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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향기 스크랩 경북 구미의 부지암(不知巖)과 부지암 정사
中隱 추천 1 조회 311 14.04.10 14:52 댓글 2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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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4.10 15:32

    첫댓글 임수동은 물가(낙동강)에 임하여 있다고 臨水洞입니다. 제가 군 제대 후 1980년대 중후반에 구미 금성정밀에 근무하면서 임수공장으로 파견 나간 적이 있습니다. 그 후 금정정밀은 LG정밀, LIG넥스원으로 사명을 바꾸었지요. 임수동 강가에는 청둥오리가 떼로 몰려와서 한 마리 잡아 보려고 했지만 결국 잡지를 못하였습니다. 동락서원은 낙동강의 동쪽에 위치하였다고 이름 지었네요.

  • 작성자 14.04.10 16:40

    ㅎㅎ 단사선생 내용이 너무 길어서 자세히 읽어 보지 못하셨군요 낙동강 동쪽에 있다고 한것이라기 보다 동국(東國)의 이락(伊洛)’이라는 뜻으로,‘이락’은 송나라의 성리학자인 정이와 그의 형 정호가 강학하던 곳을 말합니다.
    부지암정사 기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참으로 명문입니다. 정사의 이름을 짓는데도 이렇게 오묘한 뜻이 담겨 있으니 여헌선생은 정말 천재적인 대학자가 분명합니다.

  • 작성자 14.04.10 16:39

    伊洛은 伊水와 洛水를 뜻하지요

  • 14.04.10 17:26

    @中隱 한자로 보아서 그렇게 유추가 되었고, 여헌 선생이 말한 동국의 이락(이수와 낙수)의 뜻이 있네요. 너무 길어서 세밀히 읽지를 못하였습니다. 좋은 지적이네요.

  • 14.04.10 23:05

    堂下之江 卽落之下流也. 伊落乃有宋諸賢所興之地 而江名遇與之同 이 귀절을 미루어 보아서 旅軒先生께서 누구와 비겨보셨는지 잠작이 갑니다. 마치 와룡선생이 남양에서 밭을 갈면서 관중 악의와 가만히 비겨보았다는 옛일을 떠오르게 합니다.곰곰히 생각해보니 선생께서는 낙동강을 이수와 낙수에 빗대었고 宋諸賢이라함은 태극도설의 주돈이[주염계]-정이천.정호형제. 주희이러한 대학자를 이르는 것인데 이 구절에서 풍기는 뉘앙스로 보아서 선생께서 스스로 학문의 경지를 宋諸賢에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자부심을 엿보는것 같습니다.

  • 14.04.10 23:03

    @中隱 중은선생님 소개로 인하여 우리나라에도 이러하신 웅장한 대학자가 계셨다니 놀랍고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여헌선생의 학문의 깊이와 높이 넓이는 가히 측량할길이 없습니다. 여헌선생의 자부심은 小中華의 碩學으로서 실로 깊은 학문의 성취가 계셨기에 부지암이라는 소박한 소재를 가지고서도 당당하고 아주 웅장하면서도 세밀하고 고금을 아우르는 眞理와 哲理를 씨줄과 날줄처름 엮어서 멋지면서도 화려하고 화려한 가운데 소박하게도 기문을 지으셨다고 생각합니다.

  • 14.04.10 23:25

    @中隱 청주정씨 대종회에서 부지암과 여헌선생을 소개했을까 의아했었는데 여헌선생의 부인께서는 한강 정구선생의 질녀로 청주정씨가문의 사위가 되셨기 때문이었군요

  • 14.04.11 08:03

    @中隱 그저 감탄스러울 뿐 입니다^^♥♥♥

  • 14.04.10 17:30

    수양산과 고죽국은 우리가 배운 "백이,숙제"에 나오는 얘기죠. 백이,숙제는 은나라의 제후국인 고죽국의 왕자로 은나라 주왕이 포악하여 간하였으나 듣지 않아서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은 "채미"의 고사를 낳았습니다.

  • 14.04.10 23:19

    여헌선생의 평생의 포부를 읽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금오산을 수양산에 비유하였고 야은길재선생과 백이숙제형제를 오버랩시킨걸로 보아서 높은 벼슬보다는 학문의 연마와 인재양성에 뜻을 두신 훌륭한 인품이 부지암기문속에서 살아있어서 오늘날 까지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나옵니다.

  • 작성자 14.04.11 09:55

    @운문 여헌선생의 포부는 대단히 큰것을 알수있는 것이 방년의 나이에 우주요괄첩(宇宙要括帖)을 지어 스스로 우주의 원리와 학문의 경지를 통달하고 공자의 시대에 태어나지 못함을 한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대학자 한강선생의 질서이면서도 독자적인 학풍을 만드신 천재적인 학자입니다. 다만 퇴계선생을 직접 뵙지 못하였으며 뛰어난 후학이 많지 않아 그 학맥을 이어가지는 못하였지요.

  • 작성자 14.04.11 11:06

    @운문 한강선생과 여헌선생에 대해서는 역사와 문화의 향기 332번을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겁니다.

  • 14.04.26 12:49

    @中隱 중은선생님! [역사와 문화의 향기 332번]꼼꼼하게 잘 읽어 보았습니다. 병호시비. 회니시비. 한려시비... 한려시비도 그 시대에는 굉장복잡한 속내가 있었던가 봅니다. 숙종대왕이 직접 나사서 [도산통서 한강의발]이라는 문구로 교통정리를 해주어야할 정도였다니 얼마나 어마어마한 문제였는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갑니다.

    백매원百梅園을 두고 읊다

    작고작은 산앞에 조그만 집을 지어
    뜰 가득 매화·국화 해마다 늘어나네
    구름과 물을 더하여 그림 같은 자연속
    이 세상에 내 생애 가장 사치스럽네
    (小小山前小小家
    滿園梅菊逐年加
    更敎雲水粧如畵
    擧世生涯我最奢)

  • 14.04.10 18:27

    해박한 지식 옆에서 덤으로 얻어가니 감사 더블 입니다
    읽는데도 한참 걸리는데 이글 올려주신 수고 에 감사드려요
    더구나 댓글 답글은 참으로 좋습니다 ^^*

  • 14.04.10 23:32

    중은 단사선생님덕분으로 역사 공부 많이 하고있습니다~

  • 14.04.10 22:27

    정면 5칸 측면 2칸의 정사를 짓고, 그 이름을 정하는 데....."부지"를 화두를 삼아 이토록 긴 글을 쓰신 분이 낙동강 하류에서 사백년 전에....그저, 감탄....^^ 글 그대로 "부지"의 뜻이 이렇게 풍부하고 깊다니, 나중에 또 읽어봐야겠습니다. 옛 풍광 사진이 참 좋네요

  • 14.04.10 23:31

    풍수기행하시는 분들 블러거나 카페같은데서 여헌선생의 묘소를 본적은 있었지만 여헌선생의 학문적 깊이와 높이가 이토록 송나라 대학자들과 비유가 되는줄은 처음알았습니다

  • 14.04.11 07:49

    기이한 재주를 부리고 지나치게 공교로운것을 경계한다는 것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좋ㅇㄴ 내용 천천히 음미하겠습니다^^♥♥♥

  • 14.04.11 10:03

    번번히 느끼지만 옛사람들이 글을 적어 저렇게 정자에 걸어두는 것이 참 고풍스러우면서 운치가 있습니다. 강물은 흘러갔지만 옛사람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네요 (^-^*)

  • 14.04.11 10:33

    人死有名[有書] 虎死有皮!!!

  • 14.04.11 10:56

    @운문 ㅎㅎㅎ 과연 !

  • 14.04.11 10:22

    여헌 선생이 마지 못하여 잠시 관직을 맡은 적이 있지만 오래 있지 않았고 곧 낙향하였으며 대사헌, 우참찬 등의 고관대작에도 연연하지 않을 것을 보면 남명이나 명재 윤증과 비견할 수 있으며 처숙부인 한강 정구 선생과 나란히 영의정에 추증된 것을 보면 학문이나 인품이 대단하였음을 보여줍니다.

  • 14.04.11 11:03

    요즘 시대에는 조그만 소재거리도 정말 멋있게 포장하고 꾸미고 하여 스토리텔링이다 드라마다하여 널리 알리는 시절인데 여헌선생 문중에서나 구미시에서 금오산 야은선생 여헌선생 한강선생님을 비롯한 훌륭하신 선현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묶어서 원스톱으로 문화관광 상품형식으로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14.04.11 10:57

    댓글이 더 잼있네요,,

  • 작성자 14.04.11 13:22

    "男兒가 천지에 태어나면 마땅히 宇宙사이의 事業을 자신의 임무로 삼아야 하니 신변과 자신의 일로 국한하지 말고 또 하루나 일년이나 한代로 한계하지 말아야 한다. 아! 천지사이에 남아가 된자가 또 몇사람이겠는가" 여헌선생이 18세에 지은 우주요괄첩의 내용 일부입니다.

  • 작성자 14.04.11 13:26

    앞으로는 자신과 가족들 보다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공영을 위해 아니 우주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 14.04.11 14:38

    @中隱 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그렇게 살 수 없는 몸입니다. 부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용서를 !!

  • 14.04.11 15:16

    맞습니다! 중은선생님 .앞으로도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더 나아가 인류의 공영과 세계와 우주의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 14.04.16 14:53

    알겠습니다. 기도만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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