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인생 수첩
양응환
가을을 맞이하여 조금 한가한 어느 날 서고를 정리하다 문득 한권의 책을 발견하였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책장을 펼쳐가며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그 책은 바로 ‘장군의 인생 수첩’인데 나의 충사 동기생인 안충준 장군의 회고록이다. 내가 평생 동안 모아온 서적 중에 가장 소중하게 아끼며 고이 간직하고 있는 책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동창이 집필한 책이기도 하고 소장하고 있는 서적 중에 군인관련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여기에는 그의 강철 같은 군인 정신과 뜨거운 애국 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그의 모습은 짧지 않은 80여 평생 동안 그 어느 군인에게서도 보지 못했고, 그 어떤 사람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감동을 주고 있는 책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오는 동안 인생의 고비마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게 마련인데 이 책은 인내와 노력으로 그 난관을 극복해가는 용기와 지혜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은 나의 삶에 있어 이정표가 되었고,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귀한 책이 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많은 것을 배우며 모델로 삼고 있다..
안장군은 시골 초등하교 교사로 2년 동안 근무하는 동안, 박정희 대통령의 전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군인의 길을 선택했노라고 훗날 술회하고 있다. 그 결심은 즉각 행동으로 옮겨졌고 사관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 과감한 도전의식이 실로 놀라웠고, 고난과 영광의 군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 되었다. 초등학생을 가르치며 그것도 시골 방 호롱불 밑에서 오로지 독학으로 공부해서 사관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일이라고 모두들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로 피눈물 나는 끈질긴 그의 노력은 마침내 2년 만에 육군 사관학교 입학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초인적인 그의 인내와 결기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그의 원대한 꿈은 마침내 그의 앞길에 찬란한 영광의 서막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중단 없는 그의 줄기찬 노력은 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었고, 승 승 장구 하며 한국군 별들의 역사에 있어 가장 빛나는 장군으로 기록되고 있다.
사범학교 졸업생이 남자가 50명으로 한반이었고 사관학교에 진학한 사람이 2명이었는데 두 명 다 장군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중 졸업과 동시에 사관학교를 진학한 S보다 2년 후에 진학한 안충준이 먼저 장군이 되었던 것이다. 이화 같이 그의 행적은 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실적을 올리고 있었는데 이는 항상 각고의 노력과 끊임없는 그의 창의적 발상이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영관급 군 지휘관 시절 당번병이 부대 병사용으로 지급된 세탁비누를 몇장 그의 부인에게 세탁하는데 사용하라고 전해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그 잘못을 질타하고 그의 아내를 무릎 꿇리고 반성문을 쓰게 한 일이 있었다. 이 일화는 우리 동창들은 지금도 이 안충준을 이야기 할 때 종종 화제로 떠올리는 일화이기도 하다. 이는 그가 얼마나 순수하고 청렴하고 군과 나라에 충성하는 투철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진면목이었다..
오늘날 국가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와 부정이 언론에 오리내릴 때는 나는 늘 이 안충준 장군의 청렴하고 결백한 그의 공인 정신을 떠올리곤 한다. 미국 홈볼트 주립대학 유학시절에는 영어를 익히기 위해 식탁 앞에도 거실에도 심지어 화장실에도 영어 단어와 문장을 붙여놓고 읽고 외우며 공부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그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피나는 노력은 마침내 이 대학 설립 이래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올 A학점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던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과도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육군 장성중에 가장 영어를 잘하는 장군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영문으로 여러 권의 책을 발행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그 후에 소장 시절에는 마침내 인도 ·파키스탄 분쟁지역 UN군 사령관으로 발탁되었다. 한국군 장성으로는 최초의 UN군 사령관이 되었으며 그 이후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UN군 사령관을 역임한 장군은 없다고 한다. 이는 전무후무한 기록이며 이 직급은 UN의 사무차장급으로 반기문 총장보다 10년 전에 근무한 사실이 매우 인상적인데 반기문, 안충준은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사단장 시절에는 대 홍수가 나서 산 밑 군막사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때 안 장군은 헬리콥터 기장에게 “헬리콥터를 띄워라”라고 명령을 했다. 기장은“안됩니다. 죽습니다.”라고 말 할 때 안장군은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즉각 헤리콥터를 띄워라”라고 강력하게 명령했다고 한다. 악천후의 기상을 무릅쓰고 헬리터를 타고 상공을 나르면서 방송으로 대피할 것을 명령하여 이 사단에서는 산사태로 2~3명의 사망자가 나왔을 뿐인데 바로 옆 타 사단에서는20~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여 언론에 대서특필 한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이 목숨을 건 그의 초인적 의지와 용감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을 낳았으며 부하를 사랑하는 그의 희생정신은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결혼식 주례를 할 때는 먼저 국민의례를 하도록 하는데 그때는 반드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난 다음에 주례를 진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모습 또한 누구에게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주례 방식인데 이는 그가 애국 애족하는 국가관이 얼마나 투철하며 정의로운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일일이 열거 하면 미담과 에피소드들이 수없이 많이 있으나 한정된 지면이라 대표적인 몇몇 사례만을 소개하게 된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는 평생 동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그의 참 모습을 보며 살아왔고, 그를 본받아 많은 것을 배워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의 십 분의 일도 못 미치기는 했지만…,
우리는 삶의 영광과 질곡을 거쳐 벌써 80의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어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이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
안충준 장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가시게! 그래야 후손들이 그대의 그 정신 그 충정을 본받지 않겠는가?
첫댓글 나는 평생 동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그의 참 모습을 보며 살아왔고, 그를 본받아 많은 것을 배워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의 십 분의 일도 못 미치기는 했지만…,
우리는 삶의 영광과 질곡을 거쳐 벌써 80의 인생 황혼기에 접어들어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이 우리 모두를 우울하게 하고 있다.
안충준 장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가시게! 그래야 후손들이 그대의 그 정신 그 충정을 본받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