내에서 서로간에 또 족속 혹은 지파의 경계를 지키면서 집과 땅이 없는 사람이 없도록 하셨고, 법을 잘 지키면 축복을 듬뿍 주시고 어기면 징벌을 내리시면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법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영화를 누렸는데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고 금과 은이 길가의 돌과 같이 많았고 왕으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영토를 지키며 율법을 잘 지켰습니다. 이런 다윗을 기억하셔서 1000대의 복을 주시고자 하셨으니 율법을 잘 지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반드시 잘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 당시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지만 율법을 지킴으로 질서가 있고 또 강력한 수십만의 대군이 있었지만 이 지구상의 어떤 왕도 하지 못한 국경의 범위를 벗어나 주변의 약한 나라를 노략하고 영토를 넓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시대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친히 왕이 되셔서 이렇게 복 받은 나라를 온 지구상에 만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 시대에 왕으로부터 제사장, 선지자, 관료 그리고 백성이 모두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니 즉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니 친히 하나님께서 군대가 되셔서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통치를 내 개인의 삶에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하고, 그리고 가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즉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계시면서 다스리게 해야 되고, 교회도 당연히 예수님의 통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국민이 국가에 약 3%만 되어도 그 국가는 소금과 빛의 역할이 이루어지기에 정의롭고 평화롭게 살 수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 3%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선택이 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복을 달라고 하면서 기도하고 헌금하고 하지만 우리가 늘 율법을 어기면서 복을 달라고 하면 죄가 우리를 막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의 삶이 그 분의 통치에 합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 분의 통치는 율법에 모든 조문 조문이 다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이 그렇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친히 그렇게 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약의 가르침과 다름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구절이 신명기 6장에 있는데 이를 쉐마로 부릅니다. 보시겠습니다
신 6:1.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구절이 신약의 우리에게도 조금도 다름없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성도의 기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를 나의 죄를 씻기 위해서 주신 사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택함을 받은 구약의 이스라엘 보다 더욱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령님을 간절히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기본 중의 기본인 의무입니다.
저도 이 구절을 이렇게 이해하고 나누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시련도 많았습니다. 이 구절대로 살지 못해서 당한 시련이 많습니다. 먼저 첫 아내는 제가 교회에서 돌아오니 짐을 싸서 떠났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도 이해도 못하며 충격으로 4년을 우울과 불면으로 체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새 아내를 주심으로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고 제 어머니와 동생도 많은 노력을 하시고 물질로도 쉬지 않고 지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또 재혼 20년 만에 가정의 위기가 왔는데 이럴 때까지 하나님의 주권과 가정의 주인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내 자신의 주로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로도 인정을 잘 못하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구절도 그렇게 절실하게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기에 늘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그렇게 사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교회에 잘 출석하고, 헌금도 잘 하고, 쉬지 않고 전도하면 그리고 성경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하는 모든 일이 다 실패하고, 두 번째 결혼도 또 어려움이 닥치자 무엇을 내가 잘못했지 하고 살피니 제가 아직도 제 가정의 주로 예수님을 모시지도 않고, 제 자신의 주로도 잘 모시지 않고, 그리고 국가에서 살면서 국가가 뭐라 하든 나의 주인은 예수님이다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통치의 근간인 율법에 대해서 이해도 절실함도 느끼지 못했으니 성령을 받고 전도하면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다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냐 하는 마음이 너무나 컸습니다. 그런데 복이 오지 않고 너무나 오랜 가난과 하는 일들이 실패할 때 비로소 저는 낮은 자리에서 오랜 고난을 통해서 율법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약 40년의 신앙 생활을 줄여서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 이 땅에서 성도가 함께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건설해야 되는 나라에 대한 이해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통치를 싫어하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제 마음대로 제 아내의 원하는 바를 하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했지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을 다스리는 것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예수님의 저와 아내 사이에 오심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또 가정의 위기를 겪게 되고 율법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을 묵상하면서 어느 날 최근에 밭에서 일을 하던 중에 예수님 우리 가정의 주인이 되셔서 어렵게 된 우리 가정을 바로 잡아 주세요 하는 고백과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의 주가 되셔서 통치를 하셔야 함을 믿게 되고 이와 같이 내 삶의 영역에서도 그렇게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셔야 하고, 그리고 교회에서도 그렇게 되어야 하고 그리고 국가도 이렇게 예수님께서 통치를 하셔야 함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시간고 많이 걸리고 고난도 많고 낭패도 많이 겪으면서 이 결론에 까지 옵니다. 그냥 시작부터 예수님을 주라 늘 부르니 내 삶의 주관자로 인정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율법도 잘 몰랐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예수님을 그냥 당시의 제자들과 같이 믿고 따라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많이 바치고 고난도 받으면서 배우고 있으니 저와 같이 마시고 바로 잘 믿고 바로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리고 그 통치는 율법대로 되는 통치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과 신실하심과 그리고 정의로우심을 모두 믿게 되고 율법에 대해서 신뢰와 찬양을 하게 되었기에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통치하심이 너무나 좋고 올바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전도에 정신을 쏟기를 적어도 20년 이상 그리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기를 적어도 25년 이상, 그리고 율법에 대해서 묵상하고 신뢰하고 찬양하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우리의 삶의 영역에 예수님께서 통치하심이 가장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저와 같이 느리게 마시고 속히 바로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그렇게 했고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도 바로 그렇게 했습니다. 모든 분이 바로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예수님의 뜻대로 사시길 바랍니다.
제[ 가정이 별로 문제가 없었다면 절대로 예수님을 이렇게 인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삶이 부유하고 부족함이 없고 세상의 높은 곳, 즉 고시에 합격해서 고위직에 근무했다면 절대로 율법의 가치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오랫동안 읽고 정리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이런 진리에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못난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 꿈이다. 염려 말라. 힘을 내라" 제가 쉬지 않고 이렇게 제가 듣고 이해할 수가 있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직접 예수님의 음성을 이렇게 쉬지 않고 들으면 너무나 힘이 나고 때론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쉬지 않고 가난한 삶 속에서 성경을 읽고 깨닫는 기쁨을 주셨는데 그 기쁨이 굉장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과 예수님의 함께 하심으로 40년의 가난이 휙 지나갔습니다. 제가 이미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미 대사관 근무를 위해서 신원 조회를 하는데 20년 소득명세서를 때어 오라고 해서 국세청에 갔는데 이런 자료로 통계가 잡히는 20년을 보니 약 8천 몇 백만 원의 소득이 총소득으로 계산이 되었습니다. 이를 20년으로 나누고 이를 또 12로 나누면 한 달에 제가 약 40만원 정도의 소득으로 20년을 버틴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대학원을 두 곳이나 졸업을 했고, 결혼도 두 번을 했고 헤어진 옷이나 떨어진 신발을 거의 신지 않고 먹는 것을 굶은 적이 없으니 이스라엘 40년 광야의 삶을 저도 체험을 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전하고 온 세상의 유명한 대학의 교수님께도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제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과 은혜는 무어라 말로 다 표현이 불가함을 믿습니다. 가난과 수고는 지나고 보니 잠시이고 말씀의 진리를 깨닫고 나누고 전하는 영광은 너무나 크니 모든 사람이 이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국가의 운명을 결정을 지으시고 왕과 권력자를 세우고 폐하시며 그리고 개인의 생과 사 그리고 화와 복을 주관하십니다.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재림하셔서 최후의 심판을 베푸시고 새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부활한 예수님을 믿는 백성이 그곳에 살면서 영원토록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하고 믿고 받아들여 개인과 가정과 그리고 집단과 국가의 주로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들며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럴 자격이 충분이 있으시고 그리고 능력도 넘치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 분을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의 주로 인정하고 그분의 통치를 기쁘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일이 문제가 됩니다.
죽어서 가서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곳 천국의 삶을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며 성경의 내용대로 그분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면서 모든 면에서 그분의 능력과 권세를 인정하고 그 분의 사랑과 정의를 믿고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의 통치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는 모든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약 38년 전에 오셨을 때 저는 도구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저를 도구로 써 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도구가 되고자 적극적으로 무슨 일을 해야 되는 지도 몰랐고 또 하나님의 도구로 살기 위해서 힘써 준비도 못한 불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부탁을 드리고 그 부탁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못된 삶을 살았습니까? 이런 저를 성령께서 감동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기쁨과 열정을 주시고 말씀을 깨닫는 즐거움을 주셨고 그리고 모든 일에 대한 실패는 어떤 분야에 대한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쉬지 않고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과 제가 만난 사람들이 저를 사랑했습니다. 잠실교회에 교인이 모두가 저를 도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온 세상에 이렇게 전하니 제가 도구가 된 것이 맞는지 모를 일입니다.
모든 교인의 주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께서는 만 왕의 왕으로서 우주와 성도와 만물을 통치하십니다. 그분은 이 땅에 그 분의 나라를 세우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그 분은 먼저 법을 주셨고 그 법대로 세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법에 대해서 잘 배우고 잘 익히고 있어야 그 법대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나라뿐만 아니라 그분의 의도 율법에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는 의에 대해서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함께 그 분의 의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모든 세상에서 고장이 난 사람, 고장이 난 가족, 고장이 난 집단과 나라를 바로 잡는 것이 예수님께서 다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주로 인정하고 그 분의 통치를 가정에서 교회에서 받는 것이 모든 실수와 낭패와 불행을 줄이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제게도 제 가정에도 제 직장에도 우리 나라에도 그리고 온 세상에 주님의 통치가 확산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법 율법이 통치의 기초로 잘 시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받아야 하는 가장 크고 중요하고 위대한 선물은 바로 성령의 선물입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우리는 몸은 그대로 두고서 마음이 새롭게 창조가 됩니다. 이 창조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공동으로 하십니다. 이렇게 새롭게 창조된 사람이 새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작품으로 이 사람의 특징은 바울 사도와 같이 복음의 증인이 되고 초대 교회 사도와 성도와 같이 서로 네 것과 내 것이 없이 뜨겁게 사랑하고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을 즐겁게 받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선하게 삽니다. 이런 사람을 바울 사도는 성도라 불렀고 믿는 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 아브라함과 같이 오랫동안 변치 않고 믿는 이를 의롭다 했고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사는 이를 역시 의롭다 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마음이 부드럽게 되게 하시며 율법을 잘 지킬 수가 있게 하십니다. 율법이 잘 지켜지는 나라가 바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 즉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 즉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고 그 분의 뜻이 속히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든 교회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선장께서는 언제나 예수님 이시고 우리는 모두가 형제와 자매로 있습니다. 목자는 이런 양무리를 사랑하고 양육하고 돌보고 또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며 선하게 살도록 인도해야 하는데 먼저 본인이 성령을 받고 모든 성도가 성령을 받아서 그렇게 살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목자가 이렇게 되도록 기도를 해야 합니다. 짧은 인생의 신앙 생활 동안에 영원한 삶의 모습이 결정이 됩니다. 삼위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가 뜨겁게 사랑하며 함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고 그분의 법 율법이 완성되는 그날이 속히 오길 함께 기도하면서 힘을 내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느리게 고난도 받으면서 이렇게 믿는 사람이 되지 마시고 속히 믿고 행하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미 저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법을 즐거워하며 성령의 인도를 기뻐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는 많은 분들이 계실 줄로 믿습니다. 늦게 가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사랑의 주님 아무것도 모르고 게으르고 고집이 센 자를 쉬지 않고 격려하시고 또 용서하심으로 이렇게 온 세상에 주님의 뜻을 전하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정의에 대해 찬양합니다. 주님의 법인 율법을 찬양하고 증거합니다. 주 예수여! 우리 모두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옵소서! 주님을 사랑합니다. 정의가 이 땅에 강같이 흐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