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벌써 밤 10시입니다.영업을 시작할 시간이죠.
저는 투명한 칵테일 잔을 매만지며 계속 열리는 문을 바라봅니다.
제 시선을 받고도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들은 제 담당이 아닙니다.
이 바에서 일하고 있는 '마도카'양의 담당이죠.
눈 앞에 놓은 갖가지 술과 과일들.
아직 제 소개를 안했죠?전 바텐더입니다.
저의 시선을 받고도 제 앞에 앉는 사람이 제 담당이죠.
그런 사람들은 가슴 깊은 곳에 상처가 있거나 외로운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죠.
재밌는 건 그러면서도 외로움에 지독히 잡혀있다는 겁니다.
언제나 저희 바에서 트는 재즈가 낮게 깔리면서 단골 손님들이 하나 둘 나타납니다.
이 바에 드나드는 분들은 가지각색이죠.직업,나이 모두 다릅니다.
직업이나 나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죠.
어떨 때 외로움에 빠진다거나 뭘 할 때 우울해지거나 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마음 속에 있는 상처는 누구나 치료하고 싶은 법이고요.
문이 가볍게 열립니다.
이번에 들어오신 손님은 회색 비슷한 머리카락의 귀여운 여고생입니다.
예전에 친구들과 와서 재잘거리는 걸 본 적이 있죠.
오늘은 머뭇거리는 자세를 봐서 처음 왔나 봅니다.
가법게 웃으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합니다.
[타케우치 리오]라고 적힌 명찰이 눈에 들어오는군요.
헤에,왠지 귀여우면서도 차가운 느낌의 손님과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합니다.
덫붙이는데 전 레즈가 아니라구요~저도 엄연한 여자로 남자분을 좋아합니다.
"저기...칵테일 마시고 싶어서요."
저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계속 미소를 지어보이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흐음,이 귀여운 공주님에게 어떤 칵테일이 어울리까요.
아직은 그다지 성인이라고 부르기 어린 나이이고 아직 순수한 분.
드라이진,화이트 큐라소,레몬주스를 꺼냅니다.
세이커에 얼음과 재료를 넣고 흔들어 잔에 따르면 됩니다.
진에 레몬주스라는 단순한 배합으로 화이트 큐라소를 첨가하게 되어 맛이 강해지면서 본격적인
칵테일 맛을 누구든지 간단하게 즐길수 있는 [화이트 레이디]
리오 손님이 볼을 붉히며 행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칵테일이 나오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죠.
제가 장담하건데 이 공주임에게 어울리는 칵테일입니다.
또 문이 느릿하게 열립니다.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며 한 남자분이 들어옵니다.
은청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
거의 매일 오는 이 바의 단골이시죠.
그분은 항상 그랬듯이 자신이 잡아놓은 자신이 자리에 앉습니다.
이쯤되면 칵테일 주문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 저는 칵테일 준비를 합니다.
이 분에게는 정해진 칵테일이 있습니다.
뭐,정해진 칵테일이라는 게 이분이 처음 올 때 제가 분위기에 따라 그냥 내놓은 거지만요.
차갑게 식힌 칵테일 잔을 꺼냅니다.
화이트 럼과 블루 큐라소,라임을 얼음과 함께 쉐이커에서 흔들어 잔에 넣습니다.
[스카이 다이빙]은 1967년 ANBA(전일본바텐더협회)의 칵테일시합에서 1위로 입선한 작품으로 한없이
맑은 푸른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운 칵테일이죠.
그의 앞에 살며시 내려 놓습니다.
눈동자의 깊음처럼 그분에게는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7개월 전쯤이었던가요?라저포드 씨가 연인과 함께 이 바를 처음 방문한 게.
조그마한 입을 동그렇게 오므리고 새로 등장한 분을 바라보는 리오 공주님.
너무 과한 관심은 좋지 않아요.접근하면 다친다구요^^
쓰레기통을 비우는 척 살쩍 몸을 숙여 두 사람의 시야를 갈라놓습니다.
라저포드 씨의 목소리는 나직한 선율이랍니다.
딱 한 번 그분이 음악에 취해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그 뿐이죠.
그 이후로는 입을 꾹 다문 채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픈 추억을 다시 되살리는 그 칵테일을 바라보며 말입니다.
조명은 더욱 어두워집니다.무대는 누군가가 음악에 취한 상태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무대는 언제나 개방되어 있습니다.추고 싶으신 분은 얼마든지 출 수 있습니다.
오늘 무대에 나온 사람은 연갈색 머리카락의 한 미소년이군요.
약간 호리호리한 체격에 예쁘장하게 생기신 분입니다.
라저포드 씨의 시선이 무대에 고정됩니다.반쯤 뜬 눈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습니다.
눈을 떼지 못하겠죠.그분의 연인과 같은 머리카락이 하늘거립니다.
소년의 눈동자 역시 연갈색입니다.
흠,운이 좋군요♡
오늘 어쩌면 라저포드 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박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들립니다.
땋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드리운 신비스런 낌새의 한 아가씨가 들어와 리오 공주님과 라저포드 씨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습니다.
어머,늘 혼자서 오시는 분인데 일행이 있군요.
갈색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동자를 가진 미남과 빨간색 삐죽머리(?)의 남자분입니다.
살짝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시즈카씨,언제나 마시던 걸로 줘요.이쪽은 알아서 추천해 주시고."
"아아,전 아무거나."
"레이디가 추천해 주시는 거라면 뭐든지 좋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받아들입니다.
뭔가 묘한 분위기가 매력인 히요노 아가씨는 다른 걸 시킬때도 있지만 대부분 [호즈 넥]을 마십니다.
레몬껍질을 끊어지지 않게 나선형으로 벗긴 것을 텀블러(하이볼 글래스) 안에 넣고 끝을 잔 가장자리
에 걸친다. 그 잔에 얼음과 브랜디를 넣고 진저에일로 적당히 잔을 채우면 완성이죠.
호즈 넥은 말 그대로 말의 목이라는 뜻입니다.잔에 걸쳐져 있는 레몬 껍질이 말의 목과 닮았다나요.
완성된 칵테일을 히요노 아가씨 옆에 살짝 놓습니다.
히요노 아가씨 칵테일은 됬고,두 분의 칵테일은 어쩔까요?
붉은 머리의 소손님에게는 [파나세]를,나머지 한 분에게는 [엘 프레시덴테]를 준비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내놓고 싶거든요.만들기가 간단해서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살며시 장식한 후에 두 분의 앞에 내놓습니다.
"아...고맙습니다."
헤에?
한순간 깊은 곳에서 나 있는 상처가 보인 듯 했습니다.
별로 진지하지 않은 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군요.
제 앞에선 상처가 그렇게 쉽게 감춰지지 않죠.
아무리 감추려고 애써도 대부분은 드러납니다.
단골이 더 늘 것 같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됬네.저 이만 가 볼게요."
리오 공주님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급히 일어납니다.
눈길은 여전히 라저포드 씨를 향하며 사라집니다.
아참...한동안 신경써 주지 못했군요.
라저포드 씨의 시선은 이제 무대가 아니라 칵테일 잔에 향해 잇습니다.
잔을 잡고 있는 라저포드 씨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습니다.
저런,너무 심각해지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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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단편위주]
★단편소설★
어느 바의 어느 바텐더의 일과 [上] (참고:이 소설 어떤 소설을 본뜬 겁니다;;)
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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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4
05.12.0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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