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얼음
장시백
나는 오늘도 인력사무소를 나와 다리를 절며 집으로 향했다. 거리에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에 퇴근이라니, 일도 못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기세등등해 보였고, 나는 패잔병처럼 느껴졌다.
겨우내 장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사현장이 생겨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일을 시작한 지 보름도 안 되어 사고가 났다. 자재 정리를 하던 중에 쌓아놓았던 자재가 무너졌고 쇠파이프가 인부를 덮쳐 사망사고가 났던 것이다. 사고 현장에서 함께 작업하던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허벅지에 타박상만 입었다. 사고수습으로 공사는 무기한 중단되었다.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인생에까지 다행스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겨울 동안 우리 가정의 생계를 책임질 일터를 잃은 것이다. 성치 않은 몸으로 전에 나가던 인력사무소에 다시 나갔다.
- 미안하지만 그만 돌아가요. 글쎄 그 몸으론 안 된다니까.
나도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공사판이라니.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떼라도 써보려고 새벽부터 사무실 앞에서 소장을 기다렸다.
- 일하다 보면 곧 다리 근육이 풀린다고요. 남들 하는 만큼은 할 수 있다니까요.
하루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다. 장사밑천으로 집 전세금까지 털어 넣었다가 그야말로 다 털어먹고 보증금도 없는 월셋집으로 이사했다. 겨울이 지나면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작은 아이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부부가 맞벌이로 열심히 일해서 살길이 열릴 거라는 희망을 아직은 손에서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일을 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니.
- 나가지 말라니까, 왜 나가서 생고생이야!
집에 들어서자마자 주저앉은 나를 보고 아내가 소리쳤다. 아내는 나의 마음을 알 리가 없었다. 이사 오면서 이 집에는 보증금이 하나도 걸려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나의 통장에는 잔액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숨겨왔기 때문이다. 일하면서 벌이가 생기면 굳이 아내를 불안하게 하지 않고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그렇지만 이제야말로 큰일이 난 것이다. 보증금을 걸지 않은 이유로 월세를 한 번이라도 제때 내지 못하면 집을 비워주기로 하고 계약했었다. 며칠만 지나면 참담하고 끔찍한 상황이 아내의 눈앞에서 펼쳐지게 될 것이다.
- 아이들 데리고 친정에 좀 가 있어.
갑자기 무슨 영문이냐고 묻는다. 날씨도 추우니 며칠간 어머니 밥도 해 드리고, 아이들도 할머니 집에 가는 거 좋아하니까, 가서 놀다가 올 때 김장이라도 좀 얻어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다리가 불편한 나를 걱정했으나, 괜찮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곧 내 말대로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내와 아이들을 처가에 보냈다. 달력을 보니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야 하는 날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전에 비어있다던 그 집, 지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을까?
나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건 동생이었다. 전세금 털어먹고 월세로 이사 간다는 말을 듣고 충청도 시골에 빈집이 있다고 하며 와서 살아도 된다고 했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었다. 시골에 가서 딱히 할 만한 일도 없을 것 같았고, 서울에서 재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기는커녕 당장 살 집도 없게 되었고, 때 거리도 바닥이 날 상황이 되었으니 달리 방법이 없다. 집은 아직 비어있고 최소한 일 년 이상은 공짜로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아파트단지가 부도나서 경매 중인데 경매 절차가 끝나려면 꽤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 집은 원룸형 임대아파트로 동생이 신혼 때 살았던 곳이다. 아이들하고 네 식구가 살기엔 비좁겠지만, 한겨울에 눈비만 피해도 다행일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아내를 설득하는 일이다.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여태 아무런 상황도 모르고 약 십 년 동안 나만 믿고 따라오기만 했던 사람이기에 이 충격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더욱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다른 길이 없다면 어차피 부딪혀야 할 일. 나는 친구에게 트럭을 끌고 오라고 했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물건부터 트럭에 때려 실었고, 덩치가 큰 장롱과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모두 폐기했다. 적당히 한 트럭 분량의 이삿짐을 꾸려서 친구에게 부탁했다. 동생한테 집 열쇠를 받아서 대충 집안으로 들여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결혼할 때부터 타고 다녔던 오래된 승용차를 몰고 처가로 갔다. 처가 근처에서 아내를 불러냈다.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이었다. 왜 안 들어오고 밖에서 불러내느냐고 했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에게 어디부터 얘기해야 할지 난감했다.
- 충청도 시골로 가자.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했다. 왜 우리가 충청도로 가야 하는지를 나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빈털터리다. 반드시 재기해서 실망하게 한 것보다 몇 배로 더 크게 보상해 주겠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믿어줘라. 속이지 않았다. 괜히 속만 상하게 할까 봐 얘기 안 했던 것뿐이다. 그렇게 생각나는 대로 말하다가 아내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내의 얼굴은 이미 젖어 있었다. 내가 쳐다보는 것을 알아채고는 꼭 다물었던 입술이 드디어 폭발했다. 안 가, 책임져,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런 원망의 말들이 울음소리에 섞여서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에게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고 했다. 정말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도 싫은데 당신과 아이들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참을 울다가 그친 아내는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만큼만 앞으로 더 믿어주겠다고 했다. 꼭 십 년만, 더는 안 된다고 했다. 처가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장모님께 인사하고 아이들과 함께 처가를 나섰다.
충청북도 청주 인근 작은 마을에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아파트단지가 있다. 마을 곳곳에는 돼지농장이 있어서 여름에는 심한 악취가 나는 곳이라고 했다. 또 근처에는 공군부대가 있어서 심한 소음이 나는 곳이기도 했다. 고요한 마을에 갑자기 전투기의 굉음이 지나가는 곳이라서 마을 사람들은 소송으로 소음공해 보상금을 받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친구가 잘 배달해 놓은 이삿짐을 정리하고 식탁과 침대를 얻어다가 놓았다. 동생이 소개해준 마을 주민이 안 쓰는 물건이라고 가져가라고 했다. 얼마의 생활비도 동생에게 얻었다. 방이 따뜻하고 당분간은 아내와 아이들이 먹을 것이 있으니 일거리만 찾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방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내가 이상하다. 항상 밝은 표정에 장난기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잘 웃지도 않고 허공을 바라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 너 여기 살았을 때 교회 다녔었지?
동생에게 아내를 교회 다니게 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어릴 때 여름성경학교에 나갔던 일 말고는 교회에 다닌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직장 그만두고 사업을 하면서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교회를 찾았었다. 총각 시절에 잠깐 교회에 다녔고, 터놓고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거나 마음이 지칠 때마다 교회에 나가서 위안을 받게 되었는데 믿음은 그다지 성장하지 못해서 꾸준히 다니지는 못했다. 아내가 이렇게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 신앙을 갖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동생이 이 마을에 있는 교회에 다닐 때 친하게 지냈던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교회에 꼭 데리고 나가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그녀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러겠다고 했다. 매일 그녀가 집으로 찾아왔다. 아내는 아무런 얘기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당장 나가라고 했다. 원래 내 아내는 집에 찾아온 손님을 막무가내로 쫓아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집 앞에 먹을 것을 놓고 갔다. 어느 날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그녀는 열심히 하나님이 어쩌고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교회 단짝이 되어 싱글벙글하며 함께 나다니기 시작했다.
- (구인) 대리운전, 콜 많음, 고소득 보장
지역신문 구인광고를 보고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다친 다리는 절지 않아도 될 만큼 나았다. 처음 해보는 대리운전은 낯설고 무섭고 더러웠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과 사장 그리고 처음 대하는 도로와 고객들이 낯설었고, 시간과 싸우는 직업이라서 목숨 내놓고 달려야 하는 상황이 무서웠다. 과속과 신호 위반은 일상의 일이 되어버렸다. 술에 취해서 욕하고, 반말하고, 무시하고, 대리 비용은 깎으려고 하면서 요구사항은 많고, 그런 것들은 정말 더러웠다. 게다가 사고에 워낙 민감했던 나였기에 대리운전은 절대로 오래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운전은 주로 내가 사는 마을 근처의 읍내와 청주 시내를 오가는 일이었다. 늦은 시간에 청주 시내에서 일이 끊기면 밤새도록 걸어서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는 때도 있었다. 그날에도 추위에 귓불을 문지르며 밤길을 걷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도로의 모양만 알아보고 걸어야 했다. 갑자기 빠르게 지나가며 나의 몸을 도로 밖으로 밀어내는 자동차의 꽁무니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다가 불빛 하나가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거기쯤에 외딴 중식당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식당이 가까워지고 술에 취한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너 명쯤 되는 사람들이 떠드는 것 같았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사람의 모습이 분간되었는데,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고 식당 마당에는 승용차가 두 대 세워져 있었다.
- 고집부리지 말고, 대리 부르라니까!
여자는 승용차 운전석 쪽에서 열어젖힌 문을 붙들고 있었고, 남자 두 명이 여자를 말리면서 대리운전을 부르라고 소리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도 집에까지 가려면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했기 때문에 대리운전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누구냐고 했다. 대리기사라고 했더니 아직 부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왔느냐고 했다. 일이 늦게 끝나 버스를 놓쳐서 집까지 걸어가던 중에 얘기하는 걸 듣고 대리운전이 필요할 것 같아서 왔노라고 했다. 집이 어디냐고 해서 마을 이름을 댔더니 그 여자가 사는 동네라며 모두 함께 잘 되었다고 손뼉을 쳤다. 차를 얻어 타는 셈 치고 대리 비용은 안 받겠다고 했더니 여자가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사는 여자였다. 나이는 오십 세는 넘어 보였고 깡마른 체구에 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있었다. 만약 목소리를 먼저 듣지 않았다면 남자로 착각했을 것이다. 차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자가 잠들었고 잠꼬대를 하는데 누구에게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여자를 깨웠다. 한참을 일어나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아서 몸을 마구 흔들어서 깨웠다. 여자는 미안하다고 하며 오만 원짜리를 내밀었다. 잔돈을 꺼내려 하자 필요 없다고 했다.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져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아빠! 그만 자고 일어나, 교회 가자!
딸이 교회 가자고 깨웠다. 일요일이었다. 새벽에 잠이 들어서 일어나기가 힘들어도 딸아이가 깨우면 벌떡 일어나는 버릇이 있다. 그래도 교회에 가기는 싫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고 나서 또 자려고 했다. 아내가 눈치를 채고 가족들 교회 나가게 한 사람이 누군데 정작 본인은 안 가려고 하느냐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같이 간다고 했다.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집을 나서니 교회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내는 벌써 여러 사람과 친분이 생겼는지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나는 어색한 표정과 동작으로 승합차의 맨 뒷좌석으로 가서 아들과 함께 앉았고, 아내는 딸을 데리고 아는 아줌마들 틈에 끼어 앉았다. 읍내에 있는 교회까지는 십 분 정도가 걸렸다. 가는 동안 운전석에서 운전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자꾸만 쳐다보게 되었다. 교회 마당에 도착하자 승합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아들을 안고 맨 마지막에 내렸다. 아들을 땅에 내려놓고 일어서는데 아는 얼굴이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 여자였다. 청주 가는 대로변 중식당에서 대리운전으로 함께 집에까지 갔었던 이웃에 사는 짧은 머리의 남자 같은 오십 대로 보이는 여자. 나도 반가운 척 짧은 인사를 하고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내와 아이들은 기도를 시작했다. 나도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았는데 기도는 되지 않고 그 짧은 머리 여자의 모습만 떠올랐다. 예배 시간에 가끔 두리번거리며 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 살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설교가 끝나고 예배의 마지막 순서에서 기도할 때에는 대리운전을 그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예배가 끝나자 식당으로 안내를 받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아내는 배식 당번이라며 같이 앉지 않았다. 배식 당번 아줌마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날랐고 곧 우리 자리에도 밥이 도착했다. 아내도 배식을 마치고 자기 밥그릇을 들고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밥을 먹으며 가끔 두리번거리며 그 여자가 있는지 확인하다가 궁금해서 아내에게 물었다. 승합차 운전했던 남자 같은 여자 아느냐고. 목사님 여동생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교회에서 운전하는 일과 청소 등 몇 가지 업무만 도와준다고 했다.
-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매일 술만 먹고 다닌다는데, 무슨 사연이 있나 봐.
아내도 더 자세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 나는 읍내를 좀 둘러보겠다고 했다.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컴퓨터 매장이 눈에 띄었다. 좁은 매장에 중고컴퓨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컴퓨터 수리를 맡기러 온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고, 매장 한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쌓여있는 물건들과 가게 주인의 바빠 보이는 모습을 보니 가게가 꽤 잘 되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읍내의 거리를 빼놓지 않고 훑어보았다. 더는 컴퓨터 매장이 보이지 않았다. 교회에서 기도한 것이 바로 응답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서울로 이사하기 전에 경기도 지역에서 컴퓨터 매장을 했던 적이 있었다. 중소메이커 컴퓨터 대리점을 하다가 본사의 부도로 문을 닫게 되었고, 그다음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유통업에 손을 댔다가 망했던 것이다. 컴퓨터 일을 다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를 얻을 돈이 없으니 출장만 다니면서 컴퓨터 수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즉시 집으로 가서 광고 문안을 작성해서 프린터로 뽑았다. 다시 읍내로 나가 문구점에서 1,000장을 복사하고 철물점에서 드라이버 등 컴퓨터 수리에 필요한 몇 가지 공구를 사고 나서, 대리운전 사무실에 전화해서 운전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노트북 가방에 컴퓨터 수리에 필요한 도구와 CD 상자, 그리고 복사해놓은 전단지를 넣을 수 있는 만큼 집어넣고, 집에서 가까운 곳부터 읍내의 아파트단지와 주택, 상가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핸드폰의 벨 소리가 울리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라서 사람들의 컴퓨터 사용이 지금보다는 훨씬 많았을 때였다. 식당, 부동산사무실, 학교, 농가 등에서 컴퓨터를 고쳐달라고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정말 이제는 무섭고 더럽고 위험천만한 대리운전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아내도 밤에 편히 잠을 잘 수 있겠다며 좋아했다.
- ○○리 ○○○번지 중국집인데요. 컴퓨터 좀 고쳐주세요.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까지는 전단지를 붙이지 않았는데 전화가 오다니. 아하, 먼저 수리를 받았거나 전단지를 본 사람이 소개를 했나 보구나! 중국집에 도착하니 전에 보았던 세 사람이 보였고, 영업을 마치는 시간인지 정리를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머리 짧은 여자는 또 한잔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남자 두 사람은 그 식당의 동업자였고 친구 사이라고 했다.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컴퓨터는 바이러스와 악성코드에 감염되어 거의 작동하지 않는 증상이었다. 컴퓨터의 용도는 주로 게임을 하거나 야한 동영상을 보는 데 사용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모두 지우고 운영체제부터 프로그램을 모두 다시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더니, 게임까지 다시 깔아달라고 했고 저장된 동영상은 지우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동영상을 모두 백업하고 나서, 게임까지 모두 재설치해 주었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식당의 한쪽 테이블에는 술판이 벌어졌다. 일을 마치고 수리비용을 받고 식당에서 나오려는데 그 여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술 한 잔 먹고 가라고 했다. 늦은 밤이고 운전을 해서 가야 했기 때문에 거절하려다가 나도 모르게 그 여자 옆으로 가서 앉았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했다. 술을 따라주더니 나에게 그들의 관계를 소개했다. 세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두 남자가 중국집을 차릴 때 그 여자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한 남자는 돌아온 싱글이라고 했고, 또 한 남자는 아직도 총각이라고 했다. 여자는 초등학교까지 시골에서 다녔고, 중학생 이후에는 서울에서 살았으며, 한때는 많은 돈을 벌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나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 했다. 나는 간략히 말했다. 여자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자의 이야기는 더 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테이블에 엎드려서 일어나지 못했다. 낮부터 계속 술을 먹었다고 했다. 두 남자는 택시를 불러서 여자와 나를 태워서 보냈다. 여자는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계속 누군가에게 욕하는 잠꼬대를 했다. 또 흔들어서 깨워야 했다.
-아빠! 전화 왔어.
그 여자가 일찍 고꾸라지는 바람에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는데, 오랜만에 마신 술이라서 그런지 전화 오는 소리도 못 듣고 늦잠을 잤다. 울리던 전화는 곧 끊어졌다. 냉수를 한 컵 들이켜고 나서 수신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 여자의 목소리였다. 프린터가 안 된다고 와서 봐달라고 했다. 지금 막 일어났으니 밥 먹고 천천히 가겠다고 했다. 아내가 끓이고 있는 콩나물국 냄새가 울렁거리는 나의 속을 유혹했다. 누구랑 술 마셨느냐고 아내가 물었다. 전날에 있었던 얘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어제 교회에서 오다가 들었는데 이상한 소문이 있어. 그 여자가 교회에 들어온 헌금을 빼돌렸다던데.
내가 보기에는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헛소문일 수 있으니 어디 가서 퍼트리지 말라고 했다. 그 여자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입구부터 거실, 주방 바닥에는 온갖 빈 술병들이 널려 있었고 빈 상자 여러 개가 보였는데, 그 안에도 얼핏 보기에 빈 술병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나를 프린터가 있는 방으로 안내하고 간단히 증상을 얘기하더니 차를 내오려는지 주방에 나가 물을 끓이는 듯했다. 프린터를 점검해 보니 찢어진 종이가 끼어서 용지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프린터의 뒤쪽 뚜껑을 열고 끼어있던 종잇조각들을 제거한 다음 뚜껑을 다시 닫았더니 이전에 실행해 놓았던 인쇄 작업이 자동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인쇄되어 나온 종이의 내용을 보고 깜짝 놀라 갑자기 심장이 팔딱팔딱 뛰기 시작했다. ‘유서’라는 제목이 붙은 내용의 문서를 재빨리 주머니에 구겨 넣고 테스트페이지 인쇄를 실행했다. 테스트페이지가 깔끔하게 잘 인쇄되어 나오자 그녀가 차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보고 “벌써 고치셨어요? 역시 기술자이시네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태연한 척 차를 마셨다. 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컴퓨터를 끄더니 전날 중식당에 놓고 온 차를 가지러 같이 가자고 했다. 함께 택시를 타고 중식당에 가서 짬뽕을 한 그릇씩 먹고 나서, 나는 내 차를 몰고 컴퓨터 출장수리를 하러 갔다. 일하면서 왠지 자꾸만 불안한 생각이 들어서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한 군데 일을 마치고 나서 또 다른데 일이 있었지만 갈 수가 없다고 하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아내와 함께 그 여자의 유서를 살펴보았다. ‘유서’라는 제목의 아래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 누구를 지켜주지도, 누구에게 보호받지도 못하는 세상은 나에게 바람일 뿐이었다. 잡을 수 없는 바람을 따라 나도 그만 바람이 되어 날아가고 싶다. 단지 내게는 남겨놓을 미련조차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슬픈 일이다. 살얼음 위에서 아직도 내가 내려오지 못한다는 것은 슬픔보다 더 큰 고통이었다.
아내는 매우 놀라며 목사님께 가자고 했다. 우리는 유서를 들고 서둘러서 목사님이 있는 교회 사택으로 갔다. 목사님이 갑자기 무슨 일로 왔느냐고 했다. 유서를 건네주었다. 내용을 본 목사님이 즉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며 그녀의 집으로 가보자고 했다. 그녀의 집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중국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점심때 나와 짬뽕을 먹고 차를 몰고 나갔는데 그 후로는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목사님이 전화기를 떨어트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목사님, 일단 우리 집으로 가서 기다려 보고, 알 만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목사님을 집으로 안내했다. 아내는 과일과 차를 준비했고, 목사님은 수첩을 뒤져가며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다. 그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목사님에게 물었다.
-예전에 서울의 한 백화점이 무너졌던 일 알고 있지요? 내 동생은 그곳에서 옷가게를 했어요. 돈도 잘 벌고 있었고, 같은 백화점 안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잘 생기고 훌륭한 약혼자도 있었어요. 그런데 결혼식을 열흘 남기고 백화점이 갑자기 무너졌고, 동생은 죽어가는 약혼자를 보면서 구출되었어요. 그 후로 가지고 있던 많은 돈을 가족과 친구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어느 산골에서 십여 년을 은둔해서 살다가 이곳으로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내가 여기서 교회를 개척할 때 동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동생에게 더 잘해주려고 했었는데,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동생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어요. 아, 하나님 아버지, 흑흑.
목사님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침울한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목사님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 내일까지 더 찾아보고 경찰에 신고하든지 해야겠어요. 미안해요, 이만 가볼게요.
목사님을 배웅하고 나서 나는 곧장 중식당으로 갔다. 이른 저녁 시간, 한창 바쁠 시간인데 식당 문이 닫혀있었다. 그녀를 찾아 나선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나는 그날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내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러 갔다.
햇살이 점점 더 따사롭게 느껴지는 계절, 개울가에는 버들강아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살얼음을 간지럽히고 틈새로 흐르는 시냇물의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면 살얼음에서 내려앉아 해맑게 터트리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끝)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지켜주지도 보호 받지도 못한
그녀가 이제는 평온해졌길......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