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에는 1930년대 조선인 부동산개발업자들에 의해 조성된 도시한옥도 있지만 조선 후기에 지은 전통한옥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윤보선가옥과 백인제가옥은 엄밀한 의미에서 전통한옥이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이 또한 개량된 전통한옥으로서 지금의 북촌한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윤보선가옥은 1870년(고종 7)대에 여흥 민씨가 지었다고 하며 민대감 댁으로 불리었는데 구체적으로 민씨 누가 지었다는 기록은 확인할 길이 없어요. 이후 개화파였던 박영효가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에 망명했다가 갑오개혁으로 조선에 돌아와 이 집에서 살았고, 한 사람을 더 거쳐 1910년에 윤보선의 부친인 윤치소가 매입해 지금은 윤보선의 장남 일가가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 건축물 중 하나로, 북촌에 남아 있는 유일한 전통사대부 집으로 알려져 있지요. 대지 1400평에 건평 250평의 한옥입니다. 대지의 서쪽에 위치한 솟을대문간을 들어서면 나오는 행랑마당의 동남쪽에 사랑채가, 서북쪽에 안사랑채ㆍ안채ㆍ별당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현재의 가옥 구조는 윤치소가 매입한 이후 1960년대 초반까지 개보수를 거듭한 결과물입니다. 동양식 정원을 영국식 정원으로 바꾸었고, 각 건물의 외형은 한옥을 유지한 채 세부장식과 생활 가구 등은 영국식 혹은 중국식을 겸비해 실생활에서 편리하면서도 전통기법을 보태 개선하였다고 합니다.
바깥사랑채의 현판인 남청헌(攬靑軒)은 순조의 글씨로 전하며, 유천희해(遊天戱海)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고, 복을 의미하는 박쥐 모양 편액에 태평만세(泰平萬歲)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안채 누마루에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쓴 것으로 알려진 경천효친(敬天孝親) 현판과 국태민안(國泰民安) 현판이 걸려 있으니 그 격으로 따지자면 달리 비할 바가 없습니다. 다만, 일반인에게는 비공개라 직접 관람할 수는 없어 유감입니다.
한편, 백인제가옥은 공개가 되어 있어 사계절 찾아 즐길 수 있어 좋습니다. 1913년 한성은행 전무였던 친일파 한상룡이 건립한 이래 한성은행, 최선익 등을 거쳐 1944년 백인제 선생에게 소유권이 이전되었습니다. 1906년 4월 한상룡이 이 집을 구입한 뒤 1913년까지 옆집 열두 채를 사들여 개축했습니다. 대지 907평에 건평 110평의 대저택입니다.
다음 소유자인 최선익은 개성 출신의 청년 부호로, 1932년 27세의 나이로 중앙일보(1933년 조선중앙일보로 개칭)를 인수하여 민족운동가인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하는 등 민족 언론사에 중요한 자취를 남긴 인물입니다. 그리고 1944년 이후에는 당시 국내 의술계의 일인자였던 백인제 선생과 그 가족이 소유하였으며, 2009년 서울시로 소유권이 이전된 후 내부 수리를 마치고 2015년 일반 공개가 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북촌에는 계동 배렴가옥(공개)을 위시하여, 계동 김성수 옛집(비공개), 원서동 고희동가옥(공개), 가회동 한씨가옥(공개, 휘겸재), 김형태가옥(공개 여부 불확실) 등 여러 채의 전통한옥이 있어 우리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한옥의 수명은 대략 200년 남짓이라고 합니다. 유달리 격동의 세월을 겪었던 조선말기, 전통한옥이 그나마 남아 있는 서울 북촌에서 옛 사대부의 격조 높은 기품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