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초꽃 필 때
예전엔 망초의 시간을 몰랐다.
여름으로 가는 길목, 6월이다. 아파트 공터에서 보이는 작고 하얀 꽃에 눈길이 간다. 그 꽃을 알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작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였다. 이모가 잠든 곳 산자락에 하얀 꽃 무리가 눈에 띄었다. 저절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유심히 살폈다. 밤에는 꽃 무리가 수런대며 잠든 이를 깨울 것만 같았다. 야생화를 좋아하던 이모가 덜 외로울 것이라 여기며 내려왔다.
며칠 전에 시누이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걸려 온 전화는 예사롭지 않다는 걸 직감한다. 시동생이 암’이란 진단을 받았다고 전한다. 형제 중에 막내인 그는 환갑을 넘겼지만, 왕성하게 활동하는 중이다. 그동안 몸 상태가 괜찮았는데, 갑자기 식욕을 잃고 현기증을 느꼈다고 한다. 병원에 갔을 때는 병이 깊어진 상태였다.
휴일 오전에 남편과 집을 나섰다. 원주의 시누이들과 함께 작은집에 가기 위해서. 서울에서 지내는 미혼의 두 딸도 와있었다. 체중이 줄어든 환자는 수술 일정을 기다리는데, 식사를 못하니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으며 버티고 있다. 교사인 동서는 작년에 퇴임했고, 집 근처 학교에서 오전 근무만 한다.
가족과 만난 후에 봉안당에 모신 어머니를 뵈러 갔다. 사각의 틀 안에 말없이 계신 분을 향해 간곡히 청했다. 막내아들 수술이 잘 되고 속히 회복될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어머니가 유난히 사랑하시던 아들이다. 어머니는 몇 년 전에 큰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으셨다. 고통의 수많은 밤을 지샜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마음이 헤아려진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코로나로 인해 그곳에 임시로 안치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망초꽃이 무리 지어 환하게 웃고 있다. ‘개망초’라고도 하는데 잡초 이름 같아서 '망초'라 부르고 싶다. 꽃을 자세히 살피니 노란 꽃술을 중심으로 하얀 꽃잎이 가지런하다. "계란 프라이처럼 생겨서 어렸을 때 소꿉놀이하며 놀았지.” 시누이가 말한다. 덜 자랐을 때는 나물도 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라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
망초꽃이 어머니께 아들의 소식을 전해줄 것만 같다. 막내아들이 큰 병을 얻은 걸 아신다면 얼마나 아파하실까. 그토록 사랑하시던 아들을 지켜주실 것이다. 눈부신 망초꽃 무더기를 뒤로 한 채 간절한 바람을 안고 발길을 돌린다.
내가 결혼했을 때 시동생은 핸섬한 청년이었다. 서울에서 학업을 마치고 결혼 후에 형제와 지인이 많은 원주에서 건축 일을 시작했다. 교사인 동서도 그쪽으로 직장을 옮겼다. 어머니는 육아의 보살핌이 필요한 막내아들과 함께 지내셨다. 시동생은 효자였으니 막내의 효도를 원 없이 받으셨다.
항상 부지런히 움직이시던 분이 허리를 다친 후로 기동이 어려워졌다. 노인정에 다닐 수 없게 되자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자녀들이 바쁘니까 낮에는 주로 혼자 계셨다. "지루해. 날 좀 빨리 데려가 주면 좋겠구먼." 아버님과 만나길 원하시더니 그리움 찾아 나비처럼 떠나셨다. 침대 서랍에 옷, 서너 벌과 장례비를 남기고 홀연히 가신 어머니. 지금쯤 남편과 큰아들 만나서 함께 지내실까.
시부모님은 부부애가 좋으셨고 자녀들은 부모님께 순종적이다. 오래 전에 아버님은 암 진단을 받으셨다. 그때만 해도 '암'이란 상형선고 같았다. 병중의 아버님은 “건강할 때 건강을 잘 챙겨라.” 유언처럼 남기셨다. 병이 깊어졌을 때 어머니께 “당신이 나 대신 애들 효도 조금만 더 받고 곧바로 와.”라고 하셨단다. 수술도 마다하신 아버님이 떠나신 지 30년이 지났다. 아버님은 67세, 어머니는 95세에 가셨으니, 시간의 간극이 길다. 큰 시누이가 생전의 어머니께 “하늘나라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엄마를 몰라볼 테니 엄마가 아버지를 찾으세요.” 하니 하얗게 웃으셨다.
사업하는 시동생은 고향 선후배와 술자리가 잦았다. 착한 동서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불편한 내색 없이 항상 밝은 모습이었다. 동서를 볼 때마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중첩되었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동서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랐는데. 이제 남편 병시중이 기다리니 안타깝다.
며느리는 시댁과 완전히 동화되긴 어렵다.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른 남편만 보고 결혼했으니 당연하다. 새로운 가족과 적응하며 좋은 관계를 위해 노력할 뿐이다. 시어머니는 귀한 아들을 며느리에게 온전히 내어줬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이질감을 느낀 시댁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 세대에겐 오랜 인습과 사고를 강요하긴 어렵다. 모든 건 시간이 공평하게 알려주기에.
오늘도 공터에서 하얀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모가 잠든 곳, 어머니를 모신 곳에서 만난 꽃이니 더 반갑다.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 꽃이 내게 위안을 준다. 망초꽃은 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피어난 것이 아닐까. 망초의 꽃말이 '화해'라니, 지난날들에 화해의 손을 내민다.
첫댓글 가슴 아픈 사연들이 우리네 삶인것 같습니다.
시동생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쑥쑥 키가 커서 옆자리를 차지해도 무리지어 핀 망초(개망초)는 볼만하답니다. 들꽃을 좋아하셨던
이모님을 생각하는 지송선생님의 마음이 이모님을 닮았나봐요.
가족들을 향한 지송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도 글 안에 가득 담겨 있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