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한민국》 호칭에 대한 평가와 대응 방향
염돈재 전 국정원 1차장
서희외교포럼 자문위원
북한 김여정이 7월 10일 미공군 정찰활동 비난 담화에서 《대한민국》 호칭을 사용한 이후 호칭 문제가 우리 언론과 학계의 분분한 논란 대상이 되고 있다.
김여정의 《대한민국》 호칭이 큰 관심과 논란 대상이 된 것은 ①북한이 남북 간 합의문서 등 불가피한 경우에만 사용하던 우리 국호를 남북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시기에, 대남비방에 사용했다는 점, ②김여정 담화 이후 강순남 국방상의 《대한민국》 호칭이 이어지고, ③7월 13일에는 김정은이 ‘남조선 괴뢰’ 호칭을
사용하고, 7월 17일 김여정도 같은 글에서 ‘남조선’과 ‘대한민국’을 혼용하는 등 일관성이 없었다는 점, ③8월 29일에는 김정은도 《대한민국》 호칭을 사용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한민국》 호칭 사용 의도에 대한 해석들
북한의 의도와 관련해서는, 남북관계를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에 명기된 ‘민족 간의 잠정적 특수관계’가 아닌 ‘별개 국가 간의 관계’로 전환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많다. 즉, 남측을 ‘같은 민족’ 또는 ‘통일의 대상’이 아닌 ‘별개의 국가’로 생각하는 투 코리아(Two-Korea) 정책을 공식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현정은 회장의 방북거부 발표를 조평통이 아닌 외무성이 했다는 점, 현정은 회장 방북을 ‘입경’이 아닌 ‘입국’으로 지칭한 점, 김정은이 남북관계 악화를 이유로 조평통 폐지를 시사한 후 현재 조평통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 등이 논거로 지적된다.
북한이 ‘민족 간의 특수관계’를 ‘별개 국가 간의 관계’로 전환하려는 배경에 대해서는 ①핵 위협 등 보다 효과적인 대남위협을 위해서는 ‘우리민족끼리’의 족쇄를 벗어버릴 필요가 있다는 점, ②한국을 북·미관계에서 완전 배제시켜 한·미 균열을 유도하려는 통미봉남 전략이라는 주장, ③적화통일
야욕을 숨기려는 의도, ④‘우리민족끼리’가 아닌 김정은이 추구하는 ‘국가주의’를 강조를 위한 목적, ⑤윤석열 정부가 구상 중인 ‘신통일미래구상’을 무력화시키려는 의도, ⑥대남적화 전략 포기를 의미한다는
주장 등 다양한 해석과 억측들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통일부)의 해석과 입장
통일부는 이제까지 두 번에 걸쳐 입장을 표시했다. 권영세 장관은 김여정의 두 번째 담화 이틀 후인 7월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현정은 회장 방북신청 거부 발표를 외무성이 담당하고 ‘입경’이 아닌 ‘입국’이라는 표현한 것은 주목해 봐야겠다”면서도 《대한민국》 표현을 ‘두 개의 나라’ 추구로 보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한 달 후인 8월 17일 통일부 관계자는 언론브리핑에서 “북한이 대한민국을 언급한 것은 존중의 의미가 아니라 조롱의 의미이며, 단어 하나로 남쪽에 상당한 혼란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가성비 높은 선전·선동” 이라 평가하면서 “북한은 이제 남북관계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보고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며 북한이
2국가 체제로 가면서 북한주도 통일을 포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언급했다.
북한의 《대한민국》 호칭에 대한 평가
첫째, 김여정 담화 초기에는 《대한민국》 호칭이 김여정의 실수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9월 이후에도 김정은 담화(9.3, 9.28)와 김성 주유엔대사 연설(9.26)에서 3번 더 추가되어 총 11번에 걸쳐 《대한민국》 호칭이 사용됐다는 점에서 이젠 《대한민국》 호칭이 공식화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북한이 진정으로 ‘투 코리아’ 정책을 추구하거나 적화통일 목표를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되면 김일성 세습체제의 존재 명분이 퇴색되고 북한 주민과 한국 주사파의 희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셋째, 《대한민국》호칭과 ‘민족 간의 특수관계‘ 폐기가 핵 공격 명분 조성과 보다 효과적인 대남 핵 위협을
위한 목적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동족에게 핵을 쓰지 않겠다“는 김정일·김정은의 공언이 파기된 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한국 내에는 ”설마 북한이 우리에게 핵을 쏘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넷째, 대외용·대내용 호칭을 구분해 쓰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대한민국》 호칭을 사용한 담화 및 보도 내용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 생중계됐기 때문이다. 다섯째, 문맥상 《대한민국》 호칭이 존중이 아니라 조롱을 위한 것임이 분명하며, 특히 북한에서 ’소위‘ 또는 ’이른바‘의 의미를 가진 ’겹화살괄호‘를
사용한 것은 한국의 국호를 존중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번 북한의 ‘《대한민국》 호칭 사용이 ‘투 코리아’ 정책 추구나 적화혁명 포기 같은 실질적 정책변화를 의미할 가능성은 희박하며, 남북 관계 악화와 대화단절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면서 군사적 위협을 강화하려는 심리적 포석의 일환이라고 해석된다.
우리의 대응 방향
이번 북한의 《대한민국》 호칭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관심과 논란은 우리가 북한의 선전·선동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며,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전후해 북한의 사이버 선전·선동 활동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사이버 공작 핵심 인물인 김영철이 최근 통일전선부 고문으로
복귀한 것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대응 역량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이번 호칭 논란이 두 달이 넘도록 지속된데 대해 우리 정부의 대처 지연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또 문재인 정부 이후 친북적 정책 노선과 남북관계 침체로 각계의 북한정세 분석역량이 대폭 저하돼 있고, 국정원·국군의 댓글활동 처벌로 북한 선전·선동에
대처할 대응체제가 완전히 붕괴됐다는 지적이 많다.
앞으로 정부가 더욱 높은 경각심을 가지고 북한 관련 문제 발생 시 신속히 입장을 발표하고 북한의 사이버 심리전 대처를 위한 대응심리전 체제를 정비·강화할 필요가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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