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앞에서 외 2편
전- 호 -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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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의성군 행정공무원
2016년 <수필 춘추> 등단
한국문인협회. 달구벌수필문학회 회원
대경상록아카데미 수필창작교실 회원
E- mail : hojun2823@daum.net
봄이면 산과 들이 온통 꽃밭으로 수놓아진다.
눈 속에 핀다는 복수초와 설중매를 시작으로 개나리 진달래며 화사한 벚꽃에 눈이 부시다. 바야흐로 온 누리에 꽃의 향연이 시작된다. 이즈음 지자체 곳곳에 앞다투어 꽃 축제가 열린다. 산수유 축제를 시작으로 매화, 벚꽃, 진달래 철쭉이며, 연꽃 해바라기 축제에 이어 가을 국화 축제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 많은 꽃 축제에 나라꽃 무궁화 축제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상춘의 들뜬 향연이 시들어진 한여름에 피는 꽃이라 그럴까? 요염한 장미나 화려한 벚꽃처럼 사람들의 눈길을 유혹하지 못하는 순수함 탓일까?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길 담장 아래 무궁화나무 두 그루가 있다. 언제 누가 심었는지 알 수는 없다. 내가 이사 올 때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사 온 지 벌써 십수 년이 흘렸으니, 그 나이는 더욱 알 수 없다.
담장과 길바닥 콘크리트 틈새에 억눌린 탓일까? 돌보는 이 없는 가엾은 고아처럼 그 행색이 초라하다. 그도 오가는 길에 거추장스러워 매년 옆집에서 가지 일부를 잘라 버린다. 잎은 온통 진딧물 배설물로 검푸르고 쪼글쪼글하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초라한 몸매나 행색은 변함없다. 그래도 단아하고 우아한 꽃송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끊임없이 피어있다.
제75주년 광복절 이자 말복 날 아침이다. 코로나 19가 광복의 환희를 삼켜버린 후덥지근한 날씨다. 이런 악조건에도 오늘 광화문 광장에는 나라를 걱정하는 수많은 애국 민(民)들이 시위에 나선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하러 나가는데 골목길 담장 아래 피어있는 몇 송이 무궁화가 눈에 들어왔다. 꽃이 피기 시작한 지 한 달도 넘었는데 하루에 수십 번 드나들며 그저 무궁화 꽃이 피었구나, 무심히 지나쳤다. 광복절 아침이라 그럴까? 오늘따라 무궁화 꽃이 새삼 가슴에 다가온다.
우리나라 국화(國花)는 무궁화(無窮花)로 알려졌지만, 실제 법률로 지정된 국화(國花)는 없다고 한다. 1896년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의식 때 부른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국화(國花)로 각인(刻印) 되었다는 설이다.
오랫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아오면서 나라의 상징인 국화(國花)로 훈장이나 표창장 등 정부의 대표 문양이 되었고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경찰관들의 계급장이 무궁화 꽃문양인 걸 보면 그 깊은 뜻을 헤아려 짐작해 본다.
무궁화는 한자(漢字)로 무궁화 근(槿) 자(字)를 써서 근화(槿花)라고도 한다. 무궁화는 그 이름처럼 궁(窮)함이 없는 무궁(無窮)한 꽃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그 화사한 얼굴로 온통 인간들의 시선을 사로잡던 벚꽃은 푸른 하늘에 두둥실 흰 구름처럼 마음을 들뜨게 하지만, 열흘이 멀다 하고 한줄기 비바람이면 사그라져 버린다.무궁화는 이른 새벽 피었다 오후 늦게 오므라져 밤에 진다고 하여 근화일일영(槿花一日榮) 이라고도 한다.
이는 하루 피었다 지는 하루의 영화를 뜻하지만, 세찬 비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 아침 새로운 꽃이 피고 지는 끈기가 우리 겨레의 얼과 같아 나라의 상징 꽃으로 사랑을 받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국민의례 시 부르는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우리나라 만세”를 외쳐왔지만, 나라꽃 무궁화를 입으로만 불렸지 가슴으로 부르지 않았다는 부끄러운 마음이다.
예쁘게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며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떤 꽃이든 그들만의 기호(嗜好)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라 꽃 무궁화는 소외된 듯 무궁화 삼천리가 아닌 사꾸라 삼천리로 변해가는 조국의 산야를 보며 아무리 벚나무의 조상이 제주도 왕 벚 이라 하지만, 일본인들이 국화처럼 여기며 사랑하는 사꾸라 나무 아래서 흩날리는 꽃잎을 술잔에 띄우며 애국가를 작곡한 사람까지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안주 삼는 사람들 앞에 나라꽃 무궁화가 무슨 대수일까?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 또는 영원이라 한다. 어떤 환경에도 7월부터 10월까지 100여 일 동안 무려 3.000여 송이의 꽃이 끊임없이 피고 진다고 한다. 꽃잎은 다섯 장으로 각각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밑동은 하나로 붙어있어 단일 민족을 상징하며 연분홍 꽃잎 밑동에 노란 꽃술을 둘러싼 선홍색 무늬가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의 선죽교 핏빛 같아 단심가가 떠오른다. 종(鐘) 모양의 고상하고 단아한 모습에 어울리는 꽃말이란 생각이다.
언젠가 군위에서 소보 가는 길 양편에 길게 늘어선 무궁화 가로수를 보며 이런 소소하고 소박한 실천이 진정 나라 사랑의 마음이 아닐까?
공원이나 공공기관의 정원, 산책로 등에 이따금 보이는 무궁화가 어쩐지 초라해 보인다. 그나마 경기도 가평 고요 수목원의 ‘무궁화 전시회’와 세종시 ‘나라꽃무궁화 세종축제’가 매년 열린다는 사실에 소중한 마음이다.
우리 모두 나라꽃 무궁화를 심고 가꾸어 그 많은 꽃 축제에 무궁화 축제도 곁들어 국민들의 민족의식 고취와 나라 사랑의 자긍심을 높여 진정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우리나라 만세”를 소망해 본다.
부리망과 입마개
전 호 준
“마스크 쓰GO! 운동에 적극 참여합시다. 먹고 마실 땐 말없이 대화는 마스크 쓰GO! 대구 시민이 최강의 백신입니다.” GO∼ GO∼ 무시기 쓰리GO∼판 같다. 집을 나서면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이나 병원 약국 공공기관 내외 등에 흔히 볼 수 있는 문구다. 자연 몸이 움츠러들고 마음이 위축된다. 이젠 마스크는 장난이 아니다. 생활필수품을 넘어 너와 나를 지키는 최소한의 방패이고 의무사항이 되었다. 오는 11월 13일부터는 지정된 장소에 마스크를 쓰지 않을 시 최대 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정부 방침이다.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국민의 입을 공권력으로 막아 보겠다는 정부의 궁여지책이다. 수긍은 하면서도 뭔가 아이러니하다.
나는 마스크를 쓰면서 어릴 적 콩밭 잡초 제거를 위해 밭골을 탈 때 아버지가 어미 소에 씌우던 부리망이 떠오른다. 부리망은 가는 새끼줄로 그물 같이 얽어 만든 소의 주둥이에 씌우는 입마개다. 우리 지방에서는 소머거리라 했다. 이는 소의 식욕을 강제해 농작물도 보호하고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동물에 자행한 인간들의 갑질인 셈이다. 어쩌다 이젠 인간이 인간에게 부리망을 씌우는 세월이 되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다. 입은 모든 동물의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의 입구다. 그 입구를 강제로 막아 버리면 손이 없는 동물들은 그 생명을 부지하기 어렵다. 인간의 입은 에너지원을 먹는 것 이상으로 혀를 통해 내면의 나를 알리는 유일한 출구이기도 하다. 인간은 말을 통해 소통과 이해로 서로 사랑하며 공존해 살아간다.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특이한 선물이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도 말 한마디로 녹일 수 있고 타오르는 희망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 말도 입을 통해 나온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에게 좋은 말 한마디는 특효약이 되기도 한다. 너와 나를 죽일 수도 살리기도 하는 것이 말이다.
디지털시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SNS를 통해 글로 표현하는 것도 말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요즘 인터넷상에 온갖 말장난이 난무한다. 특히 국내외적 어려운 정치적 상황이라 그럴까? 보이지 않는 사이버 공간이라 그럴까? 댓글이란 명목의 말을 보면 내 편 네 편을 갈라 무분별한 말장난이 꼴불견이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도 있다 하니. 정말 어이가 없다.
어찌 댓글뿐이라 나라의 지도자도 그를 보좌하는 고위 공직자도 국민의 대표라는 선량(選良)들조차 자신과 무리의 손익(損益)에 따라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자신이 뱉은 말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세상이니, 내로남불의 말장난이 작란(作亂)이 되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아무리 상대방이 밉고 뜻과 생각이 달라도 말은 올곧고 신중해야 한다.
최근 국회에서 파생되어 회자한 “정도껏 하세요.”라는 말이 생각난다.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는 없다. 최소한 다수가 수긍하는 처신을 말하는 게 아닐까? 이 소식이 보도되자 오히려 짝눈이 극렬 누리꾼들의 성토 댓글에 역풍이 불었다 하니, 콩과 보리도 구분 못하는 숙맥(菽麥)들일까? 정말 가관이다. 입에서 나온다고 다 말이 아니다.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지는 말이 참, 말이다.
당나라 시인 풍도(馮道)는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 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자신을 베는 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우리네 속담도 있다. 이렇듯 사람이 살아가는데 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경구(警句)가 많아도 입속의 혀는 뼈가 없어 제멋대로 논다.
스스로 깨물지 않으면 절제가 어렵다. 요즘 여기저기 함부로 막말을 지껄이는 사람들을 TV나 모바일 앱을 통해 더러 본다. 내가 한 말은 옳고 네가 한 말은 그르다고 억지를 부린다. 정도껏을 넘어 한계점에 이른 것 같다.
조물주는 말이란 은혜를 인간에게 베풀었다. 거짓과 위선 섬뜩한 노기를 띤 막말을 마구 쏟아내는 험한 입은 코로나 바이러스 보다 더 무섭다. 소에 부리망을 씌우고 함부로 짖어대며 아무나 물려는 개에 입마개를 씌우듯 우리 인간들의 분별없는 말장난에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가 인간의 입을 잠시 막아 자아(自我) 성찰(省察)의 기회를 준 것은 아닐까?
“먹고 마실 때는 말없이!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 그래도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만 맛이다. 말은 하되 정도껏 절제 할 수 있는 마음 가짐이 마스크에서 자유로워질 희망의 길은 아닐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나도 한 번 지껄여 본다.
부부 카페 바리스타
전 호 준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키스처럼 달콤하다. 어느 시인의 “커피 예찬”이란 시구(詩句)다. 커피에 대한 찬가(讚歌)인지 정의(定義)인지 무딘 나로선 아리송하지만, 은연중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부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식사 후 커피를 마신다. 당번은 당근이다. 언제부터 내가 부부 카페 바리스타가 되었는지 기억은 없다. 마지막 쌀래 끼가 밥통(胃)에 도달하기도 전에 “영이 아빠 커피!” 아내의 커피 타령이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로 시작되는 TV 커피 광고가 떠오른다.
커피포트에 불을 지피고 적당량의 커피와 설탕, 크림을 잔에 버무린다. 끓는 물을 조절해 정성껏 저으면 오늘 아침 부부 카페 영업은 땡이다.
어느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연평균 512잔에 이른다고 한다. 어떤 기호 음료보다 커피에 쏠리는 사랑이 도를 넘고 있지는 않은지? 이렇듯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커피, 인류는 어떻게 알고 언제부터 먹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자료를 검색했다.
6세기경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살던 “칼디”라는 양치기가 있었다. 가뭄에 말라가는 초원을 떠나 평소에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얼마 후 “칼디”는 한 무리 염소들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에 놀랐다.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날뛰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상히 여긴 “칼디”는 염소들을 자세히 살펴보던 중, 입속에 빨간색 열매를 넣고 아작아작 씹는 것을 발견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호기심에 “칼디”도 그 열매를 따 먹어 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게 흥분되고 기분이 좋아지며 춤이라도 출 것 같은 충동을 느끼게 된 것이 커피의 원조로 인류에게 커피의 효능을 알린 계기가 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여온 것은 약 100년 전으로 커피를 처음 맛본 사람은 고종 황제라 한다. 명성황후시해사건 이후 신변에 위험을 느낀 고종이 1896년 2월 아관파천 후 러시아 공사관에서 마신 것이라 전해온다.
내가 커피를 처음 맛본 것은 아마도 50년이 훌쩍 넘은 것 같다. 60년대 중반 농촌 지역 면 소재지에 다방이라는 커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늦은 밤 도시에서 고향을 찾은 친구 손에 이끌려 들어간 허름한 목조 2층 “샘 다방” 촌뜨기 나에겐 환상적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운터에 앉아 있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담이 일어서며 어서 오세요. 다소곳이 인사를 한다. 텅 빈 다방, 한가운데쯤 커다란 사각형 어항 속에는 금붕어 몇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잔잔한 멜로디에 정신이 몽롱했다.
빨간 입술에 짙은 화장을 한 앳된 아가씨가 기다린 듯 쪼르르 달려와 옆자리에 바짝 붙어 몸을 기대며 차는 뭐로? 하며 쳐다본다. 얼굴이 화끈했다. 진한 향수 냄새에 정신이 아찔하다. “커피! 블랙으로~” 친구 따라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했다. “오빠! 나도 한 잔” 생긋 눈웃음으로 영문도 모르는 소리를 하며 일어선다. 왼쪽 벽면 사각형 틀 안에 모나리자가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처음 맛본 블랙커피. 뜨겁고 쓰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어떤 차(茶)보다 우리나라 곡차(막걸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곡차를 싫어하는 아내는 정 반대다. 오직 커피 마니아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처럼 카페나 커피 전문점을 찾지 않는다. 분위기를 모르는 무딘 성격 탓도 있겠지만, 만만찮은 가격의 명품 커피의 진가를 모르는 무감각의 혓바닥이 탈이다. 평소 즐겨 마시던 믹서와 자판기 커피에 길들어진 입맛 탓이리라, 커피믹스는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제품으로 오히려 커피의 원조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고종황제의 아픈 마음을 달래준 커피, 러시아로 역수출까지 하고 있다 하니 아이러니하다.
부부는 살면서 닮아 가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나도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아내를 따라간다기보다, 퇴직 후 맥이 끊긴 술자리 때문인 것 같다. 몇 해 전 정기 건강검진 결과 당 수치가 올라간다는 판정이 나왔다. 설탕을 줄여야 할 것 같아 믹서와 자판기를 되도록 멀리하고 자진 바리스타가 되었다. “커피 배달이요!” 마주 앉아 병아리 물 먹듯 마셔보는 키스보다 달콤한 커피 한 잔의 여유, 행복한 오늘 하루가 익어 간다. 오늘은 무엇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구를 만날 계획이며 혀끝에 녹아드는 커피 향 같은 대화가 조곤조곤 이어진다. 잔을 비운 아내는 앵무새 같은 한마디를 오늘도 잊지 않는다. “역시 커피는 당신이 탄 것이 내 입엔 짱이야!” 잘 먹었다는 인사인지? 허풍선인지? 아내의 부추김이 밉살스럽지 않은 걸 보면 한번 부부 카페의 바리스타는 영원한 바리스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