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자아 인식과 서정적 탐구의 시적 진실
--한귀남 시집 『세상이 푸른 산에 길을 묻고』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1. 자아의 인식과 침잠에서 성찰로
현대시의 창작이나 감상에서 먼저 상기하는 것은 우선 그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살피기 전에 작품의 상황설정이 어디냐, 혹은 무엇이냐를 이해해야 작품에의 접근성이 용이해 질 것이다. 시인들은 대체로 이러한 시법(詩法)을 적용하는데 이는 우리 시 작법에서 말하는 보여주기(showing)에 해당한다. 보여준다는 것은 작품의 도입에서 어떤 환경이냐 또는 어떤 현상이냐를 살피는 것으로써 우선 시적인 상황설정이 어디냐, 무엇이냐를 제시함으로써 시 창작이나 감상에 쉽게 접근하면서 그 작품의 진실을 폭넓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그 작품의 전개에서 무엇을 우리들에게 들려주느냐(telling)의 문제이다. 어떤 표현으로 무엇을 우리들에게 전달하려는지를 빠르게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그 시인이 전해주려는 메시지를 이해하게 되고 그 시인의 인간적인 진실을 공감하거나 아니면 배격하는 결론이 도출될 것이다.
여기 한귀남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세상이 푸른 산에 길을 묻고』를 일별하면서 먼저 이러한 잡설을 늘어놓는 것은 그가 실질적으로 침잠(沈潛)하는 인생론이 주변의 실재상황에서 획득한 이미지들이 그의 인간적인 진실로 발현되고 있어서 더욱 우리들의 이목(耳目)을 집중시키고 있어서 그가 작품을 구상하고 표현하는 의식의 흐름이 범상(凡常)치 않다는 그의 지적인 범주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귀남 시인은 이미 <시인의 말>에서 “꿈이었다/ 그 꿈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온/ 세월이 30여년”이라는 고뇌에 찬 언어로 이 시집을 출간하는 감회를 생애의 큰 기쁨으로 상기하면서 그의 생애의 소회(素懷)를 조망하면서 성찰하는 새로운 자아의 인식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도 힘겨워
온몸 신열에 앓을 때
푸른 산에 올라 길을 묻네
바탕은 다 풀잎 같은데
간간이 뇌성 번개치며
숨을 곳 찾아도
비 그치면 무지개 뜨고
맑은 샘 흐르는 계곡들
그 흐르는 계곡으로
하늘도 흐르고 있었네
-- 「세상이 푸른 산에 길을 묻고」 전문
이 작품은 이 시집의 표제(標題) 작품으로써 이 험난한 세상에 대한 회상과 회포(懷抱)를 통해서 인내와 극복 그리고 자성(自省)의 상황에서 탐색하는 자신의 진실이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삶이 괴롭고 힘겨울 때 그는 “푸른 산에 올라 길을” 물어서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간간이 뇌성 번개치”는 갈등의 세상에서 “숨을 곳 찾아도” 다시 맑은 날이 돌아오면 무지개도 뜨고 맑은 샘도 흐르고 하늘도 예대로 둥실 떠 있다는 현실적인 갈등과 고난이 닥칠 때마다 그는 푸른 산에 올라 위태롭고 험난한 세상의 형태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내면에 잠재한 언어는 작품 「비가 되어 내릴지라도」 중에서 “이 꾸덕진 세월 다 벗겨져/ 내 가는 길 어디쯤/ 비 되어 내릴지라도// 아직은 멈출 수 없어라/ 온몸 헤어지는 아픔에”라는 어조와 같이 “내 안”에서는 아직도 멈출 수 없는 절규하면서 일렁이는 소리가 있음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살이가 싫어
이천 장평리 후미진 산자락
숨쉴 내 토방 하나 마련했네
성성한 소나무 대여섯 그루
햇살 가득한 속으로
피어오르며 꼬물거리는
흙의 간지러움들
장평리 들길에 서며
나비 잠자리 풀벌레떼
그리고 민들레 질경이
이웃들 인심까지
아무것도 부럽지 않을
아장아장 오는 내일
-- 「나의 토방」 전문
한귀남 시인은 이제 서울살이를 끝내고 “이천 장평리 후미진 산자락”에 그 혼자만이 숨쉬고 사색하면서 작품도 창작할 수 있는 여유로운 “나의 토방”을 마려하게 된다. 여기에는 성성한 소나무와 가득한 햇살 그리고 흙의 꼬물거리는 간지러움들과 함께 이제는 자연 풍광과 동고동락하면서 유유자적의 안온한 여유로움을 만끽(滿喫)하고자 귀촌(歸村)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장평리 들길에서 “나비 잠자리 풀벌레떼/ 그리고 민들레 질경이/ 이웃들 인심까지” 아무 것도 부러움 없는 자연 서정에 올입해 있어서 공감을 유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새 한 마리”에 비유해서 “저마다 어렵사리/ 칠부능선에 닿고 보면/ 덤불 속에서 출구를 잃은/ 새 한 마리/ 따슨 곳 다 사라진 산마루에/ 광풍과 뇌우 속에 세정을/ 거듭하는 고사목처럼/ 무엇이 되려/ 떠나온 그 길들/ 다시금 떠올리는 / 무모한 집착”이라는 그의 순수한 이미지와 같이 모두가 부질없다는 성찰의 칠부능선에서 감내(堪耐)해야 하는 그의 진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2. 시의 세계를 꿈꾸며 언어의 조탁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작품 창작에서 언어를 얼만큼 조리있게 구사(驅使)하느냐 하는 시인들의 고뇌가 따른다. 어떤 선배가 말한 바와 같이 국어사전을 달달 외워버리면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언어훈련을 겸한 언어의 조탁(彫琢)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한귀남 시인은 이 시집 전체 작품에서 시어(詩語)의 선택과 배치에 그의 지적인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작품의 전개나 주제의 정립에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특히 작품을 구성하는 상황이나 내용에서 우리들이 잊고 살았던 구어(口語)나 아름다운 우리말과 각 지역 사투리 등을 찾아서 절묘하게 접맥(接脈)시켜서 작품의 질적인 향상에 기여하는 그의 노고를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의 산에 들며
분별없이 취닿던
시혼(詩魂)의 한 그루와
독대하기까지
여귀처럼 맴돌며
떠나지 않는 시어들
지순한 동고동락과
무수한 방황 그 가뭄 끝에
파르르 손 내미는
잎새의 기척들
-- 「시의 산에 들며」 전문
그는 시에 대한 집념이 가득 넘쳐서 시의 산에 입문하면서 시혼의 향기와 정취에 “지순한 동고동락”으로 그의 정신세계는 일단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기까지는 그가 결론으로 제시한 “무수한 방황 그 가뭄 끝에/ 파르르 손 내미는/ 잎새의 기척들”과 독대하면서도 대화가 가능한 별천지의 상황을 접할 수 있음에 그는 감명(感銘) 깊게 시를 흡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여귀처럼 맴돌며/ 떠나지 않는 시어들”에게 더욱 시적인 묘미(妙味)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취닿던”이나 “여귀” 등의 시어들은 앞에서 언급한 그의 언어 조탁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그가 구사하는 시어는 대체로 첩어(疊語)의 활용도 많아서 작품의 이해나 호감(好感)을 상승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살펴보면 설멍설멍, 당글당글, 봉긋봉긋, 찰망찰망, 우어우어, 문실문실, 어리어리, 싸락싸락, 벙거벙거, 사부작사부작 등이 있으며 준첩어(準疊語)로는 우시부시, 지나새나, 어금지금 등 이루어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풋기 가득 문 휘파람새처럼
가진 것 없어도 풍요로울
시인을 꿈꾸니
사그락거리는 걸음으로
양철지붕 위 비 오시는 기척들
더 다가오라며 손짓하던
비 내리는 그 소리
만산을 깨운 입하(立夏)가 찾아오니
시를 잊고 호미와 벗이 되어
세속을 버린 스님처럼
서 있는 꽃대궁들
마당은 화엄의 세상으로 번지고
--「시인을 꿈꾸니」 중에서
한편 그의 시에 대한 열정은 평생을 두고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시인을 꿈꾼 것은 “가진 것 없어도 풍요로”움이거나 양철지붕 위 비오는 소리와 “세속을 버린 스님처럼/ 서 있는 꽃대궁들/ 마당은 화엄의 세상”을 염원하는 범상치 않은 그의 심중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도 시어의 조탁은 끝나지 않는다. “저벅대며 산등성이”를 입동 추위가 몰려오는 산골살이나 “조쌀해진 그믐달처럼/ 장다리꽃 건네며 / 질척대기도 괜스레 비쎄다 거슬렸던 봄날 (「복사꽃 필 무렵」 중에서)”과 “너절한 책갈피마다/ 시 한 줄도 와락 안겨 와/ 잠시 시를 옆에 두고/ 눈을 감았다(「버려진 스냅 사진첩」 중에서)”는 등의 어조에서 그가 얼마나 시어에 대한 집착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어 발굴은 어살치기, 창창이 . 작달비. 풋되다. 앙알대더만, 노름마치, 오소소, 자깔스럽다, 발편잠, 선버들, 농투쟁이, 지싯거림, 바투선, 어둔패기, 홍간, 조쌀해진, 비쎄다, 너설이, 애살조차, 짭조름한, 바글대며, 사그락그리다 등등 알 듯, 모를 듯한 단어들이 총망라(總網羅)하여 그의 작품은 더욱 풍성하게 독자들의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3. 불망의 그리움과 현실적 어려움 극복
한귀남 시인에게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불망(不忘)의 응어리가 지금도 꿈틀거리고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 나라의 대 혼란인 역사의 변혁을 체험하게 된다. 그의 고향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아오면서 대대로 일가의 행복을 추구했던 함경남도 흥원군 전진면 남흥리 46번지가 고향이다.
그는 조부 한기섭 씨와 조모 김증녀 여사가 경영하던 황태덕장과 창고가 재벌에 준하여 김일성 집단에게 부르조아로의 수난을 받으면서 아버지 한승한씨는 먼저 서울에 나와 있었으나 6.25가 발발하고 그후 9.28수복당시 서북청년단원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그동안 어지러웠던 마을의 정비단장으로 선도하였으나 다시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하여 12월 29일에야 서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를 목도(目睹)하면서 보낸 유년시절을 오매불망으로 뼈저린 응어리가 그의 현실적인 생활철학이나 사유의 법주가 확대되어 문학의 길에서도 시와 소설, 수필까지도 생생한 인생체험을 바탕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그 아버지의
고향은
지금도 돌아갈 수 없는
동토의 강줄기
광활한 바다에서 여정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들의 꿈보다 못한
50년 타향살이에
타향 땅 모현리
한 자락 베고 누우셨네
“얘들아 고향길 열리면
함경남도 홍원군 전진면 남흥리 46번지가
우리 집이다”
부두에서 주욱 올라가면
동네에서 제일 큰 우리 집
그 옆으로 우물 하나 있고
큰 길 작은 길
게딱지 같은 집들과
옹기종기 그리다가
“어째 그림이 이리 아이 됨메”
아버지 고향은
백지 위에 멈춰 서고
고향 가리라던 부모님과
아내의 소원도
그 여정 다 놓아두고
모현리 산기슭
반듯한 씨앗 되려고
모두 동면에 드셨다네
-- 「여정 따라」 전문
여기에서 그는 불행하게도 다시 여망의 한(恨)으로 남아 있는 사실을 회상하고 있어서 우리 모두가 측은(惻隱)의 심중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심정을 “광활한 바다에서 여정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연어들의 꿈보다 못한/ 50년 타향살이에/ 타향 땅 모현리/ 한 자락 베고 누우셨네”라는 어조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한 아버지를 극진하게 위무(慰撫)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고향 가리라던 부모님과/ 아내의 소원도/ 그 여정 다 놓아두고/ 모현리 산기슭 / 반듯한 씨앗 되려고/ 모두 동면에 드셨다네”라는 결론으로 그의 여한(餘恨)은 영원히 지울 수가 없는 오매불망(寤寐不忘)으로 남아서 그의 삶과 인생의 모티브가 되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거나 가치관 형성에 다양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부모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창출하고 있으나 그가 부모가 된 지금 또 하나의 시련이 그에게 엄습(掩襲)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작품 「무시무종」에서 우리는 감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이 앓고 있는 병상 곁에는
푸푸대며 뭍으로 오르려
해마의 끝나지 않을
들숨 날숨만 있다
그해 유월
장맛비 속에서 풀더미로
스산하게 변한 엄마의 채마밭이며
그 괴기스러운 집 안팎을 종횡무진하느라
“어쩌다 인생의 회로를 잃었니?”
기생 덩쿨 같은 링거에 의존한
중년의 자식을 놓지 못하는 노모
엄마는 희망이란 이름으로
덤불 속에 길을 내야 할
무시무종의 세월에도
더 아픈 어미가 있다
이와같이 안타까운 어조에서 우리는 부모들이 나에게 베푸는 정감적인 은혜는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애정의 산물(産物)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화훼류(花卉類)에 심취한 서정적 자아
한귀남 시인에게서 심도(深度)있게 탐구할 시법은 서정적인 자아(自我)이다. 그는 이러한 서정성을 그의 주변에서 항상 대할 수 있는 꽃의 의미에 심취해서 자아를 투영하는 서정시인의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보편적인 서정의 범주에서 탐미(眈美)하는 그의 진솔하고 미감(未感)이 넘치는 정신세계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선 화훼류를 대하면서 한 송이의 꽃이 분사(噴射)하는 이미지나 거기에 동행하는 의미가 어떤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는지를 주시(注視)하는 것이다.
그의 시야에 착목(着目)된 꽃은 향기의 유무(有無)와 무관하게 모두 미적인 감응으로 응시하면서 어떤 의미의 대화를 정감적으로 나누면서 자연친화의 교류를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꽃의 매력의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라고 했는데 그 침묵 속에 침잠한 깊은 사유(思惟)의 속내를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만개한 나리꽃
낭창대는 허리춤에
잠자리 한 쌍 밀월여행 중
달그락대며 바삐 가는 봄날
제비나비 맴도는 창포꽃 섶
완연해진 그리움 지싯거림도
우시부시 흐르는 그 세월
슬며시 사위어 가노니
우리는 풀잎 같은 사랑초
-- 「우리는 풀잎 같은 사랑초」 전문
우선 한귀남 시인의 뇌리(腦裏)에는 꽃이라는 개념에는 계절에 따른 세월이라는 시간성이 동행하면서 변화하는 사유의 세계를 확대하는 시법을 응용하고 있어서 만개한 꽃들에서 그가 수용하는 서정성은 비록 아름다운 침묵뿐만 아니라 그 침묵 속에 잠재한 무언의 메시지가 어떤 교시적인 인생관을 올바르게 혹은 아름답게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나리꽃의 낭창대는 허리춤에 잠자리 한 쌍이 밀월여행 중이라는 기발한 발상의 이미지는 작품 도입부분에서부터 앞에서 말한 <보여주기>의 형태가 상황설정에 감동하고 말 것이다.
그는 세월 중에서도 새싹이 돋고 꽃피우는 봄날을 서정의 중요한 시점(時點)으로 하여 만유(萬有)의 산하에 펼쳐지는 자연의 섭리로 “완연해진 그리움 지싯거림도” 감응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시부시 흐르는 그 세월/ 슬며시 사위어 가노니/ 우리는 풀잎 같은 사랑초”라는 결론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꽃에서 전개하는 세월과 그리움의 조화는 우리들의 공감을 유로(流露)하고 있는 것이다.
불면으로 야윈 밤
서걱대던 그리움 밀어내듯
목련은 입춘과
초연하게 피어나다
춘풍은 처연한 눈물샘마다
장엄하게 꽃 등불 밝히고
초연히 오는 세월 그 마중길에
환희롭게 피게 하다
-- 「목련은 초연히」 전문
여기에서도 목련이 암묵적(暗黙的)으로 내뿜는 향기는 과히 명언(名言)에 가깝다. 그리움과 세월의 융합하는 시법의 전개도 탁월하려니와 시문장 자체가 간단명료해서 더욱 감미롭게 다가와서 한귀남 시인의 언어 조탁에 탁월한 지적 노력이 엿보이는 수작(秀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지천(至賤)으로 산재(散在)한 꽃들에게서 그는 모든 생명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조망(眺望)하고 있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엉겅퀴 : 육자배기로 목을 비비며/ 뜸부기의 한 차례 꼬드김 속에/ 가끔은 벙거벙거하다/ 보내는 너 의 앙가슴
-산동백 : 어제는 연사흘/ 내린 눈 속에서// 산동백 시나브로/ 저 혼자 피고 있었네
-금낭화 : 춘색에 흥얼대며/ 고삐 풀린 사내들// 물수제비 일으키듯/ 방죽길 내달리더만// 금낭화 장대 비 속에서/ 한뎃잠 자야겠네
-송화 : 오랜 세월 산정을 지킨/ 늙수그레한 소나무들/ 청정한 가다름에/ 송화를 피워냈다
-소금꽃 : 낫질 한 획마다/ 등줄기로 피고 있는 / 소금꽃들// 농부의 땀방울은/ 천형의 생존 앞에 우뚝 선 / 푯대이어라
-이끼꽃 : 이 세상 만물들은/ 제 한 몸 내어가며/ 바람 속에서 / 발편잠으로 번져가는/ 이끼꽃일레라
-목련꽃 : 엄동 설한풍도 견디며/ 끝없이 하늘 닿을 / 소망 하나/ 장대한 침묵들/ 다 놓아주던 날/ 눈 부신 환희로/ 충만해진 목련꽃/ 그 눈부신 설연들
-꽃창포 : 명경같이 맑은 도시를 등지고/ 꽃창포 그늘 아래 터를 잡는 봄/ 넋이 바람에도 제비나비/ 골 짜기를 나서고
이제 한귀남 시집 『세상이 푸른 산에 길을 묻고』의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우선 노시인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면서 그의 인생적인 삶과 문학적인 지향적 행보에 무한한 정감을 표한다.
문학이란 보편적인 삶을 더욱 승화하여 정서의 함양으로 보다 나은 인생관을 정립하는 기능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인간성 회복의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이 영국의 유명한 시인 T.S. 엘리엇의 말대로 시는 “무엇이 사실이다”하고 단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우리들로 하여금 좀더 리얼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역할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는 연유가 바로 시와 인간의 상호 융화와 통섭(通燮)의 의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한귀남 시인은 작품 「천지불인」 전문에서 “어둠 속에/ 문실문실 커져 오는/ 개구리떼 울음소리/ 강호를 떠돌다/ 조쌀해진 초승달/ 천지불인의 / 산자락 베고 누워/ 뜨거운 울림에 젖어가네”라는 어조와 같이 어느 산사(山寺)에서 부처님에게 몰입하는 경지가 바로 그가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의 단면이라고 가늠할 수 있어서 “어둔패기의 삶(「부처는 산에 들고」 중에서)”에 대한 각성(覺醒)과 성찰(省察)의 의식이 명징(明澄)하게 현현되고 있음을 이해하게 한다.
노시인의 감성이 영원히 충만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