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영천에 죽림사라는 절이 있었네
날씨는 늦가을인데 달력은 입동이 지났으니 겨울이란다. 이번 일요일은 어느 절을 찾아갈까.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에 신흥사라는 새 절이 있다.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이 있어서 예전에 답사를 한 곳이다. 그래서 친숙했다. 금호읍 정류소에서 멀지 않는 곳이다. 또 다른 절로는 죽림사라는 절이 있었다. 처음 듣는 절 이름이다.
우리 부부는 불심이 깊어서 절을 찾는 것이 아니다. 노후의 건강을 챙긴다면서 걷기 운동을 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유봉산 자락이라고 하였으나, 주소지를 보면 금호읍에서 멀지 않아 보인다. 나는 금호에서 걸으면 걸음 수가 모자란다면서, 하양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가서, 올 때는 하양까지 걸어오자고 했으나. 아내는 주소지가 영천시인데 영천까지 가자고 한다. 그 거리나 이 거리나 비슷하다면 목소리를 높여서 우길 일이 무에 있겠는가.
지하철로 안심에 가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영천행 버스 555번이 먼저 온다. 먼저 오는 차를 타기로 했다. 옆 자리는 영천까지 간다는 할머니 두 분이 탔다. 하양에서 내리든, 영천에서 내리든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찾아갈 절집도 정하지 않았다.
나와 집사람이 다른 점이 있다. 나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챙긴 정보를 믿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서 정보를 얻으려 하지 않는다. 아내는 끊임없이 묻는다. 서울에 가면 뻔한 길인데도 집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고, 또 묻고 한다. 그런 아내가 창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내의 그 버릇이 또 나온다. 옆 자리의 할머니께 죽림사도 묻고, 신흥사도 물으니 할머니는 죽림사 이야기만 한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서는 ‘나도 영천 사람이라 죽림사를 잘 알아요. 영남대 병원 입구에서 내리면 멀지 않아요,’ 한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내려주겠다고 하였다.
영남대 병원을 지나, 신령에서 내려오는 하천 변에 내려주면서 ‘저기 빨간 간판이 보이지요. 저기서 강둑을 따라 금호강 쪽으로 가면 됩니다.’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강둑 입구의 안내판에는 절까지 2km라고 하였다.
기사 아저씨가 아르켜준 데로 강둑을 따라 걸었다. 이 물길을 따라 가면 금호강과 합류한다고 했다. 뚝길은 흙길이라서 걷기가 좋다. 하천의 폭은 점점 넒어지면서, 이제는 저 쪽 뚝이 아득해서 지나가는 사람이 가물가물해 보인다. 갈대와 물풀이 겨울을 맞이하느라 갈색이 되어서 하천 바닥을 덮고 있다. 하천 둑에는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도 곳곳에 줄지어 서있다.
반대편에는 둑 밑으로 공장들이 서 있고, 드문드문 모텔도 보인다. 바로 옆이 갈색 단풍으로 덮인 유봉산의 절벽이니 경치가 좋아서 들어서 있나 보다. 물풀 사이로 흐르는 물길에는 오리떼들이 헤엄치고 있고, 낚시군도 한 사람 보인다.
이제는 폭이 워낙 넓어져서 하천이 아니고 강이라는 기분이다. 강둑을 따라 걷고, 걸었지만 죽림사로 가는 길의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둑 아래의 공장들도 없어지고, 이제는 과원과 채소밭이 나타난다. 절로 가는 안내판이 없다. 절집의 지붕이 보일까 싶어서 산으로 연신 눈을 돌려보았지만 단풍으로 휩싸인 산절벽 뿐이다. 아내더러 절이 있을 곳이 아니다 라는 말을 나누면서 걸었다.
둑길의 끝자락에는 산이 가로막고, 물굽이가 지나는 곳은 바위벽이다. 여기서 물길은 크게 굽이치나 보다. 길은 물길과는 반대편으로 꺾여 산고개로 올라간다. 우리 부부는 오르막 길을 따라 올라 갔다. 산고개에서야 안내판을 만났다. 왔던 쪽으로 찻길을 따라 산아래로 도로 내려가라는 안내판이다. 내리막길이라서 수월하기는 하나 헛길을 많이 걸었었나 보다.
내리막길이 끝날 즈음에야 절로 가는 안내판이 있다. 유봉산은 낮으막한 산인데도 골짜기는 깊은 산의 골 같다. 나무는 울울하고 골자기에서는 졸졸거리는 솔이기는 하나 물소리도 들린다.100m쯤 들어가니 우람한 일주문의 돌기둥이 보인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돌기둥을 흰빛이 나는 화강암으로------. 너무 화려하다 싶었다.
길을 조금 더 걸어서 올라가니 골짜기 속에 푹 싸여있는 절집이 보인다. 따뜻하고 아늑해 보인다. 어-!, 여기에 이런 절이 있었네. 집사람의 감탄이다.
불이문인 안락루 아래에 돌계단이 가파르다. 나이 탓인지 가파른 계단은 오르기도, 내려오기도 겁이 난다. 빙 둘러서 계단이 아닌 곳으로 올라가니, 주불전은 극락전이다. 절을 오를 때 들려오던 장중한 목소리릐 불경 낭송도 끊어졌다. 절을 둘러싸고, 이쪽, 저쪽에 요사채들이 늘어서 있다. 양반마을의 기와지붕처럼 모습들이 조화를 이룬다.
절집 마당에 이르면 나는 모자를 벗고 합장 3배를 한다. 그러나 집사람은 법당에 들려서 부처님께 공양도 드리고, 배례도 올린다. 시간을 아주 오래 잡아먹어서, 나는 마당의 구석자리에앉을 자리를 찾아서 아내를 기다린다. 집사람은 법당을 나서더니 기와불사를 하는 곳으로 갔다. 그것도 관례처럼 하는 일이다. 기왓장에 우리 부부 이르믈 적고,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적고, 이제는 손자, 손녀의 이름까지 적는다. 기왔장에는 우리 가족들의 이름으로 가득 찬다.
나는 절에 들어서면서부터 절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찾았다. 이 절의 역사에 대해서 얻은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이 절은 자기를 소개하는 명함이 보이지 않는다. 절집도, 절마당에 서 있는 탑이며, 부도밭의 부도까지 세월의 떼가 느껴지지 않으니, 안내판까지 세워서 절을 소개할 거리가 없는가?
법당 앞에, 유일하게 철조여래좌상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한 철조여래좌상이다. 많이 보수했지만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라말의 선종사찰이나, 고려시대에는 철불을 모신 곳이 많다. 고려시대의 철불이 있다는 것은 이 절이 신라시대는 아니더라도 고려시대에 세웠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요즘에 불교의 번창기를 이용하여 급조한 현대사찰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영천시민들이 이 절을 기억하고, 자기네의 사찰처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기야 웬만한 절이면, 신라시대의 의상이 창건하였느니, 신라 고승이 창건하였느니 하는 이치에 닿지 않는 소개를 하는 글을 많이 보았다. 소개하지 않는, 아예 안내판을 달지 않는 사찰이 더 불교 이념에 가까운 절이라는 생각이다.
장엄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다는 것은 서민들이 즐겨 찾는 절이라서 싶다. 영천에서 유년을 보낸 아내는 자기가 어렸을 적에 엄마가(장모님) 이 절에 다녀온 듯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맞으리라고 생각한다. 장모님은 점도 보러 다닌 전형적인 조선의 부인이었다. 아마도 이 절은 조선시대의 억불 정책으로 숨죽이고 있었지만 영천의 사람들의 등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 역할을 하였으리라.
우리 부부는 함께 사진을 찍으려 찍어 줄 사람을 찾으려 두리번거렸으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마침 절마당을 지나는 스님이 있어서 부탁을 드렸더니 삿터를 눌러 주었다. 보살님을 만나 찾아오는 길에 안내판이 없어서 조금 헤멨다면서, 안내판 얘기를 하니, ‘많이 붙여 놓았는데, 어디로 왔어요’ 한다. 천변 둑길을 말하니까, 아, 거기는 없어요. 자동차 길에는 많아요. 했다. 하기야 요즘 세상에 우리 부부처럼 걸어서 절올 찾아올 사람이 없을테지. 모두들 차를 타고 찾아올텐데, 그러니 찻길에만 안내판을 달아 두었을거다.
내려오는 길은 금방처럼 느껴졌다. 길을 걸어보면 처음 가는 언제나 훨씬 더 멀어보였다. 자주 다녀서 익숙한 길은 거리가 짧아 보였다. 삶에서 익숙한 일상을 만드는 것이 그만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집에 와서,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걸었다 싶어서 만보기를 보니 2만보가 되었다.
첫댓글 사람사는 맛이 구수한 절집 답사 이야기 정말 좋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다른 나만의 이야기라 더 정감이 갑니다. 한 개인의 소박한 역사라고 해석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또 다음 절 이야기가 기다려집니다.
선생님 부부를 따라서 저도 같이 송림사를 잘 다녀 온 것 같습니다.
걷기 운동도 하시고 사찰도 다니시고, 불자는 아니라고 하시면서 가는 곳바다
귀와 불사 하시고 그것이 불자 아니십니까?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주시니 역사가 되고,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도 기대 많이 합니다._()_
추억을 떠올려 주신 시리즈 수필 잘 보았습니다.
55년 전 영천중학교 1학년 때 한 시간 넘게 걸어 죽림사에 소풍 간 기억이 희미하게 납니다.
500나한인지 1,000불인지 조그맣지만 표정이 다 다른 느낌이 나던....
은해사의 말사와 착각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동시 쓰는 사람인데 사찰순례 수필 읽기만 하다가 영천시 자양면 보현산 아래가 고향이라 반가워서 댓글 썼습니다. 불자는 아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