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문 없는 문’ 뚫는다. / 백담사 무금 선원 결제현장
음력 10월15일 기축년 동안거 결제 맞아 수좌스님들이
인제 백담사 무금선원 방부를 들이기 위해 산문에 들어서고 있다.
생사의 굴레를 벗어나고픈 수행자들 앞에 올 겨울에도 산문이 활짝 열렸다.
불기 2553(2009)년 동안거가 음력 10월15일인 지난 1일 시작됐다.
조계종 전국 100여개 선원에서 2300여 명의 스님들이 방부를 들이고 정진에 돌입했다.
동안거 결제를 하루 앞둔 11월30일 인제 백담사 무금선원을 찾았다.
대부분 승랍 30년 이상의 구참(舊參) 스님들이 수행하는 무문관(無門關)과
사미(예비승)들을 위한 기본선원을 동시에 운영한다.
무문관엔 11명, 기본선원엔 35명이 화두를 든다.
설악산을 감싼 한기는 제법 매서웠다.
만물이 잰걸음으로 태초의 가난 속으로 사그라지는 계절,
인간 역시 그들의 적멸에 동참하는 셈이다.
‘무금’은 무고무금(無古無今)의 줄임말이다.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다,
곧 시간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존재의 자유를 옭아매는
최초의 경계, 시간. 시간이 생사(生死)를 부르고
생사는 살아있음의 고역과 죽어야 함의 두려움을 낳는다.
나고 죽음의 벌판에는 온갖 잡것들이 좌판을 깔고 한바탕 난전을 벌인다.
속고 속이는 세속의 향연. 결국 무금은 번뇌의 씨앗을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니,
이름만 들어도 위로가 되는 선원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 곳 역시 녹록치 않은 삶의 공간이다.
오히려 몇 배는 더 혹독하다. 백담사의 무금은 겨울보다 냉정하다.
무문(無門), 문이 없다 …. 물론 문은 있지만 으레 접하는 문이 아니다.
한 사람이 겨우 기거할 만한 선방의 문은, 밖에서 잠가진다.
안거 3개월 동안 꼼짝없이 갇히는 것이다.
문을 드나들 수 있는 건 문 아래 공양구(供養口)로 공급되는 끼니뿐이다.
그것도 하루 한 번(일종식). 하루의 절반 이상을 가부좌로 보내며 화두와 씨름한다.
한 스님은 “나는 9호실 감방에 갇힌 죄수”라며 웃었다.
묵언은 기본이고 책 한 줄 읽는 일조차 금지되는 것을 감안하면,
일견 수감자보다 신세가 서글프다. 여하튼 수행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생명의 본능을 거부한 채 이번 한 철 문 없는 문을 뚫어야 한다.
극도의 고독과 기갈을 자청하는 이유를 물었다.
“육체와 욕망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가치를 얻기 위해서.” 선원장 신룡스님의 대답이다.
스님은 “맨몸으로 화두와 맞부딪쳐 끝내 타파해 깨달음을 이룬 뒤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한 것이 무문관의 의미”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한주 지수스님은 육체의 질곡에서 해방되는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24시간 철저하게 외로움과 대면하다 보면 나의 내면이 만져질 듯 선연하게 드러난다”며
“외부의 현상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느낄 수 있고
뜻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초인적 체험을 전했다.
‘한 조각 눈송이 화로에 들어가듯 맨몸으로 칼날과 노니는 듯
오직 살 길만을 찾을 뿐 썩은 물 속에 잠기게는 하지 말라
(片雪入紅爐 赤身遊白刃 只尋活路上 莫敎死水浸).’
<참선경어(參禪警語)>를 저술한 무이(無異) 선사의 법어다.
선사가 강조한 목숨을 건 결기가 여기에 있었다.
2009. 12. 01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