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수님의 고향을 찾아서
2016. 4. 12 – 2016. 4. 22
1. 이스라엘
프롤로그
이스라엘 성지순례는 행운이었다. 퇴임과 맞물려 일어난 선물이었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하지만 처음 출발할 때의 마음은 그냥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가톨릭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응당 한번은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정도로...
로사는 건강에 자신이 없었다. 한 달 전부터 체력단련을 한다고 했지만 빠지는 날이 더 많았다. 출발 직전에 가서 도저히 못가겠다고 포기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컸다. 그러나 아내는 특유의 거대한 짐을 꾸려 함께 출발했다. 내과와 정형외과 그리고 이비인후과 병원을 세 군데나 들러 갖가지 약을 또 한 보따리 챙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웃사촌인 박희자 카타리나, 조숙경 요안나 자매님과 허평 시몬 형제님이 함께 떠나 마음 든든했다. 처음에는 우리 팀이 늘 함께 밥을 먹어야 하는 걸로 생각했다. 그 착각을 단호하게 깬 것이 카타리나 자매였다. ‘앞으로는 의도적으로 다른 팀들과 만나 식사하도록 합시다. 그래야 골고루 친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공자는 '세 사람이 함께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일찍이 설파했다. 이날은 카타리나 자매가 나의 스승이었다.
우리 일행은 김윤근 베드로 신부님을 필두로 총 30명이었다. 그 중 부부가 다섯 쌍이었다.
11시간 반의 비행 끝에 도착한 텔아비브는 저녁이었다. 비행기 타는 시간의 고행을 생각하면 다시는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여자가 아이 낳는 고통을 잊고 다시 아이를 가지듯 건망증은 늘 이 고통의 기억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비행기에서 삭신이 저리도록 졸다가 도착했지만 또 밤이다. 우리 시간과는 6시간의 차이다. 그런데 이곳은 서머타임을 적용한다니 실제로는 다섯 시간 차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 생각으로는 파리나 런던보다는 훨씬 더 가까운 거리인데 다이렉트 비행시간이 이처럼 많이 걸리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환희의 신비(神祕)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마리아는 예루살렘 처녀이다. 쉽게 말해 서울 처녀이다. 예루살렘에는 마리아의 부모가 살았다고 추정되는 곳에 ‘성 안나 성당’이 지어져 있다. 안나는 마리아의 어머니다. 성경에는 딱히 언급된 바 없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요아킴이라는 것도 외경에는 전해져 오고 있다.
햇볕이 따가운 한 낮에 이 성당을 찾았다. 예수의 외갓집이다. 이 성당은 아프리카 신부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할 당시에도 백의를 입은 검은 피부의 신부 두 분이 그늘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자매님들은 흑인 신부님과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성당 옆에는 예수님이 38년 된 환자를 치료했다는 기적의 배차타 연못의 발굴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이 어여쁜 서울 처녀가 당시로서는 145km나 떨어진 나자렛 마을 별 볼일 없는 목수인 요셉 총각에게 시집을 간 까닭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시 나귀를 타고 오간다 해도 하루 30km씩 걸어 닷새는 꼬박 걸어야 할 거리다. 수목이 우거진 그늘 길이 아니다.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는 붉은 광야를 걸어야 했다. 생명의 보장이 없는 험난한 사막길이다.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약혼한 처녀가 이미 나자렛 마을에 와서 살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풍속으로는 약혼하면 시댁에 가서 사는 것이 상례인지는 몰라도...
나자렛은 아랍인들의 주거지로 변해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주민은 무슬림이고 ‘주님탄생 예고 성당’ 주변의 일부 시민들만 가톨릭 신자라고 했다. 여기에 거대한 기념성당을 지은 분들은 프란치스코(작은 형제회) 수도회라고 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대부분의 기념 성당들이 프란치스코 수도회 혹은 수녀회에서 지어 운영하고 있었다. 이 수도회의 위대한 공적을 가톨릭교회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성당 건물들이 그냥 대충 어림잡아 지어진 것이 아니라 고고학자들의 발굴을 토대로 그 터전 위에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가능한 한 원래의 흔적을 보존하여 살리는 범주에서 그 위에 집을 새로 지은 형국이었다.
‘주님탄생 예고성당’에 이어 성 요셉을 기리는 ‘성가정 성당’이 나란히 있었다. 성당 입구의 그 따가운 햇볕 아래 인자한 모습의 성 요셉 동상이 빛났다. 이곳 4월의 날씨는 우리 6월의 날씨와 흡사했다. 햇볕에 나가면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덥고 그늘에 들어서면 당장 시원해지는 것은 사막기후의 특성일 터이다.
당시 유대 율법으로는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 죽이던 시대였다. 이 엄혹한 시대에 약혼한 처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도 눈 감으려했던 요셉, 또 꿈속에서 계시한 천사의 말을 믿어 예수를 자식으로 받아들여 키운 요셉이야말로 성인 중의 성인이라 할 것이다. 자매님들은 내 마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요셉 동상의 무릎이라도 만지려 안달이다. 온 세계 여성들의 사랑으로 영근 그 무릎이 반질반질하다. 예수님 탄생 당시 나자렛은 150여 호가 사는 작은 마을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견해란다.
우리는 성모마리아가 미카엘 천사로부터 성령에 의한 잉태 예고를 받은 동굴 터에 무릎 꿇어 경배했다. 이어서 신부님 주도로 그 넓은 성당에서 첫 미사를 드렸다. 이번 순례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이 바로 그 이름만 들어도 마음 설레는 성지 1번지의 역사적인 성당에서 경건한 미사를 드리고 신부님의 해박하면서도 열정적인 강론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신부님은 이스라엘 순례만 이번이 네 번째라고 하셨다. 그 풍부한 노하우를 몽땅 전수 받을 수 있었던 이번 여행은 행운 중의 행운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성지와 관련해 미리 연구해 온 성서를 현장에서 나누어 읽으며 묵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미사 중 우리를 축복하듯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 몇 마리가 성당 내부의 돔 안에서 후드득 날았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서니 축복인 듯 소나기가 한 줄기 지나간 흔적이 있다. 그 한 자락의 소나기가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성모님의 은총이 천만리 먼 길을 떠나온 어린 양들을 살핌이었다.
주님 탄생 예고성당 앞의 요셉 성인 동상
① 갈릴레아 지방 나사렛이라는 동네의 어느 작은 집에 사는 마리아는 집안일을 마치고 방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차분히 기도에 잡깁니다.
② 홀연히 밝은 빛이 방 안을 비추더니 한 천사가 마리아 앞으로 다가섭니다.
③ 천사는 마리아에게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하고 인사합니다.
④ 천사는 또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릅니다. (루카 1,28)
⑤ 그러자 마리아는 천사를 향해 “제가 남지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질문합니다. (루카 1,34)
⑥ 천사는 마리아가 동정인 채로 하느님의 모친이 될 것임을 설명합니다.
⑦ “성령이 당신에게 내려오시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당신을 감싸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분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천사가 대답합니다. (루카 1,35)
⑧ 천사는 또 “아기를 못 낳는 여자라고 서러움을 받던 엘리사벳이 아들을 잉태했는데 벌써 여섯 달 째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루가 1,36-37)
⑨ 그러자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 응답합니다. (루가 1,38)
⑩ 마리아의 동의를 받은 천사는 떠나고, 하느님의 아들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사람으로 잉태되는 순간입니다.
환희의 신비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 찾아보심을 묵상합시다.
엘리사벳은 성모 마리아의 4촌 언니다. 그녀의 남편 즈카르야는 유대민족의 제사장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세례자 요한은 예수의 6촌 형이다. 우리말 호칭으로는 재종형이다.
마리아는 임신 사실을 알고 그 먼 길을 걸어 사촌 언니를 찾아 갔다. 꿈에 나타난 천사가 알려준 내용으로 치면 임신을 못할 늙은 여자가 임심을 했으니 이 또한 직간접적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리라. 그 언니가 현재의 내 심정을 잘 알 것이라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동병상련의 정이다. 마리아는 내 마음처럼 이해해 주는 언니의 집에서 3개월을 머무르다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이 먼 길에도 요셉의 공감과 동행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아인 카렘의 마리아 방문 기념성당에서도 미사를 드렸다. 성당 정면에는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맞아 반기는 성화가 돋보였다. 정원에는 흰 장미가 곱게 피어 있고 성모님을 기리는 기도문 마니피캇이 각국의 문자로 씌어져 그 정원의 벽에 가득하게 걸려 있다. 우리나라 기도문도 궁서체로 씌어져 걸려 있었다. 제 3공화국 시절 국회의장을 지낸 이효상의 아들 신부인 이문희 대주교의 글씨체라고 했다.
성당 입구에는 청동상으로 두 자매를 조각해 놓기도 했다. 엘리사벳의 배는 6개월이라 이미 불룩하다. 이 성당에 들르기 직전에 '우리 붕붕이(조이안 엘리사벳)가 공주'라는 연락을 문자로 받았다. 이 성당에서 우리 베드로와 레지나 사이에 태어날 공주 붕붕이를 위해 특별 미사를 드렸다. 우리 붕붕이가 건강하고, 지혜롭고, 착하고, 예쁜 아기로 태어나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빌었다.
이 미사에 나는 개인기도자로 지명을 받아 다음의 기도를 드렸다.
“순례를 마무리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이번 순례의 길에 지금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함께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자렛 마을의 아름다운 성가정과 갈릴레아 호수의 너그러운 평화와 올리브산의 고통과 눈물, 골고다 언덕의 죽음과 부활을 가슴에 깊이 새겨 남은 생애 동안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기꺼이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미사를 마치고 나올 무렵에 이탈리아에서 오신 군종 신부님들이 대거 미사를 드리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본 것도 행운이었다.
이날 점심은 어린 요한을 숨겨서 폭군 헤로데의 검(劍)을 피했다는 수도원 가는 길에서 한식 도시락을 먹었다. 모처럼 먹는 제대로 된 한식이었다. 어설프지만 귀한 나무 그늘을 찾아 도시락을 펼치니 파리들이 먼저 알고 떼로 몰려 든다. 한손으로는 파리를 쫓으며 한손으로는 밥을 먹는다. 예루살렘 파리는 한국 파리보다 더 독종이다.
아인 카렘, 성모 마리아를 맞이하는 엘리사벳
① 마리아는 사촌 언니인 엘리사벳도 아기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 언니를 찾아가 보기 위해 짐을 챙깁니다.
② 갈릴레아 지방 나사렛에 사는 마리아는 유다 산골 동네에 살고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루카 1,39)
③ 즈카리아와 엘리사벳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한 마리아가 언니 엘리사벳에게 문안인사를 드립니다. (루카 1,40)
④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는 순간 엘리사벳의 태중에 있는 요한이 성모님의 태중의 아기 예수님을 반겨 기뻐서 뛰놉니다. (루카 1,41)
⑤ 엘리사벳은 성령을 충만히 받고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라고 찬미합니다. (루카 1,42-45)
⑥ 마리아도 감격하여 “내 영혼이 주님을 찬미하며...”하는 마니피캇을 읊어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루카 1,46-55)
⑦ 마리아는 석 달 동안 엘리사벳을 도와서 부엌일, 바느질, 집안 치우기 등 바쁘게 일합니다.
⑧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함께 기도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서로 태어날 아기를 위한 준비를 합니다.
⑨ 어느덧 요한의 해산날이 가까이 오고 마리아도 아기 예수님을 잉태한지 3개월이 됩니다.
⑩ 엘리사벳에게 마리아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자, 마리아는 다시 지루하고 먼 길을 걸어 나사렛 집으로 돌아옵니다.
환희의 신비 3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낳으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동예루살렘에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정말 복잡해서 과문(寡聞)한 나로서는 정연하게 설명할 길이 없다. 아무튼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땅 가운데 요르단 강 서쪽, 사해 바로 위인 예리코 지역과 베들레헴이 자리한 동예루살렘 그리고 늘 테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서안 가자지구를 그 토대로 하고 있다. 이들이 독립을 위해 자주 유혈 폭동을 일으키니 이스라엘 정부가 아예 8미터 높이의 장벽을 쌓아 팔레스타인들의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여 고립 정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역사상 예루살렘만큼이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곳이 또 어디 있던가! 결코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이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1948년 갑자기 건국된 것은 구약과 이스라엘 고대사에 명시된 자료들을 근거로 했다. 1500년 넘게 그 땅에 터를 잡고 살아오던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내몰았다. 영국이 주도하는 연합군의 협조로 나라를 세울 때부터 싸움은 예고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도 국경지역인 체크포인트 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젊은 군인들이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대여섯 명씩 짝을 지어 총을 든 채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여기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실탄도 서른 발씩 항상 장전되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가 사진을 찍든 말든 상관 않고 담소하며 자신들의 임무에 충실하다. 이스라엘 국민 중 유대인이면 남자는 3년, 여자는 2년의 국방의 의무를 가진단다.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 시민으로 살아도 병역의 의무가 없다.
나는 1972년에 우연히 서울대학 신문을 구독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게릴라는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아 11명이나 죽였다. 세계의 모든 눈이 평화의 올림픽을 피로 물들인 흉악범들을 성토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대학신문에 칼럼을 게재한 이 젊은 지성은‘검은 9월단’의 활동을 다른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쏜 안중근과 검은 구월단의 차이는 무엇인가? 둘 다 적으로부터 잃은 나라를 다시 찾으려는 동일한 몸부림이 아닌가!” 내 어린 생각은 이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저격의 대상이 ‘침략의 원흉’과 ‘평화의 사도’란 차이가 있지만...
예수님이 태어난 성당인 ‘성탄 성당’을 보기 전에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맨 처음 들었다는 양치기들을 기리는 기념성당에 들렀다. 양치기 성당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 성당이 육안으로 보이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양을 먹이며 목동들이 밤을 새며 양을 돌보던 동굴은 아직도 그을음이 가득 묻어 있었다.
‘성탄성당’은 정류소 같은 곳에 차를 세우고 상가 골목을 십여 분 걸으니 나타났다. 1500년 전 십자군 시대에 지은 성당이 그대로 남은 유일한 곳이란다. 그 시대라면 우리로는 삼국시대 중반이다. 성당이라기보다는 고성(古城) 같은 느낌이었다.
특이한 것은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성인이라면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명 ‘좁은 문 성당’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문의 문양이 세 겹으로 남아 있다. 제일 큰 문은 비잔틴 시대의 문, 그 보다 작은 문은 십자군 시대의 문, 지금의 문은 오스만 터키시대의 문이란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진실은 거룩한 예수님의 성탄지를 나귀를 타고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로 문을 줄였다고 한다.
성당의 지하로 내려갔다. 예수님이 탄생한 장소는 은으로 별 문양을 만들어 붙여 놓고 가운데 구멍을 뚫어놓았다. 이른바‘베들레헴의 별’이다. 아기예수의 탄생 구유가 놓였던 자리란다. 이 부분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관리한다고 했다. 원래의 구유는 지금 이탈리아의 산타마리아 성당으로 옮겨져 갔다고 했다. 지하 동굴의 구유를 중심으로 지상의 성당이 둘로 나뉘어 왼쪽은 아르메니아 정교회, 오른 쪽은 그리스정교회 차지하고 있다.
마침 아르메니아 정교회 신부님들이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머리에는 모두 고깔을 쓰고 있었는데 이는 노아가 홍수를 이기고 처음 상륙한 산을 상징한단다. 가톨릭은 그 옆에 따로 성전을 지어 카타리나(영어식으로는 캐서린 성당) 성당이라 이름 지었다. 이 카타리나 성전에서 매년 성탄미사가 열리고 이 장면이 전 세계로 중계된다고 했다.
우리 순필이 본명이 카타리나이다. 천사와 같았던 우리 누이 순필이는 마흔 하나에 하느님 곁으로 갔다. 나는 우리 순필이가 하느님 곁에서 평화와 안식을 누리며 영생하길 빌었다. 함께 간 박희자 카타리나 자매님을 위해 따로 사진을 찍었다. 일행 중에 또 한분의 카타리나 자매님이 계신다고 했다.
지하 동굴에는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라틴어로 완벽하게 번역한 성 예로니모 성인과 그를 도와 평생을 바친 비올라 성녀를 기리는 동굴 성전도 마련되어 있었다. 결혼으로 맺어진 인연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힘을 모았기에 그 위대한 성업(聖業)을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어 도착한 곳은 아기 예수님의 수유성당인 이른바 우유성당이다. 성모님이 이집트로 피신하기 전 예수님께 젖을 먹이는데 그 양이 모자라 걱정했단다. 그 즉시 동굴이 모두 젖빛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성당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 성당에는 그 신비의 우윳빛 돌가루를 봉지에 담아 파는 신부님이 계시다. 한 봉지에 1달러씩 하는 이 돌가루를 먹으면 아기를 못 낳던 사람들이 아기를 낳는단다. 전 세계에서 효험을 본 사람들이 부쳐 온 사진들이 벽면에 가득하다. 믿거나 말거나 자매님들이 이 돌가루를 다투어 구입한다.
버스에 오른 후 신부님이 물었다.
“왜 돌가루를 그렇게들 사요?” 한 자매님이 대답한다.
“돌가루를 파는 신부님이 처연해 보여서요.”
“그럼 1달러를 그냥 드리고 오면 되지요.”
이튿날 한 부부가 아침식사 시간에 늦었다. 이 때 신부님의 한 말씀...
“이 집은 돌가루 먹고 지난밤에 난리 났다보다.” 모두 함께 웃었다.
이 성당은 봉쇄수도원이라 했다. 마침 옷을 곱게 차려 입은 수도원 수녀님들이 줄을 지어 노래하며 경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노래 소리가 천상의 소리 같다. 조용히 앉아서 들었으면 더 아름다웠을 터인데 모두 우르르 몰려가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다. 귀국해서 밴드에 올린 사진들을 보니 예상 외로 좋은 사진들이 정말 많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전문적으로 찍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일임하면 명상도 제대로 할 수 있고, 좋은 사진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늦게야 하게 된다.
또 하나 부끄러운 이야기다. 카파르나움 산상수훈성당(진복팔단 성당)에 갔을 때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 아름다운 풍광과 예수님 말씀의 핵심을 명상하려고 몰려 든다. 복음의 핵심 중 핵심이 주기도문과 산상수훈 가운데 들어 있는 여덟 가지 참된 행복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성당 문을 들어서니 연만하신 외국 수녀님 한 분이 제발 조용히 해 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하셨다. 여기서도 조용히 둘러보는 일은 접어 두고 어떻게든 한 장의 사진이라도 더 남기려고 다툼이다. 이런 소란이 바깥 정원에 나와서도 이어지며 웃고 떠들어 대니 수녀님이 바깥으로 나와서 야단을 치신다. 그 중에서 확실히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은 제발 조용히 해 달라는 것이었다. 로사가 말한다.
“조금 떠들었다 해도 저렇게까지 하는 것은 수녀님이 수양이 덜 되신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해 제주도의 한 호텔에서 조식을 하면서 떼로 몰려 관광을 온 중국 사람들이 안하무인격으로 떠드는 모습을 눈살을 찌푸리며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해(死海)는 해저 400미터나 되는 생물이 살 수 없는 문자 그대로 죽은 바다이다. 지금도 조금씩 수면이 더 낮아진다고 한다. 갈릴레아 물이 요르단강을 따라 흘러 들던 것을 이스라엘 정부가 모두 농업용수로 빼 돌리니 증발이 가속화되고 있단다. 받기만 하고 내어주지 않으면 죽음이 된다는 것을 사해는 온몸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사해에 가서는 예외 없이 수영을 하는 것으로 약속하고 떠났다. 나도 수영복을 하나 준비했다. 정말로 아무나 물에 뜨는지 체험해 보고 싶었다. 물 가장자리는 검은 머드로 발이 푹푹 빠지고 미끄러웠다. 그 지역을 한 30미터 벗어나니 보통의 바닷물처럼 맑았다. 수온도 적절했다. 그러나 헤엄을 치려고 하니 자꾸 몸이 뒤집어 져 제대로 헤엄을 칠 수가 없었다. 그냥 편안하게 뒤로 누워 있으니 동동 떴다. 그러다 실수로 눈에 짠물이 한 방울 튀어 들어가니 정말 쓰리고 아파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로사와는 서로 머드를 칠해 주고 잡아주며 잠시 여유를 즐겼다. 그 장면을 요안나 자매가 보시고는
“아이쿠! 두 분이 아예 비디오를 찍네요.”라고 놀린다.
가장 신이 난 분은 신부님이었다. 제일 먼저 보호선까지 헤엄쳐 들어가 수영실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맨 나중에 나오신다.
해변에 노천으로 마련된 샤워장은 끈을 당기면 민물이 흘러나왔다. 남녀노소와 피부색깔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한꺼번에 샤워를 한다. 그 장면을 보신 신부님이
“와! 여기는 혼탕이네!”하시면서 또 사람을 웃긴다. 신부님은 개구쟁이다. 어린 시절에는 동네에서 제법 유명했을 것 같다.
여기서 신부님의 재미있는 이야기 한편을 소개한다.
부부끼리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왔는데, 그 중 아내가 한 사람 돌연사를 했단다. 시신을 한국으로 옮기려니 절차도 복잡하거니와 비용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여기가 하느님의 땅이니 묘지를 구해 묻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모두 충고를 했다. 그래도 그 남편은 한사코 한국으로 아내를 모시고 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단다. 왜 그렇게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느냐고 추궁하니 그의 대답이
“이스라엘 땅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데, 한국에 가서 화장을 해야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것이 아니냐!”
점심 식사한 면세점에서 독수리 형제와 파티마의 성모 형제님들을 생각하며 사해의 머드를 추출해 만들었다는 핸드크림을 공항 면세점보다 비싸게 몇 개 구입했다.
그 식당 옆에는 쿰란공동체 유적지가 있었다. 여기서 1947년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매던 배드윈 족의 한 목동이 동굴에서 항아리를 발견했다. 황금이 담긴 항아리라 생각했는데 에세느파로 추측되는 쿰란공동체가 남겨 놓은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 필사본들이었다. 이사야서를 비롯한 구약의 대부분이 가죽과 구리 등에 기록되어 있었다. 예수님 이전에 유대민족은 사두가이파와 바리사이파 그리고 에세느파로 분리되어 있었다. 사두가이파는 모세 5경에 적혀 있는 문자대로만 믿으려 하고 식민지 현실에 타협적이며 주로 제사장 급인 귀족들의 모임이었다. 이에 대해 바리사이파는 예루살렘 이외에도 제사를 모실 수 있다고 주장하며 모세5경 뿐 아니라 유대민족에게 전승되는 내용들도 포함을 시켜야 한다는 서민들의 모임이다.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바리사이파들에 의해 성전 이외에 유대민족 마을에는 회당이 발달하게 된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며 유대의 전통을 지켜오는 사람들은 바로 바리사이파다. 에세느파는 아예 현실과 거리를 두고 남자들끼리만 모여 수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이들은 어느 순간 구약 필사본들을 동굴에 남기고 사라졌다. 하긴 남자들만의 집단이니 후세를 기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는 이 모두가 하느님이 바라는 모습이 아님을 설파하였다. 율법을 위하여 사람이 존재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율법이 존재해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의 가슴 속에 하느님을 간직하라는 것이다. 예수님 속에 하느님이 머물 듯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각기 자신만의 사랑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이런 과감한 주장은 당시 모든 유대민족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었다. 이것이 결국은 예수를 속죄의 재물로 몰고 가게 한 것이다.
유대민족은 이 고집으로 인해 수천 년 동안 갖은 고난을 겪었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만 하느님이 선택한 선민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인류 최고의 옹고집들이다. 그래도 지구상의 인구 중 0.2%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노벨상의 23%를 독차지 한다니 이도 또한 불가사의다.
베들레헴 예수님 수유성당에서 신부님과
① 마리아와 요셉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따라 호적등록을 하기 위하여 본관 고을인 베들레헴을 향하여 길을 나섭니다.
② 다윗의 후손인 요셉이 막상 본관 마을에 도착했으나 여인숙에는 빈자리가 없었습니다.(루카 2,7) “그분이 자기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겨레는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요한 1,11)
③ 마리아와 요셉은 산기슭에 있는 외양간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합니다.(루카 2,6)
④ 온 세상이 잠든 고요한 한밤중에 마리아는 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누입니다.(루카 2,6-7)
⑤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 다윗 고을에 구원자가 태어나셨습니다.”라고 알려줍니다.(루가 2,8-11)
⑥ 그때 천사들이 나타나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사랑받는 사람들에게 평화!” 하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루카 2,13-14)
⑦ 양을 치던 목자들은 주님이 알려주신 일을 알아보기 위해 베들레헴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구유에 누워 게신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합니다. (루카 2,15-16)
⑧ 목자들은 아기에 대하여 보고 들은 바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감명을 받습니다.(루카 2,17-18)
⑨ 임금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따라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절하며 예물을 드립니다.(마태 2,9-11)
⑩ 마리아는 그 모든 일을 마음속에 새기어 간직하면서 곰곰이 묵상합니다.(루카 2,19)
환희의 신비 4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심을 묵상합시다.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신 곳은 예루살렘의 성전이었다. 마리아는 마침 친정이 예루살렘이어서 다행이다. 모르긴 몰라도 성전에 바치기 전까지는 나자렛으로 돌아가지 않고 친정 혹은 그 가까운 곳에 머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언자 시메온은 예수를 처음 뵙는 자리에서 마리아를 향해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입니다.’라는 불길한 예언을 한다. 이 뜻하지 않은 예언을 들었을 때의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러나 마리아는 그 말씀을 가슴으로 고이 간직하기만 했다.
성모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나서 그 멀리 나자렛 시골까지 시집을 가고,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석 달을 머물고, 다시 나자렛으로 돌아갔다가 출산달이 되었는데도 그 먼 길을 걸어 다시 베들레헴으로 가서 출산을 하고, 곧이어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을 가고 다시 나자렛으로 귀환하는 정말 초인적인 대장정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친정이 예루살렘이므로 정결례날 예수님을 성전에 바칠 때까지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 뒤에 이집트로 피신을 하고 피신이 끝나고서 나자렛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① 마리아와 요셉은 모세의 법대로 정결레를 치르는 날이 되자,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갑니다.(루카 2,22)
② 마리아와 요셉은 가난한 처지였으므로 어린양 대신에 집비둘기 두 마리를 제물로 바칩니다.(루카 2,23-24)
③ 예루살렘에 사는 시메온이라는 의롭고 경건한 노인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으로 갑니다. 그 때 마침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성전으로 들어옵니다.(루카 2,27)
④ 성령으로 충만한 시메온이 아기를 두 팔로 받아 안고, 인류의 구세주를 직접 뵙게 된 기쁨에 넘쳐 하느님을 찬양하고 아기가 구세주이심을 예언합니다.(루카 2,28-32)
⑤ “주재자시어, 과연 제 눈으로 당신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이방 민족들에게는 계시하는 빛이요,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로소이다.”(루가 2,29-32)
⑥ 시메온은 마리아에게 “이 아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또 아기는 배척당하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혼을 칼이 꿰뚫을 것입니다.” 하고 말합니다.(루카 2,34-35)
⑦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시메온의 예언을 듣고 이상하게 여깁니다.(루카 2,33)
⑧ 마침 그 시간에 한나라는 예언녀가 성전에 왔다가 시메온의 예언을 듣고 하느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에게 그 얘기를 합니다.(루카 2,36-38)
⑨ 마리아와 요셉은 맏아들의 봉헌 예식을 마치고 나서 나사렛으로 돌아갑니다.(루카 2,39)
⑩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며, 하느님의 총애가 그에게 내립니다.(루카 2,40)
환희의 신비 5단
마리아께서 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이 12살의 나이에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하며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신 줄도 그리고 날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 성전이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하기에 예루살렘의 최대 성전인 모리야 산의 바위 성전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이슬람교의 3대 성지가 되어 있다. 예수님 당시는 헤로데가 솔로몬 시대를 능가하는 유대교 최대의 성전을 지어 번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본다. 유대 임금이 될 아기가 태어났다는 풍문만을 듣고 예수님 당시에 태어났던 두 살 이하의 아기들을 모두 색출해 죽인 포악무도한 임금이 바로 헤로데이다. 그러나 그가 남겨 놓은 카이사리아의 성벽을 비롯한 위대한 건축의 유산들이 지금 이스라엘의 주요 유적이 되고, 그로 인해 관광객을 맞아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진나라 시황이 만리장성을 쌓느라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몰았지만 그가 남긴 유적이 중국 최대의 관광코스가 되는 아이러니를 이곳에서도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토마스 가이드에게 헤로데에 관해서 물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악인 중의 악인이지만 유대 민족에게 헤로데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가 있겠는데요. 유대인들은 이 헤로데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요?’ ‘잘 모르겠네요.’ 그의 대답이 무성의했다.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에서 건너편 성전을 바라보며 머지않아 파괴될 미래를 예견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눈물의 성당’이 올리브 산에 조촐하게 지어져 있다. 독일 작가에 의해 설계된 성당은 눈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예수와 같은 위대한 스승을 배출한 유대민족이지만 장차 다가올 쓰라린 수난의 역사는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이 인간이 지닌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바위 성전의 역사가 곧 예루살렘의 역사이다. 132년 헤로데의 성전을 부수고 로마군은 그들의 신전을 짓고,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이 자리에 그리스도의 성전을 짓고, 614년 페르시아 군은 이 교회를 파괴하고, 다시 1099년 십자군에 의해 탈환되고, 1187년에는 회교도에 의해 다시 정복되고, 1517년 오스만 터키가 점령하고, 1917년 영국군에 의해 통치를 받고, 1948년 이스라엘과 요르단 관할지역으로 나뉘고, 다시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이 점령하는 역사가 바로 그것이다.
예수가 바라보았던 성전은 헤로데가 지은 제 2성전 건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바위를 중심으로 거대한 이슬람 황금 돔 사원이 지어져 있다. 구약의 최대 인물인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바위가 바로 그곳이란다. 이 성전은 마호멧이 태어난 곳, 그의 무덤이 있는 곳과 더불어 회교도들의 3대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마호멧이 이 바위에서 말을 타고 승천했다는 것이 이슬람 경전의 주장이란다.
①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킬 의무가 생긴 열 두 살 되던 해에도 예년처럼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루카 2,41-42)
② 축제 기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그들은 아들이 친척들 일행에 끼어 집으로 가고 있으려니 여기고 하룻길을 갔습니다.(루카 2,43-44)
③ 마리아와 요셉은 다음날 친척 일행 중에 소년 예수님이 보이지 않자 놀라서 당황합니다.(루카 2,44)
④ 마리아와 요셉은 근심하고 슬퍼하며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사흘 동안이나 예수님을 찾아 헤매 다닙니다.(루카 2,45)
⑤ 그동안에 소년 예수님은 성전에서 교사들과 함께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의 총명함과 의젓하게 대답하는 품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루가 2,46-47)
⑥ 마리아와 요셉은 사흘 후에 성전에서 소년 예수님이 교사들과 토론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루카 2,48)
⑦ 어머니가 너무나 반가워서 “애야,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태웠는지 아느냐?” 하고 책망합니다.(루카 2,48)
⑧ 그러자 예수님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하고 말합니다.(루카 2,49)
⑨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한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새겨 둡니다.(루카 2,50-51)
⑩ 예수님께서는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18년 동안 조용히 부모에게 효도하며 지냅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해갑니다.(루카 2,51-52)
빛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은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물로 세례를 받았다. 그 요르단 강가에는 순례를 온 세계 각국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강 이 쪽에는 이스라엘군이 저 쪽에는 요르단 군이 총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20여 미터 정도 될 것 같은 좁은 강폭에 누런 황토물이 고여 있을 뿐이었다. 원래는 많은 물이 흘렀었지만 이스라엘에서 갈릴레아 호수 물을 자기네들 농업용수로 활용하기 위해 다 빼돌리고 지금 이 물은 그 외의 골짜기에서 흘러든 물이란다. 그래도 그 흙탕물에 들어가 온몸을 담그고 세례의식을 행하는 외국 순례객들이 보인다. 목사로 여겨지는 분과 부모로 생각되는 사람이 아이 하나를 잡고 물에 퐁당 집어넣었다가 세운다. 아이는 경황이 없어 멍해 있고 함께 온 순례객들은 웃으며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예수도 저처럼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세례를 받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굳이 자청해 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위대한 예언자 요한에 대한 극진한 예우였을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힘을 믿지 않으려는 미련한 인간들에 대한 경종이었을까?
순례를 마치고 버스로 돌아오는 빈터에는 흰 비둘기 몇 마리가 따가운 햇볕 아래 모이를 쪼고 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그날도 성령이 흰 비둘기 모양으로 하늘에서 내렸다고 한다.
세례를 받은 예수는 성령의 힘으로 곧장 광야로 간다. 40일간 단식기도를 한 후 사탄으로부터 배고픔과 재물과 권력의 유혹을 받지만 이를 극복한다. 그 유혹의 산이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오아시스 도시 예리고 가까이에 있었다. 정작 그 산은 멀리서 쳐다만 보고 우리 일행은 대추야자와 마른 무화과의 유혹에 빠져 그것 사기에만 바빴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요르단강 가에서
①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납니다. 낙타털로 만든 옷을 걸치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삽니다.
② “주님의 길을 닦고 굽은 길을 바르게 하여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이사 40,3-5)라는 말씀에 따라 요한은 요르단 강 주변을 두루 다니면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선포합니다.(루카 3,3)
③ 백성들은 모두들 속으로 요한이 혹시 그리스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서로 수군거립니다.(루카 3,15)
④ 요한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굳센 분이 오시는데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하고 대답합니다.(루카 3,16)
⑤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요르단 강으로 찾아오십니다.(마르 1,9 ; 마태 3,13)
⑥ 요한이 예수님을 보자 “제가 주님께 세례를 받으러 가야 할 터인데 어찌 주님께서 저에게 오십니까?” 하고 송구스러워합니다.(마태 3,14)
⑦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지금은 당신이 나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십니다.(마태 3,15)
⑧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에게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습니다.(마르 1,10 ; 마태 3,16)
⑨ 그때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루카 3,22 ; 마태 3,17)
⑩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뒤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서 사십 일 동안 단식하시면서 기도하십니다. (루카 4,1-2)
빛의 신비 2단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카나는 나자렛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고을이었다. 걸어서도 한나절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친척의 혼인 잔치가 있었고, 잔치에서 가장 필요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고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보며 걱정을 한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이를 어쩌지?”
눈치 빠른 예수가 어머니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대답한다.
“어머니, 저에게 포도주를 만들어 내라는 말씀입니까? 그런데 아직 저의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뜻을 굽히지 않은 어머니의 청에 못 이겨 물을 포도주로 바꾼 첫 기적을 행한 곳이 바로 카나이다.
미루어 짐작컨대 마리아는 예수가 이미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아직 저의 때가 아니다.’고 예수가 대답한 것은 자신의 공생활에 대한 비전에 이 ‘포도주의 기적’은 포함되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간청하니 어쩔 수 없이 살짝 시범을 보인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으로 대범하게 보려했던 예수였지만 이 때 만큼은 인간적인 자상한 면모를 드러낸다. 우리가 성모님의 전구를 믿는 바탕이 여기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곳에도 작은 성당이 지어져 있고 많은 순례객들로 붐볐다. 우리일행은 이 성당의 지하 동굴에 따로 마련된 미니 성당에서 혼인 갱신 성사를 행했다. 다섯 부부가 대표로 반지를 서로 주고받고, 나머지 일행도 마음속으로 혼인 갱신식을 가졌다.
우리 부부는 이 갱신식을 위해 미리 반지를 준비했다. 나는 방어진고 학부모들께서 헤어지는 기념으로 새로 부임한 신선여고까지 일부러 배달하신 묵주반지를 2년 동안 끼고 있었다. 이 묵주반지가 낡아 11만원을 웃돈을 주고 새것으로 바꾸고, 로사도 조그만 반지를 마련해 서로 선물로 교환했다.
그런데 반지를 교환하기 위해 서로 반지를 바꾸어 손에 쥐고 있다가 그만 그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 반지를 교환하려니 내 손에 아내의 반지가 없어진 것이다. 신부님은 앞에서 성사를 진행 중인데 반지는 없고, 로사는 빨리 찾으라고 성화고 정말 당황인지 황당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일단 손에서 벗어나면 어디에 놓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 근래의 기억력이다. 다행히 내 손가방의 바닥에 반지가 잡혀서 무사히 반지를 교환하기는 했지만...
그런데 나는 우리 로사와 결혼식을 네 번이나 했다. 1980년 1월 13일 오리지널 결혼 1회, 월평성당에서 관면혼배 1회, ME 주말과정에서 갱신식 1회, 이번 카나 혼인교회에서 1회가 그것이다. 그 중 ME와 이번 갱신식은 모두 김윤근 베드로 신부가 주례를 하신 것도 특이한 이력이 되었다.
이 성당의 지하에는 예수 시대에 물을 부어 포도주로 바꾼 돌 항아리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발굴되어 전시되어 있었다. 예수 당시에 포도주의 기적을 일으킨 그 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당 바로 앞의 성물(聖物) 가게에서 파는 카나의 포도주는 달콤했다. 예전에 집에서 담가 마시던 그 포도주 맛과 흡사했다. 한 병에 5달러였다. 카타리나 자매님은 짐이 되니 사지 마시라고 말려도 요셉 형제에게 맛보여야겠다는 일념인지 굳이 두병을 샀다. 그런데 그 귀한 포도주를 중간에 시몬형제님과 바오로 형제님을 초청해 우리 방에서 이야기할 때 한 병을 내어 놓고 말았다. 예루살렘의 ‘Grand court Hotel’에서다.
카나 동굴교회에서 혼인 갱신식
① 성모님은 가나에 사는 친척집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고 계십니다.(요한 2,1)
②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혼인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에게는 “포도주가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는 랍비의 속담이 있습니다.
③ 잔칫집이 가난한 경우에는 초대받은 친척들이 포도주를 선물로 가지고 가는 것이 그 당시의 풍속입니다.
④ 포도주가 떨어질 때에 마침 예수님과 제자들도 그곳에 오십니다.(요한 2,2) 성모님은 “포도주가 다 떨어진 모양인데…….”하시며 예수님을 쳐다보십니다.(요한 2,3)
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제가 나설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요한 2,4)
⑥ 성모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시고 시중꾼들에게 “내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하시오”하고 말씀하십니다.(요한 2,5)
⑦ 예수님께서는 시중꾼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우시오”하고 이르십니다.(요한 2,7)
⑧ 시중꾼들이 시키는 대로 하자, 예수님께서는 다시 시중꾼들에게 방금 항아리에 부은 물을 퍼서 잔치 주관자에게 가져다주라고 분부하십니다.(요한 2,8)
⑨ 그 물이 어느새 가장 좋은 포도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잔치 주관자가 포도주 맛을 보고나서, 신랑에게 “누구나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는 것이 예사인데, 좋은 포도주를 이제까지 보관하고 있었군요.” 라고 말합니다.(요한 2,9-10)
⑩ 이렇게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가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제자들은 그분을 믿게 됩니다. (요한 2,11)
빛의 신비 3단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보다 3년 전에 죽는다. 겨우 서른 나이에 죽었다는 결론이다. 그것도 헤로데의 맏아들 헤롯 안티바스의 생일날에 참수 당한다. 임금에게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취하는 것은 임금으로서 할 행동이 아니다.’고 간언하다가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춤사위에 놀아난 헤로데의 어이없는 약속에 따라 그의 머리가 쟁반 위에 놓이게 된다. 이를 본 예수님은 이 예루살렘은 당분가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을까? 서울을 버리고 고향 쪽인 갈릴레아로 돌아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며 적극적인 말씀에 임한다.
그 호수에서 어부(漁夫)였던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사람 낚는 인부(人夫)로 전직시킨다. 그리고 각 마을의 회당을 순회하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할 것을 설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등 다양한 기적을 행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당시의 주류가 아니다. 당시로서는 하층민인 어부요, 미움 받던 세리들이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모아 인류 최고의 스승으로 거듭나게 했다. 그래서 그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의 반열에 올랐다.
갈릴레아 호수 주변은 예수의 공생활의 주무대이다. 왕성한 기적을 드러내 보인 역사적 장소가 즐비하다. 우리가 처음 들른 곳은 카파라나움의 베드로 장모집 성당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미사를 드렸다. 열병이 걸린 장모 뿐 아니라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모여서 예수님 가까이 접근하기가 어려움을 알고 아예 천정을 뚫고 중풍환자를 내려 보내 고쳤다는 곳이다. 성당 바로 옆의 유태교 회당은 발굴이 거의 끝나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베드로의 마음처럼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 저리 흔들린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다. 나는 이 나무를 보자 말자 그 매력에 빠져 들었다. 특히 베드로 장모집 성당에 자란 이 나무가 더욱 아름다웠다. 가이드에게 나무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한다. 순례객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궁금해지는 나무일 것인데도... 이 나무가 사이프러스 나무란 것도 요르단 가이드에게 물어 알았다. 나뭇잎은 우리의측백나무 형태이고, 전체 형태는 우리의 노간주나무나 외국에서 들여온 메타세쿼이아를 닮았다. 이 매력 있는 나무가 우리나라에는 왜 자라지 않는 것일까!
바람은 낮 동안은 차가운 호수에서 뜨거운 언덕으로, 밤엔 반대로 분다고 했다. 마이크가 없던 예수 시대에 수많은 군중을 대상으로 말씀하실 때는 이 바람의 방향을 이용했을 것이다. 마침 호수에서 제법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바다처럼 물결도 일었다.
오병이어(五餠二魚) 성당도 들렀다. 빵 다섯 쪽과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5천명을 먹였다고 한다. 이 기적을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니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진복팔단 성당’에도 들렀다. 입구에서부터 영어로 여덟 가지 진정한 복이 돌에 새겨져 있었다. 성당 내부의 돔도 팔각을 이루고 그 창마다 팔복이 하나씩 새겨져 스테인드글라스를 대신하고 있다.
이 유명한 말씀은 마태오복음(5-7장), 루카복음(6장)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로, 여덟 가지 참된 행복(眞福八端)이 그 주제를 이루고 있다.
즉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고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참된 행복’에 대한 마태오복음서와 루카복음서의 내용이 약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마태오에서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이고, 루카에서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로 되어 있다. 이는 작은 듯하면서도 큰 차이다. 전자는 마음의 가난이고 후자는 물질적 가난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비친다. 더군다나 루카복음에서는 ‘행복선언’에 이어 ‘불행선언’이 있어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라고 되어 있어 상기의 ‘행복선언’이 물질적인 빈부를 말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급하지만 마태오 복음사가는 개인적인 영성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고, 루카 복음사가는 사회적 삶을 직시하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해 보게 된다. 이를 두고 교단 내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둘로 갈라져 싸우는 일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은 반쪽이 아니다. 둘 다를 포괄하는 하나이다. 이쪽저쪽을 다 살필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나로 화합할 수 있다. 그래야 진정한 크리스천이라 할 것이다.
산상수훈(진복팔단) 성당을 순례하고 베드로 수위(首位)권 성당까지 이르는 길은 걸어서 답사했다. 처음에는 이 뜨거운 햇볕을 이고 꼭 걸을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이 시간이 갈릴레아 호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이천년 전 예수님도 제자들과 분명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아름다운 길릴레아 호수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이미 말라버린 야생겨자와 마른 풀만 보이는 완만한 언덕길이다. 나무라고는 한 그루도 없는 길의 중간쯤에 느릅나무로 보이는 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우리 일행이 그 그늘에 들어가 쉬기에 족하다. 그 옆의 가시 덩굴 바위에는 검은 얼굴의 예수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아마 이곳이 예수가 군중을 피해 제자들과 잠시 쉰 곳이 아닌가 여겨진다는 것은 가이드의 견해다. 군중들이 너무 한꺼번에 많이 몰려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이틀 밤 묵은 호텔은 티베리아스 도시 아래에 있는 호수 가에 소박하게 지어진 호텔이었다. 티베리아스는 사도요한을 죽인 헤로데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가 로마황제 티베리우스에게 바친 도시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은 버스 대신에 배를 탔다. 배는 태극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나란히 달고 거두절미하고 조용필의 노래 ‘일편단심 민들레’를 틀어 한국 중년들의 분위기를 일거에 뒤집어 놓는다.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신부님도 그 분위기를 감당하지 못하여 조용필의 ‘한 오백년’을 따라 부른다. 그러나 노래는 마음 같지 않다. 호수에는 물 반 고기반이라는 소문을 믿고, 물고기에게 던져 줄 먹이를 바리바리 사 갔지만 유감스럽게도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호텔의 식당에도 태극기를 테이블마다 꽂아 배려를 한다. 우리는 반주(飯酒)로 포도주를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그 흥이 가라앉지 않아 저녁식사 후에도 호텔 마당에 모여 앉아 어린 시절 동네에서 배운 유행가와 동요를 생각나는 대로 불렀다. 그 시절에 박수치며 밤새 부르던 노래였는데도 나는 갑자기 한 곡도 생각나지 않았다. 벌금 5달러를 내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 신부님은 나보다 훨씬 나았다. 호텔 직원이 이 모습을 보다가 저 멀리 있던 태극기를 우리 일행이 있는 곳으로 바꾸어 달아 준다. 한국의 힘이 대단하다. 그들의 배려는 더욱 대단하다. 음식도 이 ‘Ron Beach Hotel’이 가장 풍성하고. 대접도 최고이고. 풍광도 가장 좋았다.
해수면보다 200m가 더 낮다는 호수는 그지없이 아름답고 평온해 보였다. 도착하는 날은 바람이 세게 불어 호수에 물결이 가득했다. 예수 당시 조각배를 타고 풍랑에 어쩔 줄 모르는 제자들에게 선두에서 잠을 자며 ‘아직도 믿음이 그렇게 부족하더냐?’고 꾸짖은 날이 이런 날이 아니었을까? 호수는 그들의 표현처럼 바다같이 넓고 푸르렀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나자렛 고향 마을에 가까운 이 아름다운 호숫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작 고향인 나자렛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예수님도 그 사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나자렛은 지금 35,000 시민 거의가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들로 구성되어 있단다.
우리가 도착한 시절은 4월 중순인데도 이미 밀은 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고, 장미도 만개하여 시들어 가니 우리로 치면 6월 초쯤 정도의 시절이 아닌가 여겨졌다.
나는 늘 겨자나무가 정말 거대한 나무인 줄 알았는데 유채꽃 같은 풀꽃임을 알았다. 산상수훈 성당에서 베드로 수위권 성당으로 내려오는 호수가의 언덕에는 야생겨자가 이미 다 익어 잎과 줄기가 말라 있다. 작은 새들이 앉아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꼿꼿했다. 수확할 시기가 된 것 같았다. 겨자 몇 알을 까서 씹어 보니 매운 맛이 입안 가득했다. 겨자씨는 우리 참깨의 1/3 정도 되는 크기였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또 하나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신부님의 말씀에 따르면 간음을 하다가 잡혀와 예수님 덕분에 살아난 여자가 그 이름도 유명한 막달레나 마리아라는 것이다. 이미 돌에 맞아 죽어야 할 목숨이 예수의 지혜로 부활한 것이다. 그러니 예수가 묻힌 무덤을 가장 먼저 달려갔고, 부활하신 모습을 맨 먼저 보는 행운도 누리게 되었다. 지금은 막달레나가 살았던 마을을 발굴하여 그 곳에도 작은 성당을 이미 지어 놓았다. 나자렛에 살았다고 ‘나자렛 예수’라 부르듯이 당시 마리아란 이름이 우리 영숙이나 영자처럼 많으니 막달레나에 살았다고 ‘막달레나 마리아’가 된 것이란다.
신약성서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 바로 요한복음의 8장 7절일 것이다. 간음하다가 잡혀 온 여인을 향해 유대인의 율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지금까지 ‘원수를 사랑하라’고 까지 설한 당신의 가치관과 배치되고,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한다고 말했다면 그 성난 돌들이 예수에게로 날아들었을 것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예수는 아무 말 없이 땅에다 앉아 무엇인가를 쓴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하느님 아버지! 이 위기를 벗어날 지혜를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닌가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누구든 죄 없는 자가 있으면 먼저 돌을 던져라.’는 그 위대한 말씀을 남긴 것이다. 이 때 나이가 많은 남자들부터 돌을 버리고 서서히 사라져갔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막달레나 마을 가까이에 있는 허름한 야외 식당에서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일명 베드로고기 튀김을 먹는 것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베드로 고기는 우리의 붕어처럼 생겼지만 붕어보다는 폭이 넓다. 우리 토종 붕어의 적, 베스라는 문헌을 보기는 했지만 확인하지는 못했다.
점심시간마다 물병에 담아온 소주(링게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를 반주로 한 잔씩 하는 것은 주당들에게는 여행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나는 큰마음 먹고 팩소주 여덟 병을 챙겨갔는데 우리 바오로 부회장님은 아예 댓병 하나에 더하여 열병을 더 챙겨 왔다니 그의 애주가로서의 경지를 내가 넘볼 수 없다.
호텔 앞쪽 호수 건너편은 완만한 언덕이 길게 누워 있다. 초록은 전혀 볼 수 없는 황무지 같은 고원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골란고원이란다. 원래는 시리아 땅인데 67년 6일 전쟁으로 이 땅을 점령한 후 이 호수의 물을 지키기 위해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외국에 사는 유대인을 공개모집하여 집과 땅과 개척 비용을 제공하여 이주시켜 살게 했다고 한다. 국제사회는 오직 힘만이 정의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려주는 대목이다.
호수의 물은 이스라엘 사막을 옥토로 바꾸기 위해 대부분 공급되고, 나머지 일부를 요르단으로 보낸다고 했다. 겨울 우기가 지나면 이 호수의 물이 얼마나 찼느냐가 가장 큰 뉴스거리가 된다고 했다.
이스라엘이란 나라가 작으면서도 아랍의 여러 나라와 전면전을 펼쳐도 지지 않은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유대인 부호들의 적극적인 예산지원과 이제 다시 물러 설 곳이 없다는 전 국민의 절박한 심정이 만들어 낸 힘으로 보였다. 나라 없는 2천년 동안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사무친 눈칫밥을 먹다가 친신만고 끝에 가나안 땅을 회복했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그 중 히틀러의 유대인 600만 대학살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비극이었다.
순례 계획에는 없었지만 통곡의 벽도 찾았다. 솔로몬 왕이 지은 성전을 증축하여 헤로데 왕이 건설한 성전이 제2의 유대교 대성전이다. 그 당시의 흔적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이스라엘성의 서벽인데 여기서 유대인들은 통곡한다. 하느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땅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일 것이다. 67년 6일 전쟁에 의해 예루살렘 전체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성전 자리에는 무슬림 최대의 모스크가 자리하고 있고, 시내 곳곳에는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와 마리아를 기리는 유적만이 가득하다.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역사가 서린 그 바위 위에 회교의 마호멧 성인이 승천한 것을 기념하는 회교 대사원이 세워져 있음을 그들은 통곡한다. 그들은 아직도 다윗 왕을 잇는 위대한 민족의 선지자가 나타나 옛 영광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며 통곡한다. 그러니 통곡이 멈출 리가 없다.
관광객에게도 꼭 모자를 쓰고 들어가게 한다. 벽에 접근해 기도하는 장소도 남녀가 유별하다. 다윗임금의 무덤에서도 마찬가지다.
6일 전쟁 당시 미국에 유학 온 이스라엘 학생과 아랍 학생이 둘 다 짐을 꾸렸는데 이스라엘 학생은 자원입대하려는 짐이고, 아랍 학생은 혹시 모를 징집 명령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낭설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유대인과 아랍인은 함께 모여 사는 법이 없다. 하긴 종교가 달라 살아가는 모습이 전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랍인들이 사는 마을은 집들이 허술하다. 삼층을 지을 요량이면 뼈대는 다 올려놓고 우선 필요한 1층만 완성해서 산다. 그러다 집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당사자가 집을 완성하여 입주한단다. 그래서 짓다가 부도난 듯한 허름한 집이 동네마다 숱하다. 또 아랍 동네를 특징 짓는 것 하나는 지붕 위에 검은 물통이 몇 개씩 올려 져 있는 것이다. 어느 해 가뭄으로 물이 모자라 아랍사람 사는 마을에만 홀대한 이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단다. 야속한 민족 차별에 항의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이 어려운 시기에 아랍마을부터 배수(配水)를 하거나 작은 것이라도 공평하게 나누었더라면 정말 존경 받는 유대민족이 되었을 텐데...
우리 일행을 실은 버스가 그 동안 정든 갈릴레아 호수를 벗어나 요르단 국경으로 달린다. 갈릴레아 호수는 예수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 주무대였다. 신부님께서 지난밤에 지으신 자작시를 읊으신다. 앞의 시가 또 하나 있었지만 겨우 이 시 하나만 녹취했다. 신부님은 시인이시다.
갈릴레아 호수
김윤근 베드로 신부
철썩철썩 뺨을 때린다.
깨어 있으라고
울렁울렁 파도가 일렁인다.
불신을 멀리 하라고
들어온 물이 사해로 흐른다.
소통하라고
캄캄함 새벽
호수의 바람은 불어오는데
주님 오늘은 어디에 계십니까?
호숫가 장작 위 구운 물고기로 아침을 주니
지난날 그 님 사랑
더욱 그립습니다.
오늘도 헤어진 샌들과 지친 걸음으로
갈 곳이 많아
마음만 바쁘십니다.
갈릴레아 호수와 골란 고원
갈릴레아 호숫가의 좋은 사람들
저녁 식사 후 호수의 바람을 맞으며
베드로 물고기 정찬
베드로 장모집 베드로 상 앞에서
베드로 장모댁 바람에 흔들리는 사이프러스 나무
†마태오복음 4,1-25 의 말씀입니다.
1 그 뒤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3 유혹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고 하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 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 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 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8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 주며
9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고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11 마침내 악마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 들었다.
12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13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14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15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7 이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20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갔다.
21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22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 갔다.
23 예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예수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지자 사람들은 갖가지 병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과 간질병자들과 중풍병자들을 예수께 데려 왔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와 데카폴리스와 예루살렘과 유다와 요르단강 건너편에서 온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랐다.
① 예수님께서는 행복의 길을 가르치십니다.(마태 5,1-12) “영으로 가난한 사람은 복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마태 5,3)
②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 가르치시고, 제자들에게 비유를 해설해 주십니다.(마태 13,1-23)
③ “여러분은 세상의 빛입니다. 사람들이 여러분의 좋은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시오.”(마태 5,13-16)
④ “하느님 나라는 밭에 뿌려진 좋은 씨와 같습니다. 밤과 낮이 지나가는 동안 씨는 싹이 터서 자랍니다. 땅이 절로 열매를 맺게 합니다.”(마르 4,26-29)
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좋은 씨를 뿌렸는데, 원수가 몰래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간 것과 똑같습니다. 주인은 추수 때까지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둡니다. 추수 때에 먼저 가라지를 뽑아 태워 버리고 밀은 곳간에 모아들입니다.”(마태 13,24-30)
⑥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비슷합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이지만 자라면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마태 13,31-32; 루가 13,18-19; 마르 4,30-32)
⑦ “하늘나라는 누룩과 비슷합니다. 어떤 부인이 밀가루 서 말속에 누룩을 집어넣었더니 온통 부풀어 올랐습니다.”(마태 13,33; 루가 13,20-21)
⑧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마태 13,44)
⑨ “하늘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은 장사꾼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값진 진주를 사는 것과 같습니다.”(마태 13,46)
⑩ 하늘나라는 그물과 비슷합니다.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 차면 바닷가에 끌어올려 놓고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립니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마태 13,47-49)
빛의 신비 4단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타볼산은 나자렛과 갈릴래아 호수 중간쯤에 있는 해발 570m가 되는 산이다. 이 광야에 전투모를 덮어 놓은 듯한 아름다운 산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이날 예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산을 올랐다. 믿을 만한 제자들이다. 호수가 해저 200미터이니 실질적으로는 800미터 정도 되는 산이다. 우리는 미니버스를 갈아타고 단번에 올랐지만 당시의 주된 신발인 슬리퍼를 신고 길 없는 산길을 따라 이 산정까지 오르는 일도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이 산 정상에서 엘리아와 모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엘리아와 모세는 구약시대의 최고의 선지자요 예언자이다. 엘리아는 주전 900년 경, 하느님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임금의 하나인 아합왕 시절에 살았던 정의롭고 용감하면서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강한 선지자였다. 그러나 인간적인 두려움을 누구보다 심하게 겪었던 예언자이다. 주전 13세기에 살았던 모세는 유대인이 믿는 유대교의 뿌리인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완성한 인물이다. 유대교 뿐 아니라 회교에서도 모세는 위대한 선지자로 추앙 받고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이 두 선지자와의 만남을 어렵게 보여준 의미를 어떻게 헤아려야 할 것인가! 그저 장차 부활 이후에 돌아갈 하늘나라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맛보기로 보여 주신 것일까? 성서와 하느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일천한 나로서는 그냥 의문만 증폭될 뿐이다.
성당의 입구 양쪽에는 모세와 엘리아의 제단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산 정상에 이르러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이 날은 시계(視界)가 흐려 전체를 조망할 수 없어 유감이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지어놓은 성당에서 우리는 미사를 드리고 주님의 몸과 피인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고 마시며 서로 보듬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이스라엘 북부의 헤르몬산은 2814m로 우리의 백두산보다 높다. 너무 높아 상봉은 사계절 눈으로 덮여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헤르몬산은 하늘의 산이다. 반면 광야 한 가운데 홀연히 솟아 늘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운 타볼산은 땅의 산이라 일렀다.
사막의 나라에 이처럼 청정한 물이 펑펑 솟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다.
산상 수훈 성당 진복팔단 성당 앞에서
케이팝을 좋아하는 소풍 나온 이스라엘 소녀들과
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십니다.(마태 17,1)
②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그 모습이 거룩하게 변하시어,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은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습니다.(마르 9,3)
③ 그때에 난데없이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십니다.(마르 9,4)
④ 세 분은 주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수난과 죽음,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하십니다.(루가 9,31)
⑤ 베드로와 두 사도들은 몹시 졸렸지만 애써 깨어있으면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신 주님과 대화하시는 두 분을 황홀경에 빠져 지켜보고 있습니다.(루가 9,32)
⑥ 이윽고 베드로가 “주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아에게 드리겠습니다.”하고 여쭙니다. (마태 17,4)
⑦ 갑자기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감싸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택한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이사 42,1;신명 18,5)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⑧ 예수님께서 땅에 엎드려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겁내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눈을 뜨니, 예수님만 계십니다.(마태 17,6-8)
⑨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실 때까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이 비밀을 지킵니다.(루가 9,36; 마태 17,9)
⑩ 제자들은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의 뜻을 못 알아듣고 서로 묻습니다. (마르 9,10)
빛의 신비 5단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완성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 장소는 예루살렘의 서쪽 언덕 시온산이었다. 시온산은 올리브산의 건너편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이다. 이스라엘성이 이 언덕에 있다. 이스라엘 정신을 상징하는 시오니즘이 이 산에서 비롯되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날 우리는 시온산 이스라엘 성벽 바로 앞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미사를 드렸다. 수도원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고 희고 붉은 장미와 보랏빛 재스민은 곱게 피어 그 향기로 우리를 반겼다. 외국 수사님은 일일이 악수로 우리 일행을 맞고 보냈다. 자매님들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기꺼이 응하면서 ‘빨리 빨리!’하는 우리말 농담도 하셨다. 한국출신 신부님도 함께 계셨는데 이태 전에 하느님 나라로 가셨다고 했다.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었다고 칭찬을 하신다.
주님 최후의 만찬 성당은 수도원 바로 옆에 있었다. 지금은 성 바깥이지만 예수님 생존 시에는 성안이었다고 한다.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라고 하니 당시의 유대인들도 그 상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사람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수 있느냐고 되 물었다고 한다. 우리 가톨릭에서 이 성체성사의 전통을 지금까지 그대로 지켜온 것은 누가 뭐래도 자랑스러운 것이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는 민중들을 바라보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 때부터 이 무교절을 맞아 최후의 만찬까지가 그의 짧은 삶의 클라이맥스가 아닐까?
올리브산 언덕에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출발했다는 성당도 방문했다. 나귀를 탄 예수님과 팜트리를 흔들며 우리의 임금이라고 열렬히 환영하는 군중들의 모습이 새겨진 동상 앞에서 우리는 조별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처럼 나뭇가지를 흔들며 입던 옷을 깔아 환영하던 군중들이 불과 며칠 후에는 빨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칠 줄을 예수님은 미리 알고 계셨을까? 동상의 양 옆에는 그 때 민중이 꺾어 흔들었다는 종려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었다. 이 땅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대추야자가 열리는 나무가 팜트리이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전통적으로 묵주기도는 환희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런데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빛의 신비’를 고안하여 기도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전통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가능하면 환희와 고통의 신비 사이에 빛의 신비를 넣어 기도하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권고였다. 내 미천한 생각으로는 ‘빛의 신비’가 첨가됨으로써 정말 제대로 된 예수님의 생애를 꿰뚫는 기도가 완성되었다고 여겨진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승전결로 나누면 30세까지의 탄생과 성장기, 3년 동안의 공생활기, 3일 동안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의 고통기와 사흘간의 죽음, 그 후의 40일간의 부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승(承)에 해당하는 공생활 부분이 바로 ‘빛의 신비’가 되는 것이다.
‘주의 기도문 성당’도 방문했다. 62개 나라의 언어로 새겨진 주기도문이 벽에 가득 걸려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도문은 둘이나 된다. 천주교 기도문과 개신교 기도문이 둘 다 붙어 있다. 원래는 가톨릭 기도문이었는데 오래되어 타일이 손상된 것을 보고 뜻있는 목사님이 원장수녀님께 말씀드려 자기가 새롭게 만들어 기증하겠다고 하니 속내 모르는 수녀님이 오케이를 했다고 한다. 그 뒤에 한국 가톨릭에서 항의를 하니 ‘같은 나라, 같은 문자 같은 내용인데 그게 뭐 대수로운 것이냐?’고 의아하게 생각하셨단다. 그래도 계속 딴지를 거니 이번에는 부산교구에서 새롭게 만든 것을 성당입구 맨 첫 자리에 걸게 해 주셨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지만 그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다. 그 목사님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내 생각도 이 작은 것으로 싸워서는 희망이 없다고 본다.
예루살렘 성 성벽에 기대어 (요안나 바오로)
① 무교절 첫날 즉 해방절 양을 잡는 날, 예수님께서 만찬상을 차리도록 베드로와 요한을 예루살렘 성 안으로 보내십니다.(마르 14,12-15)
② 예수님께서는 만찬상에 함께 앉아 있는 제자들에게 “내가 죽기 전에 이 만찬을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하느님 나라에서 해방절을 지낼 때까지 이 만찬이 마지막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루가 22,14-16)
③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도중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십니다. “너희도 스승인 내가 본을 보여준 대로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고 겸손을 가르치십니다.(요한 13,1-17)
④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축복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떼어주시면서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6,27-28)
⑤ 그리고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모두 돌려 마시라고 주시면서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6,27-28)
⑥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내가 주는 새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 것이다.”(요한 13,31-35)
⑦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 내 이름으로 너희가 무엇이든지 청하면 이루어주겠다.”(요한 14,1-14)
⑧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는 사람, 그리고 내가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1-6)
⑨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별의 슬픔과 재회의 기쁨을 말씀하신 다음, 제자들의 일치를 위하여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십니다.(요한 16-17)
⑩ 만찬을 드신 후,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올리브 산으로 가십니다. 그 뒤를 제자들이 따라갑니다.(루가 22,39)
고통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땀 흘리심을 묵상합시다.
죽음을 예견하고 피땀을 흘려 기도한 곳은 올리브산의 겟세마니 동산이다. 유대인들의 눈을 피해 제자들이 숨어 있던 동굴로부터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큰 바위가 있다. 지금 그 바위는 겟세마니 성당의 제대 바로 앞에 있다. 코앞에 닥친 자신의 미래를 직감했다.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다. 사람으로서 느끼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보통사람보다 더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피할 수 있으면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하느님 아버지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결론은 ‘제가 원하는 대로 하시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가 기도의 결론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피땀을 흘리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니 그 한 시간을 참지 못해 제자들이 잠들어 있다. 아무도 이 간난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암담하다. ‘깨어 기도하라고 했는데, 그 사이 모두들 잠 들었느냐!’ 철이 그렇게도 없더냐? 란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약한 인간들은 늘 깨어나 기도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이 정말 간절할 때는 피눈물이 난다고 한다. 예수는 피땀을 흘렸다.
겟세마니 대성당의 아래쪽에 조그만 동굴이 있다. 제자들이 숨어 있던 곳인 동시에 예수가 체포된 겟세마니 동굴이라 안내되어 있다. 체포 조를 안내한 자는 제자임을 자처하던 갸롯 유다이다.
바로 옆에는 성모 마리아의 무덤이라는 큰 지하 동굴 성당이 있다. 동방정교회에 소속이다. 동방정교회는 장식이 요란하다. 그래서 무당집 냄새가 난다. 그래도 자신들이 바른 교회라 해서 정(正)교회가 되었다. 정교회는 악기를 쓰지 않는다. 오로지 사람의 음성만으로 모든 미사를 진행한다. 초대교회는 당연히 악기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바른 전통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겟세마니 교회 정원에는 예수시대의 올리브 나무가 죽어죽어 살아 그 등걸을 키운 올리브나무 고목이 여덟 그루 살아 있다. 어떻든 이렇게 등걸이 굵어질 때까지 죽지 않고, 봄이면 어김없이 새싹이 돋는 것도 신비하다.
예수가 체포된 동굴 성당에는 동방정교회 신부님이 묵언으로 마른 올리브가지를 1달러에 팔고 계시다. 겟세마니 동산의 그 오래된 올리브나무 가지란다. 그의 검은 얼굴이 초췌해 보인다. 매일 매일 예수의 피땀어린 고뇌를 떠올리면 살아서 일까!
나오는 길에 성모님 무덤 입구에서 시몬 형제가 1달러를 흔들어 나를 부른다. 둘이서 소변을 보았다. 두 사람이 1달러지만 한 사람이 사용하면 반은 돌려주지 않는다. 한국 사람은 오줌 누는 데도 어떻게 돈을 받느냐고 야박하게 생각하고, 이곳 사람은 용변을 보는데도 어떻게 1달러 내는 것을 아까워하느냐고 야박하게 생각한단다.
뿐만 아니라 식당에서 물을 그저 주는 법이 없다. 하긴 물이 곧 생명인 나라이니까. 그런데 같은 물을 이스라엘 버스에서는 1달러에 한 병, 요르단 버스에서는 두 병이다. 물이 귀하기로는 요르단이 더하다. 갈릴레아 호수에서 넘쳐나는 물길을 이스라엘이 모두 통제해서다. 아무튼 이스라엘 물 인심은 거의 깡패 수준이다.
올리브산 겟세마니 성당의 올리브나무
① 만찬이 끝나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 산의 겟세마니라는 동산으로 가십니다.(마태 26,36)
② 다른 제자들은 동산 밖에 남겨두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동산 안으로 들어가십니다.(마태 26,37)
③ 예수님께서 세 사도들에게 “내 영혼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이니, 그대들도 나와 함께 여기 머물러서 깨어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26,38)
④ 예수님께서 땅에 엎드려, “아버지, 이 잔을 거두어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시지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하고 기도하십니다.(마르 14,36))
⑤ 그때 천사기 하늘로부터 나타나 예수님의 기운을 북돋우어 격려해 드립니다.(루가 22,43)
⑥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피와 같은 땀이 흘러내려 땅을 적십니다.(루가 22.44)
⑦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고 오시니, 제자들은 근심하다가 지쳐 잠들어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그대들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있지 못하오?”라고 나무라십니다.(마태 26,40)
⑧ 다시 두 번째로 홀로 가시어 “아버지 제가 이 잔을 마실 수밖에 없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하고 기도하십니다.(마태 26,42)
⑨ 그런 다음 다시 오셔서 여전히 자고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는 “영은 간절히 원하지만 육신은 약하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나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세 번째로 기도하러 가십니다.(마태 26.43-44)
⑩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자! 사람의 아들이 죄인들 손에 넘어갈 때가 되었소. 일어나 갑시다.”하시고 유다와 군중들 앞으로 가십니다.(마태 26,46)
고통의 신비 2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매 맞으심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의 길’1처는 예수가 재판을 받은 빌라도의 법정이 있던 곳이다. 여기서 매를 맞는다. 예수가 매를 맞아야 할 이유가 없다. 로마제국 총독인 빌라도의 양심으로 판단해도 예수에게는 죄가 없다. 그렇지만 그는 정치꾼이다. 정치가는 진리와 진실보다는 대중의 마음을 달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그는 결국 현실에 철저히 타협하여 살인 죄수 바라빠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명령해 버린다. 그리고 그는 손을 씻는다. 그 대죄에서 벗어나려는 잔꾀일 뿐이다. 그 비겁한 속성이 지금도 정치가의 내면에 유전자가 되어 흐른다.
빌라도가 사형언도를 하고 매를 맞던 현장은 지금 초등학교로 변모해 있다. 여기서 매주 금요일 성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님들이 중심이 되어 사형 언도 장면과 골고다 언덕까지 수난의 길을 재현하는 의식을 행한다고 했다. ‘골고다’는 해골산이란 뜻의 히브리어이고 이를 라틴어로는 ‘갈바리아’로 읽는다고 한다.
① 군인들이 예수님을 안나스에게 끌고 갑니다. 예수님께서 안나스에게 말대꾸를 한다고 하여 하인 한 사람이 예수님께 손찌검을 합니다.(요한 18,19-23)
② 가야파의 장인인 안나스(요한 18,13)는 예수님을 그해의 대제관인 가야파에게로 보냅니다.(요한 18,24)
③ 가야파는 백성을 위하여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이롭다고 하여 유다인들을 선동하던 사람입니다.(요한 18,13-14)
④ 대제관이 예수님께 “당신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요?”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그렇게 말했습니다.”하고 대답하십니다.(마태 26,63-64)
⑤ 가야파의 관저에는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마태 26,57)
온 의회가 예수님을 고발하여, 그분 얼굴에 침을 뱉고 그분을 구타하며, 더러는 손찌검을 합니다.(마태 26,60-68)
⑥ 그들은 번갈아가며 예수님께 매질을 하여 예수님의 등은 마구 찢기고 피가 낭자하게 흐릅니다.
⑦ 새벽이 되자, 모든 대제관들과 백성의 원로들, 율법학자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마태 27,1)
⑧ 그래서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할 권한이 있는 빌라도 총독에게 이송합니다.(마태 27,2)
⑨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의 왕이요?”하고 묻습니다.(마르 15,2)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내가 왕이라고 당신이 말합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요한 18,36-37)
⑩ 빌라도가 “나에게 당신을 풀어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형에 차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요?”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주시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십니다.(요한 19,10-11)
고통의 신비 3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시관 쓰심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의 길’ 2처는 사형언도 후 예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혀 희롱하던 장소이다. 베들레헴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린 성물 파는 가게에는 탱주나무로 된 가시관을 만들어 팔았다. 내가 그것을 머리에 쓰고 장난삼아 돌아보니 그 모습을 로사가 찍었다. 잠시 머리 위에 올려놓는데도 가시가 머리를 찌른다. 그 가시관을 떨어지지 않게 눌러버리면 바로 피가 흐를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면류관을 써도 부족한 그의 머리 위에 조롱의 가시관이 씌었다. 민주주의의 다수결 원칙을 꼬집어 중우정치(衆愚政治)라 한다. 민중은 늘 바람에 약하다. 시인 김수영은 ‘풀’을 노래하며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말로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했다. 이것이 민중이 지닌 최대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며칠 전만 해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줄 새로운 임금이라도 등장한 것처럼 종려나무를 흔들며 환영하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악을 쓰며 외친다. 예수가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나약한 한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간파해서다. 아무에게도 대접 받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예수는 가시관을 쓰고 피 흘리며 골고다 언덕을 올라야 했다.
오직 인류의 죄를 대신해 속죄양의 길을 홀로 걸어가신 것이다. 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신성시 여겨 흠 없는 어린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무교절 시기였다.
① 총독의 군인들이 총독관저로 예수님을 데리고 가서 옷을 벗긴 다음 붉은 망토를 걸쳐줍니다.(마태 27,27-28)
② 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려고 나무토막을 가져다가 왕의 옥좌라고 하며 예수님을 앉힙니다.
③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눌러 씌우고, 오른손에는 갈대를 들립니다.(마태 27,29)
④ 그리고 예수님 앞에 무릎 끓고 “유다인의 왕, 만세!”하고 소리치고 깔깔거립니다.(마태 27,29)
⑤ 또 예수님께 침을 뱉은 다음 갈대를 빼앗아 예수님의 가시관을 내려칩니다.(마태 29,30)
⑥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겉옷을 걸치신 후 군중들 앞으로 끌려 나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없애 버리시오, 그자를 십자가형에 처하시오!”하고 외칩니다.(요한 19,5-6)
⑦ 빌라도는 군중 맞은쪽에서 손을 씻으며 “나는 이 피에 대해서 책임이 없소. 당신들이 책임지시오”하고 말합니다. (마태 27,24)
⑧ 대제관과 원로들의 선동에 놀아난 군중은 “그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책임질 것입니다.” 하고 어리석은 다짐을 합니다.(마태 27,25)
⑨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아내지 못하여 석방하려고 합니다.(요한 18,38-39)
⑩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협박에 못 이겨 예수님께 매질을 한 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줍니다.(요한 19,16)
[출처] 묵주기도 - 고통의 신비 3단|작성자 빈 수레
고통의 신비 4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십자가의 길 3처부터 9처까지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걸은 길 위에 있다. 십자가를 지고 쓰러지고, 슬퍼하시는 성모님을 만나고, 시몬이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성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고, 두 번째로 쓰러지고, 울고 있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달래고, 세 번째로 쓰러진 곳이 바로 여기다.
우리 일행은 예수님의 수난의 길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걸었다. 골고다의 언덕으로 가는 길은 온통 시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그 시장골목 군데군데 14처가 마련되어 있었다. 어떤 곳은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이 찾는 성지가 맞나 할 정도의 허술한 곳도 있었다. 가이드가 아니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 서너 곳이 되었다. 1처와 2처는 안토니아 성 안에 있고, 일곱 처는 길 위에 있고, 나머지 다섯 군데는 무덤성전 안에 있다. 이 중 아홉 곳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고, 다섯 곳은 역사적으로 전해 오는 사실을 교황청에서 인정한 것이란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길가에서 그들을 피해 옹기종기 모여 기도를 해야 했다. 그래도 요안나 자매와 카타리나 자매는 기도문을 읽으며 울먹였다. 십자가를 지고 피 흘리며 이 길을 오르는 2천 년 전의 예수를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어렵게 돈 벌어 이 멀리까지 기꺼이 순례를 보내준 고마운 남편과 가족들이 생각나서일까? 나도 로사와 7처에서 기도문을 나누어 읽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로사는 기도 중에도 주위 상점을 이리저리 살피다 결국 개당 1달러 하는 수륙 겸용 묵주를 두 개 구입했다. 결국 이 묵주는 예수님의 무덤 속까지 들어갔다 나왔으니 다른 어떤 묵주보다 의미로운 것이 되었다.
실제로 예수님이 걸은 길은 이보다 10여 미터 낮은 지하에 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들어가 걸을 수 없는 형편이니 그냥 그 위를 걷는 것이다. 이곳의 기념 성당들은 여러 곳이 지하에 원래의 건축 터가 있다. 그 발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한 가운데 그 위에 성당을 증축하고 있다. 왜 그 때의 유적들이 대부분 지하에 매몰되어 버렸는지 나는 묻지 못했다. 그러면서 지진이나 자연재해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그냥 짐작하고 마는 것이다.
① 군인들은 예수님을 때리고 조롱하고 나서 망토를 벗기고, 본래 예수님의 옷을 입히고는 십자가형에 처하기 위해서 밖으로 끌고 갑니다.(마태 27,31)
② 매를 맞아 지치고 피투성이가 된 예수님의 어깨에 군인들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하고, 해골산(히브리어로는 골고타)으로 끌고 갑니다.(요한 19,17)
③ 예수님께서 울퉁불퉁한 언덕길에서 비틀거리시다가 미끄러져 넘어지십니다.
④ 예수님께서는 길모퉁이를 돌아가시다가 근심과 슬픔에 젖은 어머니를 만나십니다.
⑤ 군인들은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합니다.(마르 15,21)
⑥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수건으로 예수님 얼굴의 피땀을 닦아드립니다.
⑦ 백성과 여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데, 여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가슴을 치며 통곡합니다. (루가 23,27)
⑧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들을 돌아보시고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나 때문에 울지 말고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식들 때문에 우시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루가 23,28)
⑨ 예수님께서는 무거운 십자가에 짓눌려 세 번씩이나 넘어지십니다.
⑩ 군인들은 쓸개를 섞은 포도주를 마시라고 예수님께 드렸으나 그분은 맛만 보시고 마시지 않으십니다.(마태 27,34)
고통의 신비 5단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하느님은 외아들이 죄 없이 못 박혀 죽는데도 왜 그냥 보고만 계셨을까? 예수는 지금까지 숱한 이적을 드러내면서도 이 절체절명의 순간은 왜 힘없이 죽어가야만 했을까? 골고다의 언덕은 말이 없었다. 다만 그 십자가 고상 아래 꿇어 앉아 통곡하는 엘리사벳 자매님의 흐느낌만이 정적을 깨울 뿐이다. 십자가의 그 고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성모마리아와 사랑했던 제자 요한의 초상도 말이 없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죄수도 간 곳이 없고 그들이 남긴 말만 스쳐 간다. 루카복음은 이 부분을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니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한 마디 말이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이 된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죽어간 장소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고, 옷을 벗기고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은 로마 가톨릭이 소유하고 있단다. 원래는 모두 로마 가톨릭 소유였으나 오스만 터키가 지배하면서 자기들 마음 내키는 대로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신부님은 네 번이나 와도 어디가 누구의 소유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튿날 아침 일찍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프란치스코 신부님들의 성스러운 미사곡을 들으며 창미사를 드렸다. 식전에 호텔에서 30분가량 걸어 어제 답사한 십자가의 길을 지나 무덤성당에 이르렀다. 노래를 하시는 신부님이 일곱 분, 복사를 서시는 분이 한 분이시다. 미사 집전은 우리 베드로 신부님이 하셨다. 파이프 오르간과 함께 들리는 장엄한 미사곡이 경건함을 불러왔다. 신부님은 의식이 조금 달라서 당황했지만 복사 수사님이 잘 도와 주셔서 큰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예수님이 죽어서 사흘간 누워 계셨던 자리에서 미사를 봉헌 한다고 생각하니 울컥 눈물이 솟아나서 참느라 애를 먹었다고 하셨다.
성당의 신부님이 성가 책을 보라고 주신다. 음표가 콩나물 대가리만 있고 꼬리가 없다. 이런 음표를 보고 어떻게 노래를 할 수 있는지 신통방통이다. 이해는 불가하지만 이것이 그레고리안 성가란다.
가톨릭 신자로서 무덤성당을 참배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인데, 그 앞에서 여타 관광객의 부러움을 사며 미사까지 드릴 수 있었으니 은혜 중의 은혜라 할 것이다. 다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때는 공금에서 40달러씩을 드렸다. 그러나 이날은 자율적으로 마음의 헌금을 바쳤다.
① 예수님께서 골고타에 도착하자 군인들은 예수님을 발가벗기고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는 십자가를 세웁니다.(마태 27,35)
② 십자가 죄목 명패에는 “유다인의 왕”이라고 적혀있습니다.(마르 15,26)
③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사실 그들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루가 23,34)
④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에게 요한 사도를 아들로 삼게 하십니다.(요한 19,26-27)
⑤ 대제관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합니다.(마태 27,41-42)
⑥ 예수님의 십자가 양편에 달린 죄수 중 하나는 예수님을 모욕하고, 또 다른 죄수는 예수님께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대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하고 응답하십니다.(루가 23,39-43)
⑦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하고 부르짖으십니다. (마태 27,46)
⑧ 예수님께서는 세 시간이나 십자가에 달려 계시다가 “목마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요한 19,28)
⑨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하시고, 숨을 거두십니다.(루가 23,46)
⑩ 백인대장과 그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은 지진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을 보고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셨다”라고 고백합니다.(마태 27,54)
영광의 신비 1단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는 죽은 지 사흗날에 부활했다. 그 모습을 맨 처음 본 사람은 그를 목숨처럼 믿어 따르던 막달레나였다. 그 외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 무덤성당은 다른 말로 부활성당이다. 우리는 십사처 십자가의 길에 1처를 더하여 예수님의 부활도 기렸다. 성당 밖 마당에 모두가 무릎을 꿇고 진정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축복했다. 돌로 된 성당 마당은 수많은 순례자의 발길에 닳아 반질반질했다.
예수가 부활하신 후 세 번째 나타난 베드로 수위권 성당은 카파르나움 지방의 갈릴레아 호수와 바로 인접해 있었다. 갈릴리 호수에 손을 담갔다. 로사는 아예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근다.
하늘처럼 믿었던 스승이 허망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모습을 목격한 후 제자들은 절망한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고 의지에 불탔던 제자들은 희망을 꺾고 뿔뿔이 흩어져 다시 본래의 생업으로 돌아간다. 베드로도 다시 어부가 되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밤새 고기를 잡으려 했으나 허탕 친 현장에 부활 후 세 번째로 나타나신다. 예수는 숯불을 피우고 자신의 지시대로 잡은 고기를 구워 추위와 허기에 지친 제자들을 대접한다. 그리고 세 번이나 베드로의 사랑을 굳이 확인하신 후 ‘내 양들을 잘 돌 보아라.’ 라는 제자 중에 수위(首位)권을 인정한다. 세 번이나 굳이 사랑을 확인한 것은 세 번이나 배신한 그의 부끄러운 행적을 연상하게 한다. 그 허물을 이로서 다 용서하겠다는 의미일까? 그래서 그는 로마 가톨릭 2000년의 역사에 초대 교황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사셨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우리는 그 엠마오로 가는 길에 있는 수도원에 들러 함께 성경을 읽어 묵상하고 노래 불렀다. ‘이제 해가 서산에 걸렸으니, 누추하지만 잠시 쉬어 가시라’는 노래 내용은 처음 들었지만 눈물겨웠다.
이 수도원에서 구입한 브랜디는 향기도 좋거니와 가격도 35달러로 적당해서 우리 구미에 딱 맞았다. 수사님들이 직접 포도를 키우고, 발효시키고, 끓여 만든 술이라고 했다. 신부님은 두 병을 사서 한 병은 그 자리에서 나누어 마시게 하고 나머지 한 병은 저녁에 마시자고 했다.
저녁식사를 예약한 음식점은 밖에서 들고 온 술은 절대 못 마시게 하는 중국집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이 들키지 않고 나누어 마시며 희희낙락했다. 아무래도 탈이 날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그러나 신부님은 달랐다. ‘걱정하지마세요, 내가 다 방법이 있으니까!’
그랬다! 음식점 포도주 한 병을 시켜 놓고 그것을 사람 숫자만큼 그라스에 따라 놓고는 생수병에 담아온 브랜디가 포도주와 색깔이 비슷하니 거기에 조금씩 첨잔을 하는 방법이었다. 식당 종업원은 술을 벌컥 벌컥 마시는 한국 사람들이 포도주 한 병을 시켜 놓고 세월없이 마시고 앉았으니 이상하다는 듯 힐끔 힐끔 테이블을 넘겨다본다. 이런 작은 일탈이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하는 까닭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 신부님의 추천으로 한 병을 구입해 와서 우리 좋은 이웃사촌들과 흥겨운 하룻밤을 보낸 것은 이 순례가 가져다 준 또 하나의 축복이었다.
골고타 언덕 십자가의 길 제 15처
① 주간 첫날 동이 트기 전에 거룩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료를 들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갑니다.(마르 16,1-2)
② 그들은 무덤을 막아놓았던 돌이 치워져 있고 무덤 속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마르 16,4)
③ 무덤 가까이에 있던 천사가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여기 계시지 않습니다.”하고 일러줍니다.(마르 16,6)
④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나는 주님을 뵈었습니다.”하고 소리칩니다.(요한 20,18)
⑤ 경비대의 군인들이 대제관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보고합니다. 대제관과 원로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소문을 내라고 지시합니다.(마태 28,11-15)
⑥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저녁을 잡수시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게 하십니다.(루가 24,13-31)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와 만나신 예수님이 저녁식사를 함께 하시다.
⑦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너희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시자 제자들은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모릅니다. (요한 20,19-20)
⑧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면서 죄를 사하는 권한을 주십니다. (요한 20,23)
⑨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의심하는 토마스에게 “내 손과 내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어 보아라.” 하고 말씀하시자, 토마스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고백합니다.(요한 20,27-28)
⑩ 예수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십니다.(요한 21,1-23)
영광의 신비 2단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을 묵상합시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성당은 올리브산 정상 가까이에 있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성당에서 바라보니 금빛 십자가가 보였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동방정교회의 십자가라고 했다. 승천성당은 그냥 조그만 종탑 같은 석조전이었다. 건너편 황금빛 돔으로 빛나는 마호멧이 승천했다는 모스크와 비교하니 더욱 초라하게 여겨진다.
화려함은 인간의 욕심이 덧칠된 것이다. 실제로 모든 진실은 그처럼 화려하지 않다. 여기서 그 진실이 더욱 완연해지는 것이다.
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당신이 살아계심을 여러 모습으로 보여주십니다.(사도행전 1,3)
②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사도 1,4-5)
③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라.”하고 명하십니다.(마태 28,18-19)
④ 예수님께서 “믿고 세례 받는 이는 구원받겠지만, 믿지 않는 이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마르 16,16)
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십니다.(마태 28,20)
⑥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오르십니다.
⑦ 예수님께서 구름 속으로 올라가시어 드디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제자들은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다.(사도행전 1,9-10)
⑧ 마침 흰옷 입은 사람 둘이 다가와 “갈릴레아 사람 여러분, 왜 하늘을 쳐다보고 있습니까?”하고 묻습니다. (사도행전 1,11)
⑨ 그들은 제자들에게 “여러분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라고 일러줍니다.(사도행전 1,11)
⑩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루가 24,52)
출처 : 참 삶을 위한 휴식처
영광의 신비 3단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시온산의 어느 허름한 다락방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도 여러 번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어서 확실하고 승천하신 것도 지켜보았는데 아직 용기가 없는 제자들이다. 제자들과 성모님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그냥 기도에만 몰입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들에게 불꽃같은 성령이 내린 것이다. 이로부터 두려움은 사라지고 당당해 진다. 자신을 버리고 스스로의 십자가를 짊어질 준비가 된 것이다. 이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모든 수난과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일체라는 말이 여기에서 생긴 것이다.
나는 83년쯤에 세례를 받았다. 울산공고에 근무하면서 월평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했다. 그런데 첫해는 결석이 워낙 많아 중도 탈락했다. 이듬해 다시 도전했는데도 출석률은 겨우 채웠지만 반이나 졸았다. 아무 재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성이 없는 허황된 소리만 같았다. 당시는 세례를 주기 전에 신부님이 직접 두어 가지 내용을 질문하시는 찰고(察考)시간이 있었다.
“삼위일체가 무슨 의미입니까?”
나는 ‘삼위일체’ 하면 당시 이름난 영어교재로만 알고 있었다. 그래도 영어교재라고는 말씀 드리지는 못하고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당시 김남수 루카 신부님께서는
“안되겠어요. 더 공부해야겠어요.”
“신부님, 저가 재수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할 테니 합격시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어디서 이런 뻔뻔함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세례를 받자 말자 어느 형제님이 기도하는 모임에 나와 보라고 간청을 했다. 그냥 있으면 신심(信心)이 잘 생기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래서 어느 날 성당 지하의 레지오 쁘레시디움 주 회합에 끌려갔다. 그런데 한 시간의 기도 시간이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었다. 그 중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은 같은 기도의 말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한다는 사실이었다. 지극히 영명하신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한 마디만 해도 다 알아 들으실 터인데 왜 같은 말을 거듭 반복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휴일날 로사와 함께 장구산에 산책 나갔다가 진돗개를 몰고 산책 나온 한영운 도비아 형제님에게 낚여 파티마의 성모 쁘레시디움 단원이 되었다. 형제님의 깊은 성령이 나에게 잠시 옮겨 붙었는지 알 수가 없다.
예수의 제자는 12명이다.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가 빠지고 마티아를 넣어서다. 이 중 가장 어린 제자인 요한을 제외한 열 한명이 성령을 받고 장렬히 순교한다. 이들의 순교의 피가 지금까지 흘러 인류구원이 단초가 되고 있다.
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신 다음, 제자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내고 있습니다.(루카 24,53)
②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모님을 모시고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기도에만 힘씁니다.
③ 제자들은 오순절이 되어 모두 한곳에 모여 있습니다.(사도행전 2,1)
④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온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사도행전 2,2)
⑤ 그러자 불같은 혀들이 갈라지면서 그들에게 나타나 각자에게 내립니다.(사도행전 2,3)
⑥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성령을 가득히 받습니다.(사도행전 2,4)
⑦ 성령으로 가득 찬 그들은 성령이 시키는 대로 여러 가지 다른 언어로 말을 하고 알아듣습니다.(사도행전 2,4)
⑧ 그때 베드로가 다른 열 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군중을 보고 큰 소리로 설교합니다.(사도행전 2,14)
⑨ 베드로의 설교(사도행전 2,14-36)를 듣고 삼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습니다.(사도행전 2,37-41)
⑩ 사도들은 전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선포하는데,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셨으며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전한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주셨습니다.(마르 16,20)
영광의 신비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올리심을 묵상합시다.
성모님께서 예루살렘의 시온산에 거주하셨고 거기서 영면하셨다는 사실은 확인이 되지만 하늘로 불려 가신 장소를 기념하는 성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성모님이 무덤성당에서 얼핏 들은 내용이다. 이 성모님 무덤은 동방정교회에서 관할하고 있다. 성모님께서 승천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하니 의심 많은 제자 하나가 ‘저는 성모님의 관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고 했단다. 결국 관을 열어보니 시신은 없고 백합꽃만 가득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제자도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했던 토마스 사도 같은 분이었을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과 관련된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선포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었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지상생활을 마친 다음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것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된 신앙의 진리다."
이‘성모 몽소승천(蒙召昇天)’은 교황의 무류지권(無謬之權)으로 선포한 믿음 교리이니 가톨릭 신자는 단지 믿어야 할 뿐이다.
이때 성모승천 기념일도 1950년 11월 1일 로마교황청이 제정 발표하였다. 그 후 1962년에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3년간 논의에 들어갔다. 3년에 걸쳐 신학적인 연구와 전 세계의 주교님들의 의견을 들어 1965년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성모님께서 승천하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예수님의 ‘자력승천(自力昇天)’과는 달라 신학용어로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 한단다.
동정녀냐? 아니냐? 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성경에 드러난 형제남매에 대해서는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 이전에 이미 전처소생의 아들딸이 셋이나 있었다는 설과 이곳 풍습으로는 사촌도 전부 형제자매라 부르니 사촌이라는 설과 개신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그 뒤에 더 자식을 낳았을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가톨릭에서는 한 번도 동정녀가 아님을 인정한 적이 없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가장 완벽하게 사신 분이니 성모마리아께서 하늘나라에 계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리라.
①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후, 성모님은 예수님의 애제자였던 요한과 함께 사시며 기도에 전념하십니다.
② 모든 제자들은 특별한 영감을 받고, 성모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에 다시 한 번 더 뵙고자 모여옵니다.
③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더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셨습니다.(교회헌장 59)
④ “그는 봄날의 장미꽃 같았고 물가에 핀 백합꽃 같았으며 온갖 보석으로 장식한 순금 그릇 같았다.”(집회서 50,8-9)
⑤ 성모님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 위에 들어 올림을 받으셨습니다.(교회헌장 69)
⑥ “오빌의 황금으로 단장한 왕후는 당신 오른편에 서 있습니다.”(시편 45,9) 라는 말씀이 성모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드러냅니다.
⑦ 모든 성인과 천사들 위에 들어 높여지신 성모님께서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당신 아드님께 모든 인류를 위해서 전구하십니다.(교회헌장 69)
⑧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교회 안에서 변호사, 원조자, 협조자, 중개자라는 칭호로 불리십니다.(교회헌장 62)
⑨ 성모님은 하늘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이미 영광을 받으시어 내세에 완성된 교회의 표상이 되셨습니다.(교회헌장 69)
⑩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거룩한 어머니의 몸이 썩도록 버려두시지 않으심을 기뻐합니다.
영광의 신비 5단
예수님께서 마리아께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아무도 성모님이 천상에서 모후의 관을 쓰고 계신 것을 본 사람은 없다.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서’에서 하신 말씀은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 마음을 전달했을 것이다.
‘영광의 신비 5단’ 또한 요한 23세 교황의 혁신적 용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마리아의 생애가 다시 정리되고 그에 따른 신학적 상상력이 더해져 성모님의 승천과 더불어 모후의 관도 씌어졌다.
우리는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기도한다. 이는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고민이요 생각이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 있는 권한은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에게 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시듯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어머니 헬레나의 간청에 못 이겨 결국 가톨릭을 국교로 승인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일부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종교와 정치가 결탁한 타락한 선택이라 비난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종교란 것도 결국은 인류가 평화롭게 살게 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 져야 한다. 종교로 인해 싸우고 미워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은 참된 종교의 길이 아니다.
언양 성당은 오래된 교회다. 이 성당의 옛날 제대는 예수님의 고상을 향해 있다. 1965년 이전에는 신자들이 신부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모든 미사전례도 라틴어로만 했기 때문에 신자들은 대충 그런가 하고 듣기만 한 것이다. 복사도 남자 아이만 할 수 있었는데 이때부터 여자 어린이에게도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의 로마 가톨릭은 더욱 혁신되어야 마땅하다.
아무튼 성모님께서 천상 모후의 관을 쓰고 계신 모습은 언젠가 하느님 곁으로 갈 때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①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오르신 성모님은 아드님과 한자리에 앉아 계십니다.(에페소서 2,6)
② 성모님은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셨습니다.(교회헌장 59)
③ 그리하여 성모님은 군주들의 주님이시며(묵시록 19,16)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습니다.(교회헌장59)
④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의 개선을 크게 기뻐하십니다.
⑤ 성모님은 모든 천사들과 사람들의 여왕으로서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십니다.
⑥ 성모님은 태양을 입고 달을 밟으며 별이 열두 개 달린 월계관을 쓰고 계십니다.(묵시록 12,11)
⑦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과 몸에 받아들이시어 천주의 성모로, 또 구세주의 참어머니로 인정받으시고 공경을 받으십니다.(교회헌장 53)
⑧ 성모님은 당신의 모성애로 아직도 나그넷길을 걸으며 위험과 고통을 겪고 있는 당신 아드님의 형제들을 돌보시며 행복한 고향으로 이끌어주십니다.(교회헌장 62)
⑨ 성모님은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2베드로 3,10)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 빛나고 계십니다.(교회헌장 68)
⑩ 우리가 묵주기도인 장미꽃다발을 성모님께 드리면, 성모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을 전구(轉求)해주십니다.
요르단
이틀을 요르단에서 보냈다. 첫날은 느보산을 거쳐 아카바 항구에 가서 자고 하루는 마른 사막인 와디럼 체험과 페트라 관광이었다. 페트라는 21세기에 세계의 네티즌들이 새롭게 선정한 세계 7대 불가사의란다. 잠은 수도 암만에서 잤다. 이곳은 호텔 입구에서도 엑스레이로 짐을 검사했다.
느보산은 835미터의 악산이다. 모세가 마지막으로 올라 가나안 땅을 바라본 곳이라 유명해졌다. 국경을 지나 느보산을 오르는 길은 전형적인 사막의 길이고 꼬불꼬불 험로였다. 나는 느보산을 순례하는 관광객을 위해 일부러 닦은 도로인가 생각했다. 저 멀리 베드윈 족의 천막만 간혹 보일 뿐 황막한 사막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 꼭대기에 모세를 기리는 성당이 있고 모세의 상징인 붉은 구리 뱀 형상도 만들어 세워놓았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우리 부부는 독서하는 영광을 누렸다. 독서대도 구리 뱀이 감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 높은 곳에 어떻게 나무들이 자라고, 그 옛날에 거대한 성당을 지을 수 있었을까가 궁금했다. 또 모세가 물도 없는 이 산정까지 어떻게 오를 수 있었을까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거기서 남쪽으로 얼마지 않은 곳에 도시가 나타났다. 느보산은 700에서 1700m에 이르는 거대한 요르단 고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느보산은 반전의 산이다.
모세는 하느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바로 코앞에 두고 이 산에서 120세로 일생을 마감한다. 이로부터 여호수아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께 지은 죄로 인하여 이집트를 탈출한 1세대 가운데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굳건한 믿음 하나로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케이팝(K pop)이다. 요르단 이스라엘 할 것 없이 청소년, 특히 여학생들이 케이팝의 신봉자들이다. 한국말도 몇 마디씩 한다. 인터넷을 통해 한국말을 배운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면 추앙의 대상이다. 먼저 다가와 사진 찍기를 요청한다. 극성인 자매님들이 이를 뿌리치지 못한다. 소풍 나온 학생들과 한국의 아줌마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사진을 찍느라 난리다. 그걸 보다 못한 인솔교사가 빨리 이쪽으로 건너오라고 고함을 친다. 느보산에서도 소풍 나온 여학생들이 우르르 우리 일행이 미사를 드리는 곳까지 들이닥친다. 관리하는 신부님이 밀어내지 않았으면 미사도 함께 볼 태세다. 모세가 광야 40년을 거쳐 정복한 느보산을 케이팝은 몇 년 사이에 이미 점령한 것이다. 세삼 문화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느보산에서도 느낀다.
또 하나 천주교가 효율적인 것이 어느 성당에 가도 신부님의 미사복이 치수별로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신장 160을 갓 넘을 신부님에게도 맞는 옷이 가는 성당마다 갖추어 있는 것을 보니 참으로 신통하다.
요르단의 느보산에서 요르단의 유일한 항구도시 아카바로 이동하는 길은 멀고 멀었다. 하루 한 6시간을 ‘황제의 도로’라 이름 붙인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했다. 고속도로라지만 우리의 고속도로를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길은 낡아서 차는 흔들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나무 한그루 없는 황무지인 황야(荒野)다. 한 없이 넓은 평야로 구성된 황무지도 허다하다. 그런데 이쪽 가이드들은 이를 그냥 광야(廣野)로만 표현한다. 아마 구약에서 모세가 모질게 거쳐 온 40년의 광야, 요한이 꿀과 메뚜기를 먹으며 수련했던 광야, 예수가 40일간 유혹을 견디며 단식했던 광야를 이 황막한 사막의 황무지와 동일 시 해서일 것이다.
그 광활한 평야들은 물만 끌어 오면 지금이라도 옥토로 변할 수 있는 땅들이다. 그러나 자연 강우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두고 바라볼 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그 작은 비라도 한 곳으로 모아 관개수로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 나라는 거기까지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지 아니면 여력이 부족한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그 광야에 협궤 철로를 엉성하게 깔아놓고 열차가 달린다. 철로에는 풀한 포기 없는 험산에서 바위가 굴러 내릴 수 있는 위험성이 농후해 보인다. 그러나 당장 떨어지지 않으니 그냥 달린다.
아카바에서는 신부님이 한 턱을 쏘셨다. 겨우 수소문해서 외국인과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주류 도매 집을 찾았다. 세상에, 맥주가 13%, 8%, 5% 다양하게 있었다. 세계는 넓고 맥주는 다양했다. 우리는 13%와 8% 맥주를 구입해 신부님 방에서 몰래 마셨다. 우리 소맥보다 맥주가 훨씬 더 독하다. 차라리 소주가 더 낫다. 독한 요르단 맥주에 취해 어두컴컴하고 누추한 아카바의 호텔 밤을 보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집들이 반듯반듯하고 또‘이스라엘 스톤’으로 모든 외벽을 장식해서 보기에도 중후하고 고풍스럽다. 그러나 도시 외곽을 벗어나면 집들은 그냥 헛간이나 창고 같은 모습이다. 거리에 차들도 시 외곽에는 우리나라 중고차를 수입해 온 경우여서 열에 일곱 여덟은 한국 차다. 맵시도 있고, 구형 르망도 있고, 에스페로도 보인다. 그러나 암만은 다르다. 값비싼 외국차들과 한국의 신형 차들이 줄을 잇는다.
암만의 호텔에서는 우연히 결혼식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은 주로 저녁에 결혼식을 한다고 한다. 아랍 여인들이 참 아름답다. 특히 눈이 섹시하다. 눈만 내어 놓고 다녀도 이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금방 짐작할 수 있다. 하객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부유층의 결혼식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다. 우리 일행이 축하의 박수를 보내니 모두들 반갑게 인사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사우디로부터 원조를 받아야 나라를 꾸릴 수 있는 사정은 이 결혼식에는 없다. 잘 생긴 국왕도 매일 150만이 모여 사는 암만 시내만 바라보니 모든 국민의 수준이 이정도인 것으로 착각하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국민의 대다수가 암만에 모여 산다고 한다.
요르단은 아랍 국가들 가운데 석유가 나지 않는 유일한 나라이다. 그래도 이 나라가 몇 해 전 강렬하게 분 지중해의 재스민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았다. 그 원인은 우선 국왕이 국민에게 인기가 있고, 석유가 나지 않은 덕분에 강대국들의 각축장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란다.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교훈은 도처에 있다.
요르단에 이르기 전에 헤르몬 산에서 눈이 녹아 샘이 되어 퐁퐁 솟는 요르단 강의 근원지인 ‘단’을 찾아갔다. 요르단이란 국명은 ‘단이 흐르는 나라’란 뜻이란다. 단은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한 부족이다. 그곳은 숲이 우거지고 그늘이 져서 공기가 청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당장 숨쉬기가 편하다. 문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바로 여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은 이스라엘 땅에 있다.
그 길을 걸으며 허리에 술을 늘어뜨리고 귀밑머리를 길게 늘이고 검은 바지와 흰 셔츠를 입은 유태교인을 만났다. 이 사람들이 바로 예수시대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란다. 율법에 한 글자 한 획도 고쳐서는 안 된다는 사람들이다. 안식일 날 환자를 고쳐 준 예수를 공격한 사람들이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와디럼 사막에서 털털이 일제 도요타 트럭을 타고 사막 체험을 한 것도 재미였다. 운전기사는 배드윈족이라 했다. 메마른 사막에서 양을 먹이던 사람들의 대 변신이다. 비록 때가 꼬질꼬질 묻은 전통복장을 했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남들이다. 사진을 찍으려니 겸연쩍은 듯, ‘원 달러’를 속삭인다. 사막은 철분이 많아 모래가 주황색이다. 모래 언덕 체험에서는 더위에 지쳐 그냥 빠지려다가 용기를 내어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발에다 뜨거운 모래찜질을 하고 나니 오히려 피로가 풀린다.
페트라는 나로서는 처음 듣는 지역인데 요르단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관광지란다. 주전 300년쯤에 번성했던 나바티안 족의 교역중심 사막 요새요, 도시이다. 한 번은 볼만한 자연과 유적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21세기에 네티즌들이 새로 뽑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 도시가 포함이 되었단다. 수만 년을 깎인 바위들이 조각처럼 가득하게 서 있고, 그 시대에 어떻게 저처럼 높이까지 자연석을 조각해 대칭의 조화를 이룬 성전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유적도 있었다.
우리는 걸어서 갔지만 아예 말을 빌려 타고 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 말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더운 날에 과로가 겹쳐 입에 게거품을 문다. 거의 동물학대다. 보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길에는 말똥 냄새가 가득하다. 중간 중간에 냄새나는 말똥을 치우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노인 한 분은 말똥을 치울 기운도 없는 듯 그늘에 죽치고 앉아서 담배를 사 피울 돈 2달러만 달라고 구걸을 한다. 담배를 사 피운다는 말에 비위가 상해 그냥 지나쳐 왔지만 ‘가장 미소한 자에게 베푼 것이 곧 나에게 베푼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술을 못 먹게 해도 담배는 아직 마음대로 피우게 하는 것이 이 나라의 정책이란다. 담배에 관한한 우리나라 7-80년대의 생각에 머물러 있음이다.
엄마는 생전에 담배가 사람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내가 편도선으로 인해 어렵게 금연했음에도 담배를 끊은 아들을 안타까워했다.
“야야, 와 먹는 음식을 끊노? 돈이 없어서 그러나!” 그러면서 어쩌다 좋은 담배가 선물로 들어오면 그 담배보루를 뜯지도 않은 채 농 위에 간직해 놓으셨다가 “가져다 피워라.”고 내어 놓으셨다.
로사와 나는 출발지에 거의 도착해서 잠시 말을 탔다. 5달러에 계약을 했는데 자꾸 팁을 더 달란다. 후진국의 병폐다.
와디럼 사막의 낙타
와디럼 사막을 탐험하기 직전 사막을 배경으로
페트라 가는 길
페트라의 대표적 유적
에필로그
여행기를 쓰면서 날짜별로 쓸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생애가 뒤죽박죽이 되어 오히려 헷갈릴 것 같았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과 성장, 공생활기,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묵주기도의 순서로 정리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나사렛의 주님 탄생 예고성당, 예루살렘 애인카렘의 엘리사벳 방문 성당, 베들레헴의 주님 탄생 성당, 주님의 성전이 있었던 자리에 거대하게 버티고 앉은 마호멧 승천을 기념하는 모스크, 예수님과 성모님이 걸었을 나자렛과 예루살렘으로 이어지는 광야 길, 예수님이 물로 세례를 받은 요르단 강, 마귀의 유혹을 이겨낸 예리고의 유혹의 산, 첫 기적의 카나 혼인교회, 하느님의 나라가 선포된 갈릴레아 호숫가, 거룩하게 변모한 타볼산,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주님 기도문 성당. 성체 성사를 세우신 시온산의 최후의 만찬 수도원, 피땀을 흘린 겟세마니 동산, 골고다의 언덕 십자가의 고통과 부활 그리고 예수의 승천과 성령 강림의 흔적들이 모두 묵주기도의 현장들이다.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하루 평균 10단의 묵주기도를 드려보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기가 참 힘들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입으로는 기도를 드리면서 마음은 어느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사적 사실과 성경에 대해 무지하니 그냥 기도문에 있는 내용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이번 이스라엘 성지순례가 묵주기도에 어렴풋이나마 구체성을 부여한 것은 가장 큰 수확이다. 여행 기록을 정리하면서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찾아보며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내가 쓴 글 가운데도 다수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며 이 여행기를 마무리 하려 한다.
아쉬운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 속으로 직접 들어가 보지 못한 것이다. 들에는 농지가 잘 정리되어 있고 농작물이 잘 자라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사람들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삶의 기초단위가 되는 키부츠의 생생한 현장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여행을 마치고 그 내용을 부족하게나마 정리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신 좋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2016. 5. 22 허남술 세바스티아노가 삼가 기록함
[출처] 묵주기도 - 영광의 신비 5단 |작성자 빈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