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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 복음을 담는 빈 그릇
기독교윤리학자 크리스틴 폴(Christine D. Pohl)은 타인을 위해 빈 공간을 남겨 두는 것을 환대라고 정의했다.[1] 이 정의는 그녀의 독창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초대 교회에서부터 이어져 온 환대의 일반적인 특징을 잘 담고 있는 표현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환대의 개념은 교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사랑채’라는 공간이 있어 손님을 위한 방을 구별해 왔다. 사랑채는 대문 옆에 위치하여 손님이 드나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한 독채를 말한다.
신약성경에서도 사랑채와 유사한 공간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이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그날 밤, 누가복음 2:7에서 언급된 카탈리마(κατάλυμα, katalyma)가 바로 그 공간이다. 사실 카탈리마는 오랫동안 ‘여관’으로 번역되어서 그 원래 의미와 달리 이해되었던 대표적인 오용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거처를 구하는 모습을 표현한 많은 그림이나 연극 속에는 요셉 가족을 박대하는 야박한 숙박업소 주인이 등장하곤 했다. 그러나 카탈리마는 실제로는 중산층 이상의 집의 한 귀퉁이에 마련된 손님을 위한 작은 방(게스트 룸)을 의미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돈을 주고 묵을 여관이나 호텔 방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사랑방을 찾았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랑방을 둘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집에는 이미 다른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요셉과 마리아를 환대할 수 있는 빈 공간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이름 없는 가난한 가족이 비좁은 자기 집으로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 그리고 곧 태어날 태아였던 예수님을 환대했던 것이다. 그 집은 너무 가난해서 사랑방을 둘 여력조차 없었고, 가축을 따로 구별해서 기를 축사도 없어 주방 옆에서 가축을 길렀던 것으로 보인다. 아기 예수님은 바로 이곳, 이름 없는 가난한 가족이 가족 중 누군가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마련해준 환대의 빈 공간에서 태어나셨던 것이다.
성경은 환대를 남는 방이 있는 경우에만 할 수 있는 선택과 기호에 따른 자유로운 영역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는다. 가득 찬 곳에서도 반드시 비워둬야 하며, 가난한 이의 빈 공간이나 바쁜 이의 짧은 여가 속에서도 베풀어야 하는, 당위와 규범의 윤리로 가르치고 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실체인 예수님이 이러한 환대 할 수 없어 보이는 상황 속에 있었던, 가난한 사람이 베푼 환대의 빈 공간 안으로 처음 오셨기 때문이다. 환대야말로 복음을 제대로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이다. 크리스틴 폴은 기독교 환대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그 소감을 다음과 같은 글로 남겼다.
환대의 신비는 아주 평범한 활동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면서도 저는 종종 거룩한 땅을 걷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 안에서 우리가 환대를 위한 공간을 마련할수록 생명과 희망, 은혜를 위한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되었습니다.[2]
팀 켈러의 세속 도시를 향한 환대
환대라는 주제를 떠올리면, 흔히 낯선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해 주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크리스틴 폴의 말처럼 환대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와 관계없어 보이는 낯선 사람들에게 생명과 희망, 은혜의 더 많은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경험했듯, 그것은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세상에 소개하는 것 이상 더 큰 환대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년 동안 복음을 담는 빈 그릇인 환대의 원래 목적에 충실했던 한 인물을 떠올리라면, 작년 이맘때쯤 돌아가신 팀 켈러 목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분을 떠올리실 분도 계시겠지만, 팀 켈러를 통해 예수님을 만난 수많은 사람이 그가 30년 넘게 사역한 뉴욕과 세계 여러 나라와 도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켈러는 뉴욕의 빈민이나 노숙자, 9/11 테러 이후 심리적으로 깊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던 사람들을 위한 사역도 했지만, 그의 주된 사역은 세속적이며 회의적인 뉴욕의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혹시 이러한 사역 대상의 특수함 때문에 그의 복음 전도 방식 또한 특수한 방식일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이는 큰 오해다. 켈러의 복음 전도는 성경이 가르쳐주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던 그 보편적인 방식, ‘환대’였기 때문이다. 더 많은 생명과 희망, 은혜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환대의 원리는 켈러의 복음 전도와 기독교 변증의 가장 확실한 목적이자 이유였다.
팀 켈러의 환대가 뉴욕이 아닌 한국에서도 필요한 이유
어떤 분은 켈러가 뉴욕의 지성인들에게 베푼 지성적 환대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질문하실지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먹고 자는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이내 영적이고 도덕적인 영역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들은 물리적인 굶주림으로 죽을 수도 있지만, 영혼의 양식이 결핍되어 죽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와 교회는 먹거리와 주거의 안정을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며 일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산업화를 이룩했지만, 1990년대 초반 산업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후부터 한국의 자살률은 급격하게 치솟아, 2008년 이후로는 OECD 국가 중에서도 유독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2021년에는 하루 평균 36.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3]
또한, 건국대학교 이관후 교수는 한국의 높은 자살률이 초저출산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학자가 한국의 초저출산의 원인이 극도의 경쟁 문화에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4] 이것은 1990년대 이전의 생존을 위한 경쟁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 사회의 극도의 경쟁 문화는 산업화 동안 우리가 소홀히 해 왔던, 정의, 도덕, 진리의 빈 공간에 타락한 자본주의와 소비주의가 들어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산업화의 성공으로 인해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경험한 자본과 소비 문화는 현대의 한국인들로 하여금 조금의 결핍에도 견딜 수 없는 심각한 허기짐을 느끼게 하고 있다. 이를 채우기 위해, 오늘날 한국의 모든 세대는 심각한 경쟁과 극도의 이기적인 개인주의를 가장 큰 미덕과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 아무도 그들에게 다음 열차를 기다려도 된다고, 여행의 참된 목적은 열차에 오르는 것만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들 모두가 진정한 목적지를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속 승객처럼 목적지 없이 질주하고 있다. 그런 대한민국의 시민들과 한국 교회의 성도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목적,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는 것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팀 켈러의 기독교 변증이 대한민국에도 필요한 핵심 이유이며, 켈러의 기독교 변증이 갈바를 모르는 현대인을 위한 진정한 환대인 이유이다.
팀 켈러와 함께하는 삶의 목적을 찾는 여정, 기독교 변증
켈러는 약 3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문화와 예술이 번성하고 금융과 IT 등 최첨단 산업이 집중된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설국열차”식의 극단적인 경쟁 문화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하였다. 세계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뉴욕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목적지 없는 여행처럼 불안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보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 목사들은 이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냉소적이고 회의적이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켈러는 이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뉴욕 맨해튼의 중심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마치 재활용 박스에 버려진 낡은 옷과 신발을 걸친 채, 거리 한복판에서 자신감 넘치게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언뜻 코미디의 한 장면 같았다. 주변에서는 이런 켈러의 시도에 바보짓이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하나님이며, 구원자라는 주장을 하지 말고, 기독교를 일종의 인문학화하여 거부감 없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라고 충고했다. 또한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면서 기독교는 모든 종교를 수용하는 관용적인 종교라고 선전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켈러는 이 모든 충고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조롱받는 낡고 오래된 옷을 벗지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낡은 옷을 입고 우스꽝스럽게 걷는 켈러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자신의 옷장 속 깊이 숨겨 둔 옛 옷을 꺼내 입고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팀 켈러가 지난 30년 동안 뉴욕에서 보여준 복음 변증의 역사이고 기적이었다.
켈러의 복음 전도는 포스트모던 세상이 재활용 박스와 옷장 깊숙이 처박아 둔 삶의 목적, 윤리, 도덕, 진리와 같은 낡은 가치들을 되살리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는 뉴욕 맨해튼에 세운 리디머 교회를 통해 이러한 사역을 20년 넘게 해왔으며, 이런 그의 노력은 2008년에 출판된 The Reason for God(살아있는 신)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성과로 이어졌다. 사실, 기독교 변증의 역사를 아는 이들에게 The Reason for God의 내용은 그다지 새롭지 않다. 그 이유는, 이것이 20세기의 기독교 변증가 프란시스 쉐퍼, C. S. 루이스, G. K. 체스터튼 등이 쓴 책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켈러의 책 속에는 17세기에 살았던 파스칼의 기독교 변증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3세기 아우구스티누스의 믿음에 기반한 변증은 켈러의 변증과 저작의 뼈대에 해당한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켈러의 기독교 변증은 정말 낡을 대로 낡은, 그야말로 먼지 풀풀 나는 오래된 과거였다. 그런데 켈러는 이것을 21세기 현대인을 위한 오래된 미래로 바꾸는 기적을 이루었다. 그 기적의 비결을 한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기독교 진리를 변증하는 목사의 소명
첫째는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켈러의 목사로서의 소명 의식이다. 그는 The Reason for God의 성공 후에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켈러의 전기 Timothy Keller: His Spiritual and Intellectual Formation(하나님의 사람, 팀 켈러)을 쓴 콜린 핸슨에 따르면, 켈러는 그의 변증에 대한 피드백을 주의 깊게 검토한 후에, 새로운 연구를 바로 시작하였다. 당시 켈러는 이미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고, 대장암에서 갓 회복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2004년부터 버지니아 대학교 사회학자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가 결성한 도그우드 펠로십(Dogwood Fellowship)에 합류했고, 그곳에서 헌터를 통해서 세속화 이론의 대가인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 현대 덕 윤리의 대가인 철학자 알래스데이어 매킨타이어, 신 프로이트 심리학자이며 사회 비평가인 필립 리프, 종교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 등 세계적인 학자들의 작업을 접하고 읽기 시작하였다. 특별히 찰스 테일러의 역작 A Secular Age을 두 번 이상 읽었다고 한다.
이러한 열정과 연구의 결실로, 켈러는 2016년 Making Sense of God(답이 되는 기독교)을 출간하였다. 이 새로운 변증서는 그의 첫 저작과 비교할 때 방법론은 비슷하나, 윤리학과 도덕철학 부분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켈러는 그의 새로운 변증서를 통해서 삶의 목적과 윤리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거나 발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이 주장은 이전의 기독교 변증가들이 이미 시도한 고전적인 방법이었지만, 켈러는 20세기부터 21세기에 걸쳐 다양한 철학, 문학, 심리학, 과학, 비평 이론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서 그가 살고 있는 뉴욕의 청중들에게 기독교 진리를 꽉 막힌 잔소리가 아닌 매우 중요하게 귀담아 들어야 할 사실임을 성공적으로 설득하였다. 또한 그가 죽기 6개월 전에 출판된 호주 출신 철학자 크리스토퍼 왓킨(Christopher Watkin)이 쓴 세속적 사회와 문화 비평 이론에 대응해서 성경을 통해 사회를 비평하기 위한 이론서인 Biblical Critical Theory을 투병 가운데 미리 읽고, 이 책의 서문을 직접 작성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연구자로서의 모습은 켈러를 전문 학자로 오해받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켈러는 매주 설교를 하고 교회의 실무를 책임져야 하는 바쁜 현직 담임 목사였다. 그는 매주 설교를 고민하고, 성도들을 만나며, 교회의 크고 작은 일과 행정 절차를 결정해야 했다.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목사로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뉴욕 맨해튼 중심에서 삶의 목적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성도들을 위해 성경의 가르침과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매일 성경을 연구하였으며, 코로나 시기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와 함께한 시편 묵상을 여러 사람과 온라인으로 나누었다. 또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문화와 사상을 연구하는 것에도 성실하였다. 그가 죽기 1년 전에 어느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글을 보면, 그는 단 한 번도 휴가지에서 온전히 쉼을 누린 적이 없다고 고백하였다. 아름답게 펼쳐진 해변에 앉아 있을 때도, 한 손에는 휴가 후에 만날 구도자들과 성도들에게 전할 메시지와 관련된 책을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켈러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글을 남겼다. 아마도, 그를 쉴 수 없게 만든 것은, 그가 목사라는 소명을 잠시라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켈러는 목사라는 소명 의식으로 세속의 방황하는 영혼들을 끝까지 환대하였던 것이다. 그 결실이, 그의 두 권의 기독교 변증서였다.
복음을 위한 여백
둘째로 켈러는 항상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빈 공간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러한 그의 겸손과 열린 태도는 켈러의 사망 직후에 그를 추모하는 수많은 반응과 글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작년 5월 19일 켈러의 부고 소식이 전해진 것과 동시에, 미국의 가장 진보적인 신문인 뉴욕 타임스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기사를 실었다. 또한 성공회 여자 신부인 티시 해리슨 워런(Tish Harrison Warren)은 “팀 켈러는 그리스도인 리더가 어떠해야 하는지 나에게 보여 주었다"라는 제목의 컬럼을 뉴욕 타임스에 기고하였다.[5] 그 내용을 보면, 팀 켈러는 자기와 다른 신앙과 신학적 입장에 서 있는 사람에게도 친절했으며, 그들을 존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존중과 친절함이 무신론자의 논리보다 더 빛나는 논리가 되어 그의 설교를 듣고, 그를 만났던 불신자들을 복음으로 설득하고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티시 해리슨 워런은 보수적인 신학의 장로교 목사이며 여성 안수를 인정하지 않는 켈러와 대화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이러한 차이로 무시당하거나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였다. 팀 켈러의 가장 큰 매력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겸손한 인격과 환대의 태도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켈러의 매력은, 그가 사망한 후 석 달 뒤인 8월 15일에 열린 추모 예배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추모 예배의 장소는 리디머 교회가 아닌 뜻밖에도 로마가톨릭 성당인 뉴욕의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이었다. 그 이유는 그를 추모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개신교 장로교인만이 아닌 로마가톨릭, 성공회, 감리교, 자유주의자, 불신자 등 다양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켈러는 죽음을 통해서도 복음을 담는 환대의 빈 그릇의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팀 켈러를 추모하며
마지막으로, 팀 켈러 목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지 정확히 1주년이 되는 5월 19일은, 한국의 많은 교회가 스승의 주일로 정해서 기념하는 주일이다. 아마도 그날이 가까워짐에 따라, 세계 각지에서 그를 일생의 영적인 스승으로 기리는 물결이 마치 들불처럼 번져갈 것이다. 그러나 천국의 켈러는 자신의 추모 일이 위대한 스승과 신앙의 영웅을 칭송하는 날로만 기억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가 끝까지 세상과 세속 도시를 복음으로 환대하였듯,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세속 도시의 낯선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통해 생명과 희망, 은혜의 더 많은 공간을 만들어 주는 기독교 변증의 환대를 실천해 주기를 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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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팀켈러의 매력인 상대방을 존중하는 겸손한 인격과 환대의 태도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