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그 푸름에 안겨 / 박문자
멀리서 가까이서 봐도 산은 진한 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진초록이 짙어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아카시아 꽃 향이 날린다. 잦은 비에 산과 숲은 한여름의 뜨거움을 견디기 위해 그리 초록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파란 하늘에 양떼구름이 지나고 그 아래 신록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구름은 친구의 얼굴도 되고 엄마의 얼굴도 되고 잃어버린 어린 나의 얼굴도 된다.
지금 저 푸름은 누구의 배경일까? 저 초록빛 배경으로도 견디고 살아낼 이들에게 축복의 말 한마디를 전하고 싶다. 내가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잘하고 있다고 잠시만 지나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고달픈 삶 속에서 잠깐 쉬며
바라보는 숲속
펼쳐진 초록빛
멀쩡한 하늘에서
한줄기 소나기가 내린다
가끔은 하늘도 누군가 그리워
눈물이 비로 내리는 것일까
갑작스런 소나기를 나무 숲속에서 피하고
산속을 빠져나오는 길은 더욱 싱그럽다
- 자작시 「여름 숲속」
못다 한 소망들 못다 한 꿈들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만약 하늘이 내게 천년을 빌려준다면 천년이 아니라 백 년 아니 그 절반을 다시 빌려준다면 못다 한 것들을 다 해 볼 수 있을까.
그리워할 것만 남은 것 같아 혼자서 풍선에 바람 빠져나가듯 웃어본다. 아름드리나무를 두 팔 벌려 안아 본다. 나무에 기대어 나무의 소리를 들어본다. 살아온 날들이 커피 한잔을 마시는 시간처럼 찰나로 느껴졌다. 환희, 슬픔, 기쁨, 아픔, 감사, 그리움. 누구나 비슷한 삶의 여정이 아닌가. 신은 내게 글을 쓸 수 있는 약간의 재능과 시간을 주셨다. 지금은 그것이 나를 지탱해 주었음을 안다. 기쁠 때 아플 때 감사할 그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축복이었다.
수필을 쓰는 자로 산 지 27여 년이 넘었다. 치열하게 또는 떠밀려 또는 절박하게 글을 써온 시간이다. 결과적으로 :수필집 칠집, 그리고 한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좋은 분들을 만났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길을 헤맬 때 등대처럼 글의 방향을 잡아주는 분들이 감사하다. 가족들에게도 엄마와 동생이 아닌 나의 이름이 있음을 알렸다. 그건 너무 잘한 일이라고 이름도 없이 사는 친구들이 말한다. 복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으니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산 것은 맞는 것 같다.
나무를 안고 너무 말을 많이 한 걸까. 새 한 마리가 푸드덕 힘차게 날아오른다. 언제부터 나무에 깃들어 쉬고 있었던 걸까. 새가 날아간 하늘을 올려다보니 빛이 부서져 내린다. 나무가 빛이 되고 빛이 나무가 되는 순간이다. 그 나무 아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워할 추억 하나를 새긴다.
오월처럼 도돌이표를 가진 푸른 사람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