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참여를 거부하는 데에 대한 벌 중의 하나는 당신보다 저급한 자들에 의해 지배 당하게 되는것이다."
플라톤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책에 대한 감상평은 필요없을 것입니다.
본문에 소개되어 있는 글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글을 쓴 사람의 진심이 느껴질 것이니까요
정치의 정반합을 떠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양심에 대한 이야기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던 70대 노인이 뇌경색으로 쓰러진 처의 병 수발 때문에 대한주택공사를 찾아갈 수 없어서 결혼 후 분가한 딸의 명의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했다.
처가 사망한 후 노인은 홀로 임대주택에서 살았는데 대한주택공사가 집을 비워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딸 이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법대로라면 노인은 집을 나가야 했다.
그래서 제1심 판결에서는 주택공사가 이겼다.
그런데 제2심 판결은 노인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은 이후 대법원을 거쳐 조정으로 종결 되었는데 제2심 판결문 일부를 소개한다.
"가을 들녁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쫒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대한주택공사)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이다.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건에서 따뜻한 가슴만이 피고들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그들의 편에 함께 서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대전고등법원 2006나1846판결(재판장 박철 부장판사)
이 판결을 접하면서 뉴욕 시장을 세 번이나 연임햇던 이탈리아계 정치인 피오렐로 라과디아가 떠올랐다. 그는 1930년대 초 대공항 시기에 잠시 뉴욕시 치안판사로 재판을 하게 됐다. 그는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어느 노파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배고픈 사람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이 도시 시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하며, 방청객 모두에게 각각 50센트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
방청객들은 순순히 벌금을 냈고, 라과디아는 이렇게 걷은 57달러 50센트를 노인에게 줬으며, 노인은 10달러의 벌금을 낸 후 47달러 50센트를 갖고 법정을 떠났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신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불복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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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대개 인생의 쇠퇴가 물질적인 재화에 대한 숭배를 조장하고 물질적 재화에 대한 숭배는 다시 인생의 쇠퇴를 촉진하고, 인생의 쇠퇴 위에서 물질적 재화에 대한 숭배가 번창한다. 배금주의는 아무런 활력이 없는 획일적인 인격과 의도를 조장하고, 삶의 기쁨을 축소시키고, 공동체 전체를 피로감, 좌절감, 환멸감으로 몰아넣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조성한다. " -버트런트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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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가 많으면 그에게 자기를 낮추고, 백 배가 많으면 그를 무서워해 꺼리며, 천 배가 많으면 그에게 부림을 받고, 만 배가 많으면 그의 노복이 된다." -사마천 [사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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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돼'라고 말해야 한다. 경제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나이 들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을 하다 죽었다는 것이 뉴스가 되지 않는 반면,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 뉴스가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는 배제의 사회다.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음식이 버려지는 상황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있나. 이는 불평등의 사회다. 오늘날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 아래에 모든 것이 지배되고 있다. 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을 착취하며 살고 있는 사회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배제되고 비참한 존재가 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우상들을 창조했다. 고대 황금 송아지에 대한 숭배가 돈이라는 우상과 인간을 위한 진정한 목적이 결여된 비인격적인 경제 독재라는새롭고 잔인한 형태로 변신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
목수로 평생 일하다가 실직 후 장애급여와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데 계속 거절당하는 이야기를 다룬 켄 로치 감독의 2016년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주인공 블레이크는 법원에 가서 할 말을 적어 놓는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나는 굽신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판결이 나오기 전에 블레이크는 사망하고, 이글은 장례식 추도사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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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게는 과로를, 다른 편 사람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없다. " - 버트런트 러셀 [게으름에 대한 찬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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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7일, 하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29일 고공농성을 벌인 김주익씨(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는 "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닷새 뒤 10월 22일 당시 MBC라디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진행하던 고 정은임 아나운서는 당일 방송 오프닝 멘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벽 3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
정 아나운서는 11월 18일 오프닝 멘트에서 다시 한 번 이 사건을 언급했다.
"19만 3천원. 한 정치인에겐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거리 한 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한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훨리스(바퀴달린 운동화)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고 김주익 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만 3천원이 마음에 걸려 있었습니다.
19만 3천원, 인라인 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35미터 상공에서 100여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고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 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멘 이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
"우리는 단군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 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우리는 우리 윗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서 자라났고 이전 세대에 비하자면 슈퍼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개발도상국의 젊은이로 자랐고 선진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런데 우리에겐 직없이 없다. 이게 말이 돼?"-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 중에서...
디케의 눈물저자조국출판다산북스발매202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