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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명당이면 자기가 쓰지 왜 남을 주나…타락한 시대 비추는 풍수론
한겨레입력 2023. 8. 11. 05:05수정 2023. 8. 11.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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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고금유사][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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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보따리를 주웠다. 풀어보니 작은 은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그는 남이 볼세라 품속에 그것을 숨기고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사람이란 대개 그런 법이다.
길지(吉地)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부모의 묘를 쓰면 후손이 번창하고 복록이 끝이 없다. 벼슬도 하고 재산도 풍족해진다. 이런 명당은 천만금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어쩐 일인지 그런 땅을 찾아낸 지관(地官)은 자기 부모를 모시지 않고 영의정과 좌의정, 병조판서와 이조판서의 집을 찾는다. 명당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푼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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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관이 어느 대갓집에 잡아준 땅에 대해 침을 튀기며 말했다. “그 자리로 말할 것 같으면, 용과 호랑이가 일어나 덮치는 형세이고, 난새와 봉황이 춤추는 모습이다. 아들과 손자 대에 고관대작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정말 천리(千里)에 한 곳이 있을까 말까 한 명당이지!” 이 말을 들은 정약용(丁若鏞)은 그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쏘아붙였다. “그렇게 좋은 자리라면, 어째서 그곳에 네 어미 묘를 쓰지 않고, 남을 줬단 말이냐?” 길가다 주운 은 덩어리를 그냥 남에게 건네주는 바보가 아닌가.
이상은 정약용이 ‘풍수론’에서 한 말이다. 그가 살던 시대는 패철(佩鐵, 휴대용 나침반)을 차고 명당을 찾는 지관이 넘쳐났다. 부모의 유골을 짊어지고 길지를 찾아 팔도를 떠도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명당을 둘러싼 분쟁[山訟] 끝에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부모의 유체(遺體)를 이용해 이기적, 세속적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작태일 뿐이었다. 풍수론이야말로 타락한 세상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박제가(朴齊家)는 ‘장론’(葬論)에서 요동 들판에는 모든 사람들이 밭에다 무덤을 만든다고 하였다. 한없이 넓은 평원에 무슨 좌청룡, 우백호가 있겠는가! 그곳에서 조선의 지관은 망연자실하여 자신이 믿고 있던 풍수론을 버리게 될 것이다. 박제가 역시 풍수론에 비판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머리가 조금이라도 깨인 지식인이라면 풍수론을 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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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를 묻는 무덤은 음택(陰宅)이고, 살아생전 사는 집은 양택(陽宅)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음택은 왕릉일 것이다. 세종이 묻힌 영릉도 당연히 명당일 것이다. 그런데 자식들의 운명은 어떠했던가. 큰아들(문종)은 38살로 죽었고(재위는 3년), 둘째 아들(세조)은 형제(안평대군, 금성대군)와 조카(단종)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 명당에 누운 세종은 행복했을까? 세조는 큰아들(덕종)과 둘째 아들(예종)이 모두 20살에 죽었다. 그의 능(陵)은 역시 명당이었겠지만 자식의 불행은 피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양택은 경복궁이다. 세종과 세조 모두 그곳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런데 자식들의 운명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
박제가는 풍수지리학책을 모아 태워버리고 지관들의 활동을 금지하자고 주장했다. 무덤은 공동묘지에 쓰면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풍수론은 2백 년 전에 끝난 이야기다. 지금 세상에 풍수론을 무슨 학문인 것처럼 떠벌리고, 진실인 것처럼 믿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아마도 호모사피엔스는 아닐 것이다.
강명관/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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