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弟子)들의 호칭(呼稱)
김태식(가든수필 2024/01/15)
이름(名, 姓名, 族名, 呼稱, 名稱)은 물건, 사람, 장소, 생각, 개념 등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말이다. 이름은 물건의 개념을 통틀어 나타낸다. 사람이 아닌 생물체는 포괄적인 이름(개, 소, 말 등..과 같은 종명)을 사용한다. 애완동물의 경우 이름을 부여 하기도 한다. 생물체가 아닌 단체에도 이름을 사용한다. 회사에 붙이면 사명(社名), 학교에는 교명(校名), 단체에는 단명(團名)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사람의 이름은 성과 이름으로 구분된다. 성과 이름을 함께 부를 수도 있으며 성과 이름을 따로 부를 수 있다. 일본은 성의 종류가 다양해 성으로 사람을 불러도 문제가 없다. 이름으로 사람을 부를 때에는 성을 제외하고 "~아(~야)"를 뒤에 붙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인의 관습이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이름 앞에 '고(故)'를 붙여 말한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자(字), 호(號)라는 별개의 단어로 널리 사용된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반대로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너무 흔해서 이름 대신 별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전통이다. 별명은 보통 상대의 이름이나 신체적 특징, 또는 인격적 특징 등을 장난스럽게 비꼬아서 만드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친근감을 표시하거나 또는 조롱할 때 사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처음 지방에서 교단에 섰을 때 일이다. 한문을 배울 때 훈장의 철통 같은 유교 사상이 제자들에게 풍겨 들어났던 것 같다. 그때 제자들 뿐만 아니라 이웃 초등학교 학생들에서 까지 XX학교 호랑이라고 뒤에서 웅성거렸다. 여학생 담임반의 종례시간에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법도와 언행을 훈화 했었다. 두번 째 호칭은 예절(MANNERS, ETIQUTTE) 선생이었다. 첫 부임 학교에서 7년간을 근무하는 동안 나에게 호칭은 호랑이와 에티켓 선생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때, 한나 둘의 별명을 가지게 마련이다. 별명은 스스로 원해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과정에서 한 동네의 소꼽 동무나 학교의 친구들로부터 얻게 되는 애칭이다. 때문에 어른이 된 뒤에라도 문득 어린 시절의 친구로부터 별명을 듣게 되면 허물 없는 동심에 젖어들게 된다. 대개는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지면서 별명도 잊혀지게 된다. 성인이 된 뒤에도 끈덕지게 남아서 애정어린 놀림거리가 되기도 한다. 별명은 우연한 계기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딘가 그 사람의 결점이 될 만한 특징을 꼬집어 나타내기 때문에 부르는 사람은 쾌감을 느끼게 된다. 불리는 당사자는 애달아하므로 쉽게 떨어지거나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로 전근한 학교는 기독교 계통에 남녀 공학이었다. 나는 전임 강사 이었기에 출퇴근시간에는 자유로웠다. 그러나 나는 전임 교사들과 같이 출근하여 직원회의에도 참여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좌석 좌우교사를 도와 주었다. 장기 결근하는 교사의 학급도 임시 담임을 하면서 학생들과 직접 대면을 했지만 학생 개인의 장점을 찾아 칭찬으로 일관했다. 학급 학생들이 교내 생활이 변화되고 전과 달리 수업태도와 학급 성적도 향상되었다. 전임 강사로서 중학교 신입생 부터 고등학교 졸업반까지 결강을 보충하는 수업을 했다.
전임교사로 발령이 일년만에 났고 남녀 혼합반의 고등학교 학급 담임으로 지명되었다. 나는 담임학급 학생 전원에게 과목별 대학 입시 문제집을 배부하고 한달 후에는 우수학생의 3배수 문제를 받아 일부를 시험문제를 등사해서 종례시 시험을 보았다. 약속으로 제시한 바 성적 미달의 학생에게는 정가의 책값을 받아 회계를 담당한 학생에게 주어 관리하게 하였다. 어떤 교사는 월권이라 하고 또는 책장사를 한다는 등의 관심을 샀지만 초지일관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이 고3 졸업시에는 좋은 성과를 내어 그간의 오해를 잠재워지게 되었다.
신 학년초에 교장선생의 호출이 있었다. 뜻밖에 중학교 교무주임으로 발령하겠다는 소식이었다. 극구 사의를 표명해 그해에는 평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다음해 이사회에서 예고없이 발령을 발표했다. 중하교 교무주임근무를 3년을 거쳐 고등학교 학생주임으로 근무를 하라는 발령을 받았다. 고등학교 교사를 했을 때 강의 했던 학생들은 모두 졸업을 하고 난 후이었다. 생소한 불모지의 임무이었다.
문제의 학생을 파악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었다. 그러나 담임 교사의 협조는 불가했다. 왜냐하면 자기반 학생의 문제학생을 제시하는 멍청한 담임교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찾아 헤맬 수 밖에 없었다. 한 명을 발견하면 반성문으로 불문 하겠다며 3명의 문제학생의 명단을 수집했다. 그렇게 하여 한학기 만에 전교생의 문제 학생을 대략 파악했다. 청소부 직원의 제시가 흡연자 학생을 파악하는 성과를 올렸다.
나는 학생주임 4년을 하면서 처벌은 훈계와 반성문과 새로운 결심서 작성으로 일관 처리했다. 부득기 한 경우 학부형과 상의하여 교육환경을 바꾸어 주고 새 출발을 하도록 권고 했다. 고등학교 학생 주임을 하던 당시 미국 이민을 하려고 결심했다. 학교 당국에는 학년 초에 의사를 전달하고 6개월간을 후임과 협동 근무를 하기로 제안했다. 그때 새로운 직분이 호칭되었다. 학생 주임은 추천한 신임 후보에게 나에게는 학생 과장이었다. 초대 학생과장이라는 명칭이었다.
고등학교 학생주임 때에 학생들에게 비밀에 불리던 나의 호칭은 미친개(狂犬 mad dog) 이었다. 학생들 간에 소문은 한번 물리면 끝장 난다는 의미라고 했다. 선배들의 조언으로 조심하라는 경고라고 했다. 1974년에 서울 시내 고등학교에는 데모 한번 못하면 병신 취급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날 점심시간에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데모 하려고 운동장에 까지 전교생이 집합 했다. 단에 올라가 권유해서 학생 회장의 주도로 구호를 함께 외치고 교실로 질서 정연하게 들어가 수업을 임했다. 학생과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제일 먼저 등교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며 전교 교실을 순회하며 관찰 함으로 재차 데모를 하려는 동요는 없었다.
나는 스스로 만든 별명이 두개있다. 한국에서는 스스로 지은 석산(石山)과 이민 와서는 시민권을 받으며 MARTIN 을 first-name 으로 끼어 넣었다. 부모가 지어진 이름 태(泰)와 제자들이 불러준 호랑이와 에치켙 선생 그리고 미친개 모두 합하면 여섯이된다. 여기에 스스로 즐겨 생각하는 치치(癡痴)를 합하면 일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