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훈련의 시작과 끝, 그리고 또 다른 시작
눈을 감고 거기에 잠시 머무른다. 하루, 이틀, 사흘
감수성 훈련을 참가하기 전의 나의 몸 상태, 참석하는 나의 몸 상태, 그리고 감수성 훈련을 끝난 지금의 나의 몸 상태, 여기에서 일어나는 미동들, 마음의 감정들.......
한 통의 전화벨 소리와 또 다른 한 통의 문자가 나를 깨우게 하는 시작이었다. 나를 둘러싼 무수한 고민과 번뇌에서 오는 힘든 과정들 속에서 말이다.
한 통의 전화에서 들어오는 반가운 목소리, 거기에서 오는 미안한 나의 마음, 통화 중에서 머물 거리는 나의 목소리의 대답, 그리고 만남
만남에서 내 귓가에 들어오는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느낌 그리고 마음들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받을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대답을 줄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내가 힘든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 울타리 속에 나를 넣고 그 속에서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밀려오는 또 다른 나의 마음의 미동들, 멈출 수가 없었다. 여기에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한 고민과 번뇌들과 뒤섞이면서 나를 더욱 더 미칠게 만든다.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결정을 내릴 자신도 없었다. 계속되는 생각들과 고민들, 거기에 머무르면서 힘들어 하는 내 모습에서 말이다.
며칠 뒤 또 다른 한 통의 문자가 나를 왠지 모르게 편안함, 반가움이 나에게 든든함으로 다가왔다. 그 문자의 내용은 단순한 교육의 일정표였다. 감수성 훈련에 대한 내용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존재감,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더 이상 혼자서 힘들어 하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는 손짓......
순간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오는 알아차림이었다. 평소에 자주 프라이머 가족들을 떠오른다. 거기에서 용기, 믿음, 지지, 신뢰, 따뜻함, 그리움, 든든함, 존재감 등의 감정에서 내 몸과 마음은 반응을 한다. 그래서 힘을 얻는다.
한 통의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전화를 했다. 지금 전화를 하지 않으면 뭔가가 아쉬움으로 남을 거 같았다. 핸드폰에서 들어오는 반가운 목소리, 하염없이 반가움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만나지 않음에도 목소리에서 들어오는 편안함이 지금 나의 마음을 가라앉히게 만든다. 무수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에게 전달되는 마음과 내 마음이 전달되어지는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감수성 훈련 과정을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한 부분이었다.
감수성 훈련을 하기 위해 아산까지 바로 가고 싶지 안했다. 다른 길을 선택을 해서 가고 싶었다. 예전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예전의 내 모습을 찾고 싶었다.
교육 첫째 날 아침까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선택의 결정과 현실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준비를 하고 터미널에 갔다. 전화를 기다렸다. 예상을 했지만 다행히 상황이 나에게 흐렸다. 감수성 훈련 과정에 올인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거제도로 가는 9시 45분차 버스를 탔다. 거제도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리고 거제도에서 형 차를 몰고 아산으로 가는 여정에서 내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예전의 즐거움과 행복함을 떠오르면서,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들에 힘들어하는 것들로부터 떨쳐내고 싶었다. 50%만 떨쳐내고 50%가 남아 있게 되었다. 이것들이 첫째 날에 그대로 나타났다. 반가운 얼굴들, 머무르고 싶었던 곳에 드디어 내가 왔다. 하지만 내 몸과 표정 그리고 행동들이 내 마음과 다르게 움직였다. 속상했다. 두려웠다. 예전의 내 모습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면 하는 두려움이었다.
감수성 훈련 과정 첫째 날이 시작되었다. 너무 힘들었다. 예전의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이 아니었다. 지금의 내 몸은 고민과 번뇌로 가득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었다. 오직 상대방의 목소리와 표정과 몸짓만 보였다. 아무 감정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지금에 나를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감수성 훈련 과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3일 동안 계속 되었다. 상대방 마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힘든 부분이다. 마음의 감정보다 내 몸에 있는 습관과 생각의 눈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신차선 교수님께서 언제나 이렇게 이야기를 하신다. 모든 역사는 교육을 끝나고 일어났다고 말이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일어났다.
30분 쉬는 시간에도, 교육을 끝난 그 이후에 시간에서도 말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감정들과 내 안에 담고 있는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격려해주고 지지해주는 시간들이었다. 나 역시도 이번처럼 내 이야기를 많이 꺼내고 이야기 한 적이 없었다. 많은 것들을 받아 간다.
아무 조건도 없이 내 마음을 전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받고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에서 서로의 존재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그저 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무엇인가 줄 수 있다는 존재, 그 사실에서, 발견하는 순간에 많은 감정들이 일어났다.
이번 감수성 훈련 과정이 이상할 정도로 어느 교육 때보다 서로의 감정에 충실했고 더 가까워지고 더욱더 친근감이 확장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믿음과 신뢰가 확인을 안 해도 저절로 느낄 수가 있었다. 서로의 마음을 ......
감수성 훈련 과정을 할수록 일어나는 우리들의 역동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내 안에 일어나는 역동들과 다른 참가자의 역동들까지도 말이다. 그러면서 변화하는 나의 모습과 우리들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감정들, 역동들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고마운 부분이다.
자꾸 떠나지 않고 내 안에 자리하는 부분이 있다. 촉진자의 모습이다. 많은 것을 배우고 몸으로 받아간다. 참가자가 감수성에서 벗어나더라도 여러 번 들어주고 촉진자가 그 부분을 이야기를 함으로서 해서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이 깊은 부분이다.
이번 감수성 훈련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 그 중에서 이 세 가지를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첫째는 상대방을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때 적절한 언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느낀 상대방의 감정 그대로의 단어를 표현해야 된다는 것이다. 느낀 감정 그대로의 단어가 아니라 나에 습관에 묻어서 나온 생각들이 서로에게 상처로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둘째는 둘째 날이 끝나고 나서 나는 밧데리가 떠올랐다. 든든한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 밧데리를 어떻게 쓰는가가 관건이다. 밧데리를 얻은 기분으로만 갈 것인가? 아니면 밧데리를 이용해서 내가 필요한 부분에 활용할 것인가? 이다. 어떤 것을 선택한 것에 따라 밧데리의 가치는 달라진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부분이다. 누가 해주는 부분이 아니다. 나는 밧데리를 말하고 나서 이런 장면이 떠올랐다. 자전거에 밧데리를 달아서 동력으로 이용해서 모터 자전거가 되어 가는 것과 조명을 비추는 밧데리가 되어 내가 가는 길에 비추는 장면이 떠올랐다.
셋째는 내가 이렇게 감정을 바라볼 수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대견스러웠다. 감수성 훈련 과정을 하는 이유라 생각을 해본다. 내가 예상을 하지 않는 부분에서 듣는 나의 이야기들이 너무나 불편하다. 불편한 부분에서 감정들이 일어난다. 불편한 감정의 눈으로 바라본다. 나의 불편한 부분만 보인다. 내 안에 남아있다. 마지막 날에 문득 이런 것이 떠올랐다. 불편한 감정의 눈으로 보는 내가 아니라 나를 걱정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였다. 그 이야기를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느끼면서 그 불편한 내 감정을 사라져 버렸다. 고마운 마음만 남는다.
감수성 훈련을 끝나고 난 후에 나는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고독함, 외로움, 떨림, 혼란, 힘듬, 그리움 등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의 힘든 부분만 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의 감정을 놓친 나를 알아차린다.
이제는 몇 달 동안 고민과 번뇌를 떨쳐내고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 더 이상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가 않다. 더 이상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싶지가 않다. 앞으로 나의 방향을 선택을 한다. 나를 믿는다. 내가 선택한 것들을 믿는다.
“그림자”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소감문을 마치려한다.
한 그림자가 있었다. 항상 그림자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를 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들, 사람들이 다가와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림자야! 그림자야! 너는 얼마나 힘드니? 어떤 사람의 그림자로 사는 네가 안쓰럽구나! 너는 왜! 그렇게 사는 거니? 글쓴이 - 이정범
여기에서 여러분은 어떤 마음의 역동이 일어났나요? 감수성 훈련을 끝나고 나서 나에게 저절로 떠오르는 이야기이다. 감수성 훈련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고 애쓰는가? 몸부림을 치는가? 나의 습관과 생각으로 상대방의 마음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번 집단 리더십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가 슬퍼 보인다는 것은 보여 지는 누군가가 슬픈 것이 아니라 슬프다고 말한 사람의 슬픔이 크기 때문에 슬퍼 보이는 것이다.
첫댓글 신기하네...
비슷한 시간, 다른 공간에서
서로 자신과의 만남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렇구나, 그래, 그런건데...
우린 모두 누구나 최선을 다하고, 애쓰며 사는건데.
반가웠어
오랜만에 만나서
또 반가웠어
개미글이...
진실하고 따뜻한 개미를 만난 시간. 함께해 줘서 정말 고마워.
당신의 진실한 마음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함께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실되고 친절한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개미님과 함께한 시간들이 따뜻함과 든든함으로 기억되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자신의 센서를 민감하게 느끼는 개베님! 많은 것을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