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다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빨리 되었다고 해서 문화재의 가치가 더 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손꼽는다면 1990년대에 이미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불국사와 석굴암, 해인사, 창덕궁, 종묘가 먼저 떠오르게 마련이다.
조선왕릉과 남한산성, 그리고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소개하면서 대한민국의 국력이 강해졌기 때문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조선은 근검절약과 예법을 중요시한 나라였기 때문에 조선이라는 한 나라의 왕릉임에도 유교 전통을 지켜 소박하게 만들었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삼배구고두례까지 한 굴욕적인 역사의 장소라는 점을 제외하면 한국의 다른 산성과 두드러진 차이도 없어 보인다. 차라리 남한의 산성을 전부 모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으면 어떨까 싶다. 백제는 멸망한 지 천년도 더 된 나라기 때문에 남은 문화유산의 수가 너무나 부족하다. 백제역사유적지구 대부분은 발굴을 통해 존재가 드러난 성터 또는 절터다.
겉으로 보기에 웅장하거나 화려하지 않다고 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될 자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같은 세계유산인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 창덕궁, 종묘에 비해서 볼거리가 없는 건 사실이다. 나는 세계유산이 하나씩 늘어나는 중에도 한국의 수많은 사찰이 먼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이 바로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 지어진 절들을 탐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8년에 한국의 산사 일곱 개가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고 나니 드디어 한국의 사찰이 가치 있다는 것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한편으로는 절을 넓히려는 몇몇 무지한 스님들이 자연을 훼손하면서 화려한 건물을 짓는데 열중하는 걸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산사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건설되었다는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주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야기 38 - 삼보 사찰 (三寶寺刹)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海印寺),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松廣寺) 셋을 가리킨다. 삼보는 불교의 신행 귀의대상인 불(佛)·법(法)·승(僧)을 가리키는 말로써 통도사가 불, 해인사가 법, 송광사가 승에 해당한다.
통도사는 자장(慈藏) 율사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창건한 절이다. 그는 불경과 불사리(佛舍利)를 가지고 귀국하였는데,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할 목적으로 이곳 통도사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조성하였다. 그는 승통(僧統)이 되어 이곳 통도사의 금강계단에서 승니(僧尼)의 기강을 바로잡았다고 하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여 통도사를 불보사찰(佛寶寺刹)이라고 한다. 영원한 부처님의 법신(法身)을 상징하는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통도사의 주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에는 따로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불단(佛壇)만 마련하였다.
해인사는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봉안한 곳이라고 해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고 한다. 강화도에서 완성한 고려대장경은 보관의 어려움 때문에 조선 초기에 가야산 해인사로 옮겨졌다. 이곳은 풍수지리에 의하여 예로부터 승지(勝地)로 손꼽히는 곳이었고, 장경각(藏經閣)을 따로 지어 고려대장경을 안치하게 된 것이다.
송광사는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해서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은 이곳에서 정혜결사(定慧結社)를 도모하였다. 원래 팔공산의 거조사(居祖寺)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뒤에 송광사로 장소를 옮겼다. 그 뒤 그의 제자였던 혜심(慧諶)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까지 16명의 국사가 연이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고 하여 승보사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언제부터 삼보사찰이라는 칭호가 붙여지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이후에 쓰이게 되었다고 보인다. 오늘날 이 삼보사찰은 전통적인 승려 교육과정인 선원(禪院)·강원(講院), 그리고 율원(律院)의 세 기능을 다 집합시켜 놓았다는 뜻에서 각각 총림(叢林)이라고도 한다.
해인사와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절, 통도사
가장 먼저 찾은 절은 당시에 살던 창원에서 가장 가까운 통도사였다. 통도사는 경남 양산에 위치한 절로,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경남의 산악지역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절이다. 양산이 부산의 위성도시 역할을 하고 있어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절이기도 하다. 통도사는 워낙 오래전부터 유명하고 중요했던 절이라 수십 년 동안 원래 절터를 확장하여 계속해서 개발되어 왔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 외에 20세기에 지어진 건물이 많다는 것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스님들이 과욕을 부려왔다는 뜻이다.
통도사의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져 있지만 통도사의 상징적인 문화재는 신라 시대 선덕여왕 15년 (646)에 지장율사가 세운 이후로 그 자리를 계속해서 지켜오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화재인 대웅전과 금강계단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국보로서 통도사가 불보 사찰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3년(1645)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웅전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5칸이고, 지붕은 앞면을 향해 T자형을 이룬 특이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바깥쪽 기단 부분과 돌계단 층계석, 계단 양쪽(소맷돌) 부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이어받은 뛰어난 연꽃조각을 볼 수 있다.
불가에서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으며, 지금 있는 금강계단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양식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금강계단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운데에 종 모양의 석조물을 설치하여 사리를 보관하고 있다. 1층 기단 안쪽 면에는 천인상을 조각하고 바깥쪽 면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제석의 모습을 조각하였다.
통도사 경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보물은 봉발탑·삼층석탑·영산전·대광명전이 있다.
봉발탑은 통도사의 용화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과 밥그릇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진다. 기본형태는 받침 부분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이다. 받침 부분의 돌은 아래·가운데·윗부분으로 구성되며 장고를 세워 놓은 듯한 모양이다. 받침돌 위에는 뚜껑과 높은 굽받침이 있는 그릇 모양의 석조물이 있다.
양산 통도사 삼층석탑은 2중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이다. 석탑의 높이는 3.9m 기단폭은 1.8m이며, 기단은 여러 매의 장대석을 사용해 지대석을 구축한 후 올려놓았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각 1개의 부재로 조성되었다. 하층기단의 각 면에 우주와 탱주를 생략하며 안상을 조각한 것을 볼 수 있다. 신라 석탑에서 양산 통도사 삼층석탑과 같이 우주와 탱주를 생략하며 기단부에 안상을 조각한 것으로는 부산 범어사 삼층석탑, 안동 평화동 삼층석탑, 경주 무장사지 삼층석탑, 칠곡 기성리 삼층석탑, 창녕 술정리 서 삼층석탑 등을 들 수 있다.
영산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통도사 하로전(下爐殿)의 중심 건물로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전면의 좌우에는 극락전과 약사전이 놓여 있다. 정면에는 매칸 사 분합 정자살문이, 배면에는 두 짝의 띠살문이 달려 있다. 공포는 공간포의 수에 있어 정면과 배면이 차이를 보이는데, 정면은 각 칸마다 3구가 배치되어 있으나 배면에는 2구가 놓여 있어 특징적이다. 이처럼 정면 각 칸에 3구씩의 공간포를 두는 것은 매우 드문 사례로 정면성을 강조하면서 불전의 장엄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영산전은 벽화가 매우 주목되는데 내부벽화로는 다보탑을 회화작품으로 표현한 <견보탑벽화>가 있으며, 이 벽화는『법화경』「견보탑품」을 도해한 변상도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으로 예술적 가치도 뛰어난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불어 대들보에 매우 화려하게 자리한 황룡, 청룡그림 그리고 양류관음과 나한, 산수를 표현한 벽화들 그리고 이러한 화려한 장엄 속에 석가모니불, 영산회상도가 봉안되어 있으며, 그 주변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이 자리하고 있다.
대광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자 중로전(中爐殿)의 중심 불전으로 대웅전의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공포는 정면과 측면의 경우 앙서형(仰舌形) 살미로 처리한 반면, 배면은 교두형 살미로 간결하게 처리하고 있다. 또한 정면 어칸의 기둥 상부에는 섬세하게 조각한 용두(龍頭)가 돌출되어 있고, 불전의 내측에는 용미(龍尾)가 돌출되어 있어 당시의 장식적 경향과 세련된 조각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청은 외부는 대부분 퇴락하여 흔적만 남은 상태이나 내부는 문양은 물론 색까지도 선명하게 잘 남아 있다.
통도사 경내의 수많은 건물들 중에서 국보와 보물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워낙 큰 절이라 지도를 먼저 참고해서 대웅전과 금강계단의 위치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다. 부처님의 사리가 있어 불상을 모시지 않는 대웅전에서 참배를 하고 금강계단을 돌면서 통도사가 불보 사찰로 지정된 이유를 깨닫는다. 불보 사찰의 진면목을 느끼고 나서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하나씩 둘러보면서 조선 중기부터 후기의 건축 양식을 감상하면 된다. 고려 시대 주심포 양식은 이미 사라지고, 다포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보면 임진왜란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통도사의 역사가 떠오른다.
통도사는 삼보 사찰 중 하나답게, 건물들 외에도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통도사가 소장한 수많은 보물을 보기 위해서는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방문해야 한다. 성보박물관은 닫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문하지 못한 적도 많은데, 통도사 성보박물관은 규모도 크고 문화재도 많아 꼭 방문하고 싶었다. 다행히 성보박물관이 열려 있어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 통도사 석가여래 괘불탱 등 수많은 문화재를 감상할 수 있었다. 특이한 건 괘불탱을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괘불탱이 워낙 커서 전시할 공간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전부라 생각했는데, 사찰의 성보박물관에서 괘불탱을 볼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통도사는 절 하나만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가치가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부산과 가깝다는 이유로 자연미가 별로 안 느껴질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남알프스 지역은 부산·울산과 같은 대도시와 가까움에도 계곡과 숲이 잘 보존되어 있어 통도사 또한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숲과 어우러진 절의 모습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들은 통도사 뒤편의 영축산에 올라 신불산과 간월산 봉우리를 지나 하산하는 등산 코스도 걸을 수 있다. 글을 쓰고 나니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통도사를 찾아 단풍과 억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