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강
②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끼친 영향이라고 한다.
이것은 죽음=삶, 사랑=미움, 전체=부분 등 상대되는 것을 두 개으 lekfms 극점(極點)으로 보지 않고 동시에 두 개의 것을 보는 눈을 키워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이라고 할 때 동시에 그 대극(對極)에 있는 ‘삶’을 생각하게 합니다.
시어나 어법에서 너무나 동떨어진다거나 역설이 엉뚱한 발상에서 빚어진 결과가 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③ 시인은 사회적 시야의 확대이다.
옛날 궁정시인이나 은둔 시인들과는 달라서 현대 시인들은 사회의 어떤 부분에서도 시의 소재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나 물질문명의 팽배(澎湃), 무질서, 타락, 자연의 파괴 등의 현실을 시인이 긍정하는 것, 또는 그러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상상력이 그 실체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력의 복합성이 충족하지 못할 때 그 시는 어려워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3인의 아해(兒孩)가도로를질주(疾走)하오
(길은막달은골목이적당하오)
제1의 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 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 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 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 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 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 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13의 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느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오.
(다른사정이없는것이차라리나았오)
시가 난해하기로 잘 알려진 이 상의「오감도(烏瞰도) 시 제1호」중 일부입니다. 틀림없이 거부감이랄까, 놀라움이 따를 것입니다. 평자들은 현대의 절망적 상황을 그린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보통의 시와는 다른 실험적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역시 난해하거나 불가해한 시입니다.
이렇게 현대시를 이해하는 데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정도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이상 세 가지의 문제점을 감안해서 작품을 읽고 감상하면서 시창작에도 응용해야 합니다.
현대에 사는 인간은 자기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이 시는 영혼에 있어서 거시적(巨視的)인 눈이며 동시에 미시적(微視的)인 눈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영혼의 눈으로 들여다 보아야 할 것입니다.
9-5. 형이상시(形而上詩)
형이상시(metaphysical poetry)를 이해하자면 먼저 사물시와 관념시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현대에 와서는 사물시와 관념시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물시(physical poetry)는 사상이나 어떤 의지를 배제하고 사물의 이미지를 중시합니다. 대체로 이미지즘(imagism-영상주의)의 시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봉건의 「피아노」란 시입니다. 이 시는 사물이미지로 구성된 사물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세련되고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피아노 치는 모습과 그 음률의 이미지를 순수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장 매혹적인 음률의 마디를 비유한 것이지, 어떤 다른 관념이나 철학을 노래한 것은 아닙니다.
이 밤이 다하기 전에
이 무한한 벽을 뚫어야 하는 囚人
또는
虛無를 데굴대는 쇠똥구리
이 시는 유치환의「나」이빈다. 관념시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는 제목이 제시하는 바와 같이 ‘나’의 존재 상황 또는 존재 조건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관념시(platonic poetry)도 마찬가지로 사물이미지보다 어떤 관념의 세계를 드러내어 독자를 설득시키는 의지가 있습니다. 인생이나 세계를 어떤 관념으로 파악하여 표현하는 시를 말합니다.
그러나 사물시와 관념시의 구별이 명백한 것은 아니지만, 김춘수 시론「존재의 감각과 의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물을 감각적으로 그대로 수영한다는 것은 원시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러니까 관념(의미) 이정의 관념이 장차 거기서 태어날 관념의 제로지대이기도 하다. 이 지대에서 야기되는 사건들은 질서가 없는 듯하지만, 그것은 관념의 쪽에서 바라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그렇지가 않다.
이 말은 ‘사물이미지’란 관념이 없는 순수 이미지를 말하고 ‘관념이미지’는 사물이미지에 인생이나 사회의 어떤 관념이나 의지가 들어가 있는 이미지를 말합니다.
미국의 신비평가 랜슴은 사물시와 관념시 모두를 비판하고 바람직한 시로서 형이상시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시가 사물의 이미지만으로는 편협한 것이 되므로 사물과 관념, 감각과 사상이 통합된 시가 바람직한 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이상시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물시와 관념시의 장단점을 보완하여 새로운 타잎의 시를 말하는데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습니다.
형이상시란 완전한 의미에서 단테의『神曲』이라든가, 쿠크레티우스의『萬象의 本質에 대하여』라든가, 아마도 괴테의 『파우스트』와 같이 우주에 관한, 또는 삶이라는 위대한 드라마로서 인간정신을 나타내는 기능에 관한 철학적 개념에서 인스피레이션을 얻 만들어진 시를 말한다.
--그리이슨의 「형이상 시인론」중에서
이와 같이 형이상시는 ‘철학적 개념에서 인스피레이션을 얻어 만들어진 시’로서 바로 우주나 삶에 대하여 해석한 여러 관념을 시인의 정신과 상상으로 파악하고 그의 인생관을 통일하여 명료하게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공포라는 감정의 의미를 확대함으로써 이러한 감정에 대한 개인의 의식을 강화하고 그 시인 자신의 영혼의 편력 속에 인간의 운명이라는 드라마를 간결하게 요약해 보이는 것입니다.
결국 형이상시는 상상력에 의하여 형이상적인 인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이상이란 말은 형이하(形而下)라는 말의 반대어입니다. 형식을 떠난 무형적인 것을 말하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 속에 경험적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성적 사유(理性的 思惟)나 독특한 직관(直觀)에 의해서만이 인식될 수 있는 초자연적, 초월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신이나 절대자의 존재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감각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신이나 절대자의 존재, 그 존재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을 형이상학(形而上學 . metaphysics) 이라고 하여 신과 세계, 우주, 영혼 등이 그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형이상시는 일차적으로 형이상적, 곧 신이나 절대자와의 존재 인식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시를 창작하거나 감상할 때 사물이미지와 관념이미지가 복합적으로 구성된 시 즉, 형이상시를 좋은 시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