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전 두날개 프로세스 1기 졸업 간증
안녕하십니까? 세계비전 두날개 프로세스 1기로 졸업한 김지연 사모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예수를 믿는다기보다는 교회를 그저 다니며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 후 2000년에 저의 목자, 영적 스승을 만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공동체에 눈을 뜨고 한 사람의 가치에 눈을 뜨며, 열정적으로! 한결같이! 라는 슬로건이 제 가슴에 새겨질 때쯤, 하나님이 저는 사모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모가 되면 청년 시절 공동체에 쓰임 받던 대로 멋지게 쓰임 받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사모의 삶의 너무나 달랐습니다. 첫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신앙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를 낳고 불과 한 달 반 몸조리를 하고 나서부터 시작하여 둘째 만삭 때까지 2년 동안 왕복 세 시간 넘게 매일 운전하며 출퇴근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게다가 갑상선 항진증 재발로 몸은 견딜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예배가 너무나 사모되었지만 너무나 어린 두 아이들로 인해 예배당 밖을 서성이다가 돌아오기 일수였습니다. 사역자의 아내로 사는 것은 외로운 삶이였습니다. 사모이기에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내 속의 곤고함과 갈급함은 말로 다 할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삶이 피폐해져있던 2006년에 남편은 두날개 비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물불 안 가리고 사역하던 남편은 이 비전을 발견하자 집에는 거의 잠만 자러 오다시피 했습니다. 그리고는 새벽녘에나 돌아와서 행복모임 현장에서 일어난 이야기, 당시 청년들이 훈련을 통해 변화되는 이야기를 신이 나서 풀어 놓았습니다. 그런 날이면 저도 덩달아 놀랍고 감격스러워서 눈물짓다가도, 이내 영적 소외감과 영적 열등감에 밤마다 많이 울었습니다. 나의 정체성은 불같이 쓰임 받던 청년 때를 늘 추억하며 과거에 매여 있었고, 지금의 초라한 내 모습을 부정해 보았지만 과거 화려한 경력이 사모라는 이름이 현재의 나를 사모답게 해 주는 것이 아님을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2007년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던 밤, 꼬박 눈물로 밤을 지새운 이후 내린 결론은 나도 이 비전으로 훈련을 받아야만 살 수 있겠다는 것 이였습니다. 이후부터 남편이 청년부에서 하고 있던 훈련에 동참하며 제자 삼는 세계비전이 바로 저의 비전이 되었습니다.
2011년 좋은 제안들을 모두 고사하고, 아무것도 없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개척을 했습니다. 장소도, 물질도, 계획도 없었지만 오로지 제자를 세우겠다는 비전 하나 만으로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두날개 비전은 단순히 개척해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도구 같은 것이 아니였습니다. 40년을 산 독수리가 낡아빠진 부리와 무뎌진 발톱, 무거워진 깃털을 뽑고 갱신하듯이 겉모습은 신실한 사모였으나 복음의 능력이 없었기에 자괴감으로 숨이 막혀있던 나의 숨통을 트여 준 비전 이였습니다. 또한 이 비전은 남편이 부교역자로 있으며 마음껏 사역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오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놓치 않았던 비전입니다. 남편의 심장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며, 혈변을 쏟아가며 비전을 지켜왔던 것을 보면서 저는 더 비전의 사람, 제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훈련을 받으며 변화, 확신, 영혼구원, 로드쉽, 제자, 재생산 사역자의 삶의 가치관이 제 안에서 하나씩 세워져가며 저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훈련으로 내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삶으로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나에게 가장 큰 영적 침체를 가져다주었던 육아와 갑상선 항진증을 개척 이후 다시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개척할 때 저는 이미 임신 6개월이였습니다. 만삭 때까지 셀리더로 사역하다가, 출산 후 한 달 산후조리하고는 다시 셀리더 사역에 복귀했습니다. 육아로 인해 영적 소외감에 몸부림 쳤던 나였는데 비전과 사명으로 훈련되니 출산도, 직장도, 아이 셋을 키우면서도 사역을 감당할수 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또한 셋째 출산 후, 과거 무기력함과 대인 기피증까지 시달리게 했던 갑상선이 재발하였을때도, 사역에 방해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6개월 이상 먹어야 하는 약을 두 주만 먹고 끊었음에도 지금까지 5년째 갑상선 수치를 정상으로 유지해주시며 육체의 연약함을 지켜주고 계십니다.
훈련받고 비전에 붙들리니 이전의 트라우마와 같던 문제도 역전시킬 수 있는 강건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두날개 훈련을 통해 이 부족한 자를 행복모임 리더로, 셀리더로, 주니어 사역자로, 양육강사로, 디렉터로 세워가셨습니다.
복음의 절대능력을 맛보고 누리는 곳, 행복모임 현장에서는 오랜 문제가 응답되어지고, 아픈 곳이 즉시 나으며, 부부관계가 회복되고, 또 다른 영혼으로 이어지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 눈 앞에서 영혼이 살아나는 기쁨, 사단의 세력에서 죽어가던 영혼을 되 찾아온 기쁨, 그것만큼 신나는 사역은 없습니다. 베스트 뿐만 아니라 나도 살아나는 현장이 바로 행복모임입니다. 내가 가장 힘들고 연약할 때 나를 버티게 해준 사역의 현장이였습니다. 그렇게 행복모임들이 각 곳에서, 각 셀에서 이어지며 우리 교회 안에는 무수히 많은 영적 계보가 이어져 갔습니다. 누가 한 사람의 공적이 아닌 인도자와, 행복모임 리더와, 셀리더, 셀가족들이 만들어낸 거룩하고 귀한 계보입니다. 어느 누구 하나 사명을 져버리고, 포기했다면 이어지지 않았을 이름들. 이 계보가 이어지기까지 한 사람에게 쏟아 부어진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애씀이 있었기에 이렇게 고구마 줄거리처럼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영적 저력이자 가치인줄 믿습니다.
이 모든 사역을 한결같이 감당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비전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 지속, 반복의 훈련을 사모하며 받고 있습니다. 개척 전부터 훈련을 받았고, 개척후 성도들과 함께 두날개 양육시스템 1기로 졸업을 했습니다. 또한 2012년부터 5년째 집중훈련을 매년 받고 있습니다. 2014년 세계비전 두날개 프로세스로 교회가 다시 새롭게 훈련을 시작할 때에도, 이미 집중훈련을 받고 있고, 양육강사로 서 있었지만, 다시 성도들과 함께 훈련에 임했습니다. 제자가 되고 제자를 삼기 위해, 훈련의 현장을 딩굴며 본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해는 5년 동안 휴직했던 직장을 복직했습니다. 양육강사로 훈련하다보니 성도들이 불모지 같은 직장의 현장을 스트레스와 만성피로와 싸워가며 복음으로 장악하고 비전을 이룬다는 것이 참으로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서 나도 그 현장 속에 들어가 모래주머니를 차고도 행복모임을 열고, 훈련을 받고, 사역을 할 수 있음을 내 삶으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훈련은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복직을 하고 이 모든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습니다. 5년 만에 복직이라 수업도, 업무도 어려운데다 다른 학교에 비해 몇 배로 업무가 많은 학교였습니다. 잠시라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에 1,2시간도 나지 않았습니다. 잠이 늘 부족했고, 체력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 아로새겨진, ‘나는 비전의 사람’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이 모든 한계 속에서 사역을 이어가게 하였습니다. 저녁 여성셀을 새롭게 맡아 지금은 셀가족이 3배가 되었습니다. 행복모임 또한 지속적으로 열어갔습니다. 직장에서 교장선생님께 복음을 전했고, 이번 귀빈초청축제에 오지못해서 꽃을 보내주시며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베스트로 품고 있는 선생님도 관계를 잘 맺어가고 있습니다. 제자대학 2학기 훈련을 받는 동안 잠을 줄여가며 하나님 앞에서를 충실히 하여 이번에도 장학생이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집중훈련 기간에는 집중훈련을 온종일 받지 못하는 속상함에 학교에서 바로 부산으로, 부산에서 학교로 출퇴근하며 4시간 잠을 자고, 4시간 운전하며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진짜 제자가 되고 싶은 사모함이며 진짜 제자를 세우고 싶은 열망 때문입니다.
제자를 세우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감정, 생각을 내려놓지 못해서 비전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좀처럼 자라지 않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들의 영적 전쟁을 온 몸으로 막아내지 못하는 저의 부족함에 온 몸이 타들어갑니다. 비전을 온전히 위임해주지 못할까봐 참으로 두렵습니다. 그러나 전 아직도 이들을 위해 울어야 할 눈물이 많이 남았습니다. 보여내야 할 삶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자신의 한계 앞에서, 문제 앞에서도 비전을 이루겠다고 피묻은 순종으로 달려가고, 삶을 대가지불하는 성도들이 있기에 좌절, 낙심 따위 딴 생각은 품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번 마지막 제자대학 2학기 훈련을 받으며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울고, 웃으며 훈련받는 말씀에, 삶을 나누는 고백에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달려가는 신실한 일꾼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상처투성이로, 분노로, 무기력함으로, 세상 가치관으로 처음 우리 교회에 왔던 1기생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그러하셨듯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비전을 위임해주시고, 가슴이 뛰게 하셔서 소속감, 애착심, 비전이 분명한 사람들로 만들어 가시는 과정을 보는 것은 참으로 감격이였습니다.
훈련 중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아라비아 명마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100마리의 아라비아 명마 중 일주일동안의 갈증을 해갈해 줄 물 앞에서, 주인의 휘슬에 한순간 본능을 뛰어넘어 몸을 돌릴 수 있는 명마 4마리 만이 순수한 혈통을 이어간다 합니다. 육적인 한계 그리고 심적인 한계가 와도, 주님의 부르심에 본능을 뛰어넘어 순종하는 명마가 되어야 합니다. 역사의 주역으로 비전을 이루기 위해 이 4마리의 명마와 같이 탁월해져야 합니다. 내가 잘해서 탁월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 위에 오로지 성령님의 임재로 탁월해져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비전을 이루어낼 제자의 혈통을 우리 큰숲맑은샘 성도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돌아보니 비전 하나 붙잡고 달려왔는데 참 많은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제 만 5년 된 교회, 성도 150명 달려가고 있는데 서울, 남양주, 서산, 제주도, 부산, 천안, 영천, 대구, 중국 온주, 중국 평도, 대만 등 많은 교회가 우리 교회 이야기를 듣고 힘을 내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주의 일꾼들을 세워 전 세계 12전선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복음으로 장악하는 2천2만 세계비전을 이루길 소망합니다.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기에 평생을 두고, 이룰 것처럼 달려가겠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장 8절 말씀> 아멘.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썩지 않을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까닭은 이것이 나의 본연의 사명,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시대, 마지막 주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비전 앞에 멈춰서지도, 뒤돌아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순종만이 능력입니다. 내 힘이 아닌 능이 아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맡은 사역 충성으로 집념으로 감당하겠습니다.
나의 롤 모델이자 나의 스승인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목사님의 일등 제자가 되겠습니다. 나에게 가장 가치있는 비전을 위임해주시고, 사로잡히게 해주시고, 비전을 이루어갈수 있도록 날마다 새힘을 더해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이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첫댓글 사모님의 간증을 통해서 내 같은 사람이 과연 좋은 제자가 될 수 있을까?의 질문의 답을 얻게 됩니다 사모님을 통해서 닮아가야 하는 교사의 모습, 두날개 비젼으로 닮아가야 하는 주님의 모습을 알게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모님~
꺼억꺼억 눈물이 쏟아지네요ㅠ
자랑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나는 정말 못하겠구나.. 한숨나기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사역은 이렇게 하는거야~라는 답을 써가고 계시는 모습! 놀랍습니다~
날마다 새힘으로 잘 달려나가시길 기도합니다~
우리사모님~~사랑합니다~♡♡
사역함에 건강이 후달리지 않도록
늘 기도 하겠습니다~♡♡
사모님은 탁월하십니다.!!
주님의 눈은 정확하십니다!!
본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의 사역과 모든것 기도로 동역합니다
사모님,사모님이 저희 사모님이라서 너무 감사합니다
제자가 되고자 하시는 열망, 제자를 삼고 싶은 열망!!!
비전의 사람으로 한결같이 달려가시는 사모님을 잘
따르겠습니다.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역쉬 ~~대단하신 사모님.디렉터님 ㅎ한결같은 모습으로 열정을 다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함께 훈련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부족하지만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우리에겐 최고의 비전이 있으니 더 없이 행복합니다 졸업진심으로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